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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생부종합전형은 실패한 입시정책
[기고] 정책을 바꾸면 삶이 바뀐다...한국형 바칼로레아(KB) 도입해야
현재 대학 입시의 대세는 학생부종합전형(약칭 학종 전형)이다. 수시모집 비율에서 학생부교과전형이나 논술전형보다 압도적으로 비중이 높기 때문이다. 수능시험 성적으로 뽑는 정시모집 비율이 30%선에 머무는 걸 생각하면 더욱 그렇다. 문제는 ‘학종 전형’이 실패한 정책이라는 데 있다. 그 이유를 크게 네 가지로 분석할 수 있다.
첫째 학종 전형의 ‘공정성’ 논란이다. 시민들 가운데, 그리고 일부 학생들조차 그런 의구심을 갖는다. 깜깜이 전형이라는 ‘공정성’ 논란 끝에 2년 전 정시전형 비율이 조금 높아졌다. 그럼에도 ‘공정성’ 논란 현상은 지금도 여러 곳에서 감지되고 있다.
예를 들어 보자. 학종 전형에서 올해 추천서를 요구하는 대학이 거의 사라졌다. 내년부턴 완전 폐지된다. 학생 자신이 쓰는 자기소개서조차 신뢰성을 상실해 올해 고교 1학년생부턴 완전 폐지된다. ‘소논문’ 대회도 3년 전 전국 모든 고등학교에서 폐지됐고 ‘소논문’이란 낱말 자체를 학교생활기록부(약칭 생기부)에 아예 쓸 수 없다. 실제로 ‘대회’, ‘발표’, ‘참여’, ‘기관명’, ‘출신학교’, ‘국가명’을 비롯해 생기부에 입력하면 안 되는 금지어가 무수히 많다. 올해 1학기 들어 학교생활기록부에 입력할 수 없는 금지어가 무려 25,459개에 이른다.
올해 1월 교육부가 제시한 「2021학년도 학교생활기록부 기재요령(고등학교)」에 따르면, 학생 자신이 쓴 논문을 투고하거나 논문을 발표한 실적을 입력하면 안 된다. 어학연수나 국외 봉사활동을 위한 해외활동 실적도 입력할 수 없다. 더구나 학생 자신이 노력해서 쓴 저서를 출간한 사실도 기록할 수 없다. 나아가 부모의 이름, 직종, 직장, 직위도 입력 불가능한 금지어이다. 한마디로 학종 전형이 금수저 전형이 되지 않도록 원천 차단하겠다는 의도이다. 학종 전형의 부작용에 대해 지나칠 정도로 교육부는 충분히 규제를 강화해 왔다. 오히려 학종 전형의 도입 취지가 무색할 정도로 껍데기만 남은 몰골이다. 글자 수 제한뿐만 아니라 학생의 다양한 활동 자체에 대한 입력을 규제하다 보니 앞으론 성적과 세부능력 특기사항만 남을 가능성이 높다.
수년 전부터 토익, 토플을 비롯해 공인어학성적을 입력할 수 없을 뿐 아니라 교외 수상 기록은 아예 입력 자체가 불가능하다. 올해부턴 교내대회 수상 기록조차 학기당 1개만 반영하는 것으로 제한했다. 고교 재학 시절 20-30개 대회 수상 실적이 있다고 해도 수시모집에선 최대 5개만 대학 측에 반영될 뿐이다. 교내 수상 기록조차 철저히 제한한 것이다.
왜 이런 현상이 벌어진 것일까? 한 마디로 ‘공정성’에 대한 불신이다. ‘공정성’에 대한 불신은 학교에 대한 불신이다. 그것은 곧 교사에 대한 불신이다. 입시업무를 총괄하는 상급관청인 교육부가 학교를 불신하고 교사를 불신한 탓이다. 그 불신에는 충분한 이유와 배경이 존재한다. 예를 들어 보자. 어떤 학교에선 1년에 교내 대회가 60번 열리는 학교도 있다. 지금 글쓴이가 근무하는 학교에선 45개 정도이다. 이전 근무학교에선 연간 20개 대회가 있었다.
