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파르타의 용맹성, 그러나 마초이즘적 영웅주의
전율하라!, 경험하라!, 확인하라!, 느껴라!, 즐겨라!, 만나라! 라는 강렬한 카피가 돋보이는 영화 <300>은 방대한 스케일과 스펙타클한 전투신을 적절한 CG기법을 동원해 비주얼하게 보여주었다. 영화를 보고 영화관 비상구로 나오면서 뇌리속에 가장 크게 맴도는 것 또한 격렬하면서 장엄하기까지 한 전투신이었다. 물론 하나를 더 더한다면 스파르타 용사들의 용맹스런 기합소리가 스테레오를 타고 흘러나오는 장면이었다.
<300>은 프랭크 밀러의 동명원작을 영화화 한 것으로 지난 주 북미에서 7088만 달러의 개봉성적을 기록하며 2007년 첫 번째 블록버스터로서 2주차에 3120만 달러의 흥행수입을 올리며 정상을 지키고 있다. 또한 국내 박스오피스에서도 현재 1위에 랭크되어 있다.
‘300’이라는 간결하면서도 상징적인 숫자가 영화의 제목으로 지어진 것이 스릴러적인 분위기를 풍겼는데 알고 보니 페르시아 100만 군대와 맞붙는 그리스 스파르타 군대를 가리키는 것이었다. 마치 성경에서 수많은 미디안 군대를 물리친 기드온의 300용사를 떠오르게 하는 제목이었다.
영화는 초반부터 그리스 스파르타의 용맹함에 초점이 맞춰 있었다. 스파르타의 왕 레오니다스가 왕실에서부터 그리고 왕실을 떠나 설원에서까지 야생하며 강인한 용사로 자라온 모습과 그가 스파르타 정신에 자신의 목숨을 철저히 내어놓기까지 하는 비장한 각오는 강렬한 남성미와 비장미를 동시에 보여 주었다.
레오니다스 왕은 용맹스럽기 그지없지만 대단한 지략가이기도 했다. 전투를 떠나기 전 미신에 가까운 여신을 섬기는 타락한 제사장들에게 신의 뜻을 묻지만 그들의 타락한 마음에서 나오는 부정적인 예언을 거부하고 그는 과감히 전투에 임하기로 결정한다. 그와 동행한 스파르타 용사들은 단 300명. 도저히 수적으로 페르시아 군대를 감당할 수 없게만 보이지만 그들이 믿고 의지하는 것은 오로지 그들이 물려받은 스파르타의 용맹함이라는 유산이었다.
300용사들은 100만의 페르시안 군대에 맞서 바다에 폭풍우가 몰아칠 것을 예상해 엄청난 수의 페르시아군대를 기후적 조건을 이용해 지혜롭게 물리친다. 그 뒤 테르모필레 협곡에서 배수진을 치고 용맹스럽게 100만 페르시아 군대를 이겨나가며 자칭 신이라 주장하는 페르시아의 크세르크세스 왕의 회유에도 무릎꿇지 않는다.
3D작업과 컴퓨터 그래픽 등으로 구성된 스펙타클한 장면들은 물론 압권이었지만 마치 킬빌류의 잔인한 장면들은 다소 자극적이어서 순간순간 스크린에서 눈을 피해야 했다. 그리고 그래픽 작업으로 인해 방대한 스케일이 오히려 리얼리티가 떨어져 어찌보면 애니메이션적이기까지 한 것이 영화의 단점이었다. 당초에 영화가 스파르타 군대 300명을 영웅시하는 것에 초점이 맞추어 있다 보니 전투신에서도 페르시아 군인들은 팔다리가 잘려나가며 피칠갑을 당하고 그들의 시체더미가 곧 적의 침투를 막는 방어진으로 사용되는 등 어떠한 휴머니즘의 가치는 없고 단지 영웅만들기라는 마초이즘에 집중되어 있어서 다소 뭉클한 감정을 느끼기엔 부족했다.
다만 끝까지 자신의 본분을 다하고 스파르타 정신을 역사에 남긴 전설적인 그들의 용맹스런 죽음은 위대한 군인정신의 본보기가 될 만한 거 같다면 다소 과장된 표현일까? 죽음을 맞이하기 전 레오니다스가 “스파르타여. 아침을 준비하라. 마음껏 먹어라... 저녁은 지옥에서 먹는다!”라며 장렬한 최후를 맞을 것을 다짐하는 장면은 레오니다스 왕 개인을 떠나 헤라클레스의 후예인 스파르타의 강인함과 용맹성을 최대한 압축한 명대사로 죽음 앞에 굴복하지 않는 그들만의 자부심과 전사정신을 잘 담아내고 있다.
설원에서 만난 거대한 늑대 앞에서 두려움은 사라지고 온 몸의 감각기관만이 되살아나는 그 거친 숨소리가 오늘날 한국사회의 가진자들에게도 노블리스 오블리제의 정신을 되살리게 해주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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