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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여행 인터넷 언론 ・ 3분 전
생각이 물질이 되는 고독한 행성 솔라리스, 메타버스의 풍경 속에서 |
[미술여행=윤경옥 기자]RAC 알앤씨(부산광역시 해운대구 중동 달맞이길 65번길 154, 2층)갤러리가 오는 8월 23일부터 9월 26일까지 박진하 작가의 개인전< Voice of Existence >展을 개최한다.
박진하는 지난 10여 년간 대한민국의 해안가, 국립공원, 지질공원 등 전역을 다니며 사진 작업을 통해 깊이 있는 탐구를 이어오며 새로운 감각을 보여주고 있는 작가이다.
박진하 개인전: "Voice of Existence" 전시 알림 포스터(RAC 제공)
박진하는 유럽의 여러 광학 브랜드에서 앰버서더, 마스터로 활동해오고 있다. 이번 전시에서는 작가가 전국을 돌아다니며 촬영한 <존재의 목소리(Voice of Existence)> 시리즈를 선보인다.
작가는 직접 장비를 설계해 제작하여 작가만의 기법으로 촬영하고 편집한다. 하나의 시점에서 수백에서 수천 장 촬영하고 재조합하여 만들어진 그의 작품은 마치 ‘카메라로 그린 풍경화’ 같이 작가의 시각과 생각, 이야기가 담겨 있다.
사진의 등장은 미술에 있어서의 ‘인간성’ 표현에 수많은 번뇌와 고민을 남겨 왔다. 이제 사진으로 또 다른 지평을 여는 박진하 작가의 작품 세계를 통해 기계와 기술, 인간성에 대한 다양한 고찰과 대화를 가질 수 있는 장이 되기를 바라며...
사진: 박진하 作. JHP_solo_15
사진: 박진하 作. JHP_solo_12
◆생각이 물질이 되는 고독한 행성 솔라리스, 메타버스의 풍경 속에서
이건수 미술비평·전시기획
“그는 정물화 한 작품을 그리기 위해 100번의 작업을 해야 했으며, 초상화 한 작품을 그리기 위해 150번의 포즈를 요구했다. 우리가 세잔의 작품이라고 부르는 것이 사실 그 자신에게는 하나의 실험이었고, 그림을 향한 접근이었다.” ―메를로-퐁티, ‘세잔의 회의’, 《의미와 무의미》
파리올림픽이 얼마 전 막을 올렸다. 파리는 구시대 아카데미즘 미술의 성지이면서도 현대미술의 혁신, 모더니즘의 본격적인 개막이 이루어진 도시이다.
파리 만국박람회, 파리 근대올림픽의 시도는 예술과 문명사 전개의 새로운 방향성을 제시했다. 사진도 영화도 파리에서 시작되었다. 오페라 가르니에 건너편에 있던 (최초의 사진가 중 한 사람인) 나다르의 스튜디오에서 1874년 ‘현대미술의 시작’으로 여겨지는 최초의 인상파 전시가 열렸다.
빛을 그리려는 화가들의 첫 번째 전시회가 포토그래프(빛으로 기록한 그림이라는 뜻)의 제작소인 사진관에서 열렸다는 사실은 아이러니하다. 사물이 반사하는 빛의 인상을 기록하겠다는 이 일군의 젊은이들은 시각적 재현의 대표적인 수단으로서, 문학의 시녀로서 존재하였던 미술의 화면 속에 빛과 색채 자체의 자율성을 주요 요소로 확립시킴으로써 미술의 새로운 세계를 열어주었다.
사실적인 재현은 사진이 더 정확했다. 미술은 이제 현실의 재현이 아닌 다른 독자적인 길을 걸어가야 했다. 내용적인 측면에서도 인상파의 그림은 과거 스튜디오식의 추후 제작 방식이 아니라 바깥의 빛을 직접 받으며 그리면서 마치 스냅사진 같은 현장성과 생동감을 보여주기 시작했다. 그래서 그들을 외광파(外光派)라 부른다. 이 외광파적인 작업은 빛의 기록과 이해라는 의미에서 회화와 사진의 존재 이유에 대해, 예술과 과학의 상관성에 대해 지금까지도 많은 물음을 던지고 있다.
