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샘통신 208/200628]‘소주의 법칙’(가제)이라는 책
대학 교직원으로 일할 때 친하게 지낸 15살쯤 아래인 후배가 모처럼 전화를 했다. 자기가 7년 전부터 야곰야곰 쓰기 시작한 글을 마쳐 책을 펴내려는데, 먼저 교열校閱과 윤문潤文을 해줄 수 있느냐는 것이다. 그거야 내 ‘전공’이어서 별로 어려운 것도 아니고 시간까지 있다하니 우편으로 보내왔다.
다음날 도착한『소주의 법칙』이라는 가제假題의 원고는 재밌었다. 한마디로 ‘소주를 마시는 법’부터 시작해 ‘소주에 대한 모든 것everything’을 집대성한 것이었다. 영어판, 일본어판, 중국어판도 펴낼 거라는데, 미리 정한 영어책 제목이 “How to Drink SOJU”였다. 아니, 세상에, 소주를 그냥 마시면 되는 것이지 무슨 법칙이 따로 있을까? 그리고 그것이 어떻게 한 권의 책이 될까? 고개를 갸우뚱하면서 머리말을 읽는데 ‘아하-, 이럴 수도 있겠구나’ 싶었다.
‘드링크 인터내셔널 매거진’이 세계적으로 가장 많이 팔리는 180개국의 증류주 브랜드 판매량을 조사했는데, 우리나라 ‘진로소주’가 2001년부터 연속 1위였으며, 2015년도 판매량이 7380만상자(9리터 기준)로, 2위 3,470만 상자보다 두 배를 넘었다는 것이다. 놀라운 것은 그 뒤를 잇는 3위 역시 우리나라의 ‘처음처럼’. 과연 그러할까? 지구촌 사람들이 우리 소주를 애용해서는 아닐 것이고, 우리나라 사람들의 소주 소비량이 어마어마하다는 것의 방증일 터. WHO(세계보건기구)에 따르면, 2015년기준 1인당 알코올 소비량은 한국이 13위, 이중 증류주로는 1위. 2019년 한국갤럽리포트에서 음주자 1158명에게 가장 좋아하는 술 종류를 물으니 61%가 소주, 다음이 맥주 31%, 막걸리 5%, 와인 2%, 양주 1%순이었다는 것이다. 그럴까? 사람들이 막걸리도 많이 마시던데.
아무튼, 글로벌시대에 대한민국의 대표술인 소주에 대한 책이 한 권도 없어서, 일종의 ‘사명감’ 으로 이 책을 썼다는 저자의 너스레가 밉지 않았다. 230여쪽에 달하는 이 책에 대한 글을 비롯하여 본문디자인, 표지디자인, 일러스트, 숱한 그림 등 ‘모든 것’을 혼자 한 ‘1인 출판’이라는 것도 무척 신선했다. 본문보다 더 리얼하게 재밌는 것은 그림과 삽화였다. 어느 누가 소주 따르는 법을 그림으로 그린단 말인가?
목차를 보면 한번쯤 읽어싶은 마음이 들 것같다. ▲소주란 무엇인가(뜻, 재료, 주정, 색과 향 그리고 맛, 도수, 열량, 소주병의 색, 용량, 병뚜껑, 가격, 온도, 슬러시 소주) ▲소주의 종류(전국 소주 브랜드, 소주 모델) ▲소주 마시기 준비자세(준비물, 좌석 배치) ▲소주 마시기 10단계(술자리 앉기, 소주병 잡기, 병뚜껑 열기, 소주 권하기, 소주 따르기, 소주잔 잡기, 소주 받기, 소주잔 부딪치기, 소주 마시기, 소주잔 놓기) ▲소주와 놀이(주령구, 주류마블) 등 술게임 ▲소주 칵테일(소맥과 꿀주, 권주가, 소주 마이크) ▲안주와 해장(안주의 종류, 차수 변경, 숙취 해소음료) ▲소소한 소주 이야기(주도酒道의 기원, 소주와 문학, 소주와 노래, 소주와 영화, 소주박물관, 소주와 유튜브 등)
제법 그럴 듯하지 않은가? 이 원고를 무궁화호(옛날로 치면 비둘기호일까? 오수에서 수원까지 3시간 반정도 걸린다)를 타고 올라오며 모두 읽고, 맞춤법이나 띄어쓰기, 틀린 한자 등에 대해 꼼꼼이 바로잡고, 엉킨 문장들을 다듬는 작업은 흥미로웠으나, ‘소주’라는 단어가 아마도 수백 번 나오는 바람에 술을 마시지 않고도 이미 취해 있었다. 술이 우리 생활의 일부분이자 생필품인 것에 착안, ‘소주 올 가이드SOJU All Guide)’ 책이 있을 법하고, 있어야 할 듯싶다.
