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풍악에 춤췄다는 동악山(動樂), 청류계곡은 쉬고 있다.
(전남 곡성읍 월봉里)
연말이면 컨디션 관리가 어렵다.
이어지는 송년회 탓에 술을 자주 마시게 된다.
개인마다 아세트알데히드 분해 효소를 얼마나 갖고 있는지에 따라 최대주량이
달라진다.
술이 세다고 과신하면 안 되며 가장 중요한 것은 “적당히 마시기”다.
쏟아지는 연말 술자리에는 “공복(空腹), 우유, 담배,”를 피하고 적당히 마시고
기름진 안주는 삼가야 하며,
과음 다음날은 콩나물, 복어, 영지버섯 등 간 보호 음식물을 섭취해야 하며
사우나에 가지 말아야 한다.
오늘은 금요산행 일이자 밤의 길이가 가장 길다는 동지(冬至)다.
동지(冬至)는 24절기 가운데 하나로 대설(大雪)과 소한(小寒) 사이에 드는 절기다.
동지(冬至)를 기점으로 낮의 길이가 길어지므로 종교적으로 혹은 풍속적으로
축제로 삼았다.
우리나라에서는 동지(冬至)를 “다음 해가 되는 날(亞歲)”,
또는 “작은 설”이라 해서 크게 축하하는 풍속이 있었다.
궁중에서는 이 날을 원단(元旦)과 함께 으뜸 되는 축일로 여겨 군신(君臣)과
왕세자가 모여 “회례연(會禮宴)”을 베풀었으며,
해마다 중국에 예물을 갖추어 동지사(冬至使)를 파견하였다.
민가에서는 붉은 팥으로 죽을 쑤는데 죽 속에 찹쌀로 새알심을 만들어 넣는다.
이 새알심은 맛을 좋게 하기 위해 꿀에 재기도 하고,
시절음식으로 삼아 제사(祭祀)에 쓰기도 한다.
팥죽 국물은 역귀(疫鬼)를 쫓는다 하여 벽이나 문짝에 뿌리기도 하였다.
한편, 궁중에서는 관상감에서 만들어 올린 달력을 “동문지보(同文之寶)”란
어새(御璽)를 찍어서 모든 관원들에게 나누어 주었는데,
이 달력은 황장력(黃粧曆), 청장曆 , 백曆 등의 구분이 있었고,
관원들은 이를 다시 친지들에게 나누어 주었다.
이러한 풍속은 여름에 부채를 주고받는 풍속과 아울러 “하선동력(夏扇冬曆)”
이라 하였다.
또한, 내의원(內醫院)에서는 전약(煎藥)이라 하여 쇠가죽을 진하게 고아
관계(官桂), 생, 정향(丁香), 후추, 꿀 등을 섞어 기름에 엉기게 하여 굳힌 후
임금에게 진상하여 별미로 들게 하였다.
그 밖에 고려, 조선 초기의 동짓날에는 어려운 백성들이 모든 빚을 청산하고
새로운 기분으로 하루를 즐기는 풍습도 있었다.
동짓날인 오늘 금광에서는 곡성 동악山을 산행하는 날이다.
우리가 가야 할 동악山(動樂)은,
전남 곡성군 북쪽에 자리 잡은 높이 735m의 산으로 곡성읍 월봉里에 있다.
북쪽 아래에는 섬진강이 흐르고, 남쪽으로는 형제봉과 최악山으로 이어진다.
산속으로 들어가면 골짜기가 깊고,
바위로 이뤄진 산세(山勢)는 범상치가 않다.
신라 무열왕 7년(660년)에,
고승 원효가 길상庵과 도림寺를 세울 때 하늘의 풍악(風樂)소리에 산이 춤을
췄다고 하여 동악山이라 불린다.
산 남쪽 성류구곡에 위치한 도림寺는 신라 진평왕 때 창건된 사찰(寺刹)이다.
이 절의 처음 이름은 신덕왕후가 행차한 곳의 절이라는 의미의 신덕寺였으나
현재는 도(道)를 닦는 승려들이 수풀처럼 모여드는 곳이라는 뜻으로 도림寺로
불리고 있다한다.
