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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전 기공식하며 대성 통곡하는 노인들
에스라 3장 10절-13절 2024년 5월 26일 주일 오후 말씀지
이제 돌아오게 하신 자들은 성전 터에서 제사하며 감독자들까지 세워 모든 준비를 마치고 기공식을 하는데 솔로몬으로 짓게 하신 성전이 무너진 것은 제사를 하지 않아서 무너진 것이 아니라 북이스라엘은 벧엘과 단 두 곳에 금송아지 우상을 세워놓고 제사했고 (왕상12:28-30) 유다는 예루살렘 성전에 각종 우상을 들여다 놓고 심지어는 담무스를위하여 애곡하였고 동방 태양에 경배하였습니다. (겔8:10-18) 그래서 결국에 멸망의 자리에 떨어진 것입니다. 장로교 28차 총회 때 일제 신사참배를 가결한 후 한국교회는 6.25를 만나게 되고 한국에 예루살렘이라 하였던 평양에는 공산주의 자들이 거짓으로 영생탑까지 세우고 3김 부자들이 신노릇하고 있는 것입니다. 오늘도 예배를 외식으로 건성으로 하는 자가 많고 억지로 하다가 피곤하거나 힘들면 하지 않는 자들이 많은데 이제 머리부터 발끝까지 성한 곳이 없게 되고 지긋 지긋한 포로 생활에 떨어지게 될 뿐입니다. 사1:5-
바벨론에게 멸망을 당하여 큰 나라에 포로로 잡혀갔다가 다시 돌아와 무너진 성전을 짓기 위하여 모든 준비를 다 마치고 기공식을 하며 여호와께 감사하는데 어찌나 감사한지 첫 예루살렘 성전에서 제사하였던 노인들은 감격하여 통곡하는데 젊은이들과 아이들은 첫 성전을 본 적이 없고 말만 들었으니 감격이 없는 것입니다.
10절 건축자가 여호와의 전 지대를 놓을 때에 기공식입니다. 예전의 성전은 다 사라졌지만 그 터 위에 다시 새로 짓는 것입니다. 타락한 자들은 영적인 신앙생활을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 합니다. 야곱을 왜? 외삼촌 집에서 다시 돌아오게 하십니까? 그리고 왜? 이스라엘 백성들을 애굽에 내려갔다가 다시 가나안에 돌아오게 하셨나요? 또한 왜? 모세로 두 돌판을 깍아서 다시 산에 올라오라 하셨나요? 영적 생활을 다시 시작하게 하시는 것입니다. 이제 타락한 자들은 말씀을 차례대로 받되 구원의 복음인 젖부터 다시 받는 것부터 시작해야 합니다. 나를 왜? 택하셨는지 구원하셨는지 하늘에 무엇이 기다리고 있는지 자세히 받아야 할 것입니다. 고전3:2,3-
제사장들은 예복을 입고 나팔을 들고 이스라엘 백성들을 애굽에서 나오게 하시고 제사장 나라가 되게 하신다고 하셨습니다. 출19:5-6
주시는 말씀마다 오늘 내게 하시는 양식으로 받고 언약을 지켜야 합니다. 언약은 제사를 하라는 것이고 제사를 해야 1.죄를 용서해 주시고, 2.영의 양식을 주시고, 3.자라나 열매를 맺게 하시고, 4.순교케 하사 첫째부활을 하늘에 영광을 주신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오신 후 성전 휘장이 위에서 아래로 찢어짐으로 성령 시대에는 모두가 제사장입니다. 마27:51-
천주교는 아직도 신부에게 고해성사를 함으로 그들만이 제사장인데 성령시대에는 모두가 제사장이나 일하는 직분이 다를 뿐입니다. 사도 베드로를 통해서는 왕같은 제사장을 나타내주셨는데 세상에서 사는 동안 마음껏 예배하고, 열매를 맺고, 감사를 하게 하신다는 것입니다. 벧전2:9-
사도 요한을 통해 계시록에도 1:6에 첫째 부활을 얻을 우리를 나라와 제사장으로 삼으셨다고 하셨습니다.