문제는 저자가 공들인 만큼 과연 ‘피드백feedback’이 있을까. 더구나 요즘처럼 책을 읽지 않은 시대에. 하지만 요즘 젊은 세대들의 가치관이나 생활관이 우리와는 천지차이로 현격한 만큼, 어쩌면 이런 실용서인지 전문서인지, 이런 책을 선호할 수도 있겠다 싶다. 또한 외국관광객들에게는 더욱 필요할 것이고. 중요한 것은 저자가 7년 전부터 꼭 이런 책을 내야겠다고 정한 목표를 잊지 않고, 바쁜 회사생활과 일상에서도 틈틈이 써서 완성했다는 ‘성취감成就感’이 아니겠는가.
이렇게 잠시도 가만히 있지 않고, 뭔가를 하려고 노력한다는 것이 중요하고 귀한 일이라는 생각이다. 서양의 어느 철학자가 “언어言語(말하기)는 존재存在의 집”이라고 했다는데, 나는 언어에 작문作文(글쓰기)을 추가하고 싶다. ‘말하기와 글쓰기는 존재의 집’이라고 말이다. 그 친구의 가상한 ‘노오력’에 경제적 비용이나 이해득실에 상관없이 박수를 보낸다. 그는 이미 2014년『대학홍보의 법칙』(한울아카데미)이라는 홍보전문서를 펴내기도 했다. 그 책에는 나에 대한 제법 긴 인터뷰가 실려 있다. 그 인터뷰 말미에 나는 이렇게 말했다. “홍보PR(Public Relation‧弘報)를 잘 하면 말도 잘 하게 되고, 글도 잘 쓰게 된다. 또한 인간성까지 좋아진다. 그러니, 대한민국 홍보맨들이여, 머리카락을 쥐어뜯으며 홍보를 열심히 해보시라”라고. 흐흐.
이 친구는 이런저런 법칙法則을 좋아하는 것같다. 이번에 펴낼 책도『소주의 법칙』인 것을 보면. 나같으면 ‘소주의 법칙’보다는 ‘소주의 정석定石’이라고 할 것같은데. 아무튼, 주목받는 신간이 되었으면 좋겠다. 그런데, 코로라라는 몹쓸 전염병 때문에 소주 마시는 기회도 자꾸 사라지는 게 아닌가 걱정이 된다. 게다가 한국의 소주문화를 맛보려고 밀물처럼 몰려들여야 할 외국관광객들이 썰물같이 빠져나간다면, 우리의 ‘국민주’인 소주의 판매량이나 음주량에도 치명적인 영향을 미치지 않을까. 그 친구의 건필健筆과 건강健康 그리고 건승健勝을 빈다. 아무튼, 오랜만에 '빨간 펜(교열이나 윤문을 할 때 대개 빨간색 필기구를 사용한 데서 나온 말) 작업'을 하면서 재밌고 유익했다.
첫댓글 술을 안 마시지만
술은 사람이 마셔야지
술이 술을 마시면 큰일난다는건
잘 알고있는데
이제 소주 마시는 법칙도 알게되겠네.
와인에 대한 책이 많은데,
소주에 관한 연구가 궁금하네.
다음에는 막걸리 연구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