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내 인생의 불침번
(시 121:1~8)
1 내가 산을 향하여 눈을 들리라 나의 도움이 어디서 올꼬
2 나의 도움이 천지를 지으신 여호와에게서로다
3 여호와께서 너로 실족지 않게 하시며 너를 지키시는 자가 졸지 아니하시리로다
4 이스라엘을 지키시는 자는 졸지도 아니하고 주무시지도 아니하시리로다
5 여호와는 너를 지키시는 자라 여호와께서 네 우편에서 네 그늘이 되시나니
6 낮의 해가 너를 상치 아니하며 밤의 달도 너를 해치 아니하리로다
7 여호와께서 너를 지켜 모든 환난을 면케 하시며 또 네 영혼을 지키시리로다
8 여호와께서 너의 출입을 지금부터 영원까지 지키시리로다
여러분, 불침번을 아십니까? 아마 군대 갔다 오신 남자 분들은 다 경험이 있으실 겁니다. 다른 사람들이 외부의 공격이나 위험을 걱정하지 않고 편안히 잘 수 있도록 잠을 안 자고 지켜주는 사람(Watchman)을 가리킵니다. 대개 취침 시간부터 1시간씩 교대로 불침번을 섭니다. 그래서 제일 편한 경우는 첫번이나 말번으로 불침번을 서는 것입니다. 첫번은 취침시간보다 1시간만 늦게 자면 됩니다. 그리고 말번은 기상 시간보다 1시간만 먼저 일어나면 됩니다. 중간에 깨지 않고 푹 잘 수 있으니까 아주 좋죠. 한참 잠을 자다가 도중에 일어나서 주섬주섬 옷을 챙겨 입고 나가서 보초를 서려고 하면 정말 귀찮습니다. 특히 한 겨울에는 더욱 그렇습니다. 그래도 자신의 안전과 다른 사람들의 안전을 위해 꼭 필요합니다. 이게 바로 불침번입니다.
그런데 군대에서만 불침번이 필요한 게 아닙니다. 우리 인생에도 불침번이 필요합니다. 우리 인생을 보호하고 지켜주는 불침번이 꼭 필요합니다. 오늘 성경 말씀은 하나님이 우리 인생의 불침번이 되어 주심을 증거합니다. 이 말씀을 잘 들으시고 부디 내 인생의 불침번이신 하나님을 만나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보호 속에 늘 평안하고 행복한 인생을 살아가시기 바랍니다.
[1] 인생의 실상 : 각종 위험이 있는 광야 인생
우리 인생은 마치 광야를 통과하는 것과 같습니다. 그래서 흔히 우리 인생을 가리켜 ‘광야 인생’이라 부르는 것입니다. 광야는 위험한 곳입니다. 기후의 위험, 강도의 위험, 맹수의 위험 등 여러 가지 위험이 곳곳에 도사리고 있습니다. 마치 지뢰밭과 같습니다. 언제 어디서 무슨 일이 생길지 예측불허입니다.
오늘 현대인의 인생도 마찬가지입니다. 환경이 많이 좋아졌지만 온갖 위험이 우리를 공격하려고 웅크리고 있습니다. 사건과 사고, 질병, 그리고 온갖 문제 거리들이 있습니다. 그런 가운데 사람들은 늘 불안과 긴장 속에 살아가게 됩니다.
[2] 광야 인생의 필수 요소 : 의지할 보호자
이런 광야 인생을 위해서 꼭 필요한 게 무엇입니까? 온갖 위험으로부터 인생을 보호해 줄 존재가 필요합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저마다 자기를 보호하고 지켜줄 존재를 찾기 마련입니다. 대개 다음의 것들을 의지하며 살아갑니다. 그러면 그것이 자기를 보호해 주리라 생각합니다.
① 소유 :
재물이나 권력 등을 소유하면 그런 것들이 자기를 안전하게 지켜 줄 것으로 기대합니다. 그러나 그런 것들은 일시적이고 단편적으로 우리를 보호해 줄지 모르지만, 완전한 보호자가 될 수 없습니다.
