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남 진주시(晉州市) ‘청심헌(淸心軒) 함옥헌(涵玉軒)‘ 한시(漢詩)편 7.> 총13편 中
경남 진주시 진주성 內 촉석루는, 그 부속 건물로 동각(함옥헌, 청심헌)과 서각(쌍청당, 임경헌)을 거느리고 있었다.[하수일,「촉석루중수기」(1583년)]. 이 건물들은 2차 진주성 전투 때 모두 소실되었는데 그로부터 10여년 후에 동각만 재건되었다. 이후 세월이 지나 동각의 청심헌이 사라졌고 1906년에는 함옥헌이 일제에 의해 헐러 버렸다. 진주 청심헌(淸心軒)은 함옥헌(涵玉軒) 동편에 있던 집이다. 병사(兵使) 이수일(李守一)이 1603년 경상우도병마절도사가 되어 창원에 있는 합포영(合浦營)을 진주로 옮기게 되자 병사(兵使)로 진주목사를 겸직하였는데 그때 다시 재건했다.
누추한 함옥헌을 다시 중수하기 시작한 때는 1887년 가을인데, 이 당시 성과 함께 촉석루를 이미 중건하였다고 했으므로, 촉석루의 중건도 1887년에 마쳤음을 알 수 있다. 또한 쌍청당은 촉석루 서쪽에 있다. 능허당은 촉석루의 동각(東閣)이다. 청심헌은 능허당의 동쪽에 있고, 임경헌은 촉석루의 서각(西閣)으로 목사 이원간이 건립하였다.[신증동국여지승람]
함옥헌은 촉석루의 東閣으로 ‘여지승람’에는 능허당이라 했는데, 언제 지금의 이름[함옥헌]으로 개칭되었는지는 모른다. 누각의 칸 수는 예전에 비해 배를 더했다. 관수헌은 촉석루의 서곽(西閣)으로 목사 이원간이 건립하였는데, 전란을 겪은 뒤 폐하여 복고 되지 않았다. 쌍청당은 관수헌 서쪽ㆍ관아의 남쪽에 있었는데, 전란을 겪은 뒤 지금까지 폐한 상태이다.[성여신, 진양지「관우」(1632년)]
34) 진주 청심헌 제영[晉州淸心軒題詠] 무산(巫山)의 한 조각 구름일세(巫山一段雲) / 이광윤(李光胤 1564∼1637). 다음은 2차 진주성 전투에서 폐허가 된 청심헌을 1604년 병사 유수일이 복구 중건했는데 이해 가을에 이광윤이 청심루 주변을 보고 노래한 시(詩)이다.
古郭烟空鎖 옛 성곽에 안개가 부질없이 얽혀있고
荒墟歲屢更 황폐한 폐허에 해가 누차 바뀌었네.
대장수가 허리띠를 느슨하게 매고 군사와 백성을 위로했다.(元戎緩帶撫軍氓)
荊棘化軒楹 가시덤불이 마루와 기둥으로 변하니
風月還多事 음풍농월(吟風弄月)이 되레 번거로워라.
江山轉有情 강산이 한층 더한 정취가 있어
坐看霞鷘弄 앉아 바라보니 노을 속에 물새가 흥겨이 놀구나.
청명한 가을이 매우 맑아 시작의 흥취 일어나는 1604년 가을, 통영 선호어사로써 남쪽 지방에 왔다가 진주에 잠시 머물게 되었다.(秋晴詩思十分淸 甲辰秋 以統營宣犒御史南下 留住晉州)
飛棟臨丹壁 높은 마룻대와 임한 벽에 단청을 입히고
脩篁間紫薇 대숲 사이에 배롱나무를 심었네.
목란주(木蘭舟)를 타고 낚시터 가까이로 이동했다.(蘭舟移傍釣魚磯)
江樹遠熹微 강가의 나무가 멀리서 어슴푸레 빛나고
咬嘎洲禽響 물가엔 새소리가 울려 퍼진다.
凄淸渚月輝 서늘한 물가에 달빛이 비추니
아름답고 좋은 계절에 함께 하지 못하니 감상할 맘 글러졌네(佳期不與賞心違)
遙夜澹忘歸 조용한 긴 밤 동안 돌아갈 줄 모르네.