곡성고을 사람 중 과거시험에 급제하는 인물이 나올 때마다 산이 흔들리며
아름다운 노랫소리가 들렸다고 하는 데서 이름이 유래한다.
곡성의 진산인 동악산은 크게 두 산 덩어리가 남북으로 놓여있다.
각 산 덩어리에는 비슷한 높이의 정상이 있는데 이 두 산을 가르는 것이
배넘이 재이다.
오늘 날씨는 대체로 포근할 거라는 기상예보를 보았지만,
지난주 강진 월각山 산행 때의 추위가 연상되어 옷을 가볍게 입을 수 가없었다,
새벽 05시에 일어나 베란다 창문을 열어보니 기온이 싸늘하다.
아침에 설사를 할 것 같아 예비적으로 설사약을 먹고 산행준비를 하였으며
06시 40분에 집을 나섰다.
정류장에 도착하니 특급 간선버스(09번)가 곧바로 도착하더니,
통천마을 3단지에서 간선버스(98번)로 환승하려는데 운이 좋게도 기다림이
없이 탈수가 있었다.
광주역광장에 도착하고 보니 07시 10분 이었다.
산행버스 출발시간까지는 50분이나 남았다.
오늘도 30명이 훨씬 넘는 남녀회원들이 산행에 참여해주었다.
곡성은 광주와 지근거리에 있어 회장님 인사말도 끝나기 전에 산행기점인
도림寺 오토캠핑리조트 주차장에 도착했다.
도림寺 오토캠핑리조트는 가족단위의 새로운 개념의 숙박시설인 캠핑장으로,
캐러번, 캐빈하우스, 취사장, 매점, 족구장, 야외무대 캠프파이어장,
최신식 샤워 실, 화장실 등 캠핑에 필요한 모든 시설이 구비되어있는 리조트였다.
캠핑장 인근에는 섬진강과 보성강이 흐르며 기차마을 내에는 증기기관차와
놀이시설 밎 레일바이크가 있다고 한다.
지금은 비수기라 사람들이 없었다.
오늘 산행코스는,
주차장에서 출발 - 깃대 峰 -형제봉 -대장峰(서봉) -배넘이재 -632봉 -701봉-
삼거리 -철 계단 -동악山 - 690봉 -신선바위 -청류동 계곡 -주차장으로
내려오는 13km(6시간 소요)코스였다.
오전 9시 40분에 산행이 시작되었으며 하산시간을 오후 3시 30분으로 정했다.
회장과 “카라반”회원 둘이서만 도림寺계곡으로 해서 동악山을 가겠다고 도림寺
쪽으로 출발하였고,
모든 회원들이 형제峰 방향으로 올라갔다.
발걸음이 빠른 1진은 시야에서 멀어져 보이지 않고 후미대장을 자청한
“송 국장”이 “바우”, “양파”, “경옥”, 남녀회원 1명씩 5-6명의 회원들을 데리고
후미조로 출발했다.
기상예보처럼 오늘은 날씨는 온화했다.
등산파카를 벗어 배낭 속에 넣고 걸어도 숨은 차고 몸은 더웠다.
“양파”회원은 감기 기운이 있어 링거주사를 맞고 산행에 참여를 했다한다.
대단한 열성회원이었다.
후미 조는 능력에 맞게 가다 서다를 반복하면서 산을 오르고 있었다.
깃대峰에 도착했다.
건강이 안 좋은 나는 체력이 고갈되어 힘이 들었다.
깃대峰에서 바라보는 형제봉이 바로 눈앞인데 소나무 숲 사이로 하얀 눈이
깔려있는 것이 보였다.
오른쪽으로 고개를 돌려보니 동악산도 보였다.
송 국장이 “여기서 하산 하는 것이 어떠냐고” 나에게 의사 타진을 해본다.
“나도 그럴까?” 생각해서 형제봉을 뒤에 두고 돌아섰다.
내려오다가 돌탑이 있는 곳에서 혼자 점심을 먹고 있는데 송 국장한테서
내 안전을 확인하는 전화가 왔다.
송 국장의 깊은 배려에 고맙고 가슴이 뭉클해졌다.
나는 산행버스로 내려와서 배낭을 벗어두고 도림寺계곡으로 올라갔다.
