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는 안왔지만 후텁지근한 한여름 날씨에 예당에서 국립심포니 정기공연이 있었는데
오늘 공연은 절반의 성공이라고 표현하겠습니다
프로그램은
지휘 레오시 스바로프스키 (Leoš Svárovský)
첼로 얀 포글러 (Jan Vogler)
<1부?
전예은, 음악 유희 (* 국립심포니 위촉 세계 초연)
엘가, 첼로 협주곡 Op. 85
INTERMISSION
<2부>
드보르작, 교향곡 7번 Op. 70
오늘 공연이 '절반의 성공' 이었던 것은
1부는 평타, 그냥 쏘쏘했고 2부 공연은 대박, 호연이어서 입니다
마치 열정넘치는 시골교장선생님이 공부잘하는 우등생들 데리고 어려운 공부를 한마음으로 이겨나가는 것 같은
국립심포니와 레오시 스바로프스키의 모습은 관객에게 무척 감동을 주었습니다
레오 스바로프스키는 카리스마와 세련미는 없어보이지만 대단한 리더십과 집중력으로 단원 하나하나를 꼭꼭 찝어서
가르치려는 듯 열정적인 지휘를 합니다 게다가 퍼포먼스 욕심도 좀 있는 듯 제스추어나 표정, 표현스타일이 극적인데 그 모습이 처음에는 좀 뭐지 싶었는데 뒤로 갈수록 그 열정적인 스타일에 빠져들게 되었어요
무대에 오른 배우인 줄요 막 위로 뛰어오르는 장면이 몇 번 있었는데 무척 높이 뛰어서 좀 놀라기도 했지만 그가 만들어내는 템포나 볼륨의 강약이 대단히 찰떡같이 들려서 그 흐름에 그저 빠져들었습니다
반면에 얀 포글러는 공부 잘하던 우등생이 공부하기 싫어진 듯 파워와 열의가 좀 부족하달까요
일단 엘가 첼로협주곡 1악장 첫 주제선율의 비감어리고 강렬해야 할 사운드가 너무 묻혀서 공기 중에 흩어지는 현의 소리에 처음부터 좀 기대가 꺾였습니다 이 부분은 4악장 끝에도 다시 순환구조로 나오는데 역시 그 부분은 전혀 좋게 들리지가 않았습니다 자클린 뒤프레로 예습해서 더 그런지도 모르겠지만 전반적으로 첼로소리가 오케스트라가 잘 받처주는 데도 돋보이게 들리기 보다는 좀 때로는 묻히고 때로는 너무 가벼운 톤으로 들려서 분명 잘 연주하는 데 깊이가 안 느껴지는, 공부를 잘하는 것 같은데 공부에 뜻은 없는 학생처럼 보였습니다 다시말하면 분명 재능은 충만한데 노력이 안보이는 그런 느낌이었습니다 무엇보다도 감정이 전달되지 않는 첼로 연주라고 느낀 것은 이 비극적이고 슬픈 엘가 헬로 협주곡이 전혀 슬프지도 비극적이지도 않게 들려서 첼로 특유의 깊고 결이 굵은 소리를 맛볼 수 없는 아쉬움이 컸어요
오히려 4악장에서 국립심포니 첼로 파트와 함께 같은 멜로디를 연주하는 부분에서는 매우 좋게 들렸다는 게 아이러니였죠 오케스트라 첼로 파트 소리가 협연자 보다 전 더 좋게 들렸으니까요
오늘 국립심포니 현악부 저음파트주자들이 대단히 파워있게 잘 했는데요 스바로프스키의 손끝에서 절도있게 움직이는 그 현의 질감이 제대로 적소에 느껴져서 좋았습니다 한편 관악파트는 드보르작 교향곡 7번 1악장에서는 좀 불안불안했는데 특히 플룻과 오보가 빠른 리듬일 때는 소리가 묻히거나 박자가 어긋날 듯 말 듯 걱정을 불러일으키는 소리를 내더니 2악장부터는 꽤 안정되어 호연을 보여주었습니다
실황 공연에서 드물게 일어나는 일이 3악장에서 일어납니다 3악장 스케르쵸의 경쾌한 시작을 너무 아름답게 진행하고 있는데 악장 옆에 앉은 부수석 바이올리니스트인 것 같은 분의 바이올린에 문제가 생겼고 당황한 기색없이 뒤에 앉은 바이올린 주자에게 자기 바이올린을 넘겨주고 그녀의 바이올린을 받아서 계속 연주합니다 그녀는 문제가 생긴 바이올린은 맨 뒤에 있는 주자의 바이올린과 바꾸어서 다시 연주하고 맨 뒤의 주자는 문제 바이올린을 들고 조용히 무대 밖으로 나가 있다가 4악장 시작할 때 다시 들어와 연주하는 상황이 벌어졌지만 그로 인해 연주가 전혀 손상되지 않은 침착한 대처에 무척 좋은 인상을 받았습니다
스바로프스키 지휘자와 단원들이 얼마나 열심히 연습했는지는 지휘자와 오케의 호흡에서 바로 읽혀졌고 스바로프스키는 클로징을 대단히 쌈박하게 종결해내는 스타일로 공연의 효과를 더 극대화하는 솜씨가 대단했습니다 모든 연주가 끝나고 관객반응도 대단했고 기립박수도 나온 호연이었습니다
1부 전예은 작곡가의 세계초연이라는 '음악 유희' 는 뭐라 느낌이 정리가 안되고 감동의 기억도 없어서 초연으로 끝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로 마무리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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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생생하고 디테일한 묘사 덕분에 직접 현장에서 연주를 듣는 듯한 기분이 들었습니다. 이렇게 정성스럽게 작성해주셔서 감사드리며 앞으로드 멋진 글 많이 기대하겠습니다. 계속해서 좋은 글 많이 써 주세요! 응원합니다!
즐겁게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