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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씨 일가
유 주 현
휘황히 빛나는 형광등 밑에 앉아서 그는 진회색 어둠을 응시하고 있었다.
그는 손으로 눈을 가렸다. 보이지 않는 눈을 손으로 가리며 그는 어둠과 더불어 흔들리고 있는 자기 자신의 영상을 머릿속에 그려본다. 그리고 정색을 하며 그와 마주 서본다.
그러나 그 정체는 좀체로 파악되지를 않는다. 출렁이는 물결 속에 잠긴 물체처럼 그 윤곽이 자꾸 번져나갔다. 그게 정지하기를 기다리는 건 어리석은 대결일 성싶어 차라리 외면을 하고 루비의 머리를 싸악싹 쓰다듬어주면서 그는 조용히 한숨을 뿜었다. 그러다가 문득 따스하게 옮아오는 루비의 체온에 그는 전율을 느낀다.
그는 지금 두 무릎 사이에 안온하게 묻힌 채 눈을 감고 있는 루비가, 어처구니없게도 따스한 사람 체온에 흥건히 취해 있는 줄을 알게되자 버럭 불쾌한 생각이 들었다. 강아지 새끼에게까지 속고 있었던 자신의 어리석음이 불쾌해서 손으로 그 목덜미를 잡아 방구석 멀찌감치로 던져버렸다.
그리고 그는 소파에서 벌떡 일어나며 주위를 돌아보았다. 그러나 시계(視界)는 전개되지 않고 진회색 색감만이 퍼뜩 뇌리에 번뜩인다. 그리고 엄청난 중압을 느낀다. 그 중압은 어둠이었다. 어둠 속에서 눈알을 부라린다. 그러나 시력을 잃은 그의 두 눈은 아무런 사상(事象)도 그에게 전해주지를 않았다.
장정표(張鼎杓)는 불현듯 응접실 안을 서성거리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내 손으로 소파를 더듬다가 육중하게 몸을 던지며 한숨을 뽑았다. 그는 맥없이 머리를 뒤로 젖히고는 피로해진 몸을 소파의 등에다 기댔으나 그것도 잠시였다. 그는 고개를 안방 쪽으로 돌려, 여보! 여보! 하고 두어 번 아내 경심(敬心)을 불러본다.
안에서는 아무런 반응도 없었다. 반응이 있으리라고는 그도 생각하지 않았다. 경심이 벌써 집에 들어왔을 리가 없었기 때문이다. 밤 열시가 가까운 시각이겠지만 아내 경심은 돌아와 있을 리가 없다.
장정표는 또다시 일어선다. 어느 틈에 무릎 위에 올라와 있었는지 루비가 깨갱거리며 방바닥에 떨어졌다. 그는 더듬더듬 전축 앞으로 다가가 스위치를 넣었다. 그가 다시 제자리로 돌아와 앉았을 때 무릎 위에는 여전히 잿빛 덜이 복슬거리는 루비가 코끝을 걸치고 있었다.
전축에서는 브람스의 곡이 장중하게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삼월 중순, 집 안의 문들은 닫혀져 있었다. 아늑한 실내의 공기는 어둠 그것과 같이 움직이지 않았다. 그는 전축에서 흘러나오는 음향의 진동을 피부로 감각하며 파득거리는 신경을 안정시키려고 이를 악 물었다.
장정표는 청각의 기능까지 잃은 사나이였다. 바로 옆에서 고함소리가 터져도 멀리서 들려오는 기적소리 정도로 들리는 답답한 귀를 가지고 그는 전축을 틀었다. 이제 몸을 단정하게 소파에 눕혔다. 브람스에 도취한 듯 움직이지 않는 그는 죽음과 같은 적막 속에서 까닭 없이 설치는 마음을 안정시키려고 애썼다.
그것은 그가 볼 수 있고 들을 수 있던 지난날의 미련이었다. 그 미련은 잔인한 수법으로 교활하게 그를 희롱하고 있었다.
누구나 열 살 미만의 소년시절에 겪은 일들은 좀체로 기억에서 사라지지 않는다. 저보다 힘이 센 놈이 눈앞에서 자꾸 약을 올리면 참다 참다 못해서 와와 울어붙인 일은 누구에게나 있다. 어린 마음에도 그 굴욕을 참는 것은 너무나 비겁한 노릇인 줄을 아는데 상대가 상대이니 섣불리 만용을 냈다가는 넙치가 되도록 두들겨 맞는 것이 고작일 것 같아 무턱 대고 엄살만 피면서 울어대던 소년시절의 기억이, 사건의 실상을 흐려버린 채로 막연히 머리에 되살아나는 일이 가끔 있다. 차라리 주먹으로 치든지 뺨이라도 때리든지 하면 속이나 시원할 텐데 싱글싱글 웃으면서 손가락으로 남의 뺨이나 콕콕 찌르지 않으면, 추위에 꽁꽁 언 코끝을 손톱으로 톡톡 튀기면서 가는 길의 앞을 자꾸 가로막던 그런 심술궂은 친구의 소행은 두고두고 불쾌한 것이다. 성년해서도 그런 녀석의 소행은 잊혀지지 않지만 그의 모습은 흡사 물속에 잠긴 물체처럼 윤곽이 뚜렷하지 않았다.
그런 상념에 빠지면 장정표 그는 꿈을 꾸고 있는 듯한 착각에 사로잡힌다. 낳을 때부터 시력을 갖지 못한 사람은 꿈속에서도 사물을 보지 못한다는 말이 있다. 후천적으로 시력을 잃은 사람은 꿈속에 전개되는 행동이나 생활을 오히려 자기의 정상적인 삶처럼 착각한다는 것이다. 장정표는 지금 엄청난 수압을 가진 바다 밑에 앉아 있는 느낌이었다.
시력을 잃고 청각의 기능마저 잃은 지 꼭 육 개월이다. 서른여덟 해 이상을 남과 같이 정상적으로 세상을 보고 겪고 들어온 그였건만 이제는 과거의 경험과 그 경험을 토대로 한 상상의 전개만이 그의 자의식을 형성하고 있었다.
육군 대령, 연대장이 일선에서 어떤 경위로 지뢰사고의 희생이 되었는가가 중대한 것은 아니었다. 그보다도 장정표는 6·25 직전, 치밀한 계산 끝에 자진해서 군대에 투신했고, 투신해보니 계산대로 군대라는 조직체는 자기의 당면한 목적을 위해서 퍽이나 편리했기 때문에 전쟁이 일단 끝난 훨씬 뒤까지 그곳을 떠나지를 못했다.
