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포르치운쿨라(Portiuncula) 경당과 천사들의 성모 마리아 대성당(Santa Maria degli Angeli)
이번 이스라엘과 이탈리아 성지순례 마지막 일정으로 찾은 곳이 천사들의 산타 마리아 대성당이다.
1209년 수도 생활을 반대했던 아버지와의 관계를 끊고 본격적인 수도 생활을 시작한 성 프란치스코는 동료들과 함께 그 해 또는 이듬해에 로마로 가서 교황 인노첸시오 3세로부터 원(原)수도 규칙으로 불리는 회칙에 대한 구도승인을 받았다. 아씨시로 돌아온 그들은 한 헛간에 자리를 잡고 회칙에 따라 관상과 노동 그리고 구걸과 설교를 병행하며 생활하였다. 그런데 한 농부가 그들이 사용하고 있던 헛간에 당나귀를 끌어들여 생활을 방해하자, 프란치스코는 이를 하느님의 뜻으로 알고 오늘날의 천사들의 성모 마리아 대성당 안에 있는 낡고 작은 포르치운쿨라 경당으로 거처를 옮겼고, 이때부터 이곳은 수도회의 영원한 요람이 되었다.
이 경당과 주변의 땅은 베네딕도회 소유였기에 사용료로 1년에 생선 한 광주리를 지불하기로 하였는데, 이는 지금도 똑같이 시행되고 있다. 포르치운쿨라로 거처를 옮긴 후 수도회에 입회하는 이들의 숫자는 배로 증가하였고, 수사들은 경당 둘레에 작은 헛간들을 만들어 그 안에 살면서 활동하였다. ‘작은 한 조각’이란 뜻을 지닌 포르치운쿨라는 이렇듯 프란치스코 성인이 가장 사랑했던 곳으로 작은형제회와 글라라 수도회가 태동한 곳이며, 프란치스코 성인이 선종한 곳이기도 하다.
포르치운쿨라 경당은 원래 거친 돌과 둥근 천정으로 되어 있었는데, 많은 이들의 노력으로 여러 전례 장식과 프레스코화가 추가되었다. 성당 내부 전면의 프레스코화는 주님의 탄생 예고와 그 위에 포르치운쿨라의 기적을 표현한 내용, 오른쪽에 두 천사들 사이의 프란치스코 성인과 가시덤불 속에 있는 프란치스코 성인, 그리고 왼쪽에 포르치운쿨라 전대사를 받는 장면이 그려져 있다. 그리고 성당 외부 오른쪽 벽에는 포르치운쿨라에 덧붙여진 건물들의 흔적과 몇몇 프레스코화 단편들이 남아 있고, 경당 뒷벽에는 십자가에 못 박히신 예수 그리스도를 표현한 프레스코화가 있다.
오늘날의 포르치운쿨라 경당은 천사들의 성모 마리아 대성당 안에 자리하고 있다. 즉 옛날의 작은 성당을 헐지 않고 그 위에 큰 성당을 새로 지은 것이다.
이 대성당은 1569년 건축을 시작하여 1679년경에 주요 건축들이 완공될 정도로 오랜 시간이 걸렸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1832년 지진으로 대성당의 대부분이 폐허가 되었다. 그래서 교황 그레고리오 15세(Gregorius XV)가 1836년 서한을 통해 복구공사를 명하여 1840년에 다시 완공하였다. 웅장한 천사들의 성모 마리아 대성당 외부 정면은 아치 모양의 중앙문이 상당히 빼어나고, 그 위의 삼각형의 받침대 위에 청동으로 도금한 동정 마리아상이 우뚝 솟아 있다. 대성당 내부는 기둥들에 의해 구분된 세 개의 주랑들과 십자형 구조의 중심인 둥근 천정 아래에 포르치운쿨라 경당을 배치한 구조로 되어 있다. 둥근 천정에는 프란치스코와 베네딕토회원들, 성녀 클라라 등이 그려져 있다. 대성당 옆 복도를 따라가면 작은 장미정원이 나온다. 프란치스코 성인이 골방에서 기도하던 중 심한 육체적 유혹을 받게 되자, 골방 옆에 있는 장미 가시덤불에서 알몸으로 뒹굴었는데, 성인의 몸이 닿은 덤불이 가시가 없는 장미덤불로 변했다는 이야기가 전해져 온다. 지금도 장미정원에 있는 장미들은 가시가 없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