곡성 도림寺계곡(谷城道林寺溪谷)은,
전남 곡성군 곡성읍 월봉里에 있는 동악山 남쪽 골짜기의 계곡으로 1987년
전남도기념물(제101호)로 지정되었으며 도림寺에서 관리 한다
도림寺계곡은 도림寺 옆에 있는데 해발 735m의 동악山 남쪽 골짜기를 흘러내려
하나의 계류를 형성하고 있다.
계곡은 풍부한 수맥이 연중 그치지 않을 뿐 아니라 계류의 밑바닥에 층층으로
깔려있는 반석(盤石)과 어우러진 경치가 빼어나다.
잡목 숲과 넓은 반석 위로 흐르는 아홉 구비의 계곡물이 중간 중간에 용소(龍沼),
소금쟁이沼(소) 등의 여러 소(沼)를 이루며 장관을 이룬다.
이 계곡에 발달해 있는 반석(盤石)은 그 특징에 따라 위쪽부터 제1반석, 제2반석
등과 같이 차례로 이름을 붙이고 있는데,
제9반석까지 있으며 그 길이는 약 1㎞에 이른다.
각 반석(盤石)에는 적절한 선현(先賢)들의 문구가 음각(陰刻)되어 있어 그들의
풍류를 느낄 수 있었다.
또 계곡 정상 부근에는 신선이 쉬어간다고 하는 신선바위가 있다.
시원한 계곡과 경관이 빼어나 여름철에는 많은 피서객이 찾아온다고 한다.
지금은 물이 흐르지 않는 계곡이지만 계곡을 건너는 철교가 있었는데,
제1교, 제2교, 제3교까지 올라갔다 되돌아오는데 선두산행 한 회원이 내려오고
있었다.
자기는 풀코스로 완주하고 내려오는 것이라고 말한다.
도림寺(道林)에 들렸다.
전남 곡성군 곡성읍 월봉里에 있는 신라시대의 사찰이다.
1984년 2월 29일 전남도문화재자료(제22호)로 지정되었다.
도림寺는 곡성읍에서 서남쪽으로 4km 떨어진 월봉里 동악山 줄기인 성출峰
(형제봉)중턱에 자리 잡고 있다.
신라시대인 660년(무열왕: 7년)에 원효대사가 사불山 화엄사로부터 옮겨지었다고
전해진다.
876년(헌강왕: 2년) 도선 국사(道詵國師)가 중창을 하였는데 이때 도선 국사,
사명대사, 서산대사 등 도인들이 숲같이 모여들어 절 이름을 도림사라 했다고 한다.
고려시대에 지환대사가 3창을 하였으며,
조선 태조의 계비 신덕왕후가 이 절을 후원하였기 때문에 이름을 신덕寺(神德)로
부른 적도 있었다고 한다.
겨울철이라 그런지 절에는 사람 흔적이 보이지 않았고 방마다 열쇠가 채워져
있었는데 현재 절 안에는 법당인 보광 전을 비롯하여 응진 당, 지장 전, 약사전,
칠성각, 요사채 등이 있고,
1683년(숙종: 9년)에 제작된 도림寺 괘불(전남도유형문화재: 119호)이 소장되어
있다고 한다.
절 입구에는 허백련 화백이 쓴 ‘오도 문’이라는 현판이 걸려 있었다.
도림사가 있는 동악산은 원효대사가 이 절을 창건할 때 온산의 풍경이 음률에
동요되어 아름다운 음악소리가 들렸다고 하여 동악산이라고 하였다고 하는데,
아름다운 계곡을 따라 기암괴석을 이루고, 넓은 암반에는 조선시대 이래 근세에
이르기 까지 많은 시인묵객들이 다녀간 흔적을 글씨로 새겨놓았다.
산행은 오후 3시 반이 조금 넘어서 끝이 났다.
오늘 산행은 회원들의 취향에 따라 동악山을 거치거나 비켜가는 자유산행이
되었다.
오늘 하산酒는 기차마을이 있는 곡성장터에서 동지팥죽으로 먹었다.
고맙게도 팥죽 값 20만원을 “바우”회원이 대신 냈다고 한다.
술 좋아하고 남 주기를 좋아하는 사람 좋은 “바우”회원 복 받을 거요.
(2017년 12월 22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