그처럼 그곳은 매력도 있었다. 군대라는 곳은 아주 교묘하게 핏기 있는 젊은이를 조종할 줄 알았다. 계급을 주고, 무기를 주고, 배경과 명분을 주어서 불안에 떠는 젊은이를 유혹했다. 붉은 무리의 흉기 앞에서 절망에 허덕이고 있을 때 적을 쏠 수 있는 총을 주었다. 그리고 졸병 위에다 소위의 권세를 주어 심 리적으로 약한 자를 유혹했다. 그래서 소위가 되어보려고 열심히 했다. 보람으로 소위가 되어보니 소령이 부러웠다. 더욱 열심히 했다. 대대장을 거쳐 연대장이 되었다. 그렇다고 끝난 것은 아니었다. 연대장에게 있어서는 장군과 사단장이 될 수 있다는 가능성이 눈앞에 매달린 유혹이었다. 수만 부하를 질타하는 야전군 사령관의 그 호탕한 위풍이 야심만만한 장정표에게는 엄청난 매력이었다. 그래 자진해서 그는 일선 연대장의 직책으로만 돌았고 뒤에서는 국회의원인 아버지가 그의 순조로운 진급을 보장해왔는데 뜻 아닌, 졸병에게도 흔치 않은 지뢰사고루 희생이 되었으니 기막힌 노릇이었다. 그렇게 되고 보니까 어수룩한 집단이라고 생각했던 군대사회가 실은 현명한 브레인 씨스템으로서 장정표라는 사나이를 너무도 잘 파악하고 있었던 셈이 된다. 십여 년 동안이나 군인 노릇을 했으면서 군대의 사명과 생리를 완전히 이해하지 못하고 자기 개인의 영달을 위한 발판으로만 이용하려 든 장정표가 어이없게 폐물이 되었을 때, 군대라는 곳은 그 조직과 생리로 보아 단연코 그를 용납하지 않았던 것이다. 1계급 특진, 예비역 준장(I佳將)이라는 명분으로 석별의 정을 표시함으로써 그와의 인연을 일단 끊는 것이 군대가 베풀 수 있는 장정표에 대한 의리였다. 그 마당에 있어서 그 이상을 바라는 것은 비루한 동정을 구하는 것이었고, 또 달리 군대가 개인에게 베풀 수 있는 것이 있다면 조직에서 이탈된 자에 대한 연민뿐이라는 사실을 장정표 자신도 모르는 바 아니었다. 오직 탓할 수 있는 것은 그날 지뢰를 밟은 사실 자체이고, 지뢰부설지대까지 무엇엔가 이끌려 성큼성큼 걸어들어간 자신의 무모한 행동 그것이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억울하지 않을 수는 없었다. 어디다가 대상을 둘 수 없으면서 자기는 배반을 당했다는 비감에 한동안 울부짖어야 했다.
그날, 파괴된 육체가 사병들의 전송을 받으며 산길을 내려올 때, 그는 뜻밖에도 안온히 잠들어 있던 자신의 의식세계를 지금껏 감사한다.
정말 감사한다. 잠들지 않고서야 그 한 인간의 참혹한 실패를 자기의 것으로 받아들이지 못했을 것이며, 만약 받아들이지 못했다면 장정표 자기는 끝내 정착할 줄 모르는 부나비로서 험준한 산악지대를 방황하고 있을 것이 분명한 까닭이다.
그날 사단장 E장군은 꼴사납게 눈망울이 튀어나온 가장 사랑하는 부하의 몰골을 보자 말없이 주먹으로 눈물을 씻더라는 것이다.
그날, 그 한 시간 전의 × ×연대장 장정표 대령은, 장장군이라도 된 듯한 흐뭇한 기분으로 수색대 전방 지뢰부설지대를 샅샅이 시찰하고 있었다.
그날(나중에야 안 일이지만), 장정표 대령의 부친 장만중(張晩重)의원은 사적인 용무로 국방부를 방문하여 어느 고급 관리와 요담한 바 있었다.
그리고 그날, 장대령의 부인 윤경심 여사의 동정(動靜)은 어느 누구에게도 공개되지 않은 채 오늘에 이르고 있다. 병원에서 석 달, 집에 돌아온 지 석 달.
그동안 장정표는 질식할 것 같은 암담 속에서 파괴된 자신의 영육을 관조하기에 온갖 힘을 기울였다. 보기 싫어서 보지 않는 것과 듣기 싫어서 듣지 않는 것도 인간 최대의 고문인데, 그렇지 않으면서 보고 듣지 못하는 것은 더욱 심한 고문이며 형벌이다.
장정표는 그런 고문이 심할수록 산다는 것이 주체스러워서 자주 웃었다. 그러나 죽는 것은 더욱 우스운 노릇임을 깨닫는다. 이제부터 어떻게 사는가가 고문의 목적일 뿐이었다. 그러고 보니 요새 와서는 모든 사람들이 그저 우습게 보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미운 사람에게도 정이 가는 것 같았다. 흥분할 일도 없을 성싶었다. 그러자니 영감처럼 나타난 안정된 세계에 침잠해 가는 자신을 어둠과 적막 저쪽에서 발견해낼 수 있는 것 같았다.
장정표는 최근 자기의 주변을 자주 살펴보는 습성이 생겼다. 장씨일가 십만 명을 대표해서 일하는 아버지 장만중 의원. 장군 부인 일보 직전에서 전락해버린 아내 경심. 고등학생인 아우 성표(性杓). 그리고 아버지의 비서이며 대학 후배인 김윤수(金允洙) 와 하녀 순자(順子). 그 두 사람은 남이지만 범일가(汎―家)다. 그러한 주변의 여러 사람들은 별수 없이 이름도 형체도 없는 어떤 교활한 힘에 의해 감쪽같이 조종되고 있을 것을 상기한다. 더구나 팔 년 전 대위 부인으로 이 집안에 들어와서 달포 전에 시어머니가 돌아가자 완전히 이 장씨 집 안주인이 된 아내 경심은 필연 불우한 여인의 전형 일지도 모른다. 지금 아내는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는가. 그 독특한 교태와 능변으로 지금 누구와 더불어 시간을 보내고 있는지 모르겠다.
아래위를 하얗게 소복한 여자는 말했다.
“언제까지나 이렇게 지낼 수도 없구 이젠 어떻게든 결말을 내야 하잖아요?”
“글쎄, 너무 조급히 서두를 필요는 없잖을까요? 장형이 눈치를 챘을 리두 없구, 의원님 께서두 내가 없음 당장 곤란하실 게구.”
“김선생 이혼 준비두 안됐구, 정치에 대한 미련두 있구, 체면두 좋지 않구, 조급하게 서두를 필요가 없으시죠?”
경심은 김윤수의 얼굴을 빤히 노려보았다. 입을 삐죽거리려다 말고 갑자기 생글생글 웃음까지 흘리며 사나이를 쳐다보는데 사나이의 콧등에는 일광색 (日 光色) 형광등 불빛이 으스름히 부서지고 었었다. 세기호텔 4층 로비에 있는 스카이룸 다실(茶室)에 마주 앉은 그들 주위엔 아무도 보이지 않았다. 그들은 똑같이 코끝에서 감도는 호르몬 내음을 감각하며 똑같이 제각기 자기 집으로 돌아가야 할 시간이라는 것을 먼저 입 밖에 내기를 삼가고 있다.
“신문기자 아는 사람 많죠?”
경심이 하품을 씹으며 물었다.
