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소설의 배경 시점은 2015년입니다. >
119. 병원 주차장 전투
김해중앙병원 동관에 붙어 있는 주차타워 앞 도로는 비스듬히 언덕 위로 오르다 작은 사거리를 만난다. 직진하면 아파트단지로 들어가고 우측은 병원 서관 뒤편 막다른 골목이다.
쌍칼 패거리의 급습을 받고 쫓기는 문도네가 도망갈 곳은 사거리 좌측 도로, 주차타워 담장 옆 뒷골목뿐이다. 차량 두 대가 비켜 다닐 수 있는 너비로 ‘탑 마트’ 주차장 앞까지 백 미터가 넘게 뻗어있다.
해삼에게 주려고 편의점에서 산 음료수 포장 상자를 옆구리에 낀 정훈이 헉헉거리며 문도와 삼봉이 서 있는 주차타워 입구까지 도망쳐 왔다.
그 뒤 십여 미터 거리에 장유파 대원 다섯 명이 달려오고 쌍칼과 나머지 조직원 다섯 명도 뒤쫓아 온다.
“에라이, 썅!”
삼봉이 어느새 주머니에서 5백 원짜리 백동전을 꺼내 맨 앞에서 달려오는 녀석 얼굴을 향해 팔매질했다.
아까 진주 남강 둔치에서 배 타고 건너오던 이병율파와 싸울 때 문도가, 정훈에게서 두 개를 받아 던지다가 놈들이 후퇴하자, 남은 한 개를 비밀무기에 보태라며 명사수인 삼봉에게 줬다.
-휙~ 퍽!
“읔! 으으~”
면상에 정확히 맞은 선봉장이 얼굴을 감싸고 비틀거리며 비명을 질렀다.
“뭐야? 아, 저 새끼 동전 잘 던지니까 조심해!”
뒤따라온 쌍칼이 아까 본 삼봉의 팔매질 솜씨를 기억하고 주춤거리며 멈춰 섰다.
그 사이 문도네는 언덕길을 올라 왼쪽으로 꺾인 뒷골목으로 달아났다. 골목길로 접어들자, 앞쪽에 휑한 도로가 끝도 안 보이게 뻗어있다.
“이제 동전도 없는데 어떡하죠?”
삼봉이 숨을 가쁘게 쉬며 난색을 보였다. 계속 뛰어도 안 잡히고 도망가기는 어려워 보인다.
“아, 나한테 동전 열 개 있소!”
정훈이 얼른 주머니 속에서 5백 원짜리 동전 한 주먹을 꺼내 삼봉에게 건넸다.
“어? 웬 동전이 이리 많아? 아까 나한테 두 개 줄 때부터 있던 거야?”
문도가 자기한테 두 개밖에 없다며 천 원에 팔았는데, 열 개나 더 있다니 괘씸해서 물었다.
“아니야, 이거 사면서 잔돈을 동전으로 바꿨어. 나도 비상용으로 갖고 다니는 게 좋을 것 같아서. 흐흐.”
정훈이 그때까지 옆구리에 끼고 있던 음료수 포장 상자를 땅바닥에 내려놓으며 웃었다.
“하, 자슥. 아주 잘했다! 삼봉아, 열 명 정도니까 처리할 수 있겠지?”
안심된 문도가 뒤돌아서 수비 자세를 취하며 물었다.
“예, 지부장님. 이거면 충분합니다. 걱정 마십시오! 히히.”
백동전 팔매질 명사수 삼봉이 자신 있게 웃으며 받아 든 왼쪽 손바닥에서 동전 한 개를 집어 들었다.
“근데, 정훈아. 그거는 버리고 뛰지, 왜 들고 왔어? 큭큭.”
쫓기면서도 해삼에게 줄 음료수 포장 상자를 들고 뛰어온 정훈이 우스운지 문도가 킬킬거렸다.
“이걸 왜 버려? 수류탄인데!”
정훈이 얼른 종이상자를 벗기고 속에서 작은 오렌지 주스 병 한 개를 꺼내 들었다.
“아하, 그거 진짜 수류탄이네! 야~ 우리 이 경사님, 전투 의지력 하나는 알아줘야 되겠는데? 흐흐.”
