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년 전, 나는 『소년이 온다』를 다 읽지 못했다. 1980년의 광주를, 그곳에서 죽은 자와 살아남은 자의 이야기를 끝내 읽어낼 수 없었기에. 2024년 작가 한강의 노벨 문학상 수상 소식을 듣고 다시 책을 꺼내 들었다. 동호, 정대, 은숙, 진수, 선주, 그리고 동호의 어머니. 아프고 무거운 마음으로 한 사람 한 사람을 만났다. 작가는 열다섯 살의 동호를 바라보는 시선이 되어, 죽어가는 몸뚱이를 바라보는 정대의 혼이 되어, 살아남은 자가 되어 그들의 기억을 전한다. 이 이야기를 어떻게 끝까지 쓸 수 있었을까. 읽는 것과는 비교할 수도 없는 고통이 있었으리라 생각했다.
1980년 5월의 광주, 그곳에 있었던 “소년의 얼굴이 또렷해질 때까지. 그의 목소리가 들릴 때까지.”(200쪽) 작가가 기다리고 머물렀던, 들여다보고 찾았던 흔적들이 이야기의 곳곳에 섬세하게 남아 있다. 어떻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나. 이런 일을 겪고 살아간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답이 돌아오지 않는 숱한 질문을 던지며 글로 전해지는 것보다 더한 현실을 지금도 살아가고 있을 생존자의 모습이 그려져 괴로웠다. 살아가는 것이 고통인 삶이 떠올라 자꾸 무거운 눈물이 뚝뚝 떨어졌다.
“네가 죽은 뒤 장례식을 치르지 못해, 내 삶이 장례식이 되었다.”(102쪽)
“내가 밤낮없이 짊어지고 있는 더러운 죽음의 기억이, 진짜 죽음을 만나 깨끗이 나를 놓아주기를 기다립니다. 나는 싸우고 있습니다. 날마다 혼자서 싸웁니다. 살아남았다는, 아직도 살아 있다는 치욕과 싸웁니다. 내가 인간이라는 사실과 싸웁니다. 오직 죽음만이 그 사실로부터 앞당겨 벗어날 유일한 길이란 생각과 싸웁니다.”(135쪽)
“그 여름 이전으로 돌아갈 길은 끊어졌다. 학살 이전, 고문 이전의 세계로 돌아갈 방법은 없다.”(174쪽)
그들의 말은 잊히지 않았고 깊게 베인 상처처럼 한동안 아렸다. ‘도려낼 수도 없는 내 눈꺼풀 안쪽에 박혀서’(146쪽) 눈을 떠도 감아도 선명하게 보이는 얼굴과 장면들, 몸의 곳곳이 기억하고 있는 끔찍한 폭력과 고문들 때문에 매 순간 모든 감각이 곤두선 채 살아가고 있는 삶이 느껴져 몸서리쳤다. 누구도 대신할 수 없는 고통에서, 오롯이 혼자인 것만 같은 삶에서 그들이 느꼈을 깊은 외로움을 감히 짐작할 수 없어 미안했다.
나는 1980년 5월의 광주를 모른다. 『소년이 온다』를 읽고 느껴지는 고통만큼 잠시 괴로워하며 아파할 뿐. 그러나 2014년 4월의 세월호, 2022년 10월의 이태원, 그리고 2024년 12월 3일의 비상계엄, 더한 일이 일어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이 더해지는 오늘을 살며 ‘광주가 수없이 되태어나 살해되었다’(207쪽)는 작가의 말을 실감한다. 국가폭력의 현장에서 생존한 이들의 고통이 여전히 이어지고 있다. 나의 삶을 지켜줄 것이라 믿었던 국가가 되레 처참하게 짓밟고 망가뜨린 나의 몸과 마음을 애써 붙잡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 왜 이런 고통은 계속되는가? 살아남은 자의 삶을 어떻게 대해야 하는가? 그럼에도 살아가야 한다고 말할 수 있는가?
예상치 못한 아이의 날카로운 반응 하나에도 쉽게 부대끼는 나는 고통에 취약한 존재다. 결혼식장보다는 장례식장을 찾아야 할 일이 많아지는 시기에 접어들었는데도 죽음을 위로하는 법을 몰라 미욱한 마음을 전하는 나는 아직 어리다. 그러니 ‘왜 고통을 견디며 살아야 하는가?’, ‘왜 죽지 않고 살아야 하는가?’라는 질문은 어렵다. 고개를 가로저으며 떼어내려 해도 도깨비바늘처럼 붙어 있다.
이 질문은 2년 전 돌아가신 할머니가 요양원에 계실 때부터 문득문득 찾아와 나를 괴롭게 했다. 할머니는 예순 되던 해에 암 투병을 하시던 할아버지를 먼저 보내고 20년 가까이 혼자 지내셨다. 서울에서 하루가 꼬박 걸리는 전라남도 작은 섬마을에서 평생 사셨던 할머니는 혼자 지내시는 동안에도 바투바투 낳아 기른 7남매, 손주들, 손주의 자식들까지도 챙기는 분이셨다. 그런 할머니가 여든이 되실 무렵 치매에 걸리셨다. 할머니의 살붙이 누구도 기억을 잃고 고집스러워지는 할머니를 돌볼 수 없었다. 할머니는 결국 요양원에서 생활하셨고, 마지막 5년은 하루하루 야위어가는 모습과는 다르게, 치우지 못한 묵직한 짐짝처럼 요양원 작은 침대에 그저 놓여 있었다. 나는 그즈음 할머니를 뵐 때마다 힘들었다. 할머니에게도, 할머니를 바라보는 가족들에게도 고통뿐이라 생각했다. 돌아가시는 편이 낫겠다 생각하기도 했다.
『소년이 온다』를 읽으며 다시 그 질문에 갇혔다. 머릿속이 엉켜 있는 실뭉치로 가득 찬 것 같다. 어떻게든 풀어보고 싶은데 실마리가 보이지 않는다. 이번에도 답은 찾지 못했다. 작가는 왜 이 이야기를 썼을까. “이제 당신이 나를 이끌고 가기를 바랍니다. 당신이 나를 밝은 쪽으로, 빛이 비치는 쪽으로, 꽃이 핀 쪽으로 끌고 가기를 바랍니다.”(213쪽)에서 멈췄다. 소년의 얼굴이 또렷해지고 그의 목소리가 들릴 때까지 기다렸던 작가는 마침내 소년을 이끌고 우리에게 왔다. 소년뿐 아니라 그를 잊지 못하며 살아가는 이들의 삶도 이끌고 왔다. 더 이상 깊은 어둠 속으로 침잠하지 않도록 ‘밝은 쪽으로, 빛이 비치는 쪽으로, 꽃이 핀 쪽으로’(213쪽) 왔다. 아프지만 다정하게. '왜 고통을 견디며 살아야 하냐'고 수없이 물었지만, 내가 그들을 아니, 그들이 나를 밝은 쪽으로, 빛이 비치는 쪽으로, 꽃이 핀 쪽으로 이끌고 올 수도 있다는 생각은 하지 못했다. 연결된 우리가 고통에 매몰되지 않고 다정하게 밝은 쪽을 향해 걸을 수 있다는 것을, 그렇게 서로를 돕고 구하며 살아가고 있다는 사실을 잊고 있었다.
첫댓글 살아남은 자의 고통과 그럼에도 살아가야 하는 삶이 많이 아프네요...
그렇게 서로를 돕고 구하며 살아가야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