“많죠. 신문기잔 또 왜요?”
김윤수는 어리벙벙하며 반문했다.
“국회의원의 며느리며 예비역 준장의 젊은 아내가 시아버지의 비서이며 남편의 친구인 모씨와…….”
“모씨 와?”
“간통을 해오다!…… 어때요? 차라리 자진해서 그렇게 폭로해버리면 그렇게 낙착되고 말 것 아녜요?”
“허, 다음 날 속보(續報)도 생각해봤소?”
“국회의원 모씨는 이를 완강히 부인하고 명예훼손 죄로 신문사를 상대하여 고소를 제기할 기세이며, 예비역 장군은 이 문제에 대하여 일체 언급을 회피하다가 다음과 같이 담담하게 말하였다. ‘쌍벌죄로 고소할 의사는 없다. 우리는 이미 원만한 타협 아래 실제적인 부부관계가 해소되어 있다.’ 그러나 이렇게 말한 실명장군(失明將軍)의 표정은 몹시 흥분했으며 그의 눈에는 눈물이 어려 있었다…….”
“갑시다. 열시가 다 됐는데.”
김윤수는 픽 웃고 난 다음 담배를 한 개비 서서히 피워 물고는 자리에서 일어섰다.
경심은 일어선 사나이에게 싸늘한 미소를 보이며 의식적으로 무관심한 태도를 보였다.
“저는요, 국회의원의 며느리, 예비역 장군의 아내, 그리고 부자유스럽지 않은 돈…… 다 버리기로 했는데 꽁무니를 빼는군요! 그렇게 잘나셨에요? 아쉴 때만 서로 접근할 수 있도록 남녀관계가 그렇게 편리한 건 줄 아세요? 당신의 피동적인 성격을 무기로 삼는군요?
끝내 피동적일수록 난 적극적으로 나가야 하겠어요. 최악의 경우엔 여자가 얼마나 당돌하고 담대한지를 보여드릴까요?”
김윤수는 다시 자리에 앉았다.
난처한 이 자리를 어떻게 모면해야 할지 잠시 망설이는 것이 분명했다.
“협박한다구 되는 거 아니구, 차근차근 처리해야 하지 않겠소? 남의 이목을 무시할 수도 없을 바엔.”
“허기야 오늘두 내가 김선생이 필요했기 때문에 자진해서 만나자고 한 거예요. 우리가 첨 접촉할 때두 그랬구, 앞으로도 그래요. 김선생이 내게서 필요성 이 없어져야 놓아드릴 거예요. 그런데 지금 같아서는 앞으로 이십 년은 더 필요할지도 모.르겠군요.”
김윤수는 벌레 씹은 얼굴이었다.
“장형은 그래두 나를 이렇게 보지는 않을 거야.”
경심은 서슴지 않고 그 말을 되받아 도도한 자세로 따지듯이 말했다.
“아까 베드에서도 ‘장형’께 미안하다구 생각했나요? 그래서 양심과 그 행위에 영향을 받았나요? 나더러, 김선생 부인한테두 미안한 생각을 가지라는 말인가요? 나는 남의 일에 신경 쓰고 싶지 않아요. 지금 내게 김선생 이외룬 필요한 사내가 없어요. 다른 사람에 대한 일은 물론 염두에도 없구요.”
경심은 매서운 눈초리로 김윤수를 노려보았다. 그러나 김윤수의 눈과 마주치자 이내 경심의 눈초리는 웃음으로 변했다.
“내가 이렇게 변한 것은 남편 때문이에요. 그이가 병신이 돼 있다구 해서 그런 건 아네요. 결혼한 지 팔 년이나 되지만 그이는 오직 그이 자신만을 위해서 살았어요. 그이는 내가 아무리 애원을 했어두 가정으로 돌아오지를 않았어요. 나라를 위해서 그런 줄 아세요? 아녜요. 단지 충실한 군인이 목적이었죠. 군인으로 출세하고 싶어서였죠. 지금도 그인 가정으로 돌아온 게 아녜요. 군대에서 쫓겨났으니까 집으로 들어온 것에 불과해요. 지금쯤 그이가 뭘 생각하고 있는지 나는 알아요. 장군이 못된 게 분해서 울상이 돼 있을 거예요. 내가 이토록 늦도록 안 들어가서 짜증이 나 있을지도 모르지만 그건 나를 위해서가 아니라 무료한 권태와 그리고 단순한 질투에서 오는 조바심이에요. 김선생님, 고만 가실까? 부인이 기다릴 텐데.”
경심이 먼저 일어섰다. 열시 반.
“김선생님, 오늘만은 우리 집에 가서 주무세요.”
김윤수는 대답하지 않았다.
“댁에 잠깐 다녀오는 건 괜찮아요. 하여튼 집으로 오세요. 여잔요, 사내하구 정분을 내구 곧바루 헤어지기란 정말 싫은 거예요. 단지 같은 지붕 밑이라도 좋으니 그 밤을 함께 지내구 싶은 거예요.” ¨
경심은 계단을 내려오며 핸드백을 열었다. 오백 환권 열 장쯤을 사나이에게 쥐여주며 말했다.
“김선생님 오천 환. 뒤끝엔 드리구 싶군요.”
김윤수는 덤덤한 표정으로 그 돈을 받아 넣으면서 새삼스럽게 여자의 옷이 눈이 부시도록 흰 것을 깨닫는다.
“낼인가? 사모님 사십 구일이.”
“모레예요. 옥천암에 가서 재나 올려드리기로 했어요. 어머니 생전에 다니시던 절이니까.”
김윤수는 무심치 않게 픽 웃었다. 어머니라는 말이 어쩐지 어색하게 들리는 모양이다. 장의원의 부인이요, 장정표의 어머니니까 경심의 시어머니였다. 육십이 채 못된 나이에 위암으로 세상을 버렸으나 장씨 집안에서는 가장 후덕한 여자였는데, 불구가 된 아들로 해서 노심했던 까닭인지 지병이던 위암이 갑자기 더쳐서 수술 끝에 이내 숨을 거두었다. 그 시어머니의 소복이었다. 그러나 지금 경심의 차림은 소복을 빙자한 색다른 사치인 것 같았다. 그러니 어머니란 말이 김윤수에게는 자연스럽게 들릴 수가 없다.
소복한 여자가 피로한 듯한 걸음으로 내려오는 호텔의 계단은 퍽 지리했다. 여자는 한 단 한 단 층계를 밟으며 저도 모르게 자꾸 서글퍼지는 심정을 주체할 수가 없었다. 자기 집 고용인에 불과한 김윤수를 낚은 것은 분명히 자기 자신이었다. 여러 가지로 계산한 끝에 뒤가 깨끗할 수 있는 상대라고 믿은 나머지 그를 선택한 것이었다. 그러나 이제 생각해보면 오산이었다. 꼼짝없이 옭힌 것은 오히려 경심 자신인데다 실제에 있어서는 그에게 정신적으로 여지없이 짓밟히고 있는 것이다. 겉으로는 큰소리를 치며 그를 위압하고 굴종시키려 하지만, 그는 보이지 않는 끈으로 경심을 결박했으며, 소리 없는 웃음으로 경심을 비웃고 있으며, 특출한 사나이의 힘으로 경심의 윤리적 양심을 짓밟아버린 것이다. 그러고도 언제든지 손 톡톡 털고 돌아설 수 있다는 식이다. 계단을 내려오며 경심은 그것이 서글펐다.
