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정호의 싸움은 이제부터다 ⓒ gettyimages/멀티비츠 |
강정호(28·피츠버그 파이러츠)는 정말로 잘하고 있다. 현재 .313의 타율은 내셔널리그의 규정 타석 타자를 기준으로 13위에 해당되며 .378의 출루율 역시 14위에 해당된다(장타율 .444 리그 35위).
더 인상적인 것은 그 내용이다. 강정호는 28일 경기에서 팀이 0-2에서 3-2로 역전한 직후인 7회말 2사 만루에 등장해 승부에 쐐기를 박는 2타점 적시타를 때려내고 두 번째 MVP 인터뷰를 가졌다(피츠버그 5-2 승리).
야구에서는 7회 이후 1점을 리드하고 있거나 동점 상황이거나 또는 대기 타석의 타자가 동점 주자가 될 수 있는 경우를 Close & Late라 한다. 그리고 강정호는 현재 이 상황에서 .375 .474 .688를 기록하고 있다. 이는 리그 평균(.242 .317 .359)보다 월등히 좋으며, 팀내에서 유일한 OPS 1.000에 해당된다.
여기에 안정적인 수비(3루수로서는 정상급, 유격수로서는 평균)와 공격적인 베이스런닝까지 더해지다 보니, 강정호는 승리기여도(fwar)에서 현재 앤드류 매커친과 함께 팀 공동 1위(1.3)이자 리그 공동 20위에 올라 있다(저스틴 터너, 자니 페랄타, 아오키 노리치카, 저스틴 업튼, 브랜든 벨트, 데릭 노리스). 보통 WAR 1승을 600만 달러로 환산하는 것을 감안하면, 올해 연봉이 250만 달러인 강정호는 이미 자신의 몸값 이상을 해냈다. 현재 9경기 연속 안타를 이어가고 있는 강정호는 또한 10경기 연속 5번 타자로 나서고 있는 중이다.
그런 강정호에게 유일한 아쉬움은 장타가 생각만큼 터지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강정호는 현재 두 개의 홈런과 7개의 2루타를 기록 중이다. 그리고 2루타 두 개는 발로 만들어냈다. 강정호는 현재 54타수째 홈런을 때려내지 못하고 있다.
<팬그래프닷컴>의 강정호 페이지에서 유독 눈에 띄는 두 가지는 밀어친 타구의 비율이 6.5%라는 것과 함께(규정 타석 ML 최하위 앤리 라로시 14.0%) 땅볼/플라이볼 비율이 무려 2.88(플라이볼 1개당 땅볼 2.88개)에 달하고 있는 점이다. 이는 메이저리그 평균(1.36)의 두 배에 달하는 것으로, 규정 타석 170명의 타자 중 이 비율이 강정호보다 높은 선수는 아오키 노리치카(3.70)와 디 고든(4.09) 두 명에 불과하다. 이는 메이저리그에서 '축소 지향'을 선택한 스즈키 이치로(2.36)와 아오키(2.74)의 통산 성적보다도 더 높다.
공을 띄우지 못하다 보니 장타가 줄어드는 건 당연한 것. 강정호의 타구에서 차지하는 플라이볼의 비율(20.8%) 역시 규정 타석 타자 중 밑에서 7번째다. 그렇다면 메이저리그에서 강정호는 왜 공을 띄우지 못하고 있는 것일까.
27일 강정호의 팀 동료인 게릿 콜은 MLB 네트워크 라디오와의 인터뷰에서 "강정호는 좋은 유머 감각을 가지고 있다. 또한 그는 근성 있는 선수이기도 하다(He's got a good sense of humor, he's a gamer too). 그는 자신의 레그킥에 대해 약간의 조정을 했으며, 스윙도 줄였다(he's made some adjustments with his leg kick, shortened up his swing)."는 말을 했다.
우리의 눈에 보이는 강정호의 '조정'은 투 스트라이크 이후 레그킥을 하지 않는 것이다. 하지만 전문가의 눈에 보이는 조정의 폭은 그보다 훨씬 크다. 타격 이론의 대가이자 <용달매직의 타격비법>의 저자인 김용달 KBO 육성위원은 강정호가 컨택트를 위해 레그킥 자체도 더 간결하게 가져가고 있다고 말한다. 그렇다 보니 충분한 릴리스가 이루어지지 않으면서 공을 띄우지 못하고 있다는 진단이다.