[주1] 무산(巫山)의 한 조각 구름 : 본디 여인의 아름다운 자태를 형용한 말인데, 전하여 아주 아름다운 사물을 비유한 것이다.
[주2] 란주(蘭舟) : 춘추 시대 노반(魯般)이 목란(木蘭) 나무를 깎아 배를 만든 데서 유래한 말로, 이후 배의 미칭(美稱)이나 뱃놀이를 의미하게 되었다. 목련으로 만든 아름다운 배.
35) 진양의 청심헌에서 김약봉(극일)의 시에 차운하다 3수[晉陽淸心軒 次金藥峯(克一) 韻 三首] / 이노(李魯 1544∼1598)
昔年控鶴驀菁江 작년 학봉을 모시고 말 타고 남강에 와서
一笑玲瓏扣碧窻 한 번 영롱하게 웃으며 푸른 창을 두드렸네
半夜月明人不見 깊은 밤 달은 밝은데 사람은 보이지 않으니
祇今誰識子喬雙 다만 지금 누가 왕자교의 짝됨을 알겠는가
小軒跨碧凸澄江 작은 집은 푸른 물에 걸쳐 맑은 강에 임해 있고
明月懸光欲墮窻 아래 비추는 밝은 달빛 창으로 떨어지려 하네
獨倚危欄思往事 홀로 높은 난간에 기대어 지난 일 생각하니
名區此日涕垂雙 명승지에서 오늘 두 줄기 눈물 흐르네
難升天險是長江 천험의 요새 오르기 힘든 건 긴 강 때문이니
風雨如何入晩窻 비바람이 저물녘 창에 어찌 들어오겠는가
忠義已拜樓櫓固 충의위 이미 제수되어 망루 견고하게 하였으니
雎陽不必廟成雙 수양성에 사당 두 개 만들 필요 없네
[주1] 김약봉(金藥峯) : 김극일(金克一, 1520~1585)로, 본관은 의성(義城), 자는 백순(伯純), 호는 약봉이다. 부친은 김진(金璡)이며, 김진의 다섯 아들 중 장자로 당시 동생 김수일(金守一)ㆍ김명일(金明一)ㆍ김성일(金誠一)ㆍ김복일(金復一)과 함께 ‘김씨오룡(金氏五龍)’으로 불렸다. 아우 김명일, 김성일과 함께 이황의 문하에 들어가 수학하였다. 1546년(명종1) 과거에 급제하여 예조 정랑, 성균관 사성 등을 지냈다. 저술로 《약봉집》이 있다.
[주2] 왕자교(王子喬) : 주 영왕(周靈王)의 태자 진(晉)이다. 태자 시절에 왕에게 직간하다가 폐해져 서인이 되었다. 젓대를 잘 불어 봉황새 소리를 냈으며 도사(道士) 부구공(浮丘公)을 만나 흰 학을 타고 산꼭대기에서 살았다 한다.
36) 진양 청심헌 판상운에 차하다[次晉陽淸心軒板上韻] 군막의 병상(兵相)에게 받들어 올리다(奉呈兵相籌軒) / 유우잠(柳友潛 1575~1635)
徃事茫然歲月流 지난 일이 망연한데 세월은 유수와 같고
人間地下恨俱悠 인간 세상에 황천의 한(恨) 모두 유유하다.
生憎江水㴱如許 하필이면 강물이 이렇게 많이 깊은데도
未洗干戈十載愁 아직도 전쟁의 상흔에 십년 동안 수심을 씻지 못했네.
