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도전의 불씨잡변
불씨(佛氏)가 인륜을 버린 데 관한 변[佛氏毁棄人倫之辨]
명도(明道) 선생은 “도(道) 밖에 물(物)이 없고 물 바깥에 도가 없으니, 바로 하늘과 땅 사이에 어디를 가나 도가 아님이 없다는 뜻이다. 즉 아버지와 아들 사이에는 아버지와 아들의 친(親)한 바가 있고, 임금과 신하 사이에는 임금과 신하의 엄격한 바가 있고, 남편과 아내, 어른과 아이, 친구와 친구 사이에도 각각 도가 되지 않는 것이 없다. 그러므로 이 도는 잠시라도 떨어질 수 없는 것이다. 그러니 인륜을 허물고 사대(四大)【살펴보자면 사대(四大)는 느낌[受]•생각[想]•지어감[行]•의식[識]이다.】를 버리는 것은 도(道)에서 훨씬 더 멀리 떨어진 것이라고 할 수 있다”고 하였다. 또 이르기를 “말과 행위가 두루 미치지 않음이 없건만 실제로는 사람이 지켜야 할 윤리에 벗어나 있다” 하였으니, 선생의 판단이 매우 옳다.
불씨의 화와 복에 대한 변[佛氏禍福之辨]
……(중략)…… 저 불씨는 사람이 사악한지 정의로운지 올바른지 그른지는 가리지 않고 말하기를, “우리 부처에게 오는 자는 화를 면하고 복을 얻을 수 있다”라고 한다. 이것은 비록 열 가지의 큰 죄악1)을 지은 사람일지라도 부처에게 귀의하면 화를 면하게 되고, 아무리 도가 높은 선비일지라도 부처에게 귀의하지 않으면 화를 면할 수 없다는 말이다. 가령 그 말이 거짓이 아니라 할지라도 모두 사사로운 마음에서 나온 것이요, 올바른 도리가 아니므로 징계해야 할 것이다. 하물며 불씨의 가르침이 일어난 후 오늘에 이르는 수천 년 동안 부처 섬기기에 매우 독실했던 양 무제(梁武帝)나 당 헌종(唐憲宗)과 같은 이도 모두 화를 면하지 못하였으니, 한퇴지가 “부처 섬기기를 더욱 근실하게 할수록 연대(年代)는 더욱 단축되었다”고 한 말이 또한 매우 깊이 있고 분명하지 않은가?
이단을 물리치는 데 대한 변[闢異端之辨]
……(중략)…… 불씨의 경우는 그 말이 고상하고 미묘하여 성명(性命)•도덕(道德)의 논의를 오감으로써 사람을 현혹함이 양주(楊朱)와 묵자(墨子)보다 더 심하였다. 주자(朱子)가 “불씨의 말이 더욱 이치에 가깝지만 참된 것(眞)을 크게 어지럽힌다”라고 한 말은 이를 가리킨 것이다.
내 정신이 흐릿하고 어리석어 재주가 부족함을 알지 못한 채 이단을 물리치는 것을 나의 임무로 삼은 것은, 앞서 열거한 여섯 성인[과 한 현인의 마음을 계승하고자 함이 아니라, 세상 사람이 이단의 말에 현혹되고 모두 빠져 버려 사람의 도가 없어지는 데 이를까 두려워하기 때문이다. 아아! 난신적자(亂臣賊子)는 사람마다 잡아 죽일 수 있으니, 반드시 사사가 필요한 것이 아니며, 사특한 말이 흘러 사람의 마음을 무너뜨리면 사람마다 물리칠 수 있으니 반드시 성현을 기다릴 필요가 없는 것이다. 이는 내가 여러분들에게 바라는 점이자 아울러 나 스스로가 힘쓰는 바다.- 『삼봉집』권9, 『불씨잡변』-
1)열 가지의 큰 죄악 : 가장 무거운 처벌을 받는 열 가지 범죄. 모반(謀反), 모대역(謀大逆), 모반(謀叛), 악역(惡逆), 부도(不道), 대불경(大不敬), 불효(不孝), 불목(不睦), 불의(不義),
佛氏毀棄人倫之辨
明道先生曰, 道之外無物, 物之外無道, 是天地之間, 無適而非道也. 卽父子而父子在所親, 卽君臣而君臣在所嚴, 以至爲夫婦爲長幼爲朋友, 無所爲而非道. 所以不可須臾離也. 然則毀人倫去四大,【按四大受•想•行•識】 其分於道遠矣. 又曰, 言爲無不周徧, 而實則外於倫理, 先生之辨盡矣.