공립학교와 사립학교 간 차이가 크고 자사고와 일반 인문고 간에 차이도 크다. 문제는 공립학교든 사립학교든, 아니면 자사고든 일반고든 상을 남발하는 현상이 적지 않았기 때문이다. 여름방학, 겨울방학, 봄방학을 빼고 9개월을 공부한다고 했을 때 60번 대회를 개최하는 학교는 한 달에 최소 6번 이상 교내대회를 열어야 한다. 교육에 대한 문외한이 봐도 수긍하기 어렵다. 상을 남발하는 문제를 넘어서서 대회 상을 일부 특정 학생들이 휩쓸어가는 경우도 다반사다.
글쓴이 경험에 따르면 전교 1-3등 하는 학생의 경우에 3개년 동안 30개가 넘는 경우도 어렵지 않게 발견했다. 수시모집에서 3학년 1학기까지 반영하는 만큼, 수상기록을 5개 학기 5개로 반영을 제한한 것은 그런 연유이리라!
봉사활동도 올해 1학년부터는 교내 봉사활동계획에 따른 봉사활동만 생기부에 입력할 수 있다. 이미 각 대학 측에서 교내외 봉사활동 시간 수가 100시간을 넘는 경우가 허다하여 학종 전형 초기와 달리 신뢰성을 상실한 탓이다. 더구나 교내 봉사활동만 인정한다는 것은 교외봉사활동에 대한 불신을 스스로 인정한 결과이다. 독서 기록 역시 올해 1학년부터는 아예 생기부에 입력을 못한다. 입력해도 대학입시에 반영되지도 않는다. 아이들 독서활동조차 수년 전부터 지은이와 책제목만 생기부에 입력하고 있다. 이마저도 올해 1학년부터는 완전히 사라진다. ‘깜깜이 전형’이라는 논란 끝에 나온 교육부의 고육지책이라 생각한다.
그래서 두 번째 학종 전형이 실패한 이유를 근본에서 성찰해 보자. 한국 사회는 역사청산이 없었던 사회이다, 일제강점기 독립운동가를 고문해서 죽인 고등계 형사가 해방 후 대한민국 경찰 중견간부로 행세했다. 해방 직후 친일경찰 비율이 무려 80%에 이르렀다. 심지어 항일독립운동가가 ‘빨갱이’로 몰려 죽임을 당하기도 했다. ‘타도(打倒) 공산주의’ 바로 ‘타공’(打共)을 외치는 것만이 당시 반민족행위를 저지른 친일 경찰들이 살아남는 길이었다. 그렇게 한국 사회 정의는 무너지고 짓이겨졌다.
항일독립운동을 했던 후손들이 선조의 항일운동을 자랑하기보다 쉬쉬했던 시절이 이승만 정권 50년대 풍경이었다. 50-60년대 한국 사회 풍경을 다룬 조정래의 대하소설 『한강』은 그 시절을 그렇게 묘사하고 있다. 60년대 박정희 정권에선 한 술 더 떠 친일 반민족행위자들이 독립유공자를 심사하는 심사위원으로 행세했다. 흑과 백이 뒤집힌 세상이었다.
역사 청산이 단 한 번도 없었던 한국 사회에서 사회정의를 세우기는 지난한 과제였다. 마찬가지로 교육정의를 바로 세우는 과제 또한 지난한 일이었다. 오늘날 일부 비리사학들의 전횡은 어제 오늘일이 아니지 않는가! 문제는 공익을 위해 비리를 고발하는 내부제보자에 대한 태도이다. 비리를 저지른 사립학교에서 일부 동료교사와 학부모가 양심에 따라 행동했던 공익제보 교사를 따돌리고 다수가 방관하는 모습이 우리 사회 현실이다. 불의가 저질러지는 눈앞의 현실에서 물질이 인간의 영혼을 질식시키고 압도한 결과로서 서글픈 현실이다.