그는 탐험가처럼, 혹은 과학자처럼 산과 바다를 관찰한다. 광학적 데이터를 수집하고 각종 물리적 조건들을 측량하고 감별한다. 자연이라는 시공간적 인과율의 조건적 세계를 분석한다. 트리밍되고 프레임된 풍경은 수많은 기억의 중첩 속에서 자신의 존재적 진실을 드러낸다. 그것은 존재의 수동적인 현현이 아니라 존재 스스로 우리에게 발하는 은밀한 신호이자 무언의 음성 같은 것이다.
그의 역할이란 작위적이고 주관적으로 해석될 수 있는 하나의 장면을 ‘스스로 그러한(自然)’ 상태의 가장 중립적이고 본질적인 상황으로 제시하는 일이다. 절대적이고 확정적으로 고정되어 있는 대상이나 사건은 없다. 모든 것은 변하고 흘러간다. 움직이며 생성(becoming)한다. 그가 제시하는 이미지의 대상들은 평면적 좌표 위에 고정된 존재(being)로서 있지 않다. 그 대상들은 끊임없이 진동하며 움직이고 있다.
사진: 박진하 作. JHP_solo_13
멈춰선 듯 움직이고, 움직이는 듯 멈춰서 있는 그 불확정적인 시공간을 그는 사진술이라는 과학적인 기술을 통해 기록한다. 아니 그려낸다. 만들어낸다. 여기서 사진을 그려내고 만들어낸다는 의미는 눈앞의 세계를 인위적으로 조작하여 본래적 의미의 조건과 다르게 연출한다는 의미가 아니다.
그가 현재 편집증적이라 할 만큼 몰두하고 있는 찰나적 풍경에의 정밀한 접근방식은 그 자신을 미디어적으로, 달리말해 중간자의 역할을 유지하고자 하는 태도로 진행된다고 할 수 있다. 무엇이 진실한 바라봄이고 보여짐일까. 보는 것과 보이는 것이 정확히 일치될 수 있을까. 그는 카메라 눈으로 인간의 눈을 회의한다.
작가는 수많은 시간동안 하나의 풍경을 경험하고 체험한다. 그는 자신의 마음에 그 풍경이 어리고 맺힐 때까지 수없이 그곳을 찾아간다. 그 시간 그 자리를 수없이 찾아가 그 대상이 자신의 존재적 목소리를 드러낼 때까지 그는 기다린다. 마치 옛 중국의 화가 문동(文同)이 흉유성죽(胸有成竹), ‘마음 속에 대나무가 완성되어야’ 비로소 대나무를 그렸듯이, 풍경이 스스로 말을 건넬 때 까지 그는 기다린다. 풍경 뒤에 감추어졌던 존재적 진실은 ‘탈(脫)은폐’하며 서서히 드러난다.
사진: 박진하 作. JHP_solo_14
그가 트라이포드를 세우는 그 자리는 그 대상이 자신의 정체를 가장 잘 보여주는 스폿이다. 작가는 이 안테나 같은 기구를 통해 그 시공간의 기운과 교신하고 그 빛과 소리의 주파수를 맞추고 수신하기 시작한다.
작가는 마치 하늘과 땅을 이어주는 제사장처럼 그 빛의 장(field) 속에서 매개자의 역할을 할 뿐이다. 카메라 조리개를 열어 빛과 시간의 입자들을 받아들이고 기다린다.
어둠의 방(camera obscura) 속으로 풍경의 의식은 들어와 작가의 의식과 뒤섞이며 하나의 의식으로 물아일체된 빛의 풍경(光景)으로 맺혀진다.
어찌 보면 카메라의 눈이 풍경을 바라보는(see) 것이 아니라 거꾸로 풍경이 스스로를 의식하고 생각하며 카메라의 렌즈를 바라보고(eye) 있는 것이다. 그렇기에 사진은 풍경의 의식이다.
세잔에 따르면, 풍경은 내 속에서 자기 자신을 사유하고 있는 것이며, 내 자신은 풍경의 의식이다(Le paysage se pense en moi et je suis sa conscience). 저 산과 바다, 돌은 내 속에서 자기 자신을 사유하고 있다.
내 자신은 산과 바다, 돌의 의식이다.
박진하의 사진은 수평과 수직의 그리드를 철저하게 고수한다. 시각적 왜곡을 피하고 이 완벽한 그리드의 조건에 대상을 고착시키기 위해 그는 완벽한 평면 앵글의 각도를 포착할 수 있는 카메라의 틀을 고안한다.
