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9
공기놀이
섬사람 모두 가연이를 깟년이라 불러도 어린최사장은
언제나 가연이를 가연이누나 라고 불렀다.
가연이를 가연이라 부르는 사람은 섬사람들 중
최사장이 유일한 사람이었다.
바로 여기서 최사장은 머리털 나고 처음으로
사람으로부터 감동받는 것이 어렵지 않다는 것을 학습하는 계기가 되어 훗날 전자제품판매사장이 되어서 영업수완을 남다르게 할 수
있었다.
인간이 인간을 감동시키면 되돌아오는 파장은 몇
배의 잉여가 붙는다. 최사장이 어린시절 이런 원리를 체득했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었다.
최사장이 깟년이를 가연누나라고 부르자 쌀쌀맞고
새침떨던 깟년이는 최사장에게 지금까지 없었던 호의를 보였다.
“얘, 점기야.”
“오미, 가연이누나.
불렀으라?”
“너 나하고 놀고 싶었재?”
“호미, 그걸 말이라고
한다요?”
“그럼 앞으로 나하고 놀아뿐져. 징허게 놀아
줄꺼잉께.”
“참말이다여?”
그러나 문제가 있었다.
그토록 까탈스럽게 굴던 깟년이가 놀긴 놀아
준다는데 마땅하게 둘이 함께 할 놀이가 없었다.
“근디 있지라?”
“말해봐. 이제부터 네가 좋아하는 거라면 뭐든지
다 들어 줄꺼잉께 암 걱정말고 말해 뿐져.”
최사장은 깟년이의 눈치를 살피며 잠시 머뭇거리다
어렵게 말을 꺼냈다.
“축구하면 안되지라?”
“야!”
갑자기 깟년이의 태도가 싹 달라졌다. 최사장은
간이 콩알만 해져 깟년이를 바로 쳐다보지도 못했다.
“내가 남자냐? 축구하게?”
“그럼 야구는 어떠냐?”
“야! 야구는 장갑이 있어야 할 거 아녀? 이
섬에서 장갑이 어딧냐?”
“그럼 뭐해? 무궁화꽃이
피었습니다혀?”
“바보야 그건 둘이서 하는 거 아녀라. 최소한
셋은 되야 하는겨. 알았능가?‘
“그럼 뭐하고 논다야?”
깟년이도 곰곰 생각하더니 불시에
말했다.
“오메, 존거 있어야.”
“뭔디?”
“공기받기 어떠냐?”
“남자가 무슨 공기놀이라냐?”
“야! 쪼꼬만게 무슨 남자냐? 넌 아직 머슴애야
알았능가?”
최사장은 깟년이와 쪼그리고 앉아 돌맹이질이나 할
상상을 해본 후 한숨을 팍 쉬었다.
“싫으냐? 싫으면 관두어야. 누가 억지로 하자는
거 아닝께.”
최사장은 깟년의 말에 기겁했다.
섬에서 같이 놀아 줄 마땅한 친구가 없는
최사장으로서는 놀랠만한 깟년이의 말이었다. 또래 남자친구가 몇 있지만 모두 키도 크고 덩치도 커서 최사장은 게임도 안 되었다. 어쩌다 함께
어울려 놀아도 기껏 또래들 심부름이나 해주는 처지였던 최사장은 이 절호의 기회를 놓칠 수 없었다.
“오미, 무신 말을 그렇게 해쌌는디야?
누나라는거이?”
“그럼 공기할꺼냐?”
“본인이 본시 공기받기에 소질이 보장되어
있당께.”
“그래? 너 여자애로 태어날 걸 잘못태어난거
아녀?”
“흐미. 무슨 가당찮은 말을 다하요?
누나랑게?”
“이 세상천지에 남자가 공기받기하는 법없는디, 넌
별종이라 그런가벼.”
“오이, 오미. 나는 아즉 남자가
아니라했잖녀?”
“그래 맞어라. 넌 아즉
맨숭잉께.”
“지곰 모시라캤소? 맨숭이가
뭐이다요?”
깟년이는 갑자기 얼굴이 빨개져 말을 어물거리며
어물쩍 넘어가려고 했다.
“그게 말이다. 오메 맞아라. 맨숭이는말이재.
맨손으로 숭어잡는 놈을 말하는겨. 알았능가?”
최사장은 깟년이의 말이 앞뒤가 안 맞다는 감이
들었지만 무료한 섬 시간을 줄일 수 있는 깟년이와의 공기받기 기회를 놓칠 새라 아무 조건이나 의문부호를 붙이지 못했다.
“머하냐? 안할꺼이냐?”
깟년이가 최사장을 질타했다.
“해야재!”
“그럼 공기 주어와. 내 마음에 쏘옥 드는걸로
주어와야되는겨. 알았능가?”
“녜. 알았당께요.”
최사장은 한살 터울의 깟년이에게 깍듯이 예의를
차린 후 공기받기할 돌멩이 찾으러 몽돌 밭으로 내달렸다.
그렇게 해서 최사장은 깟년이와 당장 공기놀이를
시작했다.
그런데 이 무슨 조화냐?
그날 이후 최사장은 깟년이와의 공기놀이에 완전
중독되고 말았다.
중독정도가 아니었다.
매일 틈만 나면 공기받기를 해야 할 정도로
심취했다.
최사장이 이렇게 열을 올린 공기받기 자체가 결코
재미있는 놀이는 아니었다. 정말 지겹도록 따분한 놀이였다. 그러나 이 세상 아무도 모르는 즐거움이 공기받기 속에 숨어 있었다. 그 즐거움을
최사장은 어린나이에 발견한 것이다.
그 즐거움은 갯벌에서 엄청나게 큰 조개를 잡거나
학교성적이 60점 넘을 때의 기쁨보다 더 화려하고 찬란했다.
한마디로 어린최사장의 무미했던 삶에 기를 주고
인생을 장밋빛으로 물들였다.
그래서 산다는 것이.
살아 있다는 것이 보람차고 신나는
것이었다.
첫댓글 최사장과 가연이 소꼽장난 시절 잘보았슴니다.
누구나 한번 즘 겪었던 지난일이죠?
좋은날되세요
공기놀이하는 천진 난만함을 그려주셨네요..
오랜만이네요 빨간립스틱님
항상 빨갛게 열정으로 한주일 보내세요
아름 다운 섬마을이 한눈에 보이는듯 합니다.이성이 싻트는 것이라고 할까?
두 아이들의 노는 모습이 귀엽기만 할것 같네요..
잠시 동심의세계를 상상해 보았슴니다.
아직 감성이 소년 같습니다...ㅎ
고운 밤되시구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