열시가 넘었다. 루비는 장정표 무릎에서 태평세월을 구가하는 양 안온하게 숨소리를 죽이고 있다.
장정표는 한결같이 안락의자에다 몸을 던진 채로 있었다. 그는 상념의 실마리를 바꾸었다.
군복무 십사 년 동안에 자기가 받은 여섯 개의 훈장을 가슴에 나란히 달아보기 시작했다. 실물을 손으로 달아보는 것이 아니라 머릿속에서 실제 동작의 힘을 빌리지 않고 가슴에 달아보는 것이다.
그는 그 여섯 가지의 훈장이 자기에게 수여될 때마다 공식적인 문서에 기록된, 스스로 생각해도 과장된 듯싶은 포상의 이유를 자못 엄숙하게 낭독하던 상관들의 표정을 역력히 기억한다. 그리고 그는 그 훈장이 하나씩 더해질 때마다 자기의 존재가 얼마나 경건한 가치를 지니게 되는가를 좀더 많은 사람들에게 알리고 싶고 좀더 긴요한 사람들에게 자랑하고 싶던 지난날의 자신이 절실하게 그리웠다. 그런데 이제는 그 자랑, 그 명예, 그 권위가 한낱 회상의 자료가 되었을 뿐, 파괴된 육신과 파괴된 의지를 지탱할 수 있는 힘은 되지 않는다. 한 방 한 방 쏘는 총탄으로 여러 놈의 적을 죽인 것도 대견하지가 않았다. 장차는 주어진 위치에서 스위치 하나로 수만의 적을 학살하게 될 일개 병졸의 전공에다 비해볼 때 그것은 초라한 장난이었을 뿐이다. 궁극적 목적이 그런 것은 아니었다. 그토록 컸던 자랑은 변해 열등의식이 되었고, 군중의 흠모하던 눈초리들이 연민으로 변한 오늘날 파손된 기계처럼 곳간 구석에 팽개쳐져 있자니 폐물이 차지하고 있는 공간이 아까워 미안한 생각조차 든다. 궁극의 목적이 그런 것은 아니었다. 자기가 한 행동에 대해서 회의를 갖는 것은 두고두고 슬프다. 수십만 생령들이 충성과 영웅적인 호기에 사로잡혀 처절한 줄다리기를 했을 때 환호와 갈채를 아끼지 않던 선량한 군중들은 이제 딴전을 보고 있다. 그럴 리가 없다.
흔히 빌딩의 초석(礎石)은 육중한 건물을 떠받들고 있지만 사람들은 거기다가 오줌을 깔기기가 일쑤다. 그러나 그 건물 응접실에서는 그럴싸한 벽화가 사람들의 감탄과 칭송을 받는다. 밤이면 천장에 달린 샹들리에 불빛이 휘황히 집 안을 밝히게 마련이다.
그날 오후, 국회의원들이 최전방을 시찰할 테니까 만반의 준비를 갖추라는 사단장 E장군의 명령을 받고 수색대가 나가 있는 최전방을 돌아보다가 격전 당시 무질서하게 묻힌 채 아직 발견되지 않았던 아군의 지뢰가 터지는 바람에 장정표, 자기의 인간 역사는 완전히 뒤집히고 만 것이다.
‘더러워서 .’
장정표는 뉘었던 상반신을 벌떡 일으키며 무릎에서 잠든 척하고 있는 루비를 떨어버렸다. 아까부터 전화의 벨이 요란스럽게 울리고 있는 듯해서였다.
“순자야!”
장정표는 신경질적으로 소리를 질러 하녀를 불렀고, 그러고는 시계(視界)가 없는 캄캄한 방 안을 서성거렸다.
“아무도 안 들어오셨냐? 전화 받어!”
장정표는 달려온 하녀에게 질문과 명령을 동시에 발하고는 아마 아버지 장만중 의원의 전화일 것이라고 혼자 어림 했다.
순자는 전화를 끊자 재잘거렸다.
“나리한테서 왔어요. 청운각에 계시다구요. 차가 시내로 들어왔는데 아직도 안 갔대는군요. 김 비서님이 타구 간 모양인데 집에 연락이 없느냐구요. 연락되는 대로 빨리 보내라는 전화예요. 아저씨, 왜들 이렇게 안 들어오시죠? 아씨도 오늘은 퍽 늦으시네요.”
순자는 정신없이 떠들어대다 말고 문득 장정표가 제 말을 들을 수도 없고 들으려고도 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고는 슬며시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가버렸다.
장정표는 뺨에 부딪는 감각의 변화로 순자가 나간 줄을 알았다.
그는 아버지에게서 결려왔으리라고 짐작되는 전화 내용에 대해서는 전연 관심이 없었다.
장정표는 현역으로 군에 복무하던 불과 반년 전만 하더라도 아버지 장만중을 퍽 존경 했었다. 어린 시절부터 아버지는 강직하고 호탕한 인격의 소유자로 믿었으며 또 그는 그렇게 세상에 알려졌기 때문에 당대의 정치인으로는 그 명 망이 높은 것이다.
그러나 장정표는 요새 와서 그 장만중조차 존경하지 않는다.
“……”
“나는 장의원 의견에 단연 반대합니다. 국회의사당이 그네들의 싸구려 하숙집이 될 수는 없습니다. 이 이상 하루라도 그대로 내버려둘 수는 없어요. 마치 평양이나 점령한 것처럼 민중의 갈채를 강요하면서 신성한 국회의사당을 너저분한 하숙집 방처럼 더럽히고 있는 그네들과 순리로 타협하자는 것은 공산당과의 협상을 주장하는 거와 같아요. 이런 때 써먹자는 법률이 있잖습니까. 최후 수단을 써야 합니다.”
격한 말을 마친 C의원이 토마토 쌜러드를 우물우물 씹으며 합석한 장만중과 여러 의원들을 돌아보았다.
그러자 장의원이 나직한 권위 있는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우리들끼리의 싸움에 공산당을 비유하는 것은 삼가는 게 좋습니다. 물론 그들의 농성은 비법적이니까 한시바삐 의사당에서 축출해야 합니다. 그러나 축출하는 방법이 졸렬했다가는 그들 함정에 빠지고 맙니다. 타협해야 합니다. 우리의 원칙을 굽히지 않는 범위 안에서 지엽 문제 정도는 양보하는 아량을 베풀어주는 것이 현명한 방책입니다.”
장의원은 좌중의 반응을 살폈다. 밤 아흡시가 넘은 시각이었다. 성북동 산속에 있는 이 청운각을 회합 장소로 택한 것은 우선 성공이었다. 혈안이 되어 당 간부들의 행방을 쫓는 신문기자들이 아직 한 사람도 주변에 나타나지 않았다는 보고를 듣고 이 회합은 완전히 비밀이 보장되었음을 알았다.
