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정란 시인의 시집 『象』
약력
송정란
경기대 대학원 졸업(문학박사). 건양대 교수
역임. 1990년 《월간문학》 시, 2000년 중앙일
보 신춘문예 시조 등단. 시조집『허튼층쌓기』,
시집 『불의 시집』, 『화목』,
저서 『한국 시조시 학의 탐색』,
『스토리텔링의 이해와 실제』 등.
시조시학상, 동국문학상수상.
sjm58@hanmail.net
시인의 말
시인으로서 정체성을 잃어버리고 오랫동안 지내왔다.
다시 시적 자아를 찾아 나선 여정에서
이제 간신히 한 권의 매듭을 지었다.
녹슨 감각과 감성을 버려가며
무뎌진 손끝으로 쓴 시조들이라 미덥지 못하다.
책 말미에 이런저런 변명을 시를 핑계 삼아 늘어놓았다.
말이 많다는 것은 뭔가 부족한 탓이다.
시조집을 탈고하는 과정에서
기존 작품을 수정한 부분도 있고
연작 시조의 경우 순서가 뒤바뀐 것도 있다.
제4부 < 傳 >은 첫 시조집부터 이어온 작업으
로 지난하고도 존엄한 삶을 지키고 살아낸
우리 여인네들의 이야기를 풀어낸 것이다.
미흡하고도 미진하지만 마지막 결론은
한송이 꽃보다 못한 시, 온 힘을 다해 피어나라.
2024년 10월
송정란
寂 적막할 적
입춘 지나 남해바닷가 꽃 몽우리 필 듯 말듯
동백꽃 고운 선혈이 잎새 사이로 보일 듯 말듯
이른 봄 초경 치른 계집아이 새초롬하게 숨어 있네
저 꽃망울 활짝 피어나 지고 피고 또 피고 지고
이윽고 폐경을 지나 적막강산 내 속엣것
동백꽃 피었다 진 자리 자취도 없네, 속절없네
詩 지을 시
석새삼베 성근 올처럼
내 몸 어딘가 헐겁게 열려
오장육부 묵은 먼지들
정갈히 씻어 날려 보내는
바람결
먼데 꽃지고 핀
한소식 받아 적느니
徘 배회할 배
가는 날이 장날이라 페스티벌 난장일세
대학로 파랑새극장 KFC 사잇길로 들어가
좌회전, 파랑 씨어터 앞에서 우회전 대학로
자유극장 앞에서 빌어먹을 좌회전, 미스터
힐링 카페 앞 저절로 좌회전 순대실록 지나
소극장 선물1관까지 시원스레 통과하며 빌
어먹을 좌회전, 에그마카슈 지나 파랑씨어
터 빌어먹고 빌어먹을 원점, 다 시 자유극장
지나 방향 바꾸어 빌어먹을 우회전, 학전블
루 소극장까지 직진해도 빌어먹을 계속 직
진, 브로드웨이 아트홀3관에서 죄회전하자
마자 연극플레이스 혜화에서 빌어먹을 좌회
전, 문예진흥원 대극장 옆에 끼고 계속 직진
갤러리목금토 지나 다시 자유극장 앞에서
빌어먹을 이번엔 직진, 미스터힐링 카페 앞
저절로 좌회전 순대실록 지나 소극장 선물1
관까지 시원시레 통과하며 빌어먹을 좌회전,
에그마카슈 지나 파랑씨어터 빌어먹고 빌어
먹을 다시 원점,
어이타 머피의 법칙 삼십 분 넘게 돌고 돌며
覺 깨우칠 각
견인되고 싶어라 뒤꽁무니 번쩍 들려
정신이 번쩍 들도록 끌려가고 싶어라
시동이 걸리지 않는 내 영혼의 고물차여
폐기 일보 직전의 쿨렁거리는 그리움
이별의 정거장도 쓰라린 눈물도 없는
경적도 울리지 않는 그렇고 그런 詩들이여
이 풍진 세상에 속된 먼지만 뒤집어쓴
보조 배터리마저 방전된 감각들이여
화들짝 과태료 물고 되찾아오고 싶어라
공옥진傳
전라도 천년이 어쩔라고 출세했는지
소리꾼 춤꾼으로 세상에 이름 올려
심봉사 눈 뜬 모양새로 활개 치며 살았소만
몸종으로 팔려간 모질의 내 팔자에
벙어리 남동생에 곱사등이 조카딸에
곱사춤 허리 휘도록 삶의 몸 사위 구겨졌소
병신춤이라 부르지 마시오. 불행하고 가난
한 사람 병들어 죽어가는 사람 장애자들 내
동생 어린 곱사 조카딸의 혼이 나에게 달라
붙어요. 오장육부가 흔들어 대는 대로 나오
는 춤을 추요. **
당달봉사 문둥이 앉은뱅이 곰배팔이
병들고 모자라고 버림받은 못난 것들
온전히 이 몸 스며들어 환장하도록 풀어냈소
능갈진 육담으로 뒤틀린 오장육부
눈물이 웃음이 설움이 엉켜 신명나게
잘헌다 지랄맞은 세상 여한 없이 놀아봤소
*공옥진(孔玉振, 1931~2012): 판소리 명창이며
민속 무용가. 1948년 고창 명창대회에서 장원한
이후 여러 극단에서 공연했다. 동물 모방춤,
곱사춤 등 다양한 춤을 창작하여 각광받았으며,
2010년 전라남도 무형문화재 '판소리 1인 창무극
심청가' 예능보유자로 지정되었다.
