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물에 미친 사람들] [3] 가평 '꽃무지 풀무지' 김광수·김혜옥 부부
야생화 매력에 빠져들어 서울 생활 접고 歸農
폭우로 폐허되는 역경딛고 6년간 일군 끝에 문 열어
외래·원예종 전혀 없이 자생식물만 1300여종
사계절 우리꽃 향연 야생화 증식·보급도 열성
지난달 27일 조종천이 끼고 도는 대금산 자락에 숨은 듯이 자리잡은 '꽃무지 풀무지' 야생수목원. 야생화원 '햇살언덕'에는 무리지어 톡쏘는 냄새를 뿜어내는 산부추가 메밀처럼 작은 꽃을 머리에 이고 있었다. 종이를 만드는 원료로도 쓰인다는 닥풀에는 큼지막한 흰꽃이 달렸다. 노루귀, 산골무꽃, 자주꽃방망이 등 정겨운 이름이 붙은 풀꽃들이 여기저기에서 옹기종기 자라고 있었다. '꽃무더기 풀무더기'라는 뜻을 가진 수목원의 이름만큼이나 소박한 풍경이 눈에 가득했다.◆야생화와의 만남
꽃무지 풀무지(가평군 하면 대보리)는 우리나라에 자생하는 풀과 나무를 가꿔 선보이는 전문 수목원이다. 면적은 5만여㎡(1만5000여평)로 그리 크지 않지만 식물 1300여종의 보금자리이다. 외래종은 씨가 날아와 싹을 틔워도 뽑아낸다고 한다. 특히 일부러 인공을 보태지 않고 야생의 생태를 살렸다. 이곳에서 자라는 풀 한 포기, 나무 한 그루에는 김광수(57)·김혜옥(55)씨 부부가 흘린 땀이 고스란히 들어있다. 손수 일궈낸 땅에 씨를 뿌리고 싹을 틔워 지금의 모습을 갖췄기 때문이다.
- ▲ 우리 야생화를 지키겠다는 일념으로 서울 생활을 접고 귀농해 가평에 꽃무지 풀무지 야생수목원을 일군 김광수(왼쪽)·김혜옥 부부. /김건수 객원기자 kimkahns@chosun.com
그때부터 김씨의 삶이 달라졌다. 야생화 동호회에도 가입해 2년 동안 주말마다 전국을 돌아다녔다. 아내 김씨는 처음에는 그저 취미생활이려니 여겼다. 그러나 야생화에 빠진 남편의 증세는 더욱 심해졌다. 김씨는 "누군가는 외래종에 밀려나는 우리 야생화를 보존·증식하고 보급해야 한다"며 귀농을 마음먹었다. 1999년 가진 돈을 쏟아부어 가평 산골의 땅을 사들였고, 한해 동안 거처도 제대로 없이 서울을 오가면서 비닐하우스를 만들어 꽃씨를 뿌리고 묘목을 심었다.
◆수목원 조성 난관
그러나 초보 농사꾼에게 쉬운 일은 없었다. 야생화를 제대로 가꿔본 적이 없기에 언제 파종하고 이식해야 하는지도 몰랐다. 햇볕이 잘 쬐는 곳에 정성스레 심었지만 말라 죽기 일쑤였다. 뒤늦게 먼저 나무를 심어 숲그늘을 만들고 꽃을 심어야 한다는 것을 알게 됐다. 또 시행착오를 거듭하면서 식물마다 다른 습성을 터득했다. 그렇게 증식하고 바깥에 옮겨 심으며 수목원의 모습을 갖추는 데만 6년이 걸렸다.
더구나 수목원을 70% 이상 완성했을 즈음 재앙이 닥쳤다. 2001년 7월 가평에서만 하천 범람으로 8명의 사망자를 낳은 폭우로 온통 폐허가 됐다. 김씨는 "하늘 앞에서는 당할 재간이 없었다. 다시 일궈낼 자신이 없어 포기하려 했다"고 말했다. 그러나 아내 김씨가 오히려 "서울에 있는 집도 처분하고, 이왕 시작했으니 끝장을 보자"며 힘을 북돋웠다. 처음 시작할 때보다 돈도 힘도 훨씬 더 많이 들었지만, 아내가 든든하게 버텨줬다.
"시골에서 살게 되리라고는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어요. 남편은 귀농을 하면 공주처럼 모시겠다고 했죠. 그런데 이곳으로 오자마자 무수리가 됐네요." 2002년 마침 두 아들이 줄줄이 군대를 가게 되자 부부는 아예 시골 사람이 되기로 했다. 서울에서 운영하던 건설업체도 처분하고 가평으로 내려왔다. 앞으로 야생화가 인기를 얻으면서 수입도 되리라고 나름대로 기대도 가졌다. 처음에는 애를 먹던 아내도 점차 적응해갔고, 2003년에는 문을 열 수 있었다.
- ▲ 꽃무지 풀무지 야생수목원에서는 우리꽃과 나무 1300여종이 사계절 향연을 펼치고 있다. /김건수 객원기자 kimkahns@chosun.com
꽃무지 풀무지는 지금은 의미와 재미가 가득한 알찬 수목원으로 제법 이름이 났다. 수생습지원, 꽃풀생태원, 붓꽃원, 나리원, 향기원, 산채원, 덩굴식물원, 국화원, 버섯원, 양치식물원 등을 갖췄다. 덕분에 사계절 우리 꽃의 향연을 즐길 수 있다. 작은 공연장, 삼림욕장에다 체험시설도 있다. 수목원 운영 적자를 메우는 방편도 되지만 모종이나 묘목을 생산하고 조경 관련 컨설팅도 한다. 요즘도 김씨 부부는 여전히 눈만 뜨면 흙을 묻히고 산다. 김씨는 아예 일꾼이고, 원장을 맡은 아내 김씨도 올라운드 플레이어다.
그러나 고생한 가치를 인정받고 있기 때문에 부부는 보람을 느낀다. 서울시교육청의 현장체험 학습기관으로 지정받아 관련 프로그램도 운영하고, 교사들도 연수를 위해 많이 찾는다. 지난 3월 방문한 김용하 국립수목원장으로부터는 "전국의 수목원·식물원이 운영이 힘들어 관람객 위주로 눈높이를 맞추다보니 원예종을 많이 도입하면서 비슷해졌다. 비록 힘들겠지만 의지를 갖고 특색을 유지해달라"는 부탁을 듣기도 했다. 김씨도 앞으로 더욱 완성도를 높이고 순수성을 계속 유지하겠다는 고집을 갖고 있다.
꽃무지 풀무지에서는 우리 꽃을 손수 가꿔보고 사랑해달라는 뜻에서 관람객들에게 제철에 맞는 야생화 모종을 선물로 준다. 또 한 번 입장권을 구입하면 30일 동안 무료 입장을 허용해 우리 꽃을 좀더 즐기도록 배려하고 있다. 김씨는 "야생화에 대한 나의 관심과 사랑에서 시작했지만, 재정적 압박으로 아내나 자식들이 궁핍할 때 후회도 많았다"며 "그러나 관람객들로부터 우리 꽃 지킴이를 해줘서 고맙다는 말을 들으면 힘이 솟는다"고 말했다.
출처_ 조선닷컴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0/09/06/2010090601913.html
첫댓글 아름다운 부부네요~~^^ 꽃무지 풀무지에 한번 가보고도 싶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