여섯시부터 시작된 회의지만 그동안 저녁식사들을 했고, 소화를 조장하기 위하여 기생들과 잠시 희롱을 했고, 내쫓고, 그러고서 이제 토의안건이 본격적으로 도마 위에 오른 것이다. 열 몇 사람의 정객, 그들의 일거일동은 모든 국민의 크나큰 관심거리였다. 이 열 몇 사람의 정객은 검붉게 번쩍거리는 탁자를 중심으로 기라성같이 둘러앉아 자못 엄숙한 태도로 자기의 발언에다 절대적인 타당성과 최대한의 권위를 세우려고 노력하는 눈치가 역력히 보였다. 그토록 권위 있고 은밀한 회합이 열리고 있는 청운각 주변에는 달빛이 아름다웠다.
“나는 장의원의 말씀에 반대우다.”
잠깐 호흡을 끊은 대머리 P의원은 바싹 마른 체수에다 아주 신경질적인 눈을 깜박이며 파고다 담배에 불을 붙였다. 모두들 그의 번쩍이는 대머리를 바라보며 다음 말을 기다렸다.
“타협의 줄은 이미 끊어졌어요. 그들은 즈그네 행동을 삼천만 국민이 절대 지지하고 있다구 맹신하고 있수다. 그들과는 타협이 되지 않아요. 무대에 선 배우는 뒤에서 하품하는 관객이 보이디 않디요. 열 사람의 박수를 가지구서레 모든 관중의 박수로 착각하디요. 일단 무대에 선 이상 연기에 대한 시정은 불가능하우다. 배우가 연기를 잘못하면 끌어내든지 막을 내리든지 두 가지 중에 하나우다. 끌어내야디오.”
장만중 의원은 조용히 그 말에 응수했다.
“끌어내도, 막을 내려도 그 연극은 깨어집니다. 연극 자체가 깨지면 만사휴의가 아닙니까. 관람료를 반환해야 하고, 극단은 해산해야 되고, 관중은 방석을 던지며 떠들 것입니다. 그 극단은 망했다고. 그런 경우 연기를 잘하는 배우와 못한 배우를 구별하기 전에 관객은 퇴장합니다. 잘하는 배우가 끝까지 무대에 남아 있다 해서 그 극단이 존속하기는 어렵습니다.”
그때 K의원이 자그마한 눈을 한껏 부릅뜨고는 날카롭게 소리쳤다.
“장의원! 장의원은 신성한 국회와 국회의원을 모독하는 발언을 하지 마시오. 그래 우리들이 연극배운가요? 의사당이 극장인가요? 정치가 무대연극인가요? 국민이 무책임한 관객이라고 생각하시오? 아닙니다. 장의원은 배우 노릇을 하고 있는지 모르지만 허허…… 국회의원은 모든 국민의 생명과 모든 인간의 권리와 모든 개인의 자유와 그리고 그들의 재산을 보호하는 책임을 가졌어요. 뿐만 아니라 국토를 보전하고 역사를 창조하고 그리고 명예스런 전통을 후대에 이어즈는…….”
“그게 무슨 얘기들입니껴? 중학생의 토론회두 아닌디에. 우리는 지금 가장 심각한 문제를 가장 심각하게 토의해야 합니더! 한가롭게 연극 얘기나 하는 술좌석 잉교?”
체중 28관의 Y의원이 ‘가장 심각’을 강조하고 있었으나 실은 그도 그다지 심각한 표정은 못되었다. 좌중에는 가벼운 웃음의 파장이 번져 나갔다.
“연극입니다. 연극도 하는 사람이나 보는 사람이 다 심각합니다. 결정된 어느 집단의 의사가 그 집단을 구성하고 있는 개개인의 의사와 부합되지 않을 때, 그것은 연극입니다. 배우가 아무리 연극 속에 녹아버려 객관화되고 연극화되었다 하더라도 관중은 그것을 비판합니다. × 당의 저 야비한 작전이 × 당 의원들의 의사가 아니면서 × 당의 당책이 되어 × 당 전원이 저렇게 행동을 통일하고는 있지만 시일이 좀 지나면 모두 웃을 겁니다. 자기가 주장하고 행동한 일이 진정 자기의 것이었던가 쓴웃음이 날 거예요.”
장만중 의원은 남의 이야기를 하는 것 같지가 않았다. 그의 얼굴에는 열이 올라 있었다. 이미 확정된 방침을 공식화하기 위하여 토론에 부쳐보는 것이 이 회합의 상례적인 성격이었다. 따라서 공식적으로는 이 회합에서 결정된 것이 되지만 방침 자체는 여기서 자율적으로 제의된 것이 아니다.
이미 몇 사람의 의견으로 결정되다시피 된 안건을 당론(黨論)으로 만들기 위해서 꼭두각시놀음을 하는 것에 불과했다. 물론 반대의견이나 회의적인 발언이 등장하긴 하지만 그 발언이 어떤 효과를 가져오거나 토의 안건을 근본적으로 전복시키리라고는 발언자 자신도 믿지 않는 것이 당적을 가진 정치인의 상식 이었다.
장의원의 지금 발언도 마찬가지였다. 자기와 같은 생각을 가진 사람이 적지 않을 것이지만 내일 원내에서의 행동만은 완전히 통일되어야 하는 것이다. 만장일치로 통과된 당책으로 강력히 추진해야 하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말할 때마다 작은 눈을 한껏 부릅뜨며 소리를 빽빽 지르는 K의원이 또 대들었을 때, 그는 딴전을 보며 담배를 뻐끔뻐끔 빨고 있었다.
“그럼 장의원은 우리의 주장을 반대하는 거요? 당 방침에 반기를 드느냐 말요?”
누군가의 발언에 체중 28관의 Y의원이 느릿느릿 또 입을 열었다.
“허허, 홍분하지 마이소. 장의원께서 반대할 리야 있능교. 그저 이를테면 그렇다는 말이겠제. 실상 정치야 연극 같은 일이 많지 않습니껴? 연극을 잘해야 정치가로서의 관록도 붙능기고. 안 그렇습니껴?”
장의원은 웃음을 흘리며 변명하듯 입을 열었다.
“내가 반대한다구 해서 당론이나 정치 정세가 달라지리라곤 생각지 않습니다. 허지만 싸움에두 전법(戰法)이 있는 거예요. 같은 값이면 온당한 전법을 써서 상대를 굴복시켜야 합니다. 아 단번에 이기려면야 미국 같은 나라에 육군이나 해군이 무슨 필요가 있겠소. 원자탄 수소탄이 있는데. 그렇지만 외교두 하고 냉전도 하고 세계 여론에도 귀를 기울이고 하루아침이면 점령해버릴 수 있는 조그마한 적성국과 일진일퇴 신경전도 하고 있지 않습니까. 그리고 또 아무리 당의 방침이라 하더라도 개인으로서는 전폭적인 찬동을 할 수 없는 경우도 있어서, 될 수 있으면 그 이유를 개진해서 정책에 반영시켜보려고 노력하는 게 우리가 신봉하는 민주정치의 정로(正路)이겠구요. 또 공산당식이 아니구서야 만장일치의 의견이란 같은 집안에서도 흔한 게 아니구요. 종당에 가서는 다수 의견에 좇으면 되는 게 아닙니까? 그런데 우리는 × 당이 의사당을 점령한 사건에 못지않은 사건을 일으켜야 할 것 같군요.”