37) 청심헌[淸心軒] / 강혼(姜渾 1464∼1519)
孤舟風定泊淸江 외로운 배 바람 따라 가다 맑은 강에 대니
潭影沈沈搖畫牕 못 그림자 고요한데 아름다운 창 흔드네
一帶長林橫薄霧 전체 두른 긴 숲에 엷은 안개가 비겨있고
夕陽鷗鷺下雙雙 석양에 갈매기 짝을 지어 내려 오네
진주 함옥헌(涵玉軒) 동편에 있는 집이다. 병사(兵使) 이수일(李守一)이 세웠다.(軒在晉州涵玉軒東 兵使李守一所建也)
38) 함옥헌 이복고에 차하다[次涵玉軒李復古] 1551년 / 황준량(黃俊良 1517~1563)
天豁雲消夜氣淸 넓은 하늘에 구름 사라지고 밤기운 맑아
靜中詩興偶然生 고요한 가운데 시흥이 우연히 솟아나네
何人襟宇淸如許 어떤 사람의 마음 속이 저처럼 맑더냐
霽月澄潭上下明 갠 달이 청징한 못에 위 아래로 밝도다
39) 함옥정[涵玉亭] 둘째 수 / 김학순(金學淳 1767~1845)
英雄湖上浪淘沙 영웅의 호수 위로 물결 일어 모래 씻기고
義妓巖前怨落花 의기의 바위 앞에 원통히 꽃이 지네
往事百年如夢過 과거 백년 일이 꿈처럼 스쳐 지났다만
一江烟月屬漁家 온 강에 비친 연월이 어가에 이어져 있네
<경남 진주시(晉州市) ‘진주를 둘러보고(晉州四顧)‘ 한시(漢詩)편 8.> 총13편 中
진주의 촉석루 못지않게 부속 누각이 존재함으로써 문인들에게 창작의욕을 한층 더 자극시켰다. 본루의 서각(西閣)인 쌍청당과 임경헌은 임란 때 소실되어 되어 그 이후로는 더 이상 제재로 등장하지 않았다. 다만 부속 누각 중 가장 먼저 건립된 쌍청당(雙淸堂)을 시제로 내세운 작품을 통해 임란 전의 형태를 다소나마 미루어 볼 수 있다. 위의 시는 김륵(金玏)이 1577년 가을 호송관으로 차출되어 진주의 쌍청당에서 과거급제 동년인 배응경을 만나 지은 제영시이다. 쌍청당 주위에는, 굽은 성가퀴가 긴 들판을 따라 있고, 층층으로 된 난간이 하늘에 돌출하였다. 경치를 감상하는 행위를 마치 삼청의 신선 세계에서 유람하는 것에 비유하였다.
40) 진주 쌍청당[晉州雙淸堂] 배회보(응경) 동년을 우연히 만나[遇裴同年晦甫(應褧)] / 김륵(金玏 1540∼1616)
曲堞臨長野 굽은 성가퀴 긴 들판에 다다랐고
層欄出遠空 층층 난간 먼 하늘에 튀어 나왔네
江寒能得月 강은 차가운데 달은 떠 오르고
山近自生風 산 가까워 절로 바람이 이는도다
夢接三淸上 꿈결에 삼청 세계 위에 오르니
魂遊萬界中 마음은 온 세계에서 노니는 듯
朗吟秋已夕 낭랑히 읊으니 가을날 이미 저물고
明日海山東 내일이면 바닷가 산 동쪽에 있으리라
41) 진주 두치강정[晉州豆致江亭] / 홍성민(洪聖民 1536∼1594) 경상도관찰사.
仙山去路小徘徊 신선의 산으로 가는 좁은 길에서 배회하는데
泛水花來眼便開 물위로 꽃이 떠내려 와 얼굴이 활짝 밝아진다.
江畔白鷗應笑我 강가의 흰 물새가 응당 나를 비웃을 테지만
片時抛却簿書來 잠시 동안이라도 문서 속에서 벗어날 수 있었네.
步來沙渚坐巖隈 모래톱으로 걸어가 바위굽이에 앉았는데
風拂輕陰嬾葉開 옅은 구름 속에 바람 불어와 여린 잎새를 흔든다.
何處漁舟來去晩 저물녘 고깃배는 어느 곳으로 오고 가는고
桃花浪漲夕陽回 복숭아꽃이 물결에 일렁이며 석양 속에 떠가네.
42) 상주(尙州) 목백(牧伯) 최자 학사에게 부침[寄尙州牧伯崔學士滋] / 김지대(金之岱 1190∼1266) 진양고을 수령 재직 時.