**「춤은 몸으로 추는 게 아니랑께 광대 공옥진
(백승남 저) 인용. 공옥진은 자신의 춤이 병신춤이
아닌 곱사춤으로 불리기를 원했다.
「象」에 대한 辯 이러저리 둘러대는 말 변
맨 처음 세상의 바위에 그림[]을 새긴 '나'는 누구인가. 온몸의 힘줄이 불거지도록 돌을 쪼아 완성한 형상은 무엇을 뜻하는 것일까.
'나'는 바위라는 캔버스에 자신이 보았던 강렬한 '그것들'을 그려 놓았다. 눈을 감아도 선연히 떠오르는 '그것들'을 가슴속에서 꺼내지 않고는 견딜 수 없었다. 거대한 붉은 들소, 뿔을 겨누는 수사슴, 보름달 아래 춤추는 사람들…
보이는 세상을 객관화함으로써 비로소 '나'는 '그것들[타자]'과 '나[주체]' 사이에 존재하는 세계를 인식한다. 그리고 바위에 그린 '타자'들은 인류 최초의 상징적인 언어기호로써 작동한다. 이것은 사람이고, 저것은 들소라는 차별화된 의미[기의記]를 가진 그림이다. 춤추는 사람의 기표는 들소를 사냥한 '기쁨'이라는 기의를, 들소에게 받혀 쓰러진 사람의 기표는 '죽음'이라는 기의를 상징했을 것이다.
세계를 관찰하고 이해하고 그것을 재현하는 것은 예술가의 직분이다. '나'를 둘러싼 세계를 본능적으로 표현하고 싶었던 '나'는
원시 문화를 창조한 최초의 시인이며 화가였다.
이제 책상 앞에 앉아 시적 상상력을 부추기고 발동시키기 위해 오랫동안 잊고 있었던 "글자의 유적지를 밤새 헤매"는 내가 있다. 신화가 허구가 된 세상에서 천지 만물에 정령이 깃들어 있다는 애니미즘을 숭배하는 내가 있다. 무정부주의자에, 무종교 이면서 다신교를 믿는, 여자도 남자도 아닌, 어린아이이자 늙은 이인 내가 있다. 늘 빗나가서 낙담하는 시라는 과녁을 향해 팽팽하게 활시위를 겨눠 정중앙을 관통하고자 하는 내가 있다.
내팽개쳤던 시를 일으켜 세워 "알몸으로 마주"하면서, "내 것 아닌 저린 사랑의 시"처럼 울림 깊은 시조들을 다시 찾아 읽었다. 끝이 보이지 않는 길을 시인들은 쉬지 않고 뚜벅뚜벅 걷고 있었다. 그 사이로 슬쩍 발을 들이밀면서 두 번째 시조집을 상재하게 되었다. 염치없는 끼어들기 같지만, 이제야 시조의 옷깃을 제대로 여미면서 약간의 멋도 부릴 줄 알게 된 것 같다.
다시 걷는 길은 그만큼 멀고 갈 길은 바쁘다. "불면의 노역으로 시 한 편 얻은 새벽"이 오면 "한 송이 꽃보다 못한 시"라고 좌절하지 말고 "온 힘을 다해 피어나라"고 외치련다. 시에 낙심하고 절망하고 포기하고 싶을 때 시들어가는 시를 일으켜 세워, 온 힘을 다해 피어나라고 꽃의 주술을 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