장만중 의원은 냉랭한 눈으로 좌중을 훑어보았다. 그러자 대머리 P의원이 변소에라도 가고 싶은지 엉거주춤 일어나면서 한마디 하는 바람에 좌중의 긴장은 홱 풀려버렸다.
“누구래 만족한 방법으루야 생각하갔소? 그만 기생들이나 부릅세다. 이런 때는 계집 겨드랑이 간지르며 술 마시는 게 데일이디요. 결론은 나 있는 걸 가지구서 길게 왈가왈부한댔자 뭘 하갔소! 타협해서 된 일이 있습데까? 머사니,* 인기놀음에 눈깔이 빨간 놈들허구 말이외다. 색시들이나 부릅세다. 이거 왜 오줌만 자꾸 싸고프냐……”
회의장에는 비로소 허탈한 웃음들이 떠돌았다. 비록 허탈한 웃음들이었으나 기회 삼아 한숨 돌리는 그들이었다.
그렇게 하여 성북동 깊숙이 자리 잡은 청운각에서 × 당 비밀 중진회의는 원만하게 그 절정을 넘어섰다. 이로써 국회의원 장만중은 새로운 법률안을 만든 ×당의 중요 간부로서 그 관록이 더욱 비중을 더하게 되는 셈이다.
장의원은 술잔을 들어 쭈욱 마시곤 자기가 지금 한 말은 의사당에서 농성 하는 것이 민주주의를 수호하는 유일한 방법이라고 떠들어대는 상대편에게도 똑같이 할 수 있는 말임을 깨닫자 정치가라는 이름의 직업이 갑자기 싫어졌다. 그는 우울했다.
“장의원은 참 홀아비시지? 어떠슈, 아까 옆에 앉았던 계집 앨 불러 드릴까? 어째 울적하신 것 같애!”
누구의 입에선가 농담이 튀어나오기 시작했을 때 밖에서는 새로 도착한 차가 있는지 부릉부릉 엔진 소리가 요란했다.
그런 중대회의의 주인공을 모시는 운전수들 중에는 무료해서 하품을 하는 사람과 그리고 코를 드르렁드르렁 골고 있는 사람도 있었다.
밤이 깊어갈수록 전등은 더욱 밝아져 갔다.
장정표는 검은 색안경을 벗고는 손등으로 두 눈을 지그시 눌렀다. 그리고 소리쳐 하녀 순자를 불렀다.
“전축 꺼라! 듣기 싫다.”
분명 그의 지시대로 순자는 전축을 끈 모양인데 장정표는 별로 조용해진 것을 깨닫지 못했다. 그는 전축을 끄거나 틀거나 자기의 들리지 않는 귀에는 아무런 반응이 오지 않는다는 사실을 새삼스럽게 깨닫는다. 그리고 아울러 시끄럽다는 것은 착잡한 신경 때문이란 것도 안다. 그는 자기 무릎 위에서 잠들어 있는 루비의 귀끝을 주물러주었다. 루비는 새까만 눈을 반짝 뜨면서 주인의 손등을 혓바닥으로 싹싹 핥았다.
“순자야, 술 좀 다우!”
장정표는 덤덤하게 루비의 새카만 눈과 그 조그바한 얼굴을 보이지 않는 눈으로 내려다보고 있었다. 동물도 애정을 표시하는 데 혀끝을 이용하는 것을 보고 그는 최근 완연히 소원해진 아내 경심을 생각한다.
“술이 쬐금 남았어요.”
순자가 귀에다 대고 소리치며 따라주는 술잔을 입술에 대면서 장정표는 어젯밤에 사온 카나디언 위스키가 얼마 남지 않았다는 것이 이상했다.
“성표가 마셨구나? 그 녀석 술 많이 하지?”
아직 고등학교 학생인데 술이 세다면 그 성정(性靑)이 짐작되었다.
“순자 너 몇 살이던가? 열아흡?”
장정표는 지나가는 말로 물었다. 그는 깊은 물속처럼 답답한 정적 속에서 헤어나려고 순자에게 대수롭지 않은 말을 걸었다. 그는 귀를 기웃거리며 순자의 대답을 기다렸다. 그러자 무슨 소리가 들려온 듯 했다.
그러나 그것은 자기 물음에 대한 대답 같지가 않았다.
장정표는 들을 수 있던 시절의 기억을 더듬느라고 잠시 아래턱을 치키고는 입술을 쑤욱 내밀었다. 그러다가 그것은 울컥울컥 하는 헛구역질 소리가 아닌가 짐작이 갔다. 분명 헛구역질을 하고 있다. 너무 나이 찬 계집애를 집 안에 둬두었었다고 그는 생각하며 순자가 쥐여주는 술잔을 또 받아마셨다. 술잔을 받다가 손끝을 통해 오는 배릿한 감각, 그는 별안간 여자를 느꼈고 순자의 성숙한 육체를 연상했다.
“순자야, 네 방으로 가라!”
장정표는 의식적으로 어떤 기억을 더듬었다. 순자의 육체를 머릿 속에서 지워버리기 위해서였다. 그 대신 그는 임종하는 어머니가 무서운 힘으로 손끝을 쥐던 기억을 되살려냈다.
그 감촉, 따스했었는지 차가웠었는지는 분명하지 않았으나 쥐는 힘이 몸이 죄어들도록 악세었던 것을 잊지 않았다. 부르르 떨리다가 고정 되는 순간, 그것은 시체의 주먹 쥔 손이었다. 49일이 내일 모레? 서른여덟 해를 키웠는데 고작 병신이 된 맏아들과 열아홉 살을 먹였건만 어머니 임종도 안 보고 밖으로 싸다녔던 막내를, 망인(亡人)은 당신 목숨보다도 더 소중하게 사랑했다.
그러고 보니 성 표도 열아홉이었다. 한창 나이.
“순자야 네 방으루 가!”
“이눔으 계집애 날 배신한 거 아냐?”
S고등학교의 정복 정모를 갖춘 장성표는 삼청(三淸)공원을 나와 어두운 골목길로 접어들자 흥분한 언투로 한마디 뱉었다. 그의 어깨는 치켜졌으며 두 손은 주먹이었다.
동급생 K군은 휘파람을 불다 말고 성표의 어깨를 탁 쳤다.
“정말 그 새끼한테 뺏긴 거 아니냐? 낚으려다가 낚인 모양야. 돈두 잘 쓰구 미남자구 하니까 쳇경 쉽지 뭐냐?”
