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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 하나님의 눈으로 바라본 교회
성경 요한복음 10장 25-30절
찬송 210장
교회는 보이는 교회와 보이지 않는 교회로 구분할 수 있습니다. 보이지 않는 교회는 아담 할아버지부터 시작하여 아직 세상에 태어나지 않은 모든 믿음의 후손들을 다 포함합니다. 그리고 이 보이지 않는 교회는 하나님 보좌 앞에서만 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 보좌 우편에 계시는 예수님을 머리로 모신 그리스도의 몸을 통해서만 확인할 수 있습니다. 이렇게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교회는 영원부터 영원까지 그리스도 안에, 그리스도와 함께 있습니다. 이 진리를 선포하는 말씀을 직접 들어보시죠.
하나님의 뜻을 따라 그리스도 예수의 사도로 부르심을 받은 바울과 형제 소스데네는
고린도에 있는 하나님의 교회 곧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거룩하여지고 성도라 부르심을 받은 자들과 또 각처에서 우리의 주 곧 그들과 우리의 주 되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부르는 모든 자들에게
하나님 우리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은혜와 평강이 있기를 원하노라(고전1:1-3)
곧 창세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사 우리로 사랑 안에서 그 앞에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려고
그 기쁘신 뜻대로 우리를 예정하사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자기의 아들들이 되게 하셨으니
이는 그가 사랑하시는 자 안에서 우리에게 거저 주시는 바 그의 은혜의 영광을 찬송하게 하려는 것이라(엡1:4-6)
또 함께 일으키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하늘에 앉히시니(엡2:6)
그러므로 너희가 그리스도와 함께 다시 실리심을 받았으면 위의 것을 찾으라 거기는 그리스도께서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시느니라(골3:1)
바로 여기에 우리가 품을 수밖에 없는 또 다른 의문이 있습니다. 아담 이후 태어난 후손들 가운데 예수 믿고 구원 받은 모든 하나님의 자녀들은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교회를 이루고 있습니다. 곧 지금 우리 눈에 보이는 모든 보이는 교회들은 다 보이지 않는 교회에 속해 있습니다. 예수님의 몸에 연합되어 예수님 안에 있지 않은 성도나 교회는 있을 수 없으니까요.
그런데 아직 태어나지 않은 우리 후손들 가운데 예수님을 구주로 믿고 구원받을 사람들까지 하나님의 교회, 곧 그리스도의 몸에 속해 있다는 가르침은 아무래도 좀 이상합니다. 아직 태어나지도 않았는데 어떻게 교회 안에 있다고 말할 수 있습니까? 태어나지 않았다면 존재하지도 않은 상태인데, 있지도 않은 사람을 두고 그가 교회 안에 있다고 말하니 뭔가 이상합니다. 앞뒤가 맞지 않은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이 진리는 조금도 이상한 진리가 아닙니다. 앞뒤가 맞지 않는 것이 아니라 너무나 논리 정연한 진리입니다. 그런데 왜 우리 귀에는 이상하게 들릴까요? 하나님의 차원과 우리의 차원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무한한 분이시고, 우리는 유한한 피조물에 불과합니다. 때문에 하나님께는 조금도 이상하지 않은 것들이 우리에게는 이상하게 들리고 이상하게 보입니다. 이는 마치 우리에게는 조금도 이상하지 않은 자연 현상이 개미에게는 너무나 이상하게 보이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과 우리의 차원이 서로 다르다는 말이 무슨 뜻인지 좀 더 이야기를 해볼까요? 여러 이야기를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 많은 이야기들 가운데 대표적인 예를 든다면 이렇습니다. 피조물인 우리는 시간에 매여 살아갑니다. 하지만 온 세상을 말씀으로 창조하신 하나님께서는 시간을 초월해 계십니다. 과거와 현재와 미래를 초원해 계십니다. 한 마디로 하나님께서는 영원한 현재를 살고 계십니다. 성경을 통해 자기를 계시하신 한 분 삼위일체 하나님께서는 이런 분이십니다.
우리는 시간에 매여 있기 때문에 과거나 미래를 직접 보거나 만지지 못합니다. 다만 시간이 흘러가는 매 순간을 경험하며 살아갈 뿐입니다. 이미 시간이 지난 과거에 대한 지식도 우리는 극히 제한적으로만 가지고 있을 뿐입니다. 그렇다면 아직 일어나지도 않은 미래에 대해서는 더 말할 필요가 없습니다. 우리는 미래에 대해 아무것도 알지 못합니다. 다만 지금 현재 일어나는 일들을 경험하며 살아갈 따름입니다.