예수님의 피로 우리를 씻으시고 제사장을 삼으셨으니 1) 내 죄, 2) 다른 사람의 죄를 위해서 기도해야 합니다. 이제 신부의 믿음으로 자라나 단장된 자들을 주님이 다스리시는 나라에서 왕같이 제사장 노릇을 천년 동안 하게 하신다고 하셨습니다. 계20:6-
예복을 입고 거룩한 생활을 하는 것입니다. 세상 사람들과 구별된 거룩한 삶을 사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아들들에게 하늘에서 입히신 1.가죽옷 (창3:21) 2.십자가의 의의 옷 (사61:14)이 있고 땅에서 3.채색 옷 (창37:3) 4.제사장 옷 (출28장) 5.하나님의 전신 갑주 (엡6:11) 가 있고 공중 혼인잔치에 참예케 될 때 6.큰 환난을 통해 순교의 수에 참예하게 하실 때 입히시는 흰옷까지 입혀 영광을 얻게 하십니다. 계7:9-
7.성도들의 옳은 행실인 빛나고 깨끗한 세마포 (계19:8) 를 입고 찬송하며 8.영광성에서는 영광의 몸으로 변하여 영원토록 찬송케 하십니다.
나팔을 들은 것은 아구까지 채움받은 제사장들은 하나님께서 외치라고 하실 때에 에스겔처럼 내게 이루신 말씀을 그대로 증거해야 하는 것입니다.
아삽 자손 레위 사람들은 제금을 들고 다윗 때에 성가대를 맡아 제사 때마다 앞장서게 하신 자들입니다. 이름의 뜻은 ‘모으는 자’입니다. 그 자손들은 악기를 다루어 찬송할 때 하나님을 더 기쁘게 한 것입니다. 대상16:37-
제금을 들은 자는 반주자요 노래하는 자는 성가대입니다. 포로에서 128명이 올라오게 하셨고 (스2:41) 성전 주초를 놓을 때 148명이 찬송했습니다. 느7:44-
서서 이스라엘 왕 다윗의 규례대로 여호와를 찬송하되 말씀도 귀하고 찬송도 귀하고 기도도 귀하기에 아무렇게나 하면 안 됩니다. 말씀은 영의 양식이니 분별해서 받아야 하고 찬송도 곡과 가사가 너무 중요하니 분별해야 하고 기도도 하나님이 받으실 만해야 하니 조심해야 합니다. 기공식 때 여호와를 목자 삼은 다윗처럼 시편에 맞추어 찬송하게 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에 감사하는 찬송이 시편입니다.
11절 서로 찬송가를 화답하며 찬송은? 삼위되신 하나님이 내게 베푸신 은혜에 감사하는 것인데 세상 복이나 받으려 정성으로 바치는 수소보다 더 기뻐하시는 것입니다. 시69:30,31-
새벽에 모두가 다 잠들어 있는데 어떤 이들은 돈벌이하려 새벽같이 출근하고, 건강을 위해 운동하러 나가고, 학생들은 새벽 잠을 줄여 공부하는데 내 몸이 성전인 줄 알게 하신 우리들은 새벽을 깨워 예배 때 제일 먼저 찬송하며 시작합니다. 찬송을 모은 것이 찬송가인데 많은 작사자 작곡자들이 복음의 사람들이 아닌 고로 어떤 곡은 너무 세상적이며 가사 역시 영적 성장하는 대로 불러야 하는데 또 어린아이 단계로 돌아가게 하고 있습니다. 자라나게 하셨다면 그리스도의 초보를 버려야 하는데 계속 그 자리에 머물게 하고 있으니 영적 성장을 이루게 하신대로 고쳐서 부르는 것이 합당한 것입니다. 히6:1-
여호와께 감사하여 가로되 찬송은? 삼위 하나님 여호와의 은혜에 대한 감사로 마음에서부터 솟아나는 신령한 감사의 노래입니다. 엡5:19-
진리로 자라나 거짓을 이기고 정직한 삶을 사는 성도들에게 감사의 찬송은 마땅한 것입니다. 시147:1-
그 감사의 찬송은 입술의 열매로 더욱 기쁜 삶을 살게 하고 하늘에 가서는 그 열매대로 상인 것입니다. 히13:15-
주는 지선하시므로 그 인자하심이 이스라엘에게 영원하시도다 하니 지선(至善)은 지극이 선하다는 뜻입니다. 선한 것은 생명을 살려 영광을 얻게 하시는 것입니다. 택하시고 구원하신 목적이 생명을 살려 자라게 하사 영광을 얻게 하심입니다. 또한 이것이 복음(福音)입니다.