사진: 박진하 作. JHP_solo_11
조율된 카메라는 다(多)시점의 시점이동이 가능한 촬영을 통해 평면성과 입체성이 공존하는 화면을 구성하게 되었다.
포커스 인과 포커스 아웃의 원근법적 앵글을 자유롭게 벗어나, 영화의 딥포커스처럼 화면 안의 모든 피사체들은 정확한 초점으로 포착되게 되었다.
이것은 세잔이 이 세상 만물의 형상을 원통·원뿔·구 3가지로 귀결시키고 평탄한 면에 영원히 변하지 않는 형상으로 고착시키려 했던 의도와 다르지 않다.
화면 속에 평면성을 유지하면서도 입체성을 포기하지 않고, 시점의 이동을 통한 원근법의 해체를 통해 회화의 리얼리티와 새로운 출구를 열어준 세잔의 수많은 실험을 박진하의 시각적 왜곡을 회피한 다시점의 방법론에서도 발견할 수 있다. (이 방식은 전통적 동양 산수화의 ‘삼원법(三遠法)’을 연상시킨다.)
사진: 박진하 作. JHP_solo_16
셔터 속도의 다양한 변화와 함께 남겨진 이 한 장의 사진은 실은 같은 장면을 수백에서 수천 컷 촬영한 후 픽셀처럼 조각낸 각각의 작은 이미지들을 최적의 조건으로 선택하여 재조립한 결과물이다.
수평과 수직의 행렬구조 속 이미지의 순열조합 과정을 통해 풍경은 해체되고 분해되고 다시 재구성되는 것이다. 때문에 이 한 장의 풍경은 수없이 많은 시공간의 조합이며 셔터 속도의 조절까지 개입된 수없이 중첩된 다른 시간대의 표정을 내포하고 있다. 대상의 같음과 다름, 사건의 차이와 반복이 한 화면 안에 녹아 있는 것이다.
작가는 한 장의 사진을 인화하기 위해서 수천수만 컷의 디지털영상을 만지고 보정하고 재생시킨다. (본격적인 박진하의 작업은 촬영 이후부터이다. 수많은 이미지의 조각들을 만지고 다듬는다.
사진: 박진하 作. JHP_solo_17
그리고 그것들을 잇고 짓고 깁는다. 답사부터 촬영, 최후 편집까지 장인적 수행도를 통한 모든 과정이 예술적 행위의 시간이다.) 물리학의 절대주의적인 결정론과 상대주의적인 불확정성을 동시에 품고 있는 이 복합적이고 우주적인 빛과 시간의 파편들은 풍경의 부분과 전체가 입자와 파동의 역학 관계 속에서 얽혀있다는 사실을 입증한다. 그 풍경은 운명론적으로 확정된 단일한 시간대 속에 갇혀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감각할 수 있는 3차원을 초월한 수많은 고차원의 시간대 속에서 살아 열려있다. 이제 사진은 3차원의 물리적 조건에 머물러 있지 않는다.
상대성이론과 양자역학의 측면에서 읽혀질 수 있는 이런 메타버스(Metaverse)적인 풍경은 사진이 이미지의 단순한 복사와 재현이 아니라 존재와 비존재, 가시적인 것과 비가시적인 것, 우연과 필연, 진상과 허상, 멈춰섬과 움직임 등 대립적 요소들이 상존할 수 있는 시간-이미지이자 운동-이미지라는 것을 드러내준다. 게다가 때때로 적외선 필터를 이용하여 특정한 색의 파장을 노출시킨 초현실적 풍경은 적외선이나 자외선 같은 가시광선 너머의 눈에 보이지 않는 우주광선의 존재를 우리에게 재인식시켜준다.
일반적으로 그리고 전통적으로 사진은 진실을 기록한다는 의미가 가장 강하게 작용하는 기술이다. 지나가버리는 것, 있다가 사라져버리는 것, 그 시간의 빛과 공기가 프레임 안에 포착되고, 담겨지고, 박제된다. 사진 속 이미지는 진실을 붙잡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 그 장면은 찍힌 순간 이미 영원히 고정될 수 없는 다음 순간으로 넘어가버린 시간의 흔적일 뿐이다.
그래서 백남준은 사진을 진실의 기록이 아닌 사위(寫僞)라고 말한다.