어느 해외교포의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습니다. 그분은 15년 전에 이민을 가서 크게 성공한 분입니다. 부러울 게 없습니다. 돈이 많으니까 자신의 미래에 대해서도 호언장담했습니다. 황우석 박사 이야기를 하면서 앞으로 장기를 갈아 끼우면 그 까짓것 150세까지 거뜬히 살 수 있을 거라고 장담을 했습니다. 그런데 그 말은 한 지 3일 만에 교통사고로 사망했습니다. 여러분, 그분이 소형차를 탔겠습니까? 보나 마나 크고 튼튼한 차를 탔겠죠. 하지만 그 모든 소유가 그분을 지켜주지 못했던 것입니다. 인간의 소유가 그 인생을 절대 책임져 주지 못합니다.
② 사람 :
광야 인생을 살면서 함께 살아가는 주위 사람들은 우리에게 적지 않은 힘이 됩니다. 부모, 형제, 친구 등 ... 그런데 인간은 다 약합니다. 그러므로 마음은 굴뚝같지만 도움이 되지 못할 때가 너무 많습니다.
어떤 부부의 이야기입니다. 중년이 지나면서 부인이 갑자기 발병을 했습니다. 병원에 입원해서 큰 수술을 받는데, 병원 당국에 서약서를 제출하는 절차가 있었습니다. 수술 받다가 어떤 일이 있어도 감수한다는 서약서입니다. 남편은 보호자란에 서명날인을 하면서 눈물을 뚝뚝 흘리며 이렇게 뇌까렸습니다. “아내가 병드는 것도 몰랐고, 병든 지금 아무 것도 해 줄 수 없는 내가 무슨 놈의 보호자는 보호자냐 ... ?”
그렇습니다. 인간은 아무래 능력이 있어도, 사랑이 넘쳐도 완전한 보호자가 될 수 없습니다. 자기 자신도 스스로 지킬 수 없고, 서로 서로 지켜주지도 못합니다.
③ 미신, 우상종교 :
소유도 사람도 진정한 보호자가 되지 못함을 깨달으면 사람들이 다른 것을 찾게 됩니다. 그 대표적인 것이 미신이나 우상종교입니다. 많이 배운 사람들, 많이 가진 사람들도 별 수 없습니다. 인생이 불안하니까 엉뚱한 데 의지합니다.
뉴욕의 차이나타운에서 있던 일이라고 합니다. 아주 지성적으로 생긴 한 백인 여성이 중국인이 경영하는 상점에 들어왔습니다. 그러더니 조심스럽게 묻습니다. “여기 혹시 부적 안 팝니까? 있으면 제일 비싼 것으로 사고 싶습니다.” 중국인 상점이니까 구할 수 있으리라 생각하고 찾아온 겁니다. 주인이 의아한 표정을 지으니까 그 여자는 사정을 이야기했습니다. “사실은 제 아들이 멀리 남태평양으로 떠나거든요. 걱정이 되서 그 아이를 지켜줄 부적 같은 게 있나 해서 ... ” 그러자 주인은 웃으면서 말했습니다. “정말 좋은 부적이 있기는 한데 ... 하지만 그것은 돈을 주고 살 수는 없거든요.” “그게 뭔데요 ... ? 그러면 어떻게 구할 수 있습니까?” “부인, 바로 하나님이십니다. 저도 자식이 세 명 있고 손자들도 있습니다. 그들이 늘 염려되지요. 그러나 저는 하나님께 맡깁니다. 그리고 기도합니다. 하나님은 제 기도를 들어주시고 지금까지 보호해 주셨습니다. 앞으로도 그러실 줄로 확신합니다. 부인도 하나님을 영접하고 그분께 아드님을 믿음으로 맡기시면 좋겠습니다.”
그렇습니다. 그 어느 것도 인생의 완전한 보호자가 되지 못합니다. 오직 전지전능하신 하나님만이 완전한 보호자가 되십니다.