그제야 정훈이 180ml 유리병 오렌지 주스 12개들이 상자를 버리지 않고 가져온 이유를 알아챈 문도가 자기는 할 게 없어 무안한 표정을 지으며 웃었다.
“이 자식들이 돌았나? 야, 네 놈들 여기서 죽고 싶어 환장한 거야?”
골목길로 도망치다가 뒤돌아서 수비 자세를 취하는 문도네를 본 쌍칼이 10여 미터 거리에 멈춰 서서 어이없다는 듯 눈꼬리를 치켜뜨며 큰소리를 쳤다.
어느새 수하 두 놈은 품속에 품고 왔던 회칼을 꺼내 신문지를 벗겨 들고, 위협적인 자세를 취하며 쌍칼 좌우에 앞장서 포진했다.
“죽기는 네가 죽게 생겼다, 짜샤! 어디 덤빌 테면 한번 덤벼봐라!”
정훈이 맞장구를 치며 손에 든 레몬주스 병을 수류탄처럼 머리 위로 치켜들었다.
“그걸로 던지겠다고? 너 야구선수야? 웃기고 자빠졌네!”
쌍칼이 그 깐 유리병은 얼마든지 피할 수 있다는 듯 입꼬리를 올리며 비웃었다.
“그런데, 이 새끼야! 너는 왜 낮부터 계속 따라다니며 깐죽거리냐? 여기는 왜 또 쫓아왔어?”
가운데 선 문도가 태권도 폼을 잡고 대장답게 한마디 했다.
“왜 오기는? 여기 입원한 놈이 이글스파라는 거 다 알고 잡으러 왔지! 이글스파면 우리가 겁먹을 줄 알았냐? 흐흐.”
네놈들이 서울 신림동 이글스파 소속으로 진주 지부에 파견되어 온 놈들인 줄 다 알고 왔다며 히죽거렸다.
“뭐? 이글스파? 네가 그걸 어찌 알았어?”
문도가 무심결에 그만 실언을 내뱉고 말았다.
이글스파에 있다가 변절하고 자기 밑으로 몰래 들어 온 해삼을 이런 김해 촌구석의 조폭 행동대장인 쌍칼이 어떻게 아는지 너무 놀랐던 탓이다.
“왜 몰라 인마! 네 놈이 이글스파 진주 지부장인 줄도 다 아는데! 흐흐.”
문도가 놀라자, 확신을 갖게 된 쌍칼이 엉뚱한 소리까지 지껄였다.
“뭐? 내가 진주 지부장이라고? 하하. 짜식아, 알려면 좀 제대로 알고 말해라! 나는 진주 지부장 같은 쪼잔한 직책은 안 맡는다. 나는 인마, 부산 지부장이다, 부산! 큭큭.”
해삼의 비밀을 다 알고 이글스파 부탁으로 잡으러 온 줄 알고 놀랐던 문도가, 자기를 이글스파 진주 지부장으로 알고 있는 쌍칼의 말을 듣고는 안심이 되어 웃으며 놀렸다.
“그래? 네가 꽤 높은가 보네? 아직 네놈 솜씨를 제대로 못 봤는데, 나랑 한판 붙어 볼래?”
문도가 이글스파 부산 지부장이라는 말에, 김해 지역에서 싸움꾼으로 불리는 쌍칼이 은근히 맞대결을 한번 하고 싶어지나 보다.
“잭나이프 두 개나 가진 놈이 맨손인 나 보고 한판 뛰자면 반칙이지 인마! 잭나이프 두 개 다 꺼내서 땅바닥에 던져 놓으면 붙어 줄게. 할래?”
문도가 쌍칼의 주머니를 응시하며 좌우로 몸을 움직였다.
“저 새끼들 이제 동전도 다 떨어지고 없는 모양이다! 야, 한꺼번에 달려들어!”
민망해진 쌍칼이 수하들에게 일시에 공격하라고 지시했다.
“죽여라~!”
“이글스 잡아라~!”
쌍칼 좌우에 있던 회칼 든 두 놈이 앞장서 나가며 외치자, 뒤에 있던 조무래기들도 소리 지르며 뒤따랐다.
