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전 구례 운조루를 방문했을때 류씨 후손인 막내 아들과 차담을 하게 되었다. 우연찮게 화엄사가 차 시배지란 이야길 들었다. 내가 알기론 하동 쌍계사 입구가 시배지인줄 알고 있었다 하기사 신라 흥덕왕이 (김)대렴의 차씨를 지리산에 심어라 했지, 하동이나 구례에 심어란 한건 아니지 않은가? 각 지역의 자존심이 걸린 문제 일수도 있겠단 생각이 든다. 진위 여부를 떠나 몇가지 자료를 찾아 올려본다
(김)대렴은 828년에 차씨를 가져오고 진감선사는 804년에 당나라로 유학을 가서 830년에 귀국을 해 삼법화상의 절터에 옥천사(현재 쌍계사)를 건립한다. 당시 오랜 중국 유학 생활에서 차를 접한 진감선사가 씨를 가져왔을 가능성이 크다. 거의 동시대에 차씨를 들여왔을 가능성이 높다. 김대렴이 다녀온 당나라 수도인 시안(34.15)과 진감선사가 증진한 소림사(34.5)는 위도가 비슷하고 하동과 구례는 약간 더 북쪽(35.25)에 위치하고 있다. 참고로 위도 1도에 111k쯤 된다. (최치원(857~?) 868년 당나라 유학 길에 올라 885년에 귀국을 한다. 진감선사(774~850)가 입적하고 36년 뒤인 887년에 진감선사대공탑비의 비문을 짓는다)
"정만우 스님이 쓴 『화엄사적기』에는 544년 인도에서 연기 스님이 지리산에 들어와 화엄사를 세울 때 차 씨앗도 같이 심었다"라고 한다. 인도는 더운 지방이다. 그 열매를 심었다할지라도 살지 못했을 것이다. 따뜻한 운남성 보이차는 대엽이고 반면 추운 쌍계사는 소엽 차나무이다
지리산 남쪽인 하동이 차나무를 심는 북방 한계선이라 들었다. 차나무는 냉해에 약하다고 한다. 지리산 북쪽인 함양에도 관영차밭이 있지만 정상적으로 생산하진 못한듯 하다. 겨우내 따뜻한 남쪽의 해풍의 영향을 받아야 얼어죽지 않고 좋은 향을 품는다. 정치인 다음으로 거짓말 잘하는 사람이 스님이란 말을 들은적이 있다~^^ ♡♡♡♡♡♡♡♡♡♡♡♡♡♡♡♡♡
828년(흥덕왕 3) 김대렴은 새해를 축하하기 위해 당나라에 사절로 파견되었다. 인덕전(麟德殿)에서 당 문종(文宗)을 알현하고 그해 12월 신라로 돌아오면서 차 씨앗을 가져왔다. 흥덕왕은 씨를 지리산에 심게 하였고, 이것이 점차 보급되어 차 재배가 확산되었다.
신라에서 차가 언제부터 재배되었는지는 분명한 기록이 없다. 『삼국사기』 「설총(薛聰,655~?)」 열전에 '다주(茶酒)'가 나오고, 『삼국유사』에는 경덕왕(742~765) 때의 승려인 충담사(忠談師)가 차를 달이는 도구를 갖고 있었다고 한다. 불교에 '헌다(獻茶) 공양'이라고 하여 부처님께 차를 바치는 예법이 있으므로, 신라 사람들은 법흥왕(재위 514∼540)이 불교를 공인할 무렵에 차의 존재를 알게 되었을 것이다. 『삼국사기』 「흥덕왕」 조에는 선덕왕(善德王,재위 780∼785) 때부터 재배가 이루어지다가 당나라에서 종자가 도입되면서 성행하게 되었다고 기록되어 있다.
