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방서예[3085] 남호(南湖)정지상(鄭知常)7절-취후(醉後)
醉後(취후) 술에 취해
----鄭知常(정지상)----
桃花紅雨鳥喃喃 (도화홍우조남남)
복사꽃 붉은잎 비오듯 떨어질제 새들은 지저귀고,
繞屋靑山閒翠嵐 (요옥청산간취람)
집을 두른 푸른 산엔 여기저기 아지랑이,
一頂烏紗慵不整 (일정오사용부정)
머리에 얹힌 오사모는 제멋대로 비뚤어진채,
醉眠花塢夢江南 (취면화오몽강남)
꽃 만발한 언덕에서 취해 잠들어 강남 꿈을 꾸고있네.
註.
紅雨(홍우) : 붉은 꽃잎이 비오듯 떨어져 내림을 나타냄.
喃喃(남남) : 빠르게 재잘거려서 무슨 말인지. 喃=재잘거릴 남.
알아들을 수 없게 이야기함. 새가 지저귀는 소리.
繞屋(요옥) : 집을 빙 둘러 싸다.
嵐(람) : 푸르스름한 안개 같은 기운.
翠嵐(취람) : 산을 에워싼 푸른 기운. 옅은 아지랑이를 이르기도함.
烏紗(오사) : 오사모(烏紗帽) 또는 사모(紗帽)라고함.
고려부터 조선시대 관리가 쓰던 검은 모자.
慵(용) : 게으를 용.
慵不整(용불정) : 게을러 가지런하지 않음.
塢(오) : 언덕.
花塢(화오) ; 꽃이 핀 언덕.
사방으로 집을 둘러 있는 푸른 산에서는 아른아른 아지랑이가 피어오르고,
붉은 복숭아 꽃잎이 비처럼 흩날리는 속에 지저귀는 새소리가 들려오는 봄의 어느 날.
시인은 넘치는 봄의 흥취 속에 거나하게 술을 마신 채 흐드러지게
꽃이 피어 있는 언덕에 누워 단잠을 이룬다.
세상의 굴레나 주변의 시선은 아랑곳하지 않은 채 그토록 가고 싶었던 강남을 꿈꾸면서.
이 시는 남호(南湖) 정지상의 대표 詩 중 하나인 醉後(취후) 술에 취해 라는 詩로,
이전부터 우리 문인들에 의해 수없이 거론되었던 名詩이다.
이 시에 대해 김종직은 靑丘風雅 (청구풍아)에서
“곱디고운 모습이 너무 심하다 "艶麗太甚"(염려태심)고 했고,
최자는 補閑集(보한집)에서
“이 시는 그림으로 여겨 볼 만한 시이다"此詩可作圖畫看也”(차시가작도화간야)라고
했으며, 신흠은 晴窓軟談(청창연담)에서 “놀랍도록 빼어나고 시어가 아름다워
우리나라의 시 중에서 비교 할 만한
시가 드물다 "警拔藻麗, 我東之詩, 鮮有其比”(경발조려 아동지시 선유기비)라고
했을 정도로 빼어난 詩임을 인정받았다.
*靑丘風雅(청구풍아) : 조선전기 문신, 학자 김종직이 신라 말에서 조선 초에 이르는
126인의 한시 517수를 수록한 시선집.
補閑集(보한집) : 고려후기 문신 崔滋가 이인로의 破閑集을 보충하여
1254년에 발간한 서화집.
晴窓軟談(청창연담) : 조선 중기 신흠이 지은 시 비평집.
선인들의 평가에서도 알 수 있듯이 이 시는 봄날의 그림 같은 풍경과
그 풍경 속에서 술에 취한 시인의 행위를 몽환적으로 그려낸 시이다.
비처럼 흩날려 떨어지는 연분홍 복사꽃 사이로 들려오는 지저귀는
새소리와 사방을 둘러 싱그러운 초록빛의 산 그리고 그 산에서
아른아른 피어오르는 아지랑이는 시인이 있는 곳을 환상의 공간으로 만든다.