-슈우웅~
정훈의 오렌지 주스 유리병이 뱅글뱅글 돌면서 허공에 포물선을 그렸다. 병 주둥이 부분을 잡고 던진 모양이다.
-턱, 쨍그렁~
앞장선 놈이 왼쪽 팔뚝으로 막아내자 그냥 길바닥에 떨어져 깨져버린다.
“야, 직사포로 던져야지!”
정훈이 얼른 병 하나를 집어 들어 허리 부분을 잡고 냅다 직선으로 던졌다.
-슝~ 퍽!
“아읔!”
팔뚝으로 막던 놈이 심한 통증에 기겁하고 주춤거렸다.
-휙~
“읖! 으으~”
이번엔 삼봉이 던진 백동전이 회칼 든 놈 면상을 정확히 맞혔다.
-슈웅~ 퍽! 쨍그렁.
-슝~ 퍽!
“으엌!”
-휙~
“으읔! 끄~”
정훈의 곡사포와 문도의 직사포에 이어 삼봉의 백동전 총알이 빗발치며 날아가 장유파 대원들 몸통과 얼굴에 떨어지고 꽂혔다.
세 명을 얕잡아보고 덤비던 장유파 패거리는 날아오는 포화를 좌로 우로 피하느라 제정신들이 아니다.
“야이, 새끼들아! 개떼처럼 안 달려들어?”
쌍칼은 감히 앞으로 나서지도 못하면서 부하들만 공격하라고 고함지른다.
“이야~압!”
공격하다 맞아 다치나, 주춤거리다 쌍칼에게 얻어터지나 마찬가지다.
회칼 든 한 놈이 이판사판으로, 가운데 서 있는 문도를 향해 돌진했다. 들고는 왔지만 빼 들고 설쳐보기는 처음이다.
-휘익~ 턱!
회칼 든 사내의 손목이 문도의 재빠른 앞차기에 맞아 칼을 놓쳤고,
-휘릭~ 퍽!
뒤이은 문도의 돌려차기에 사내의 턱이 돌아갔다.
“와아~! 와아~”
그래도 장유파는 죽기 살기로 덤벼들었다.
삼봉은 거리 확보를 위해 뒷걸음질 치며 계속해서 칼 든 놈에게 백동전 팔매질을 날렸고, 나머지 장유파 애들은 개떼처럼 문도와 정훈을 에워싸고 달려들었다.
-휘릭~ 퍽!
“읔! 끄윽.”
문도의 발차기가 이어졌지만,
-슈숙~ 팍, 팍, 퍽! 슈수숙~
“으헠!”
세 놈이 맞으면서도 머리를 디밀고 날아들며 문도의 허리와 다리를 감싸 잡았다.
“죽여버려, 이 새끼!”
-팍, 팍! 퍽, 퍽, 퍽!
두 놈에게 잡혀 두 팔로 얼굴을 감싸고 움츠린 채 땅바닥에 엎드린 문도에게 사정없는 주먹질과 발길질이 가해졌다.
“으읔, 이 새끼들이~”
저만치 정훈도 땅바닥에 엎딘 채 떼거리들의 뭇매를 맞고 있다.
“아주, 작살내버려! 크크.”
쌍칼이 뒷전에 서서 만족한 듯 비열하게 입꼬리를 올리며 웃고 있다.
-휭~ 퍽!
이때 삼봉이 던진 마지막 백동전이 쌍칼의 면상 광대뼈를 때리고 튕겨 나갔다.
“읔! 으으~ 저, 저 새끼 잡아! 동전 던지는 놈 잡아~!”
얼굴을 감싸 쥔 쌍칼이 눈꼬리를 치켜올리며 고함을 질러댔다.
문도와 정훈을 구타하던 몇 놈이 삼봉에게로 달려갔다.
-휙~ 퍽!
-슉, 슉. 퍽!
-휘릭~ 퍽!
서너 놈에게 둘러싸인 삼봉도 사생결단으로 주먹을 휘둘러보지만, 무자비하게 쏟아지는 주먹질과 발길질에 견뎌내지 못하고 비틀거린다.
이러다간 문도네 세 명 모두 옆에 있는 김해중앙병원 응급실로 실려 가게 생겼다.
-부릉, 부아앙~ 끼익!