성표는 불쾌하다는 듯이 카악 하고 길에다 가래침을 뱉었다.
“지난 공일날은 약속시간에 데꺽 데리구 왔던데. 그 새끼 나하구 딱 마주치자마자 공갈 좀 해주니까 점심 한턱 쓰구 저녁엔 극장표 사구 했어. 그 새끼 내게 뭐라구 했는지 아냐? 내 리벤 줄 몰랐다는 거야. 저희 집 앞에서 우연히 만났길래 산보했다는 거야. 첨이야 물론 첨이지. 그 새끼루선 물론 우연히 만난 거지. 야, 그 깔치* 정말 깜찍하더라. 미자는 아주 얼굴꺼정 빨개지며 ‘미안해 그냥 길에서 만나 같이 걸었을 뿐이야.’ 이거 사람 죽이잖어. 물론 같이 걸었을 뿐이지. 그렇지만 내가 그 새끼더러 대뜸, 이 새끼 친구의 여자를 꾀기냐구 공갈하니까 그 새끼 얼굴이 파랗게 질리더라. 그 새끼 그날 한 삼천환 바가지 썼을걸.”
K군은 가볍게 핀잔을 주었다.
“야, 오늘은 늬가 잘못했다. 상대를 바꿔야지. 두 번씩 넘어갈 놈이 어딨어. 미자두 거북했을 거구.”
성표는 피익 웃었다.
“아냐, 오늘은 까놓구 내가 만나잔다구 일러 보냈어. 그 새낄 실컷 곯려줘야 해. 새 국어선생한테 밤낮 칭찬만 받거든. 기분 나쁜 새끼야. 지금 가다가 그 새끼 집에 들러보자. 없음 미자하구 날친 게 틀림없어. 그 새끼 죽여버릴 테야.”
“미자가 안 간 거 아냐? 네 따위 애인 노릇이램 나버텀두 너허구의 연애 집 어 치우겠다!”
“하여튼 기분 되게 나쁜데. 미자란 년 머리나 싹 깎어줘버릴까부다.”
“사랑은 자윤데 그럴 권한 있냐! 미인계루 이용하는 놈학테 사랑해달라는 여자가 어딨어. 시시하게.”
“그게 이유가 돼? 싫으면 그 새끼한테 가지 않았음 되지. 난 남의 자유는 구속하지 않아. 우리 형수두 형이 그렇게 된 후엔 가끔 외입깨나 하는 줄 알지만 눈감아주고 있는 나야. 말리면 우리 형은 법적으로도 홀아비가 될 거 아냐? 형을 위해서 형수 외입 좀 시키는 셈이야. 그렇지만 미자란 년이 내 심부름을 가서 배신을 해? 그 새끼 공부 못하게 바람 좀 맞힐랬던 건데.”
잠시 후에 그들은 계동 어귀에 있는 어느 집 대문 앞에서 서성거리고 있었다. 초인종이 울린 지 꽤 오랜 후에야 대문이 열렸다. 찾는 상대는 집에 없다고 했다.
“이 새끼 정말 미자하구 어디루 꺼졌는데.”
어떤 여학생이 와서 같이 나간 지가 거의 두 시간이 된다는 말을 듣고 발길을 돌리려던 성표는 그 집 대문에다 대고 가래침을 카악 뱉었다.
“이놈으 계집애 낼 나한테…… 죽는다.”
“자아식…… 그렇게 못하는 미자가 바보지 뭐냐. 늬가 뭐 미잘 사랑하는 거냐? 사랑한다면 넌 그렇게 이 깔치, 저 계집애 닥치는 대루 잡숴댈 수 있느냐 말야. 사내 호리는 연습을 시켜놓구 홀려가는 걸 욕해?”
“쌔애낀! 이제 와서 넌 나만 나쁜 놈으로 몰려는 거냐? 미자나 너나 나나 애당초 모범학생 되긴 틀렸다야. 배신이구 나발이구 아까울 것 하나두 없어. 그 새끼 낼 없애버릴˙ 테야. 실상 미자년한테 손대긴 비릿비릿해서 싫구. 야! 어디 가서 한잔 허자. 내 시계 잡히면 술값 돼.”
그러나 K군은 꽁무니를 뺐다.
“시간 없다. 난 간다. 굿 나잇.”
성표는 도망치듯 달아나는 K군을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머저리 새끼!”
하고 시계를 보았다. 열시 반.
“미자년 어디 두고 보자!”
어느 집 외등 불빛에 성표의 그림자가 앞으로 쭉 늘어났다.
한 발 한 발 내딛는 대로 치켜진 그의 어깨 그림자가 줄어들기 시작한다.
장정표는 술이 알맞게 취해서 깜박 졸고 있다가 문득 소파에서 상반신을 일으켰다.
마침 루비 가 후닥닥 무릎에서 뛰어내렸다.
루비의 행동으로 보아 초인종이 울린 모양이다. 순자가 현관으로 나갔을 것이고, 루비가 쫓아나가 돌아온 사람 다리를 핥으며 꼬리를 흔드는 광경이 눈에 보이는 것 같다.
사실 그랬다. 이 집의 안주인 경심 여사가 돌아왔다. 그네는 현관으로 올라서다가 순자에게 물었다.
“아저씨 주무시니?”
“응접실에 계세요.”
“나리 들어오셨니?”
“전화가 왔는데 김비서님 연락되는 대로 자동차를 빨리 보내라구 하시데요. 성북동 청운각에 계시대요.”
“그래? 김 비선 어딜 갔대는 거야.”
경심은 마루를 건너 응접실로 들어섰다. 하이얀 치맛자락에 잿빛 루비가 쪼르르 따르고 있었다.
경심은 의자에 비스듬히 앉아 있는 남편한테로 곧장 다가서서 그 이마에다 가볍게 입술을 대주고는 손으로 그의 뺨을 토닥토닥 두드려주며 그가 듣거나 말거나 혼자 중얼거렸다.
“당신 또 술 마셨군요. 미안해요, 여보. 그놈의 곗돈이 걷혀먹어야죠. 얘 순자야, 아저씨 금침 깔아드려라!”
장정표는 장정표대로 아내가 듣거나 말거나 뇌까렸다.
“너무 늦게 다니지 말잖구. 밤거리 엔 불량배가 많을 텐데.”
경심은 자기 방으로 옷을 갈아입으러 가고, 루비는 다시 장정표 무릎 위로 날름 올라앉고, 순자는 부엌으로 내려가고, 집 안은 잠시 전처럼 다시 조용해졌다.
그런 지 십 분이나 채 되었을까. 루비가 또 장정표 무릎에서 뛰어내렸다. 현관문을 연 것은 역시 순자였다. 돌아온 사람은 성표였다. 루비는 성표를 보자 두어 번 꼬리를 흔들어주고는 이내 집 안으로 쪼르르 들어와버렸다. 성표가 툭하면 발길로 차기를 잘하기 때문에 루비는 도망친 것이다.