去歲江樓餞我行 작년 강루에서 나를 전송하더니
今年公亦到黃堂 금년에 당신 또한 황당(수령의 관아)에 왔구려
曾爲管記顔如玉 일찍이 관기로서 얼굴이 옥 같더니
復作遨頭鬢未霜 지금 오두(지방 태수) 되어서도 머리 아직 안 희었네
洛邑溪山雖洞府 낙읍(洛邑) 계산도 비록 신선의 동부이지마는
晉陽風月亦仙鄕 진양의 풍월이 또한 선향 아닌가 보네
兩州歸路閒何許 두 고을의 오고 가는 길 거리가 얼마인가
一寸離懷久已傷 일촌간장 이별의 회포는 오래전 벌써 상심됐네
欲把琴書尋舊要 금서를 가지고 옛 벗을 찾으려는데
況看簾幙報新涼 염막에 더구나 새 가을이 온다 하네
嗟公虛負中秋約 추석의 약속을 저버린 것 야속하니
更約重陽飮菊香 이 다음 중양 날에는 국화주를 꼭 마시세
[주1] 관기(管記) : 서기(書記)의 속관(屬官)이다. 최자가 전일에 서기로 있었다.
[주2] 낙읍(洛邑) : 여기서는 상주(尙州)를 낙읍이라 하였는데, 낙동강(洛東江) 고을이란 말이다.
43) 진주 유상사 군옥에 차운[晉州 次兪上舍君玉] / 정유길(鄭惟吉 1515∼1588)
相看不語志先融 말없이 서로 바라보며 마음을 녹이는데
話本滋多意未終 본디 말이 많으면 뜻을 다 전달하지 못한다네.
三十年間幾人在 삼십년간 이제 몇이나 남았더냐.
君如老鶴我成翁 늙은 학 같은 그대여~ 우리 이제 늙은이 되었구려.
44) 진주가 함락 되었다는 소식을 듣고[聞晉陽陷城] / 오수영(吳守盈 1521∼1606)
南國雄藩數百年 수백 년간 남부 지방의 큰 진영(鎭營),
從前捍禦獨能全 이제까지 홀로 온전히 방어해 왔었다.
驚聞戰骨盈城底 성 안에 전사자의 유골이 가득하다는 소식 듣고서
想見兵塵暗海堧 미루어 짐작건대, 전쟁의 북새통 속에 바닷가는 암울하리라.
唐將講和無遠略 느닷없이 깊은 계략도 없이 강화하자고 하니
小邦何日掃腥羶 작은 나라가 어느 날에 비린내를 씻어낼 수 있으랴.
極知嫠婦憂非分 극히 분수에 넘치는 과부의 근심이었음을 알겠고
念亂深懷只自煎 그저 난리를 깊이 염려하며 혼자서 애태울 뿐.
45) 진주 연당(蓮塘)을 지나가며[過晉陽蓮塘] / 초엄유고(草广遺稿) 초엄(草广 1828~?)
殘荷無數冒淸池 남은 연꽃이 무수히 맑고 옅은 연못을 덮고
落日鵝飜下柳枝 지는 해에 거위가 날아 버들가지에 내려앉네.
綠波襟袖風難定 푸른 물결 속 옷소매는 바람에 고요하기 어렵고
黃葉樓臺老不支 누대에는 누런 잎이 늙어 지탱하기 어렵다네.
名區物色端宜畫 이름난 이곳의 물색들이 오로지 그림 같단 생각드니
古地秋懷豈盡詩 옛 땅에서 가을의 회포 어찌 모두 시가 아니랴.
一自隨雲長往後 그 뒤로 구름 따라 오랫동안 가다보니
回期只在柏花時 돌아올 시기를 잊고 동백꽃이 필 때까지 머물렀네.
46) 진주 형림정에 올라[登晉州迥臨亭] 배도사에 차하다(次裵都事) 二首 / 조임도(趙任道 1585∼1664)
誰敎仙境在人間 인간만 있는 세상을 누가 선경이라 했나?
一上高臺骨欲寒 홀로 높은 대에 오르니 모골이 오싹하네.
大野長江連遠岫 넓은 들에 긴 강물이 먼 산과 이어지고
吟魂到此不能閒 시 읊던 마음이 여기에 이르니 한가할 겨를이 없어라.
臺高千丈屋三間 천길 높은 대(臺)에 세 칸의 집에서는
梅送新香竹送寒 매화가 산뜻한 향기 보내오고 대나무는 오싹함을 보내네.
山有白雲江白鳥 산에는 흰 구름 떠있고 강에는 흰 새가 떠가니
淸高不及主人閒 맑고 고결한 주인의 한가로움에 미치지 못하겠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