김대렴이 당에서 가져온 차는 신품종이었으며, 지리산 토양에 맞아 생산에 성공하면서 다른 지역으로 보급되어 신라의 왕실, 귀족, 승려들이 차를 즐기는 문화가 형성되었다. 사절 파견과 차 도입 외에 김대렴의 활동에 관한 기록은 남아 있지 않다. 출처:네이버 지식백과
■ 차시 배지에 대한 주장 ● 쌍계사가 시배지 쌍계사는 차와도 인연이 깊은 절인데, 당나라에 사신으로 갔던 김대렴(金大簾)이 828년에 차의 종자를 가지고 귀국한 후 지리산에 심었는데 이곳이 우리나라 최초의 차시배지(茶始培地)로서, 쌍계사 계곡 아래에 위치해있다. 그후 진감선사(774~850)가 재배 면적을 늘리고 보급하였다고 한다. 쌍계사는 진감선사와 초의선사의 다맥을 잇는다는 의미에서 매년 법회를 열고 있다. 출처: https://namu.wiki/w/%EC%8C%8D%EA%B3%84%EC%82%AC
● 화엄사가 시배지 차에 대한 기록은 삼국사기 흥덕왕 3년(828)에 중국 당나라에 사신으로 갔던 김대렴이 차 씨앗을 가지고 돌아오니 왕이 지리산에 심게 했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정만우 스님이 쓴 『화엄사적기』에는 544년 인도에서 연기 스님이 지리산에 들어와 화엄사를 세울 때 차 씨앗도 같이 심었다고 했는데 그 자리가 화엄사 아래 장죽전이고, 신라 흥덕왕이 중국에서 차 씨앗을 가지고 온 김대렴에게 지리산에 심으라고 명령한 것도 이를 알고 있었기 때문이라는 내용입니다.
이와 같은 점들을 종합하여 볼 때 녹차의 시배지는 현주민들이 ‘진대밥’이라 부르는 화엄사 밑 장죽전 일 가능성이 매우 큽니다. 현재 장죽전 부근에는 약 8,000평의 평지가 있으며 주변의 소나무 숲과 대나무밭 사이에 차 나무가 자라고 있습니다.
첫댓글진감선사 혜소(慧昭 774~850)는 804년(애장왕 5)에 불도를 닦으러 당나라에 들어가 830년(흥덕왕 5)에 귀국하여 지금의 쌍계사(雙溪寺)인 옥천사(玉泉寺)를 짓고 범패를 가르친 범패승(梵唄僧)으로 유명하다. 진감선사가 가르친 범패는 당나라에 20여 년간 머물면서 배운 9세기 초의 당풍(唐風)이었다. 그 당풍의 범패를 배우러 옥천사에 모인 사람에 대한 기록은 그의 대공탑비문(大空塔碑文)에 다음과 같이 전한다.
"선사는 범패를 청아(淸雅)하게 잘 불러서 그 소리가 금옥(金玉)처럼 맑았다. 슬픈 듯한 곡조에 나는 듯한 소리는 상쾌하고 구슬퍼, 능히 천상 사람들도 기쁘게 할 수 있었다. 그 소리가 먼 데까지 전해져 배우려는 자가 절에 가득 찼는데 가르치기를 게을리 하지 않았다. 지금 우리나라(신라)에서 어산(魚山)의 오묘함을 배우려는 사람들이 앞다투어 코를 막고 배우듯, 옥천사(玉泉寺)에 남아 있는 범음(梵音)을 본받으려 하니, 어찌 소리를 들려주는 것으로써 제도하는 교화가 아니겠는가"라고.
김대렴은 828년에 차씨를 가져오고 진감선사는 804년에 당나라로 유학을 가서 830년에 귀국을 해 삼법화상의 절터에 옥천사(현재 쌍계사)를 건립한다. 최치원(857~?) 868년 당나라 유학 길에 올라 885년에 귀국을 한다. 진감선사(774~850)가 입적하고 36년 뒤인 887년에 진감선사대공탑비의 비문을 짓는다.
https://naver.me/5ew1FyRp 화엄사 스님들의 찻물 옥천은 그 이름이 예쁘다. 이 물은 화엄사 대웅전 왼쪽 모퉁이 움푹 들어간 곳에 있고, 스님들이 예불을 드릴 때 떠놓는 정화수로 이용되고 있다. 부처님께 바치는 물인 셈이다. 그리고 이 물은 물맛이 독특해서 한 번 마셔본 사람들은 잊지를 못한다. 마치 솔향기가 섞여 있는 듯 처음에는 약간 떫은 맛이 나고, 조금 있으면 달콤상큼한 느낌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지리산 깊은 골짜기의 온갖 약재를 정화하여 그 정수를 보내기 때문일 것이다.