성표는, 돌아서서 현관문을 잠그는 순자를 뒤에서 덥썩 끌어안았다. 그리고 잠시 순자의 가슴을 마구 주물러준 다음 몸을 돌리며 커다란 목소리로 물었다.
“아버지 들어오셨냐?”
그러나 순자는 대답 대신 성표의 팔을 잡고 재빨리 호소하듯 속삭였다.
“나 아무래도 몸이 이상해. 어떡허지?”
성표는 주춤하고 순자를 돌아보았으나 이내 엉거주춤 댓돌에 엎드리며 구두끈을 끄르기 시작했다.
“임신했단 말야? 그럼 병원에 감 되잖냐!”
순자가 할 말을 잃고 뒤에 서 있을 때 성표는 벌써 쿵캉쿵캉 마루를 건너 응접실을 기웃하고는,
“형님, 아직 안 주무세요?”
한마디 남기고는 건넌방으로 들어가며 또 큰소리다.
“순자야, 저녁 가져와!”
그때 안방에서 경심의 목소리가 튀어나왔다.
“학생이 뭣 하러 밤늦도록 돌아다뉴?”
건넌방에서 성표의 목소리가 높았다.
“형수님보다 쬐만큼 늦었을 거야!”
순자는 부엌 마루에 맥없이 걸터앉아 있었다.
응접실에선 장정표가 여전히 어둠과 정적에 잠긴 채 새로 담배를 피워 물며 두 다리를 탁자 위에다 올리고는 천장을 향해 연기를 후우 뿜었다.
가장(家長) 장만중 의원은 김윤수 비서와 함께 열한시 반 싸이렌이 울린 훨씬 후에야 지프로 돌아왔다.
그는 현관에서 며느리 경심과 작은아들 성표와 그리고 순자와 루비의 영접을 받으며 점잖게 큰기침을 둬 번 터뜨리고는 마루로 올라섰다.
“커험, 늦었으니 김군도 집에서 쉬도록 하게나, 내일은 몹시 바쁠 테니까. 아침에 미리 의논할 일두 있구, 어헴.”
그는 아직도 흥분해 있는 성싶었다. 입을 꽉 다물고는 코로 씨익씩 숨을 뿜어냈다. 그는 불안한 걸음으로 큰방을 향해 뒤뚱뒤뚱 발길을 옮겨 놓기 시작했다.
장만중 의원 뒤에는 비서 김윤수가 이 집의 며느리 경심 여사를 힐끗 훔쳐보며 중얼거렸다.
“아직 갈 시간은 있는데요…….”
경심은 재빨리 그의 말을 받았다.
“늦었는데 집에서 쉬세요. 부인께는 안됐지만……”
경심의 한쪽 눈이 찡긋한 것을 본 사람은 이 세상에서 오직 한 사람뿐이었다.
“아직, 여기 계시군. 아아 피곤하다!”
응접실로 들어선 김윤수는 장정표의 뒤를 돌아 그 맞은편 소파에 가서 정말 피곤한 듯이 털썩 앉았다.
장정표는 약간 자세를 고치려다 말고 다시는 언제까지나 움직이지 않을 것처럼 몸을 도사렸다.
“김형! 오늘두 수고가 많았겠군!”
“아아, 피로하다!”
김윤수는 손바닥으로 두 눈을 비비며 다리를 쭈욱 뻗었다.
두 사나이는 오랫동안 침묵에 챰겨 있었다.
그때 루비가 장정표의 무릎에서 스르르 내려가 김윤수에게로 기어올랐다. 벌써 자정을 알리는 싸이렌 소리가 끝나가고 있다. 조용한 집 안, 이제 이 집 안 사람들은 하루의 피로를 풀기 위해 제각기 잠자리에 들 준비를 하고들 있다.
그 정적이 얼마나 계속됐을까, 장정표는 조용히 입을 열었다.
“술이나 한잔 할까? 시간이 지루해서……”
그러나 그는 그의 말대로 술잔을 들지 않았고, 김윤수는 김윤수대로 장정표의 말에 아무런 관심도 갖지 않는 눈치였다. 김윤수 그는 하품을 싸악 했다.
그런 순간인데 이 조용한 집 안에 별안간 전화의 벨이 요란스럽게 울렸다. 그 벨의 금속성 음향은 유난히 날카롭게 온 집 안을 뒤흔들고 사람들의 신경을 곤두세웠다.
그러자 안에서 커다란 음성이 튀어나왔다. 가장 장만충 의원의 흥분한 듯한 고함소리였다.
“얘들아! 전화 받아라!”
아무나 얼른 받아보라는 호통에 가까운 고함을 쳐놓고서 그는 기다리고 있지 못하고 마루로 달려나왔다. 잠옷의 띠를 허둥지둥 앞으로 매면서 그는 몸소 응접실로 뛰어들었다. 그는 비서 김윤수가 막 집어든 수화기를 홱 뺏어가지고는 귀에다 붙였으나 송화구가 귀에 붙여진 것을 깨닫고는 이내 거꾸로 잡았다.
“여보시오, 나 장만중이오.”
그는 점잖게 자신의 이름을 댔다. 금방 눈썹이 치켜지더니 그는 소리쳤다.
“뭐? 장만중이 누구냐구? 국회의원 장만중이지 누구야. 뭐? 전화가 왜 잘못 걸렸느냐구? 이것 봐! 그걸 누구한테 물어!”
잘못 걸려온 전화로서 조그만 아이의 목소리였다. 이 밤중에 이 거창한 집 안에 어떤 아이녀석이 전화를 잘못 건 것이다.
장만중 의원은 수화기를 덜커덕 던져버리고는 아들, 눈멀고 귀먹어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는 정표를 못마땅한 눈으로 쓰옥 훑어본 다음, 김윤수에게는 비서가 전화도 안 받고 뭘 하느냐는 짜증을 남긴 채 횡하니 응접실을 나갔다.
그때 장만중 그가 던진 수화기는 전화통의 제자리를 떠나 옆으로 동댕이 쳐져 있었다.
다시 집 안은 조용해졌다. 이따금씩 경심의 기침소리가 응접실까지 들려왔을 뿐이다.
장정표는 문득 무릎이 써늘한 것을 의식 했다. 그는 그때서야 루비가 자기의 무릎을 떠난 것을 깨닫고 손으로 주위를 두세 번 허우적거려보다가 하품을 싸악 했다.
“루비! 루비!”
그는 어린 동물이 갑자기 귀여워진 모양이다. 연신 그 머리를 쓰다듬어 준다.
『사상계』 70호(1959. 5); 『유주현 대표작선집』(경미문화사 1978)
유 주 현
유주현(柳周鉉)은 1921년 경기 여주에서 태어나 일본 와세다(早滔田)대한 사회의식을 가지고 인간과 사회의 부조리를 다룬 단편을 주로 밭표했는데, 「장씨 일가」 「패륜아」가 대표적이다. 1960년 이후로는 장편 『조선총독부』 『대원군』 『대한제국』 『황녀』 등을 발표, 역사소설의 새로운 경지를 개척 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1982년 타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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