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설명: 겉으론 물자와 인력의 원활한 수송이었지만 대륙 침략과 조선인 강제동원 등을 위해 일제는 1905년 9월 11일 부산~시모노세키 첫 부관연락선으로 이키마루호(사진·국제신문 db)를 취항시켰다. 이어 곤고마루호, 도쿠주마루호, 쇼케이마루호 등을 추가로 투입해 2차 세계대전에서 항복하기 직전까지 운항했다. 1926년 8월 4일 윤심덕과 김우진이 도쿠주마루호에서 투신자살했다는 사건은 당시에도 많은 의문을 낳았다. >
연락선은 떠난다.
사진설명:>
목포의 눈물(어코디언 : 심성락)
목포 갓바위
갓바위는 두 사람이 나란히 삿갓을 쓰고 서있는 모습의 바위로 목포 8경의 하나이며 큰 쪽이 8m 가량, 작은 쪽이 6m 가량으로 바다쪽에서 배를 타고 봐야 참 모습을 볼 수 있다. 바다를 향하여 서있는 이 바위는 아버지를 여윈 한 젊은 이의 슬픈 전설이 담겨 있는데 그 이야기는
다음과 같다.
한 젊은이가 아버지의 병을 고치기 위하여 갓바위 부근 부잣집에서 머슴살이를 했다. 그는 한달동안 일한 품삯을 받아 아버지의 약값에 쓰려고 했으나 욕심쟁이 주인이 품삯을 주지않아 비통한 마음으로 갓바위 양지쪽에 앉아 먼 산만 바라보고 있는데, 마침 이곳을 지나던 스님이 아버지의 위독함을 알려주었다.
그 길로 단숨에 집에 돌아왔으나 아버지는 이미 싸늘한 시신이 되어 있었다, 그리하여 젊은이는 아버지가 저승에서나마 편히 쉴 수 있게 갓바위 양지 바른 곳에 아버지를 모시기로 하고 관을 모시다가 실수하여 바다에 빠뜨리고 말았다. 그 후 이 젊은이는 천하에 가장 큰 죄를 지었다며 큰 삿갓을 쓰고 하늘도 보지 않고 추위와 더위는 물론 음식도 먹지 않은 채 뭇사람들의 얼굴을 피해 언덕을 등지고 바다 쪽을 향해 그 자리에서 불효의 용서를 빌다가 돌이 되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