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한국사 교과서 국정화에 반대한다
지난 10월 27일 국회에서 열린 시정연설에서 박근혜 대통령은 “역사교육을 정상화시키는 것은 당연한 과제이자 우리 세대의 사명이다.”라고 발언했다. 학계에서 확립된 통설에 기반하여 집필된 한국사 교과서로 진행되는 역사교육에 ‘정상화’라는 단어를 쓰면서 비판하는 것이 과연 ‘올바른’ 일인지 의문스럽다. 아울러 끊임없는 연구과정을 통해 정립되어야 할 역사서술을 정부가 국가 권력으로 통제하겠다는 발상 역시 민주주의 사회에서 용납될 수 없는 일이다.
1974년 유신체제에서 처음 시행된 역사 교과서 국정화는 이후 민주적 정권이 들어서면서 지난한 과정을 통해 다시금 검정체제로 변화되었다. 따라서 현 정부의 교과서 국정화 강행은 그야말로 시대착오적인 유신체제의 정책 계승이라고 평가할 수밖에 없다.
1. 정부는 민주주의에 반하는 한국사교과서 국정화를 중단하라.
어떠한 역사적 사건에 대한 연구는 학계에서 다양한 학설과 이론을 통해서 끊임없이 논의되고 있다. 이러한 다양성은 논쟁을 거치며 끊임없이 수정된다. 교과서에 서술되는 내용은 논의과정에서 최소한으로 합의된 사항이다. 그리고 현 검인정 제도 아래서 이러한 구성은 교육부의 집필기준을 통해 구성되며 검정과정을 거치는 것이다. 한국사교과서 국정화의 문제는 이러한 합의의 무시에 있는 것이다. 민주화 이후 국정제도가 검인정 제도로 자리잡는 과정은 이러한 합의의 과정을 부활시키는 것이었으며, 그 자체가 민주주의 발전의 결과물이었다. 문제는 국정화 교과서가 어떤 내용을 담고 있는가가 아니다. 국정화 자체가 민주주의에 반하는 사항이다. 정부여당이 말하는 ‘올바른 교과서’로의 국정화는 집권세력이 일방적으로 해석을 독점하겠다는 것이며 이제까지 한국사회가 이룩한 민주주의를 후퇴시키는 시대착오적 행위인 것이다.
1. 정부와 여당은 반헌법적인 이념공세를 중단하라.
정부와 여당의 논리는 단순하다. 이승만, 박정희로 대표되는 정부수립·개발독재세력의 역사적 복권과 전형적인 반북 논리이다. 헌법에 명시된 임시정부의 법통을 무시하는 건국절 주장, ‘주체사상’운운하는 현수막, 역사학자 좌파발언 등이 그것이다. 본질을 호도한 채 전형적인 이념공세로 일관하고 있다. 이는 역사학자들이 학문적 양심으로 밝혀낸 진실을 편향된 시각으로 몰아세우는 것과 동시에 국민들을 무시하는 것이다. 대한민국의 헌법은 대한민국의 정체성을 국민이 주인 되는 민주공화국으로 정의하고 있다. 1919년 3월 만세를 외쳤던 식민지조선의 갑남을녀들, 1960년 4.19혁명과 1980년 5.18 광주민주화운동, 1987년 6월항쟁 당시 독재정권에 대항했던 학생·시민·노동자들을 역사의 중심에 놓고자 하는 것이 어째서 민주공화국 대한민국을 부정하는 것이고, 반국가적인 역사서술인지 되물을 수밖에 없다. 이러한 이념공세야말로 대한민국의 헌법을 부정하는 반헌법적 발상이다.
1. 정부는 구시대적 국정화 정책을 폐기하고 미래의 역사교육을 위한 논의의 장을 보장하라.
오늘날 대한민국은 다문화 시대, 양성평등, 사회적 소수자 문제, 환경 문제 등 새롭고 다양한 의제들에 직면해 있다. 마땅히 역사교과서 논쟁은 현 사회의 다양한 문제들을 어떻게 역사교육에 반영할 것인지에 대한 논의가 되어야한다. 다양한 고민들이 교과서에 반영될 때 한국 사회에 민주주의가 더 튼튼히 뿌리내릴 수 있을 것이다. 이미 2013년 정부와 여당은 교학사 교과서를 통과시키며 검인정제도를 크게 훼손시킨 바 있다. 현행 검인정제도 역시 교육부의 집필기준에 따를 수밖에 없는 실정이다. 기존 검인정제도를 반성하고 넘어서는 논의가 필요한 현 시점에, 정부와 여당이 역사교과서에 대한 논의를 국정화 논쟁으로 전락시킨 것은 몰역사적 판단이고 사회적 비용의 낭비이며 시대를 역행한 행동이라 비판받아 마땅하다. 구시대적 국정화 정책에 우리는 단호히 반대하며, 역사학계를 중심으로 미래의 역사교과서가 나아갈 방향에 대한 논의를 이어갈 것을 제안한다. 정부와 여당은 새로운 시대를 위한 학계의 생산적 의견 교환이 이루어질 수 있는 논의의 장을 보장하라.
“현실에 살지 말고 역사에 살라. 긴 역사를 볼 때 진리, 정의, 선(善)은 반드시 승리한다”고 외치셨던 故 김준엽 선생님의 말씀을 다시 한 번 되새기며, 우리는 한국사 교과서 국정화에 반대한다.
2015.10.30
고려대학교 한국사학과·사학과·역사교육과 대학원생·대학원졸업생 194명
강나리,강동민,강필구,곽금선,구병준,구본영,권민균,권용철,권창혁,권휘민,금보운,기완도,김경민,김경태,김고은,김규록,김기성,김대연,김동주,김동혁 ,김명선,김민경,김보경,김상규,김상혁,김선미,김성태,김세진,김소진,김슬기,김승우,김승은,김용하,김윤지,김재웅,김재원,김정아,김주호,김주희,김지선,김진혁,김철민,김철우,김태현,김하늘,김한신,김헌주,김현정,김형근,김희연,노성룡,노준석,도주경,명경일,문민기 ,문승호,박미선,박 범,박서영,박세연,박소연,박수정,박수찬,박우현,박유민,박종욱,박진홍,박찬우,방지현,배영신,배유연,배은비,배정선,서홍석 ,소순규,손고은,송미정,신명주,신범규,신선혜,신수진,신준섭,신진혜,신효정,안도현,안성진,안세영,안슬기,안은혜,안주홍,안희경,양정현,양진아,예대열 ,오인영,오치훈,유민영,유정환,유지현,윤동재,윤상원,윤정수,윤종필,윤효정,이가영,이경동,이경민,이다람,이대우,이두희,이명준,이명학,이미나 ,이민정,이바른,이보성,이상덕,이상우,이선애,이순영,이승희,이원배,이유리,이유호,이은정,이재훈,이정옥,이정은,이종록,이종식,이주봉,이주실,이주영(1),이주영(2),이주호,이주화,이준형,이지훈,이진욱,이찬미,이형곤,이호석,이휘현,임광순 ,임동민,임동현,임성수,임정운,임혜균,장원석,장인모,장정수,전병춘,전상욱,전 희,정기웅,정상호,정아영,정유진,정은경,정재연,정태윤,정희윤,조명근,조성일,조소연,조용철,조형열,조호희,주나미,지원구,지윤배,채수민,채준형,채홍병,최동녕,최슬기,최 온,최은규,최재봉,최주희,최진호,최호원,최희준,한진희,허명회,허미애,허성희 ,허유성,현석이,홍근혜,홍선이,홍인희,황영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