이 진리를 다시 말씀드려 볼까요? 피조물인 우리는 현재만을 경험하고 있지만, 영원하신 하나님께서는 과거와 현재와 미래를 한 눈에 다 보고 경험하십니다. 피조물인 우리에게는 과거와 현재와 미래가 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는 영원한 현재가 있을 뿐입니다. 때문에 과거에 있었고, 지금 이 땅에 있으며, 장차 미래에 있을 교회의 모습을 하나님께서는 한눈에 다 보고 계십니다. 과거에 있었고, 지금 이 땅에 있으며, 장차 미래에 있을 교회 전체를 언제나 똑같이 사랑하며 돌보십니다. 이것이 하나님 차원의 일입니다. 이렇게 하나님 차원과 피조물의 차원은 너무너무 다릅니다.
점점 더 어려워집니까? 오늘 우리가 함께 읽은 말씀이 이 진리를 우리에게 잘 설명해 줍니다. 그러니 본문 말씀을 주의해서 다시 읽어봅시다. 하나님 아들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너희가 내 양이 아니므로 믿지 아니하는도다
내 양은 내 음성을 들으며 나는 그들을 알며 그들은 나를 따르느니라(요10:26-27)
이 말씀을 주의해서 들어보십시오. 지금 예수님께서 무슨 말씀을 하고 계십니까? 하나님 아들 예수님에게는 아버지 하나님께서 맡겨주신 한 무리의 양떼가 있습니다. 당연히 예수님께서는 선한 목자이이십니다. 때문에 예수님께서는 그 양떼에 대해 너무나 잘 알고 계십니다. 양떼 또한 선한 목자이신 예수님의 음성을 듣고 즐겁게 순종하며 예수님의 뒤를 따라갑니다. 만약 누구든지 예수님의 음성을 듣지 않는다든지, 예수님의 뒤를 따르지 않는다면, 그는 하나님의 양떼에 속해 있지 않는 것이 분명합니다. 왜요? 성부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양떼를 성자 하나님께 맡기셨기 때문입니다. 앞서 들었던 말씀은 이 진리를 선포하는 말씀입니다.
성도라면 누구나 이 말씀을 들으며 아멘! 하겠지만, 이 말씀 속에는 피조물에 불과한 인생이 절대 해결할 수 없는 의문이 있습니다. 불신앙 가운데 있어 예수님을 구주로 믿지 않는 사람들을 향해 너희가 내 양이 아니므로 나를 믿지 않는다는 말씀을 다시 생각해보십시오. 자세히 들어보니 이 말씀은 누가 예수님을 구주로 믿어 하나님의 양떼로 살게 될지 이미 정해져 있다는 뜻을 담고 있습니다. 지금 예수님 앞에서 예수님을 대적하는 무리가 있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을 구주로 믿지 않습니다. 그들이 예수님을 구주로 믿지 않는 이유가 무엇이라고 주님께서 말씀하십니까? 그들은 내 양이 아니기 때문이라고 말씀합니다.
반대로 예수님을 구주로 믿는 사람들은 어떻습니까? 그들은 벌써부터 예수님의 양떼에 속해 있기 때문에, 예수님께서 하시는 말씀을 믿음으로 받아 순종합니다. 만약 누가 하나님의 양떼에 속해 있는지 미리 정해져 있지 않다면, 예수님께서 당신의 양떼를 안다고 말씀하실 수 없습니다. 양들이 자기 목자의 음성을 안다는 말씀 또한 성립할 수 없습니다. 전혀 논리적으로 맞지 않습니다. 이렇게 앞서 들었던 예수님의 말씀은 자연스럽게 우리를 선택교리로 인도합니다.
이제 선택 교리를 따라 이 진리를 다시 설명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영원하신 하나님께서는 세상을 창조하시기도 전에 하나님의 아들과 딸들을 선택하셨습니다. 그들을 한 무리 양떼가 되게 하셔서 예수님 안에, 예수님과 함께 있게 하셨습니다. 그들이 한 몸을 이루어 머리이신 예수님께 연합하여 한 새로운 사람으로 있게 하셨습니다. 하나님을 아버지로 모신 형제와 자매가 되어 하나님의 가정을 이루게 하셨습니다. 이렇게 하나님께서 영원 전에 하나님의 자녀로 선택하신 무리는 하나님의 가족, 예수님의 몸을 이루는 지체, 하나님의 양떼입니다.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그들에게 구원이 필요하면, 구원을 선물해주십니다. 그들에게 영원한 생명이 필요하면, 영원한 생명을 선물해주십니다. 이 진리를 확고하게 믿는 성도와 교회는 다음과 같이 말하게 됩니다.