정의가 무너진 사회에서 목적과 수단이 뒤바뀌는 현상을 쉽게 목격한다. 학생의 성장과정을 관찰하고 기록하며 그런 교육의 전 과정을 중시하는 제도가 학종 전형이고 그런 교육의 취지에서 학종 전형 또한 훌륭한 교육제도로서 도입되었다. 그러나 우리의 현실은 어떠한가? 삶의 과정으로서 관찰하거나 성장의 과정으로서 기록하기보다 모든 게 입시를 위해 기능한다. 바로 대학 입학을 목적으로 활동하고 기록될 뿐이다. 그런 의미에서 한국 사회 학종 전형은 ‘위선’을 부추기고 조장하는 측면이 강하다. 그런 전도된 현실을 보노라면 교사로서 고통스럽다. ‘위선’을 조장하는 교육이라면 학종 전형은 더 이상 존속시킬 이유가 없다. 소설을 쓰거나 화려하게 학생활동을 입력해 주는 것이 교사의 역할은 아니다. 더 이상 반(反)교육을 ‘교육’이라고 할 순 없다.
셋째 학종 전형에서 핵심 인자는 입학사정관이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입학사정관을 근간으로 하는 학종 전형은 문제가 많다. 입학사정관 개개인의 자질을 문제 삼는 게 아니다. 수많은 학생들을 과연 입학사정관들이 평가영역별로 일관되게 정량화하여 계측할 수 있는가에 대한 의문이다. 성적과 수상기록, 그리고 자격증은 그렇다하더라도 동아리활동-봉사활동-진로활동-학생회활동-자율활동-교과별 세부능력특기사항-학생행동종합발달을 과연 객관적으로 데이터화하여 정량화할 수 있는가의 문제이다. 입학사정관제도 초기, 실제로 어느 대학교에선 수천, 수만 명에 달하는 학생들의 두터운 증빙서류를 검토할 만한 시간과 인력을 확보하지 못하자 학생 한 명 당 제출할 증빙서류를 몇 가지로 제한하기도 했었다.
오늘날도 마찬가지이다. 동아리활동이나 교과별 세부능력특기사항, 그리고 진로활동 등 항목별로 입력할 글자 수를 500자나 700자로 제한한다. 그럼에도 보통의 학생들의 경우, 3학년 1학기까지 학교생활기록부를 출력할 경우 10장에 이르는 경우가 적지 않다. 그렇다면 수많은 응시생들에 대해 입학사정관업무를 전담하는 인력으론 사정업무를 감당하기엔 절대적으로 부족한 형편이다. 따라서 자연스레 대학 측에선 입시철이 다가오면 학과 교수를 입학사정관으로 위촉하여 부족한 인력을 메워가며 진행할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입학사정의 객관성과 통일성, 그리고 일관성을 유지하기가 어려울 것이다. 고등학교 학력을 측정하는 평가의 타당도를 이야기하는 게 아니다. 평가의 객관성을 일관되게 유지하기가 어렵다는 판단이다.
넷째 교사의 과도한 입력업무이다. 수업을 준비하기보다 교사가 학생 개개인의 활동을 컴퓨터에 입력하는 것은 보통의 상상을 초월한다. 학기말 특정 시기의 경우 교사가 본업인 수업 준비보다 학교생활기록부 입력으로 과중한 행정업무에 시달리는 게 우리교육이 처한 현실이다. 다시 말해 전국의 수십 만 교사들을 ‘워드기계’로 전락시키는 게 바로 ‘학종 전형’이다. 어떤 것은 거의 형식적이고 무의미한 내용임에도 지침에 따라 일률적으로 입력해야 한다. 심지어 교육부 지침 가운데엔 올해부터 학생 개개인에 대해 「교과별 세부능력특기」사항을 전부 입력해야 한다. 모든 교과교사가 모든 학생을 대상으로 학생 한 명 한 명에 대해 세부능력 특기사항을 입력해야 하는 것이다. 어떤 측면에선 관료들이 저지르는 탁상행정의 극치이기도 하다.
