괴로움을 소멸시키는 세 가지 방법
누구나 느낌으로 살고 있어서 괴로움 없이 살지 못한다. 사람은 모두 느낌으로 사는데, 느낌은 빠르게 변하는 특성이 있어 때로는 혼란을 일으킨다. 이처럼 빠르게 일어나고 사라지는 느낌을, 있는 그대로 알아차리면, 느낌이란 원래 이런 것이라고 알아 괴로움을 겪지 않는다. 하지만 이런 느낌을, 있는 그대로 보지 않고 주관적으로 보면 빠르게 변하는 느낌이 무상해서 괴로울 수밖에 없다.
미얀마에서 수행할 때 어느 날 스승께서 먹는 것을 느낌으로 알아차렸더니 괴로워서 먹을 수가 없다고 말씀하셨다. 이때는 이 말의 뜻을 어렴풋이 알았지만, 완전하게 알지 못했다. 지금 그때의 말씀을 돌이켜보면, 느낌은 빠르게 변해서 무상의 지혜를 드러낸 것이고, 무상을 괴로움이라고 안 지혜였다.
이런 과정을 거쳐 내 힘으로 괴로움을 해결할 수 없을 때 무아의 지혜가 나서 비로소 몸과 마음의 성품을 아는 지혜가 난다. 그러므로 이렇게 생긴 괴로움을 부정적으로 보면 한없이 괴롭고, 긍정적으로 보면 단지 하나의 현상에 불과해서 괴로움을 극복할 수 있다. 이때 느낌을, 있는 그대로 알아차리면 대상과 아는 마음을 서로 분리하는 위빠사나 수행을 해서 괴로운 느낌이 하나의 법으로 바뀐다.
이 법이 바로 알아차릴 대상이다. 이때 괴로움이 대상이 되면 단지 하나의 현상에 불과하다. 이처럼 괴로움을 하나의 대상으로 삼아 있는 그대로 알아차린다고 괴로움이 소멸하는 것은 아니다. 괴로움이 소멸하는 것도 과정이라 지혜가 얼마나 성숙했는가에 따라 소멸도 과정을 거치며 사라진다. 대상으로 알아차려서 순간적으로 사라지는 괴로움과, 일시적으로 사라지는 괴로움과, 완전하게 사라지는 괴로움이 있다.
이것이 지혜의 차이로 생기는 결과다. 이와 같은 괴로움에 대한 소멸을 전제로 하고 살펴보자. 어떻게 하면 괴로움을 소멸시킬 수 있는가? 첫째, 괴로움을 소멸시키려면 마음이 현재로 오도록 해야 한다. 시제가 현재를 향할 때는 알아차림이 있다. 알아차림은 마음을 현재로 오게 하는 깨어있는 행위로 깨끗한 마음을 만든다.
이때 과거의 후회와 미래의 두려움이 사라진다. 현재를 아는 깨어있는 마음은 각성한 상태라서 탐욕과 성냄과 어리석음이 침투하지 못한다. 이렇게 현재로 오는 알아차림을 문을 지키는 문지기라고 한다. 마음이 현재로 올 때는 번뇌라는 도둑이 들어와 나를 지배하지 못한다. 마음이 현재가 아닌 과거나 미래로 가는 순간 온갖 번뇌와 함께 살아야 한다.
둘째, 괴로움을 소멸시키려면 현재의 몸과 마음을, 있는 그대로 알아차려야 한다. 첫 번째 방법인 마음이 현재를 향하고 있는 것으로는 부족하다. 마음이 현재로 와서 무엇인가를 대상으로 알아차려야 한다. 만약 마음이 대상이 없으면 즉시 다른 것을 향해서 떠난다. 그러면 마음이 고요해져서 법을 보는 집중력이 생기지 않는다.
마음의 기능은 항상 대상을 아는 것이다. 마음이 대상을 안다는 것은, 마음은 대상을 향해 기울이는 특성이 있는 것을 말한다. 그러므로 마음이 현재로 와서 항상 지금 여기에 있는 몸과 마음을 대상으로 알아차려야 한다. 그리고 몸의 호흡을 알아차리는 것이 가장 효과적이다. 호흡은 내가 살아있는 동안에는 언제나 있는 것이라서 대상으로 삼기에 가장 좋다.
이때의 대상을 법이라고 하며, 이것을 담마(dhamma)라고 한다. 담마는 크게 두 가지의 뜻이 있는데 대상과 진리다. 마음이 대상을, 있는 그대로 알아차리면 대상이 가지고 있는 성품인 무상, 고, 무아의 진리를 알 수 있다. 그러므로 마음이 몸의 호흡을 알아차리는 순간에는 탐욕과 성냄과 어리석음이 소멸하여 이 순간에 괴로움도 소멸한다. 이러한 담마를 실재, 있는 그대로, 진리라고 한다.
셋째, 괴로움을 소멸시키려면 몸과 마음에서 일어나는 호흡이나 모든 현상을 전부 원인과 결과로 보아야 한다. 이때의 원인은 앞선 행위 때문에 생긴 것이라서 업이라고 한다. 그리고 이러한 원인 때문에 생긴 결과가 업의 과보다. 이것이 인과응보다. 무엇이나 원인이 없는 결과는 없다. 그러므로 나의 괴로움도 과거의 원인으로 생긴 현재의 결과다.
이러한 원인과 결과는 현상계의 질서고, 자연의 이치다. 그래서 과거의 원인으로 생긴 현재의 결과라고 알면 괴로움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관용이 생긴다. 이때 이러한 관용은 저절로 생기는 것이 아니고 원인과 결과를 아는 지혜가 괴로움을 받아들이게 한다. 업과 과보의 지혜는 먼저 이미 생긴 괴로움은 받아들이고, 다음에 새로운 원인을 만들어 괴롭지 않도록 하는 것이다.
이때 새로운 원인이 바로 현재로 와서 몸의 호흡을, 있는 그대로 알아차리는 행위다. 세상의 모든 일은 일정한 진행 방식이 있다. 이것이 인과응보고, 자연의 이치고, 유전자가 전해지는 유전적 요인이고, 연기의 회전이고, 윤회의 흐름이다. 그래서 원인과 결과를 벗어난 것은 없다. 오직 아라한만 원인이 없어 결과가 없다. 이것이 괴로움의 완전한 소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