때문에 진정한 사진적 행위란 이미지의 고착을 통한 시간의 고정을 지향하지 않고, 오히려 시간의 흐름과 운동을 깨닫게 해준다는 역설에서 시작된다. 5시간 21분 동안 잠을 자고 있는 남자의 모습을 촬영해서 보여주는 앤디 워홀의 <잠(sleep)>(1963)이라는 영화를 통해서 영화의 목적이 스토리를 담고 이어지는 장면이 아니라 시간 그 자체였다는 것, 워홀의 그 무의미한 영화를 통해서 오히려 시간의 존재적 의미를 더 잘 느끼게 되었다는 시니컬한 해석도 있다.
박진하는 사진적 행위와 사위적 행위라는 사진의 이중성(duality)과 상보성(complementarity)을 드러내주는 작업으로 일관하고 있다. 세상의 만물은 변화하고 흘러간다.
사진이 움직이는 대상을 고정시키고 정지시키는 것처럼 보이지만, 달리말해 사진이 시간과 공간을 정확히 재현하는 것 같지만, 그 속에는 수많은 시간적 차이와 공간적 왜곡이 존재한다는 사위적 조건을 밝히고 해체하려는 데서 그의 작업은 시작된다.
이번 전시에서 소개되는 <존재의 목소리(Voice of Existence)> 시리즈는 마치 안드레이 타르코프스키의 영화 <솔라리스(Solaris)>(1972)에서 등장하는 의식의 바다, 생각하는 바다를 연상시키는 묵시록적 분위기로 가득하다. 기억이 물질이 되는 혹성, 기억을 재현하는 행성 솔라리스에서 정신과 물질은 서로를 넘나들며 다른 차원들끼리의 교차가 이루어지는 흐릿한 경계의 시공간을 생성한다.
작가는 장노출, 느린 셔터 속도, 색채의 트렌스를 통해 우리가 알아차릴 수 없는 여러 겹과 층의 차원이 관통하고 있는 존재의 진동을 여백과 공허 속에서 들려준다. 천천히 소용돌이치는 뇌해(腦海)의 파문처럼 연약한 신호로 점멸되는 뇌파도(encephalogram)처럼 소리의 파동으로 변이된, 달리 말해 생각에서 물질로 전이된 그 빛의 이미지들은 초감각적인 소리의 그림자와 함께 은은하게 떨고 있다.
모든 프린트에 일관된 톤으로 유지된 색조는 밝고 어두움의 극단적 대비를 부정하며 빛과 어둠의 사이에 존재하는 광대한 연속성의 스펙트럼을 열어준다. 어둠과 밝지 않음은 다르다.
사진: 박진하 作. JHP_solo_18
어둡지 않음과 밝음은 다르다. 박진하는 이 미묘한 빛의 성질을 섬세하게 포착한다. 이런 빛과 어둠의 모호한 경계 속에 자신의 진실을 숨기고 있던 흙· 물· 불· 공기의 우주적 4원소는 모두가 입자와 파동이라는 이중적 양상을 품으며 장엄하고 고요한 빛과 색채의 순간을 빌어 존재의 목소리를 서서히 드러낸다.
정중동 동중정(靜中動 動中靜). 풍경 속의 모든 존재들은 정지(pause)되어 있지 않고 멈춰서(suspended) 있다. 멈추려는 힘과 움직이려는 힘 사이의 균형 잡힌 대립과 긴장 속에서 거시적 세계(macroscopic world)와 미시적 세계(microscopic world)는 서로를 비추며 서로에게 잠입해 간다. 박진하는 그 메타버스적인 비전을 통해 사진의 물리적 한계를 극복하고자 한다.
그에게 사진이란 양자역학의 스펙터클한 리포트일지도 모른다. -이건수 미술비평·전시기획
●박진하 개인전: "Voice of Existence" 展 전시안내
전시제목: Voice of Existence
일시: 2024.8.23(금) – 9.26(목), (오전10시 – 오후6시, 월요일 휴관)
참여작가: 박진하
장소: RAC (부산광역시 해운대구 중동 달맞이길 65번길 154, 2층)
오프닝: 2024.8.23(금) 오후5시 작가와의 대화
토크쇼 진행 : 이건수 감독 2021-2023 전남국제수묵비엔날레 총감독
문의: 이지윤 팀장 051-731-9845/raccompany@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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