[3] 완전한 보호자 : 내 인생의 불침번이신 하나님
오늘 본문 시편 121편은 바로 하나님만이 유일하고 온전한 보호자가 되심을 증거하고 있습니다. 이 시편은 표제에 있는 것처럼 구약 이스라엘 백성들이 예루살렘 성전을 향해 올라갈 때 부르던 노래입니다. 그들은 명절 때가 되면 지방에서 예루살렘으로 올라갑니다. 그 순례 길은 쉽지 않습니다. 광야 길입니다. 아마 먼 길을 오다가 마지막 유대 광야를 통과하면서 멀리 예루살렘이 보이기 시작할 때 부르던 노래가 아닌가 생각됩니다.
이 시편을 두 문단으로 나누면 1절~2절, 그리고 3절~8절로 구분할 수 있습니다. 첫 문단은 ‘나’ 1인칭으로 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둘째 문단은 ‘너’ 2인칭으로 되어 있습니다. 그러니까 아마 동행인들끼리 교창(交唱)하던 노래가 아닌가 생각됩니다. 한쪽에서 1절~2절을 부르면, 다른 한쪽에서 3절~8절을 부르면서 순례 길을 걸어갔을 겁니다.
* 1절~2절 : “내가 산을 향하여 눈을 들리라 나의 도움이 어디서 올꼬 나의 도움이 천지를 지으신 여호와에게서로다” 시편 기자는 자문자답해 봅니다.
여기서 ‘산’은 아마도 성전이 있는 시온산을 가리키는 게 아닌가 생각됩니다. 그러나 산 자체가 중요한 게 아니라 하나님이 중요합니다. 오직 여호와 하나님만이 광야 길에 도움이심을 고백하는 것입니다.
* 3절~8절 : 화답하면서 구체적으로 여호와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 어떻게 우리 인생을 도우시는지 노래합니다. 여기 보면 6개절에 지킨다는 단어가 몇 번 나옵니까? 6번 나옵니다. 그리고 의인적인 표현법을 사용합니다. 하나님이 인간처럼 육체가 있는 게 아닌데 어떻게 주무시겠습니까? 그러나 인간의 연약함과 비교하기 위해 인간에 빗대서 표현한 겁니다. 이런 표현법을 가리켜 신인동형동성론(神人同形同性論)이라 부릅니다.
여기 보면 하나님이 어떤 분으로 묘사되고 있습니까? 내 인생의 불침번! 졸지도 주무시지도 않으시면서 내 인생을 지켜주시는 불침번, 즉 완전한 보호자로 묘사되어 있습니다.
그 내용을 정리하면 다음의 세 가지로 요약됩니다.
① 항상 지켜주시는 하나님 :
4절 보면, 하나님은 밤에도 낮에도 졸지도 주무시지도 않고 우리를 지켜주시는 분이십니다. 특히 8절을 보면, 지금부터 영원까지 지켜주신다고 말씀합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한 순간도 놓치지 않고 지켜주십니다. 과거에도 그랬고 지금도 그렇고 미래에도 그러실 겁니다. 1년 365일, 윤년일 때에는 366일, 하루 24시간 분초마다 그렇게 하십니다. 우리가 인생을 살다 보면 정말 눈 깜박할 사이에, 아차 하는 순간에 얼마나 많은 사건과 사고가 많이 일어납니까? 목숨이 왔다 갔다 하는 경우도 많습니다. 그때마다 우리를 지켜주셔서 실족하지 않도록 넘어지지 않도록 도와주신다는 것입니다.
