빈 집, 가거도
김완
닭 울음소리 선연한 간밤의 소란이 모두 잠든 새벽 밖으로 나와 올려다본 하늘에 반쯤 찬 달이 걸려 있다 달도 잃고 6펜스도 잃을 수 있다는 말을 떠올린다 산 중턱에 남향으로 자리 잡은 둥구 펜션 물품을 실어 올리는 도르레가 보인다 살만한 섬으로 만들어 잘 살면 될 텐데 가거도항에서 펜션으로 올라가는 가파른 돌담길로 조성된 마을 골목 이곳저곳에 빈 집들이 유적지 파편처럼 널브러져 있다
빈 집에서 발화하는 기다림의 세월 불태웠던 자리가 단지 잿더미가 아니길 추모와 헌정 과거의 불씨가 재점화하는 자리가 된다면 지금의 목소리와 옛 목소리가 한자리에서 녹아 뒤섞일 텐데 과거의 신화와 권위는 해체되는 것 사는 일은 죽음을 보는 것이 아니라 과거의 헌 집을 불태우고 새 집을 짓는 것이다 시간의 뼈를 잘게 부수어 과거가 못한 말을 이어받고 못다 본 희망을 실천하자는 것이다
덧없는 것 순간적인 것만 가득한 의미 상실의 시대에 다른 것을 상상해 보려는 섬의 열망이 장딸기 꽃이 되어 무너지며 소멸해가는 돌담길 여기저기에 피어 있다 한 번도 만나 본 적 없는 사내들과 건물들이 존재하는 곳 상실 복구 그리고 사람과 시대에 대한 끊임없는 질문 '섬은 무엇으로 사는가', '주름진 섬의 안쪽을 들춰 봐도 되나요'라는 물음에 강한 거절의 표시를 하는 아낙네 가가도 섬, 섬이 운다
첫댓글 둥구(=풍뎅이의 사투리)펜션
# 우연한 것이=>생략
저 붉은 행간에는 집이 한 채,/사람이 들어 살던 곳 /새끼를 낳고 밥을 끓이고/더러는 슬픔도 있었겠지만/지금은 화인처럼 사라진 흔적
-손현숙 시인의 디카시 <행간>증에서
상실 복구 그리고 풍경처럼 쳐다보는 냉담한 여행자의 시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