우리가 지금 이 세상에 태어나 살면서 예수 믿고 구원 받아 하나님의 자녀가 된 것은 영원하신 하나님께서 영원 전에 우리를 하나님의 자녀로 선택해 주셨기 때문입니다.
곧 창세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사 우리로 사랑 안에서 그 앞에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려고
그 기쁘신 뜻대로 우리를 예정하사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자기의 아들들이 되게 하셨으니
이는 그가 사랑하시는 자 안에서 우리에게 거저 주시는 바 그의 은혜의 영광을 찬송하게 하려는 것이라(엡1:4-6)
아멘입니다. 영원하신 하나님께서 영원 전에 선택해주지 않으셨다면, 아무도 예수님을 구주로 믿을 수 없습니다. 이 진리를 따라 고백하는 교회와 성도의 고백을 들어보십시오. 우리 가운데 누가 예수님을 구주로 믿는 것은 하나님께서 그를 영원 전에 하나님의 자녀로 선택해주셨기 때문이다. 이 진리를 선포하는 성경 말씀도 들어보십시오.
하나님이 미리 아신 자들을 또한 그 아들의 형상을 본받게 하기 위하여 미리 정하셨으니 이는 그로 많은 형제 중에서 맏아들이 되게 하려 하심이니라
또 미리 정하신 그들을 또한 부르시고 부르신 그들을 또한 의롭다 하시고 의롭다 하신 그들을 또한 영화롭게 하셨느니라(롬8:29-30)
내 양은 내 음성을 들으며 나는 그들을 알며 그들은 나를 따르느니라(요10:27)
이제 앞서 들었던 말씀을 따라 대답해보십시오. 이 말씀은 하나님 차원에서 하시는 말씀입니까? 피조물 차원에서 하시는 말씀입니까? 당연히 하나님 차원에서 하시는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피조물 차원에서 이 말씀을 이해하려 하면 전혀 이해할 수 없습니다. 사람들이 성경을 읽으며 말도 안 되는 이야기라며 비난하고 조롱하는 이유가 여기 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 차원의 이야기를 피조물 차원에서 이러쿵저러쿵 말하는 한없이 어리석은 인생들일 뿐입니다. 삼가 조심하고 또 조심하십시오. 결코 영원하신 하나님의 말씀 앞에서 어리석은 바보가 되지 않도록 하십시오.
다시 처음 질문으로 돌아갑니다. 교회는 언제부터 시작하였습니까?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은 조금 복잡합니다. 하나님 차원에서 대답해볼까요? 하나님의 교회는 영원하신 하나님으로부터 시작되었습니다. 영원하신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교회를 그리스도의 몸으로, 하나님의 자녀로 선택하셨을 때부터 교회는 시작되었습니다. 이렇게 보이지 않는 교회의 시작과 근원은 영원 전에, 영원하신 하나님으로부터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교회를 아무도 훼방할 수 없습니다. 영원하신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교회를 영원 전에 선택하셨고 구원하셨습니다. 하나님의 교회를 영원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선택하신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교회를 하나님 보좌 앞에서 영원토록 살게 하셨습니다. 이렇게 하나님의 교회는 영원 전부터 영원까지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습니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그를 선택하신 하나님 안에 있습니다. 진리가 이러한데, 누가 감히 하나님의 교회를 훼방할 수 있겠습니까? 어떻게 한갓 피조물이 영원하신 하나님께서 영원 전에 선택하여 세우신 하나님의 교회, 영원하신 하나님께서 영원부터 영원까지 사랑하시는 하나님의 교회를 훼방할 수 있습니까? 그럴 수 있는 자가 있다면, 그는 하나님보다 더 큰 자입니다. 하지만 하나님보다 더 큰 자는 세상에 없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어떤 상황과 환경 가운데서도 우리 안에 있는 믿음을 따라 다음과 같이 말할 수 있습니다.
군대가 나를 대적하여 진 칠지라도 내 마음이 두렵지 아니하며 전쟁이 일어나 나를 치려할지라도 내가 태연하리로다(시27:3)
이 모든 일에 우리를 사랑하시는 이로 말미암아 우리가 넉넉히 이기느니라(롬8:37)
내가 그들에게 영생을 주노니 영원히 멸망하지 아니할 것이요 또 그들을 내 손에서 빼앗을 자가 없느니라
그들을 주신 내 아버지는 만물보다 크시매 아무도 아버지 손에서 빼앗을 수 없느니라
나와 아버지는 하나이니라 하신대(요10:28-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