굳이 이 공간을 분석하여 붉은색과 푸른색의 색감 대비, 인간이 만들어 내는
인위적인 소리와 행위를 배제하고 새소리와 흩날리는 꽃잎의 움직임만을
강조하는 인위와 자연, 유성(有聲)과 무성(無聲),
정태(靜態)와 동태(動態)의 대조로 이루어진 환상의 공간이라고
설명하지 않더라도 초봄 흩날리는 벚꽃 아래에 한 번이라도
서 있어 본 적이 있는 사람이라면 이 공간의 환상적인 아름다움을 떠올릴 수 있다.
이런 공간에서 시인은 자기만의 방식으로 자신의 흥을 풀어낸다.
거나하게 취해 흐드러지게 꽃이 피어 있는 언덕에 누워 자는 것으로 말이다.
시인이 이 공간에서 거나하게 술을 마신 이유가 무엇인지는 알 수 없지만,
이런 시인의 모습을 언제나 위태로운 자신의 정치적 상황과 너무나 대조되는
풍경에서 북받치는 마음을 견디지 못해서라고 볼 필요까지는 없을 듯하다.
그보다는 그저 환상적인 봄 풍경에 느꺼워진 마음을 견디지 못해서라고 보는 것이
더 자연스럽지 않을까 생각된다. 그것은 시인 정지상이 이 공간에서 관리를
상징하는 오사모 조차 멋대로 팽개친 채 거나하게 술 마시고 흐드러진
꽃 속에 누워 자며 강남을 꿈꾸었기 때문이다.
오사모를 내팽개쳐 두는 것은 세상의 시선과 권위에서의 탈피를 뜻하고,
강남을 꿈꾼다는 것은 이상향의 추구를 의미한다.
우리가 흔히 사용하는 강남은 원래 양자강의 남쪽을 말하는 것이었으나
이곳이 토지가 넓고 비옥하며 물산이 풍부하고 풍광이 아름다운 곳이어서,
이전부터 낙원 혹은 이상향을 의미하는 단어로 사용되었다.
이 시에서도 강남은 특정한 지역을 의미하기보다 정지상이 꿈꾸는 세상,
살고 싶고 가고 싶은 곳을 가리키는 말로 쓰였을 것이다.
이 시를 읽다 보면 정지상이 마냥 부러워진다. 그가 이런 풍경 속에서
어떤 감정을 느꼈는지, 무엇 때문에 술을 마셨는지, 꿈꾸는 강남은 어떤 곳인지 모르지만, 굳이 알 필요도 없을 것 같다. 안다고 하더라도 부러운 마음에는 어
떤 변화도 없을 것인데, 그것은 이런 풍경 속에서 누구의 눈치도 보지 않고
술에 취해 자면서 자신이 그리는 강남을 꿈꾸는 것은 누구나 원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 (글 : 윤재환 단국대학교 국어국문학과 교수)
원문=동문선 제19권 / 칠언절구(七言絶句)
東文選卷之十九 / 七言絶句
醉後(취후)-정지상(鄭知常)
桃花紅雨鳥喃喃。도화홍우조남남
繞屋靑山閒翠嵐。요옥청산간취람
一頂烏紗慵不整。일정오사용부정
醉眠花塢夢江南。취면화오몽강남
복사꽃 붉은 비에 새들이 지저귀니 / 桃花紅雨鳥喃喃
집을 둘러싼 청산에는 푸른 이내 아른거리네 / 繞屋靑山閒翠嵐
이마에 비스듬한 오사모 게으른 탓이어니 / 一頂烏紗慵不整
취하여 꽃동산에 누워 강남을 꿈꾸네 / 醉眠花塢夢江南
ⓒ 한국고전번역원 | 신호열 (역) | 1968
이하= 梅湖遺稿 / 七言絶句
遊五臺山 時公因王事。往關東作。○載輿地勝覽
畫裏當年見五臺。
浮空蒼翠有高低。
今來萬壑爭流處。
自覺穿雲路不迷。
補閑集曰。丁秘監而安邃於文章。墨竹㝡妙。
嘗曰。士大夫揮掃。例以詩爲本。
若沓其圖則畫工也。鄭舍人知常醉題云。
桃花紅雨鳥喃喃。繞屋靑山間翠嵐。
一頂烏紗慵不整。醉眠花塢夢江南。
此詩可作圖畫着也。陳補闕遊五臺山云
。畫裏當年見五臺。掃雲蒼翠有高低。
今來萬壑爭流處。却喜穿雲路不迷。
此古人所謂對境想畫也。
陳氏家藏曰。我肅廟戊戌秋。公十四代孫翼漢。
以保安督郵入五臺。鏤公詩揭月精佛閣。次其韻曰。
先祖何年到五臺。
碧山無語暮雲低。
遺篇爲向禪樓揭。
回首千崖意自迷。
去歲登臨最高臺。
四邊喬嶽眼中低。
偶然入洞還回轡。
不是劉郞再到迷。
오대산에서 노닐며 당시에 공이 국가의 일 때문에 관동에 가서 지은 것이다.