인자하심은? 아무리 목이 곧아 잘못해도 끝까지 참아주시고 징계까지 해서라도 기어코 돌이켜 바로 가게 하시는 역사입니다. 이스라엘은 야곱의 환도뼈가 부러진 후 얻게 된 이름인데 비록 장자가 아니지만 말씀하신대로 이루시려 종용하게 말씀 받게 하사 기어코 장자의 복을 얻게 하셨다는 것입니다. 그 선하심과 인자하심을 시편136편에 26절까지 절마다 감사하라고 하셨습니다.
모든 백성이 여호와의 전 지대가 놓임을 보고 이제 기초공사가 끝난 것인데 복음의 아비를 통하여 창세전 아들로 택하심이 가죽옷 구원과 십자가 구원이 성령을 주셔서 열매맺게 하시고 생명역사까지 하게 하시다가 환난을 통해 순교케 하시는 복음이 믿어진 것입니다. 이제 내몸이 거룩한 성전이 되어 가는데 마다 일하는 것마다 상이 되는 겁니다.
여호와를 찬송하며 큰 소리로 즐거이 부르며 얼마나 기다리던 날인가요? 무너진 성전을 다시 짓기 위해 터가 닦여졌으니 이제 그 위에 세우기만 하면 되는 것입니다. 성전 터는 복음입니다. 이제 진리의 양식을 받아 자라나야 합니다. 내 영을 살려 진리로 자라게 하시니 다 즐거워 큰소리로 찬송하는 것입니다. 성경 전체에는 애굽에서 나오게 하시고 홍해까지 건너게 하신 모세 때 부른 찬송이 있고 (출15장) 가나안에 들이사 왕되게 하신 다윗 때에 부른 찬송이 있고 (시편) 열 왕 때에 전쟁터에 성가대를 앞세운 여호사밧 때 찬송이 있고 (대하20:21) 예수님을 잉태하게 하신 마리아의 찬송이 있고 (눅1:46-55) 늙어서 세례요한을 낳은 후 사가랴의 찬송이 있고 (눅1:67-79) 예수님의 탄생을 알린 천사들의 찬송이 있고 (눅2:13,14) 계시록에는 24장로들의 찬송이 있고 (계4:10-11, 계5:9-10) 흠없는 십사만 사천의 찬송이 부르는 새 노래가 있고 (계14:3) 흰옷 입은 순교자들의 찬송이 있고 (계19:6-8) 영광성에는 찬송이 가득한 곳입니다. 사43:21-
12절 제사장들과 레위 사람들과 족장들 중에 여러 노인은 첫 성전을 보았던고로 여러 노인은 나이가 많은 이들로 바벨론 포로에서 50년 만에 돌아오게 하신 60대에서 90대 이상은 10대 20대에 첫 성전 곧 솔로몬을 통해서 세워주셨던 성전에서 제사하였던 자들입니다.