https://naver.me/GCu47iKV 차의 문화를 일찍 일으킨 것은 중국이다. 그런데 이것은 중국의 자연환경이 나빴기 때문이었다고 한다. 중국에서는 물이 나쁘기 때문에 찻잎을 끓여서 마실 수밖에 없었고 그래서 차가 발달했다는 것이다. 나쁜 환경을 이용한 것이 오히려 좋은 차(茶)문화를 이룬 셈이다.
따라서 '차(茶)'의 어원도 중국어에서 유래한다. '차'의 북경음은(ch'a)이며 복건성음은 다(ta), 떼(t'e), 테(the)이다. 이 북경음이 만주어에서 'chai'가 되고 몽골어로 차용되어서도 'chai'가 된다. 그리고 차가 귀한 몽골에서는 소젖에 찻잎을 넣고 끓여서 마시는 것이 수테차가 된 것이다. 그리고 러시아어로도 'chai'가 되었다. 또한 이 북경음이 한국말로 차용되어서 '차'가 된 것이며, 일본말로도 '차'가 되었는데 같은 어원임을 알 수 있다.
한편 복건성의 [ta], [t'e], [the]음은 씰크로드를 타고 유럽으로 들어가서 프랑스어에 [t'e]가 되고 독일어에 [th'e]가 되며 영어로는 [tea]가 된 것이다. 결국 중국어에서 기원하는 '차'와 '다'는 세계적인 공통어가 된 셈이다.
첫댓글 진감선사 혜소(慧昭 774~850)는 804년(애장왕 5)에 불도를 닦으러 당나라에 들어가 830년(흥덕왕 5)에 귀국하여 지금의 쌍계사(雙溪寺)인 옥천사(玉泉寺)를 짓고 범패를 가르친 범패승(梵唄僧)으로 유명하다. 진감선사가 가르친 범패는 당나라에 20여 년간 머물면서 배운 9세기 초의 당풍(唐風)이었다. 그 당풍의 범패를 배우러 옥천사에 모인 사람에 대한 기록은 그의 대공탑비문(大空塔碑文)에 다음과 같이 전한다.
"선사는 범패를 청아(淸雅)하게 잘 불러서 그 소리가 금옥(金玉)처럼 맑았다. 슬픈 듯한 곡조에 나는 듯한 소리는 상쾌하고 구슬퍼, 능히 천상 사람들도 기쁘게 할 수 있었다. 그 소리가 먼 데까지 전해져 배우려는 자가 절에 가득 찼는데 가르치기를 게을리 하지 않았다. 지금 우리나라(신라)에서 어산(魚山)의 오묘함을 배우려는 사람들이 앞다투어 코를 막고 배우듯, 옥천사(玉泉寺)에 남아 있는 범음(梵音)을 본받으려 하니, 어찌 소리를 들려주는 것으로써 제도하는 교화가 아니겠는가"라고.
김대렴은 828년에 차씨를 가져오고 진감선사는 804년에 당나라로 유학을 가서 830년에 귀국을 해 삼법화상의 절터에 옥천사(현재 쌍계사)를 건립한다.
최치원(857~?) 868년 당나라 유학 길에 올라 885년에 귀국을 한다.
진감선사(774~850)가 입적하고 36년 뒤인 887년에 진감선사대공탑비의 비문을 짓는다.
당나라 수도인 시안(34.15)과 소림사(34.5)는 위도가 비슷하고 하동과 구례는 약간더 북쪽(35.25)에 위치하고 있다.