우리를 지켜주시되 ‘죽을 때까지’ 지켜주십니다. 시48:14 “이 하나님은 영영히 우리 하나님이시니 우리를 죽을 때까지 인도하시리로다” ‘죽을 때에도’ 지켜주십니다. 잠14:32 “악인은 그 환난에 엎드러져도 의인은 그 죽음에도 소망이 있느니라” ‘죽은 후에도’ 지켜주십니다. 계21:4 보면 우리가 죽은 후 천국에서 영원히 보살펴 주신다고 했습니다. “모든 눈물을 그 눈에서 씻기시매 다시 사망이 없고 애통하는 것이나 곡하는 것이나 아픈 것이 다시 있지 아니하리니 처음 것들이 다 지나갔음이러라”
② 어떤 상황에서나 지켜주시는 하나님 :
5절 보면, ‘네 우편’에 ‘그늘’이 되신다고 했습니다. ‘우편’은 공간적 방향을 가리키는 게 아니고, ‘하나님의 권능’을 상징합니다. ‘그늘’은 ‘하나님의 보호’를 의미합니다. 하나님이 권능으로 우리를 보호해 주신다는 것입니다. 6절 보면, 낮의 해와 밤의 달이 해치 않도록 켜주신다고 했습니다. 광야 사막에는 여러 가지 위험이 있습니다. 낮에는 열사의 햇볕이 괴롭히고, 밤에는 차가운 달빛이 힘들게 합니다. 또 사막은 개활지이므로 달빛이 밝으면 강도와 맹수의 위험에 노출됩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그늘이 되어서 보호해 주신다는 것입니다. 한 마디로 7절(상) 말씀대로 ‘모든 환란’에서 지켜주십니다. 우리 인생 가운데 발생할 수 있는 어떤 상황 속에서도 하나님은 우리를 보호하실 수 있는 것입니다.
③ 육체와 영혼까지 지켜주시는 하나님 :
7절(하) 보면, 하나님은 우리의 육체뿐 아니라, 영혼까지 지켜주신다고 했습니다. 사람은 육체가 안전해도 마음이 불안하고 흔들리면, 잘못된 사상이나 욕망에 사로잡히면 인생을 망치게 됩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그 마음과 영혼조차 지켜주신다는 것입니다.
오늘날 현대인들에게 영혼의 병, 마음의 병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얼마 전 신문에서 이런 기사를 본 적이 있습니다. 요즘 젊은이들 중에 ‘은둔형 외톨이’가 많다는 겁니다. 그들은 불안해하며 사람들과 접촉하기도 싫어하고, 밖에 나가지 않고 방에만 콕 박혀 있다고 합니다. 그래서 ‘방콕족’이라 부르기도 합니다. 우리나라에 10대~30대에 걸쳐 20~30만명이나 된다는 것입니다. 물질문명이 발달되고 풍요로워지면서 오히려 영혼이 빈약해 지는 겁니다. 우리보다 물질문명이 앞선 일본은 1970년대부터 그런 현상이 생겨났다고 합니다. 그런 사람들을 ‘히키코모리’(방안에 틀어박힘)라고 부르는데, 1억 2천 인구 중에 무려 1%에 해당하는 120만명이나 된다고 합니다. 이들은 마음의 병이 들은 겁니다. 정말 안타깝습니다.
여러분, 이들이 어떻게 하면 치유될 수 있을까요? 병원에 입원하면 될까요? 약물을 쓰면 될까요? 별 효과가 없다고 합니다. 오히려 악화될 수도 있다는 겁니다. 그래서 혹자는 애완동물과 놀거나 영화 연극 감상, 음악 감상을 권유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그런 것들이 얼마나 효험이 있겠습니까? 가장 좋은 방법은 인간의 영혼을 만드신 하나님을 만나는 것입니다. 그분과 동행할 때 비로소 그 영혼이 치유되고 평안을 얻게 됩니다. 시73:26 “내 육체와 마음은 쇠잔하나 하나님은 내 마음의 반석이시요 영원한 분깃이시라” 시42:5 “내 영혼아 네가 어찌하여 낙망하며 어찌하여 내 속에서 불안하여 하는고 너는 하나님을 바라라 그 얼굴의 도우심을 인하여 내가 오히려 찬송하리로다”
