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는 그저 아름다웠다
2024. 11.30
18세 이은현
“시집 이름이 뭔가요?”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 ‘동주’라는 영화의 마지막 장면이다. 그저 한줄기의 빛이라도 스며들기를 원했던 윤동주 시인은 말로 표현하기도 어려울 정도로 고통 속에서 살아야 했던 상황을 늘 보냈었다. 하지만 그의 시를 쓸 감성의 불꽃은 아직 꺼지지 않았었다. 그래서 윤동주는 시로 일제에 저항하기 시작했고 결국 후쿠오카 형무소에서 삶을 마감하게 되신다. 그 후 1945년 8월 15일 한국은 독립을 맞이하게 된다. 그는 1945년 2월 16일에 삶을 마감했는데, 그로부터 대략 여섯 달 후에 독립이 이루어진 것이다. 즉 그는 독립하는 한국을 보지 못하고 꽃다운 나이에 세상을 떠난 것이다. 하지만 윤동주의 바람은 이루어지지 못한 것이 아니다. 윤동주의 바람을 상상해 보자면 이랬을 것 같다. ‘나의 시를 기억해주고 나와 함께 시의 세계로 빠져보는 시간을 내 시를 읽는 사람들이 보냈으면 좋겠다.’ 이것을 바랐지 않았을까? 윤동주 시인은 한국이 독립되는 것을 바라왔다. 그 바람은 이루어졌고 또 다른 내가 상상한 바램은 이루어졌을까? 나는 이루어졌다고 생각한다. 지금 이 글을 쓰고 있는 한 소년이 윤동주 시인의 시를 기억하는 사람 중 한 사람이며, 이미 윤동주 시인과 함께 시의 세계로 빠져들었기 때문이었다.
시를 쓰면서 나의 힘들었던 마음은 정리가 되었다. 그리고 그저 작은 기쁨을 선물로 받은 기분도 들었다. 내가 힘들었을 때 썼던 시, 그 시를 다시 한번 떠올려보며 적어본다. 꿈인가:내가 지금 겪고 있는 잊을 수 없는 기쁜 일들, 꿈이 아니라 현실이었으면 좋겠다. 내가 지금 겪고 있는 고난들, 다 꿈이었으면 좋겠다. 만약 이것이 꿈이라면 감았던 눈을 빨리 떠서, 빛나는 삶을 살아가고 싶다. 이것은 꿈이다 이렇게 생각하고 싶다. 이 힘든시절은 다 꿈이다 이렇게 생각하고 싶다.
윤동주 시인이 겪으신 힘듬에 비하면 나에 힘듬은 아무것도 아니라고 생각하고 싶었지 않았을까? 하지만 그때 만큼은 너무나 힘들었기에 이 시를 써던 것이었다. 지금도 이 시를 볼 때 그때 생각이 나기도 하고 지금은 그 힘듬을 잘 이겨내고 지금 이 자리까지 올 수 있었구나라는 감사하는 마음도 들었다. 이렇게 시를 쓰고 나면 적어도 두가지 감동을 줄 수 있는 것 같다. 첫 번째 감동은 쓰고나서 볼 때 받는 위로함이고 두 번째 감동은 쓰고 나서 나중에 볼 때 받는 위로일 것이다.
나는 시를 쓰면서 윤동주 시인의 마음이 이해가 가기 시작했다. 윤동주 시인도 일제 강점기때 그 힘듬과 고통을 시로 풀어쓰셨지 않았을까, 그리고 그렇게 시를 쓰시고 난 다음 조금은 그 고통이 위로가 되었지 않았을까 생각도 해보게 되었다. 지금도 윤동주 선생님께서 살아계셨으면 내 시에 대한 피드백도 받아보고 싶고 푸르른 하늘을 보며 여유 있게 차 한잔 마시며 시에대해 이야기하며 교제하고 싶다.
나에게 윤동주 시인은 저 하늘에 펼쳐진 별 같으며 시원하게 부는 가을 바람같은 시인이다. 오늘도 저 하늘에 펼쳐진 하늘에 박힌 옥구슬 같은 별과 늘 푸르른 하늘과 언제나 한결같이 시원하게 불어와주는 바람을 보며 윤동주 시인을 떠올려 본다. 지금까지 살아계셨더라면 나랑 같이 하늘과 바람과 별을 보며 서로 웃음 짓겠지? 그리고 시를 같이 을프며 하루가 저물도록 이야기를 나누었을 것이다.
오늘도 벌써 하루가 저물어간다.(이 글을 쓰고 있는 날은 11월 29일이다.) 우리 동내는 아파트가 같이 있어서 별을 잘 관찰할 수 없다. 하지만 구름이 끼지 않는 날이면 하늘에 별이 조금씩 보이기 시작한다. 그리고 어두어져도 여전히 멋있는 하늘, 늘 변함없이 나를 품어주는 바람의 손길. 이 세가지를 바라볼 때면 드는 생각이 있다. ‘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는 그저 아름다웠다.’ 윤동주 시인처럼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