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주작가님께서주신글]
불세출의 청년 홍승화(洪承華)
안광(眼光)이 지배(紙背)를 철한다는 말이 있다. 선생 눈에서 광체가 났다.
선생은 일본 육군사관학교 재학 중에, 전 일본 장거리 수영대회에서 우승하여,
일본 황태자상을 받은 만능 선수였다.
일본의 자존심은 육군사관학교다. 각료의 대부분이 육사 출신이다. 졸업하면 선배들이 이끌어주어 출세가도가 활짝 펴진다.
조선에서 몇 안 되는 육사 생도인 선생이 방학을 맞아, 고향인 김안동에 오면, 통감부 지방관서에서는 경호 순사와 함께 백마를 제공했다.
20대 초반 백마를 탄 청년이, 일본도에 군용장화를 신고 시골 마을에 나타나면, 와! 뉘 집 자식인고? 보지 않아도 그림이 그려진다.
일본 육군사관학교 시절
장지량(후일 공군참모총장)은 선생의 일본 육사 3년 후배인데. 친일파로 몰려 난감한 신세였다.
동향이고 선배인 선생이 보살펴, 그를 동지들의 대열에 합류시켰다.
일본은 패전한 앙갚음 상대로 조센징을 지목했다.
죠센징은 즉시 자신들 나라로 돌아가라!
조센징이 우물에 독을 풀었다는 괴 소문이 이를 부채질했다.
그러니 동포들을 일본에 그냥 방치할 수 없어, 선생은 동지들을 규합했다.
우키시마호 사건
이 선박은 4,730톤에 108m에 이르는 해군수송선이다.
1945년 8월 22일 오후 10시, 조선인 노동자와 가족들을 태우고 출항했는데, 일본 근해에서 침몰했다.
승선 인원은 도미우리 함장이 발표한 3,725명, 사망자 524명이나, 아오모리 근처 조선인 강제 노역자들의 숫자를 고려할 때 1만 여 명으로 추정된다.
침몰 원인은, 선박 안쪽에서 바깥쪽으로 부풀어 오른 구멍이 발견되어, 배의 내부에서 강한 폭발이 있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일본이 한 것이 분명했다.
귀국하려는 조선인들을 도와주던 선생은, 다음 배로 돌아와, 천우신조로 목숨을 부지했다.
선생은 한 동안 행방불명이 된 적이 있었다.
여순 반란 사건 직후였다.
목포 형무소에서 죄수들이 탈옥을 했는데, 선생이 수감된 사실이 그 때 알려졌다.
탈옥사건을 조사했더니. 국군과 교전으로 죄수 대부분은 사살 되었으나, 선생의 방에 있던 죄수들은 무사했다.
선생의 지시에 따라, 창문을 이불로 가리고, 죄수들은 일사분란하게 엎드려 있었다.
선생이 옥중에서 쓴 동양평화론은 김 구 선생의 주장과 같이. 반일만이 능사가 아니라. 좋은 것은 받아드려 극일(克日)하자는 요지였다.
일화
선생이 이리 남성고등학교에서 영어교사로 재직할 때, 미군 비행기가 엔진 고장으로, 비상착륙한 일이 있었다.
선생은 일본 육사에서 전공한 항공정비기술로, 비행기를 수리하여 직접 조종하고, 여의도 비행장의 미군에 인계했다.
선배로 김구 선생의 아들 김 신 장군과, 후배로 공군참모 총장을 지낸 장지량 장군이 있다.
내가 대학 다닐 때, 공군총장 공관에서 장지량 장군을 만났다.
도와줄 일이 없을까? 선생의 은혜를 잊지 않는 듯했다.
나중에 안 사실이다. 이념이 죄 우로 갈라진 혼돈의 시기에, 선생은 자진 월북해서, 북한군 중장을 지냈다.
불세출의 청년은 나의 숙부다.
허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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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youtu.be/ZpmCdTzSI6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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