이제 이 전 지대 놓임을 보고 대성통곡하며 노인들은 감격에 북받쳐 대성통곡이 나왔는데 지난 50년 동안 포로 생활을 하면서 마음껏 제사하지 못했고 하나님을 즐거움으로 섬기지 못했던 것에 대해 가슴을 치며 울은 것입니다. 무엇이나 귀한 줄 모르면 잃어버리게 됩니다. 누구라도 말씀 받는 것을 소홀히 여기면 영적 성장을 이루지 못하니 여러 가지 일들로 인하여 예배할 수 없는 환경이 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것들이 다 귀한 것인데 깨닫게 하실 때마다 감사하면 그 환경이 유지됩니다. 학개서의 말씀은 에스라서의 말씀과 맞물려 있는데 성전에 지으려 올라왔는데 17년 동안이나 방해를 받고 중단되었을 때에 학개 (뜻은 경절=즐거운 날) 선지로 책망하게 하시고 다시 시작하게 하셨습니다. 학2:2-
모든 성경은 다 미리 예언하신 말씀들입니다. 이 말씀을 내 삶 속에서 이뤄지게 하신 것들을 하나하나 확인하게 하십니다. 육신대로 내 마음대로 사는 것이 성전을 더럽히는 것이요 이제 그런 자는 답답한 환경을 주셔서 고통 중에서 다시 신앙을 회복하게 하십니다. 그때에 그 은혜를 감사하며 대성통곡하게 됩니다. 이때를 예레미야 선지로 렘31:1-14에 잘 나타내주셨습니다.
여러 사람은 기뻐하여 즐거이 부르니 여러 사람들은 앞선 자 11명 종족들과 후손들 유다지파와 레위지파 들입니다. 선지자들로 예언하신대로 돌아오게 하신 역사로 보는 자들로 이제 마음껏 하나님을 섬기게 되었음으로 너무나 기쁜 것입니다. 렘31:13-
13절 백성의 크게 외치는 소리가 멀리 들리므로 갈수록 사람들과 말할 때는 목소리가 큰데 찬송할 때는 소리는 작아지고 있습니다. 돌아온 5만 명이 함께 찬송하니 그 소리가 멀리까지 들렸습니다. 박목사도 18세 때 방황하던 중 울려 퍼지는 전도 집회 찬송 소리에 이끌려 서울 남산 야외 음악당 앞에 콩크리 바닥에 없드려 회개케 하시고 십자가로 구원하신 것이 믿어지게 하셨습니다.
즐거이 부르는 소리와 통곡하는 소리를 ‘이제 마음껏 열매맺는 생활을 하게 되었구나’ 하며 즐거워하는 앞선 자들이 있었고 지난날 잘못 살은 것을 통곡하며 회개하는 자들이 있었는데 통곡은 나이들은 자들입니다. 제자 중 가장 나이 많은 베드로도 교만하다가 세 번이나 예수님을 부인한 후 주님이 쳐다보실 때 통곡하였는데 눅22:61,62-
마태와 마가로는 닭소리를 들을 때 말씀이 기억나서 심히 통곡하며 울었다고 하셨는데 누가는 베드로에게 직접 듣고 기록하고 마태와 마가는 다른 제자를 통해서 듣고 기록한 것입니다. 직접 들은 것 하고 다른 사람 통해서 들은 것은 이렇게 구별이 되는 것입니다. (마26:75, 막14:72)
백성들이 분변치 못하였느니라 백성들은 후손들로 포로 생활 중에 태어나 뭐가 뭔지 잘 모르는 자들입니다. 지금도 애굽에서 나오게 광야를 거치게 가나안에 들이신 역사를 모르는 자들은 예배 때 찬송하나 곡이 바른지? 가사가 잘못되지는 않았는지 분별없이 무조건 찬송하는 자들로 감정 주의 자들인 것입니다. 특히 ‘요단강 건너가 만나리’ 하는 가사는 ‘죽음 후 천성에서 만나리’ 로 바꿔야 합니다. 가나안은 천국이 아니라 성령으로 충만케 하사 열매맺게 하시는 하나님 나라 안에 생활입니다. 십계명이 적힌 두 돌판을 주시려 산에 오르게 하셨는데 산 아래 백성들은 금 송아지를 만들어 애굽에서 구원하신 하나님이라고 찬송하며 뛰놀 때에 여호수아는 싸우는 소리라 하였고 (출32:17) 모세는 우상을 섬기면서도 좋다고 노래하는 찬송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출32:18-
오늘날 예배 때에 찬송이 시장 바닥에서 떠드는 소리인지? 음악회에 고운 목소리 자랑인지? 정말 하나님이 기뻐 받으실만한 찬송인지? 복음으로 영이 살리심 받고 진리의 양식으로 자라지 못하면 분변치 못하게 되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