이처럼 하나님은 우리를 항상, 어떤 상황 속에서도, 육체와 영혼까지 지켜주시는 좋은 분입니다. 그분이 나를 그렇게 온전히 도와주신다는 게 얼마나 놀라운 일인지요! 세상에서 인간 중에 가장 보호를 철저히 받는 사람이 있다면 대통령일 겁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당신의 자녀 된 우리를 대통령보다 더 귀히 여기시고 더 철저히 보호해 주십니다. 대통령이 어디를 행차하면 몇주 전부터 난리죠. 답사를 하고, 맨홀 뚜껑까지 열어보면서 철저히 검색을 합니다. 그리고 수십 명이 에워싸고, 일단 유사시에는 경호원들이 몸을 던져 총탄을 대신 맞으면서까지 경호합니다. 그런데도 전 세계적으로 보면 국가 원수들이 암살되거나 사고를 당하는 경우가 왕왕 있습니다. 완전하지 않다는 겁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를 온전하게 보호해 주십니다. 그래서 시편 가지를 이렇게 노래합니다. 시4:8 “내가 평안히 눕고 자기도 하리니 나를 안전히 거하게 하시는 이는 오직 여호와시니이다”
물론 험한 세상 살다보면 우리 성도들도 별의 별 일이 다 겪습니다. 이 세상은 천국이 아니니까, 그리고 에덴동산도 아니니까 ... 우리는 에덴동산에서 쫓겨난 죄인들입니다. 천국 백성이 됐지만 아직 천국에 들어간 것도 아닙니다. 그러므로 이 세상 살 동안에는 어려운 일을 겪을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하나님이 동행해 주시고, 우리를 붙들어 주셔서 결국은 천국으로 인도해 주신다는 사실입니다. 시37:24 “저는 넘어지나 아주 엎드러지지 아니함은 여호와께서 손으로 붙드심이로다”
[4] 하나님의 보호를 받는 방법 : 믿음, 말씀, 기도
성도 여러분! 이런 사실을 확신하시고 믿음으로 하나님을 바라보십시오. 그리고 항상 의지하십시오. 그래서 하나님의 보호 속에 승리하시기 바랍니다. 그런데 좀더 효과적으로 하나님의 보호를 받기 위해 우리도 나름대로 힘써야 합니다.
무엇보다 말씀에 순종하시기 바랍니다. 말씀은 차선과 같습니다. 차선을 지키지 않으면 좌충우돌하다 사고가 납니다. 그러면 견인차가 와서 끌어다가 공장에서 수리를 합니다. 그리고 다시 도로로 꺼내 놓습니다. 그러나 얼마나 고생이 많고 손해가 많습니까? 하나님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말씀을 무시하고 제멋대로 살다 사고 치면 수습을 해주십니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얼마나 많은 인생 수업료를 지불합니까? 정말 아깝죠. 그러므로 말씀대로 살아가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보호를 더욱 효과적으로 받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기도함으로 하나님의 도우심을 적극 구하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기뻐하심으로 도와주십니다. 시34:6 “이 곤고한 자가 부르짖으매 여호와께서 들으시고 그 모든 환난에서 구원하셨도다” 사58:9 “네가 부를 때에는 나 여호와가 응답하겠고 네가 부르짖을 때에는 말하기를 내가 여기 있다 하리라 ... ”
성도 여러분! 우리 인생은 광야와 같습니다. 위험이 상존합니다. 그러나 우리에게 하나님이 계십니다. 그분은 졸지도 않으시고 주무시지도 않으시고 우리를 보호해 주십니다. 내 인생의 불침번이 되어 주십니다. 아무쪼록 그 좋으신 하나님을 모시고 날마다 승리하시고, 세상에 참 보호자가 없어서 방황하는 사람들에게 보호자 하나님을 소개해 주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우리도 모두 하나님 때문에 기쁨과 감사가 넘치는 삶을 살아갈 수 있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
//
출처: 복있는 그리스도인 글쓴이: 하나님의 사람
시편121편
‘실족(失足)’의 의미
김홍전
실족(失足)이란 말을 해석할 때 내가 무슨 일을 하는데 힘이 모자라니까 하나님은 늘 도와주셔야겠다 하는 의미인가 하면 그런 의미는 아닙니다. 그렇게 해석하면 그런 것이 펠라기우스(Pelagius)의 주장입니다. 신학상 펠라기우스주의 또는 반 펠라기우스주의라는 말이 있습니다. 이것은 신학 이야기이니까 꼭 기억하지 않아도 상관업지만, 어거스틴 시대에 굉장히 그를 반대하고 일어났던 그릇된 사상과그릇된 신학적 논설인데, 그 후에 개혁 시대에는 펠라기우스적인 사상이 알미니우스주의로 흘러 내려온 것입니다.