주당 1시간 1단위 수업일 경우도 예외가 없다. 10개 학급 300명에 이르는 학생들의 경우 이름조차 알기도 어려운 게 우리네 교육 현실이다. 더구나 바이러스 상황에서 마스크를 쓰고 있고 온라인 수업으로 주마다 대면-비대면 수업이 교체되는 현실에서 학생들을 파악하는 게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그럼에도 학생 한 명 한 명 「교과별 세부능력 특기」사항을 일일이 입력해야 한다. 소설을 쓸 수도 없고 참으로 여간 고통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원천적으로 관찰이 불가능한 현실임에도 학생의 성장과정을 모든 학생에 대해 관찰한 대로 기술해야 한다고 하니 이 얼마나 난감한 일이겠는가?
사진설명 : 한국 청소년 주관적 행복지수 OECD 조사대상국 22개국 가운데 꼴찌 (출처 : 한국방정환 재단, 연세대 사회발전연구소, 2016년)
교육은 궁극적으로 정직한 아이를 길러내야 한다. 또한 교육은 결과적으로 경쟁에서 승리하는 이기적 인간형보다 공동선을 추구하며 협동하는 이타적 인간형을 지향해야 한다. 그런 면에서 오늘날 ‘학종 전형’은 실패한 입시제도이다. 그렇다면 대안은 무엇일까? 예전 5지 선다형 객관식 문제로 선발하는 수능시험성적으로 돌아가는 게 답일까? 그것은 얼핏 보기에 ‘공정한’ 선발제도인 듯하다. 왜냐하면 객관성을 바탕으로 ‘공정한’ 입시제도로 인식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고등학교 학력을 평가하는 타당도에서 수능시험은 결코 적합한 전형이 아니다. 대안은 아이들의 능력을 종합적으로 평가하는 논술형 평가방식이다. 바로 한국형 바칼로레아(KB) 시험이다. 한국 사회에만 존재하는 기형적인 기존의 대입논술시험을 전격 폐지하고 한국형 바칼로레아(KB) 시험을 즉시 도입할 것을 강력히 제안한다.
한국형 바칼로레아(KB) 시험은 초중고 모든 교실의 수업방식에 일대 혁명적 변화를 가져다 줄 수 있다. 한 과목 당 2-4시간씩 논술형 문제로 출제한다면 학생들은 사고의 폭을 넓히고 깊이를 더하기 위해 독서와 토론수업, 그리고 발표수업과 프로젝트 수업이 수업의 주된 형태로 자리 잡을 수밖에 없다. 대학서열화와 학벌주의가 여전히 강력한 학습동인으로 작용하는 현실에서 사회개혁을 수반하지 않고 그나마 교육현실을 변화시킬 수 있는 유력한 방안이라고 생각한다.
근본적으론 한국 사회 교육개혁은 사회개혁과 동시에 진행돼야 한다. 다시 말해 복지를 강화하는 방식으로 나아가야 한다. 의무교육인 중학교나 무상교육인 고등학교만 졸업을 해도 인간의 품위를 유지하며 살아갈 수 있도록 복지정책을 강화하는 것이다. 좋은 정책은 좋은 삶을 가져온다. 다시 말해 정책의 변화는 삶을 변화시키고 종국적으로 사람들의 의식을 변화시킨다. 복지국가를 실현하는 일은 교육개혁의 가장 확실한 길이기 때문이다.
국공립어린이집과 유아학교 설치를 의무화하여 무상보육을 실현해 보라! 그리고 청년 공공주택을 일상화하고 기본소득제도를 도입하며 최저임금을 13,000원으로 인상해 보라! 청년 복지를 강화하면 대학진학률이 현저히 낮아질 것이다. 그러했을 때 대학등록금도 반값등록금으로, 나아가 무상교육으로 전환해 보라! 지적호기심이 있는 사람들만 대학을 가고자 할 것이다.
요컨대 교육개혁은 복지를 강화하는 것에서 시작해야 한다. 동시에 한국형 바칼로레아(KB) 시험으로 교육개혁의 포문을 열어야 한다. 개혁은 그리 복잡하지 않다. 개혁 이후를 전망하며 개혁을 추진할 수 있는 강렬한 의지와 열정만 있다면 한국 사회는 근본에서 개벽할 것이다. 오늘도 입시경쟁교육으로 고통 받는 수많은 아이들과 입시 사교육의 버거운 무게에 짓눌린 부모들을 해방시키기 위해서도 더 이상 늦출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