참고로 위도 1도에 111k쯤된다
김대렴이 가지고 온 신품종이란 것은 따뜻한 운남성 보이차나무를 개량해 냉해에 견디도록 만든 것을 말한게 아닐까?
https://naver.me/5ew1FyRp
화엄사 스님들의 찻물
옥천은 그 이름이 예쁘다. 이 물은 화엄사 대웅전 왼쪽 모퉁이 움푹 들어간 곳에 있고, 스님들이 예불을 드릴 때 떠놓는 정화수로 이용되고 있다. 부처님께 바치는 물인 셈이다. 그리고 이 물은 물맛이 독특해서 한 번 마셔본 사람들은 잊지를 못한다. 마치 솔향기가 섞여 있는 듯 처음에는 약간 떫은 맛이 나고, 조금 있으면 달콤상큼한 느낌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지리산 깊은 골짜기의 온갖 약재를 정화하여 그 정수를 보내기 때문일 것이다.
일찍이 중국을 유람했던 사람들이 이곳에 와보고는 모두 놀라 바라보며 말하기를 “혜원(慧遠)의 동림사가 우리 땅에 옮겨온 듯 연화세계(蓮花世界)를 평범한 상상으로 비견할 수 없지만 항아리 속에 있는 별천지라는 말은 믿을 만하다”라고 하였다.
대나무를 걸쳐서 물길을 끌어다 계단을 둘러 사방에 흐르게 하고는 비로소 “옥천(玉泉)으로 사호를 삼았다.
(진감선사 대공탑비문)
쌍계사 옥천
"정만우 스님이 쓴 『화엄사적기』에는 544년 인도에서 연기 스님이 지리산에 들어와 화엄사를 세울 때 차 씨앗도 같이 심었다"
인도는 더운 지방이다.
그 열매를 심었다할지라도 살지못했을 것이다.
따뜻한 운남성 보이차는 대엽이고 반면 추운 쌍계사는 소엽 차나무이다
지리산 남쪽인 하동이 차나무를 심는 북방한계선이라 들었다.
차나무는 냉해에 약하다고 한다.
지리산 북쪽인 함양에도 관영차밭이 있지만 정상적으로 생산하진 못한듯 하다. 겨우내 따뜻한 남쪽의 해풍의 영향을 받아야 얼어죽지 않고 좋은 향을 품을듯 하다.
정치인 다음으로 거짓말 잘하는 사람이 스님이란 말을 들은적이 있다~^^
가람배향은 화엄사는 남향이고 쌍계사는 서향이다.
물맛에도 영향을 줄수있을까?
https://naver.me/GCu47iKV
차의 문화를 일찍 일으킨 것은 중국이다. 그런데 이것은 중국의 자연환경이 나빴기 때문이었다고 한다. 중국에서는 물이 나쁘기 때문에 찻잎을 끓여서 마실 수밖에 없었고 그래서 차가 발달했다는 것이다. 나쁜 환경을 이용한 것이 오히려 좋은 차(茶)문화를 이룬 셈이다.
따라서 '차(茶)'의 어원도 중국어에서 유래한다. '차'의 북경음은(ch'a)이며 복건성음은 다(ta), 떼(t'e), 테(the)이다. 이 북경음이 만주어에서 'chai'가 되고 몽골어로 차용되어서도 'chai'가 된다. 그리고 차가 귀한 몽골에서는 소젖에 찻잎을 넣고 끓여서 마시는 것이 수테차가 된 것이다. 그리고 러시아어로도 'chai'가 되었다. 또한 이 북경음이 한국말로 차용되어서 '차'가 된 것이며, 일본말로도 '차'가 되었는데 같은 어원임을 알 수 있다.
한편 복건성의 [ta], [t'e], [the]음은 씰크로드를 타고 유럽으로 들어가서 프랑스어에 [t'e]가 되고 독일어에 [th'e]가 되며 영어로는 [tea]가 된 것이다. 결국 중국어에서 기원하는 '차'와 '다'는 세계적인 공통어가 된 셈이다.
우리나라에는 이 '차'와 '다'계열의 말들이 모두 들어와서 설날에 '차례(茶禮)'를 지내고 '다과(茶果)'를 먹고 마신다. 그리고 우리는 '찻집'이나 '다방'에서 '차'도 마시고 '위스키 티'도 마시는 셈이 되었다.
다반사
茶=艸+人+木
차는 사람을 이롭게하는 풀과 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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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커남차
서울은 커피,부산은 차 문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