바로 그때,
쌍칼의 뒤쪽에서 오토바이 한 대가 굉음을 내며 들이닥쳤다.
배달용 오토바이 ‘언더본’이 아니고, 배기량 1,500cc를 넘는 덩치 큰 바이크 ‘크루저’로 보인다.
시속 120km를 자랑하는 2기통 엔진의 크루저 위에 가죽 재킷에 선글라스를 낀 강철이 헬멧을 쓴 채 상남자 스타일로 앉아있다.
“어? 너, 너는 뭐야? 어방···”
깜짝 놀란 쌍칼이 또 어방배달 오토바이 부대가 나타났나 싶어 떠듬거리는데, 바이크 뒤에 배달 박스나 깃발이 안 보인다.
“이 새~끼들!”
-부릉, 부아앙~
쌍칼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강철의 고함 소리와 함께 크루저 바이크가 문도를 둘러싼 패거리를 향해 돌진했다.
“으악!”
“으엌, 으아~!”
급정거하며 회전하는 바이크 앞바퀴에 받힌 녀석들이 튕겨 나가며 비명을 질러댔다.
“야, 오토바이부터 잡아!”
한 대밖에 없는 걸 확인한 쌍칼이 부하들에게 고함을 질렀다.
-부릉, 부릉, 부아앙~
바이크는 다시 정훈을 둘러싼 놈들을 향해 돌진했고,
“으악!”
“으읔! 으~”
금세 두 놈을 치어 튕겨냈다.
그러자 삼봉을 구타하던 녀석들이 부상을 무릅쓰고 강철의 바이크를 향해 몰려왔다.
강철의 오토바이임을 알아본 문도가 얼른 정훈을 일으켜 세워 삼봉이 있는 쪽으로 달려가서 뭉쳤다.
-부릉, 부아아아앙~
강철의 바이크가 장유파를 향해 질주하고,
-후다닥, 휙.
몰려오던 장유파 애들은 급히 길가로 피했다.
-끼익! 부릉, 부아아앙~
급정거한 바이크가 다시 뒤돌아 골목길을 달려오고,
-후다다닥, 탁, 탁, 탁.
도망치는 장유파 대원들 발자국 소리가 요란스럽다.
“야이, 새끼야! 나한테 덤벼라~!”
어느새 쌍칼이 잭나이프 두 개를 꺼내 칼날을 펴들고 강철을 향해 소리쳤다.
벽 쪽으로 붙어 지리멸렬 흩어지는 부하들을 보다못해, 칼 던지기에 자신 있는 쌍칼이 행동대장 노릇을 제대로 해볼 모양이다.
-부릉, 부릉, 부릉.
강철도 쌍칼이 싸움꾼이라는 걸 들어서 잘 알고 있다. 크루저 앞바퀴만 믿고 함부로 덤빌 만큼 얕잡아볼 위인은 아니다.
-부릉, 부릉, 부르으으응.
강철은 브레이크를 거머쥔 채 바이크의 알피엠(rpm)만 높이며 쌍칼을 노려보고 돌진할 기회만 찾는다.
“야이, 새꺄! 겁나냐?”
강철이 주춤거리자 쌍칼이 의기양양해져서 부하들 앞에 폼을 있는 대로 잡고 거들먹거렸다.
-부릉, 부아앙~ 끼익!
그때, 쌍칼의 뒤쪽에서 또 한 대의 오토바이가 나타나 급정거하며 멈춰 섰다.
배기량 108cc의 소형 배달용으로 뼈대가 아래에 있는 ‘언더본(under bone)’인데, 배달 박스와 깃발은 보이지 않는다.
“어? 이건 또 뭐야?”
놀란 쌍칼이 뒤돌아 주춤거리며 앞, 뒤 오토바이에 시선을 나누기 바쁘다.
-부릉, 부릉, 부릉.
오토바이에 탄 라이더가 헬멧 창을 내려써 눈이 가려져 있다. 얼핏 봐서는 스무 살이 될까 싶은 새파랗게 젊은 녀석이다.
-부릉, 부아아앙~
잠시 멈칫하며 상황을 살피던 ‘언더본’이, 강철의 크루저와 대치하고 있는 쌍칼을 향해 거침없이 돌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