佛氏禍福之辨
……(中略)…… 彼佛氏則不論人之邪正是非, 乃曰, 歸吾佛者, 禍可免而福可得. 是雖犯十惡大憝者, 歸佛則免之, 雖有道之士, 不歸佛則不免也. 假使其說不虛, 皆出於私心而非公道也, 在所懲之也. 況自佛說興至今數千餘年, 其間事佛甚篤如梁武•唐憲者, 皆不得免焉, 韓退之所謂事佛漸謹, 年代尤促者, 此其說不亦深切著明矣乎.
闢異端之辨
……(中略)…… 若佛氏則其言高妙, 出入性命•道德之中, 其惑人之甚, 又非楊•墨之比也. 朱氏曰, 佛氏之言, 彌近理而大亂眞者, 此之謂也.
以予惛庸, 不知力之不足, 而以闢異端爲己任者, 非欲上繼六聖一賢之心也, 懼世之人惑於其說, 而淪胥以陷, 人之道至於滅矣. 嗚呼, 亂臣賊子, 人人得而誅之, 不必士師, 邪說橫流, 壞人心術, 人人得而闢之, 不必聖賢. 此予之所以望於諸公, 而因以自勉焉者也. -『三峰集』卷9, 『佛氏雜辨』-
이 자료는 조선 건국의 주역 중 한 명인 삼봉(三峯) 정도전(鄭道傳, 1342~1398)이 1398년(태조 7년) 불교의 주요 교설을 비판한 『불씨잡변』 중 일곱 번째 인륜을 저버림의 변, 화복에 대한 열한 번째 변, 이단을 물리쳐야 한다는 열아홉 번째 부분이다.
정도전은 봉화(奉化)가 본관이고 아버지는 공민왕(恭愍王, 재위 1351~1374) 대 형부상서를 지낸 운경(云敬)이다. 어머니 쪽의 신분이 천해서 관직 생활 등을 하는 내내 상당한 압박을 받았다. 그는 목은(牧隱) 이색(李穡, 1328~1396)의 문하로서 정몽주(鄭夢周, 1337~1392)•이숭인(李崇仁, 1347~1392)•이존오(李存吾, 1341~1371)•김구용(金九容, 1338~1384)•김제안(金齊顔, ?~1368)•박의중(朴宜中, 1337~1403)•윤소종(尹紹宗, 1345~1393) 등과 친하여 서로 강론하고 연마하였다. 1362년(공민왕 11년)에 급제하여 관직 생활을 시작했고, 1366년(공민왕 15년) 부모상을 당해 고향 영주(榮州)로 내려가 학문과 교육에 전념하였다. 여러 차례 유배 생활을 거치는 동안 그는 역성혁명론을 완성하면서 조선 건국에 기여했는데, 새로운 왕조 운영을 위한 경세론을 『조선경국전(朝鮮經國典)』(1394)•『경제문감(經濟文鑑)』(1395)•『경제문감별집(經濟文鑑別集)』으로 정리하여 조선의 통치 규범을 제시하였다.
『삼봉집』 권9에 실려 있는 『불씨잡변』은 모두 20편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잡변 15조목, 전대사실 4편, 그리고 정도전 자신이 부록으로 쓴 1편이다. 저술은 1398년에 이루어졌으나 이 해 첫 왕자의 난으로 정도전이 죽으면서 간행되지 못하였고, 1456년(세조 2년) 양양부사 윤기견(尹起畎)이 단행본으로 만들었다. 이후 1487년(성종 18년) 『삼봉집』을 증간할 때 합쳐졌다.
잡변의 상당 부분은 성리학의 두 기둥인 이(理)와 기(氣)의 개념 확립을 통해 신심(身心)•성명(性命)의 덕을 쌓으면서 불교의 인륜 및 윤회설•인과설•화복설•지옥설•자비설과 유교와 불교의 동이(同異) 등 세속 신앙으로 연결되는 불교의 교설을 비판하고 있다. 또 한편으로는 인간의 마음으로서의 본성(本性)에 대한 불교적 관점의 잘못을 지적하였다. 전대사실(4편)은 불교가 중국에 전래된 이후 중국 역대 왕조의 역사적 불교 경험을 들었는데, 결국 불교는 국가 운영에 도움이 되지 않는 유해 종교임을 설명한 것이다.
결국 정도전이 척불론을 주장한 데에는 그 스스로 성리 공부에 전념한 결과이기도 하였다. 그의 저술을 보면 『불씨잡변』 이전 『학자지남도(學者指南圖)』•『심문천답(心問天答)』(1375)과 『심기리편(心氣理篇)』(1394)이 이어지고 있는데, 이를 통해 성리학을 실학(實學)이자 정학(正學)으로 정립하려 하고, 유교 국가의 사상적 기초를 다지는 데 주력했다. 그리고 나아가 불교로 인한 사회적 폐단과 학문적 비합리성을 비판, 공격하여 불교를 배제한 유교 중심의 국가 통치를 완성하고자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