사실 강정호에게 메이저리그의 환경은 실로 대단히 척박하다. KBO리그에서는 거의 볼 수 없었던 강속구와 무브먼트를 매 타석마다 경험하고 있는 것. 박정환 칼럼니스트가 계산한 바에 따르면, 지난해 강정호가 KBO리그에서 상대한 패스트볼의 평균 구속은 141km였던 반면 올해 메이저리그에서 상대하고 있는 구속은 149km에 달한다. 나머지 구종 역시 마찬가지다. 또한 이치로는 "미국의 투수들과 일본의 투수들은 타이밍이 다르다. 일본의 투수들이 하나, 두-울, 셋의 타이밍에 투구를 한다면 미국의 투수들은 '-울'의 상대가 생략된 형태의, 하나, 둘, 셋 하는 빠른 리듬으로 던진다."며 어려움을 토로한 바 있다(바이오메카닉 피칭 이야기). 이는 강정호가 겪고 있는 어려움이기도 하다.
강정호 상대 구종별 평균 구속(km/h)
패스트볼 [2014] 141.0 [2015] 149.0
슬라이더 [2014] 128.9 [2015] 134.7
커브볼 [2014] 118.7 [2015] 126.2
체인지업 [2014] 127.3 [2015] 134.7
놀라운 점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강정호가 메이저리그의 구속을 이미 따라잡고 있다는 것이다. 강정호는 28일 경기에서 카터 캡스의 98마일(158km) 강속구를 2타점 적시타로 연결시켰는데 <브룩스베이스볼>에 따르면 강정호가 27일까지 포심을 상대로 기록한 타율은 .536에 달한다. 특히 <베이스볼서번트>에 따르면 강정호는 같은 기간 95마일(153km) 이상 공을 상대로 무려 .545(11타수6안타)의 타율을 기록함으로써 .538(13타수7안타)를 기록한 애드리안 곤살레스와 크리스 브라이언트를 제치고 메이저리그 1위에 올라 있다(10타수 이상).
문제는 대부분이 포심이었던 KBO리그와 달리, 현재 강정호는 싱커 비중이 48%에 달하는 패스트볼을 상대하고 있다는 것이다. 강정호는 싱커를 공략해서는 .191에 그치고 있는데, 그러나 싱커를 상대로도 13타수1안타 이후 8타수3안타를 기록함으로써 점차 적응해 가고 있다(많은 일본인 타자들이 메이저리그에서 장타를 포기한 것, 강정호가 컨택트를 먼저 잡고 장타에 도전하는 접근법을 택한 것도 싱커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그렇다면 강정호는 일본에서는 20홈런 시즌을 포함해 5번의 두자릿수 홈런 시즌을 기록했지만 메이저리그에서 홈런수가 큰 폭으로 준 아오키(2012년 10개, 2013년 8개, 2014년 1개) 역시 일본에서 30홈런 시즌 포함 네 번의 20홈런 시즌을 만들어냈지만 메이저리그에서는 15-18-9개에 그친 이구치 타다히토(전 시카고 화이트삭스)처럼 장타력의 감소를 피할 수밖에 없을까.
이에 대한 김용달 위원의 생각은 다르다. 컨택트와 타이밍에 대해 자신감과 확신이 생기게 되면 강정호는 다시 릴리스를 충분히 하는 형태의 타격을 시작할 것이라는 것. 김용달 위원의 분석에 따르면 강정호는 대부분의 일본 타자들과는 다르게 이를 극복해 낼 수 있는 스윙 매캐닉을 가지고 있다. 메이저리그에서 강정호의 성패가 결정되는 부분은 결국 '장타를 노리는 타격'이 통할 수 있느냐에 달려 있을 것으로 보인다.
지금도 나머지 29개 구단의 분석 자료 속에는 강정호의 약점에 대한 정보가 계속 업데이트되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강정호의 머릿속과 몸속에도 메이저리그 투수들의 정보가 계속 추가되고 있다. 그리고 피츠버그는 '장타력 있는 내야수'의 탄생을 기다려 줄 준비가 충분히 되어 있는 팀이다.
과연 이 싸움의 승자는 누가 될까. 그 결과가 기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