그 이전에는 유대주의 가운데 그런 것이 있었습니다. 이런것들을 다 합해서 신학상 공통점을 말할 때 율법주의 혹은 계율주의(normism)라 합니다.
신학상 계율주의라 할 때에는 자기가 무엇을 한다는 것입니다. 자기가 무엇을 하는데 모자라는 것은 하나님께서 도와주셔야겠다 하는 이런 사상인데, 만일 이 시를 잘못 해석하면 그런 사상으로 들어가는 것이고 특별히 그런 신학 용어를 쓰지 않고 그것을 모른다고 할지라도 사상은 그런 사상을 가지기가 쉬운 것입니다. ‘아, 나를 실족지 않게 하신다. 그리므로 조심해서 잘 걸어가면 내 힘이 모자라는 것이나 인간으로서 부족해서 넘어지기 쉬운 것은 하나님이 붙들어서 나를 잘 가게 하신다’하는 식으로 생각하면 안 됩니다. 자기는 하나님이 모자라는 부분만 붙들어주시면 잘 걸
어갈 수 있는 사람이라는 표현은 여기에 없습니다. 왜냐하면 내가 아무리 반듯이 걸어간다 할지라도 언제 지뢰가 터질는지, 언제 적이 나를 습격할는지, 누가 나를 지키다가 잠시라도 한눈을 파는 동안에는 적이 와서 나를 공격해서 넘어뜨릴는지 알 수 없는 그러한 아주 첨예한 위험 가운데 있다는 것을 그 다음에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그러한 까닭에 ‘나를 지키시는 이는 잠시도 쉬실 수가 없다. 졸지도 아하시고 주무시지도 아니하시는 것이다. 졸든지 주무시든지
하면 큰일 난다’하는 이야기입니다.
그런 까닭에 여기서 실족한다는 말은 소위 수인사대천명(修人事待天命)이라는 식의 생각이 아닙니다. 여기서 주의할 것은 하나님께서 나를 세우사 이 세상에서 그 영광을 위해서 정하신 일을 해 나가도록 하셨는데 영광을 위해서 정하신 그 일을 내가 해 나가려고 할 때는 자기 자신의 힘을의지하는 것이 아니고 항상 성신님만을 의지하고 나아간다
는 것입니다. 성신의 능력으로 나를 이끄시는 것입니다. 성신의 능력으로 나를 이끄신다는 것은 그 사람이 아무 데나천사와 같이 흠 없이 잘 나간다는 것이 아니라 인간이 가지고 있는 지식의 제한과 인간이 가지고 있는 의식(意識)의 능력의 제한이 다 있어서 그 제한 안에서 그 사람이라는 그릇을 통해서 할 수 있는 최선을 잘 이루어 나가게 해 주신다는 것입니다. 그러한 까닭에 이와 같은 생활을 하면서 ‘하나님께서 나를 가게 하시고 내가 갈 수 있게 힘 주셔서 가는 동안에 나는 힘만 모자라는 것이 아니라 시험을 받고잘못된 생각이 들어오고 혹은 옛사람적인 기능이 나를 순간적으로라도 지배해서 실족하기 쉽다. 그러나 이런 가운데에서도 하나님께서는 실족지 않게 하신다’하는 시를 읊으면서 실족하지 않게 하시는 하나님의 크신 은혜를 생각하고 표시하는 것입니다.
내가 산을 향하여 눈을 들리라( 김홍전 )
출처: 개혁주의 마을 글쓴이: grac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