《여지승람》에 실려 있다.遊五臺山 時公因王事往關東作○載輿地勝覽
언젠가 그림 속 오대산을 보았을 때 / 畫裏當年見五臺
하늘에 뜬 푸르른 산 높기도 낮기도 하였네 / 浮空蒼翠有高低
지금 와 본 온갖 골짝 물 다투어 흐르는 곳 / 今來萬壑爭流處
구름 뚫고 나 있는 길 낯설지 않음을 깨닫겠네 / 自覺穿雲路不迷
《보한집》에 “비서감(秘書監) 정이안(丁而安)은 문장에 조예가 깊었고,
묵죽(墨竹)에 가장 뛰어났다. 이전에 ‘사대부가 붓을 휘두를 때는
대체로 시를 근본으로 삼아야 한다. 만약 그림에 탐닉하면 바로 화공(畫工)이다.’라고
했다. 사인(舍人) 정지상(鄭知常)은
〈취제(醉題)〉에서 ‘복사꽃 붉은 빗속 새들은 재잘재잘,
집을 두른 푸른 산은 여기저기 아지랑이.
이마 한 편 검은 사모 귀찮아 그냥 둔 채,
꽃 핀 언덕 취해 누워 강남 꿈을 꾸노라.
〔桃花紅雨鳥喃喃
繞屋靑山間翠嵐
一頂烏紗慵不整
醉眠花塢夢江南〕’라고 했는데,
이 시는 그림을 그려 본 것이라 할 수 있다.
보궐 진화는 〈오대산에서 노닐며〔遊五臺山〕〉에서
‘언젠가 그림 속 오대산을 보았을 때,
구름 다 쓴 푸르른 산 높기도 낮기도 하였네.
지금 와 본 온갖 골짝 물 다투어 흐르는 곳,
구름 뚫고 나 있는 길 낯설지 않아 참 기쁘네.
〔畫裏當年見五臺
掃雲蒼翠有高低
今來萬壑爭流處
却喜穿雲路不迷〕’라고 했는데,
이것이 옛사람이 말한 경치를 대하고 그림을 상상한 것이다.” 하였다.
《진씨가장(陳氏家藏)》에 “숙종 임금 무술년 가을에 공의 14대 후손
익한(翼漢)이 보안 독우(保安督郵)로 오대산에 들어갔다가
공의 시가 월정사(月精寺)의 누각에 새겨져 있는 것을 보고
그 시운에 차운하여
‘선조께서 어느 해에 오대산에 오셨나,
푸른 산은 말이 없고 저문 구름 깔렸는데,
남은 시편만 불사의 누각에 걸려 있으니,
머리 돌려 본 천 길 벼랑 마음 절로 아득하네.
지난해 가장 높은 대에 올라 보았더니,
사방의 우뚝한 산 눈에 낮게 깔렸었지.
우연히 골짝에 들어 고삐 돌려 돌아가려니,
유랑이 다시 와서도 길 잃은 것 아니겠나.
〔先祖何年到五臺
碧山無語暮雲低
遺篇爲向禪樓揭
回首千崖意自迷
去歲登臨最高臺
四邊喬嶽眼中低
偶然入洞還回轡
不是劉郞再到迷〕’
라고 했다.” 하였다.
ⓒ 한국고전번역원 | 변종현 윤승준 윤재환 (공역) | 20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