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리콘밸리엔 '넷플릭스에 당했다(Netflixed)'란 말이 있다. 전 로이터통신 기자 지나 키팅이 지난 2012년에 쓴 저서 '넷플릭스드'에서 나온 단어다. 지난 1997년 리드 헤이스팅스(Reed Hastings), 마크 랜돌프(Marc Randolph)가 창업한 이후 20년 만에 미디어 지형을 근본에서부터 바꿔놓은 넷플릭스의 파괴적 혁신을 동사처럼 만들어낸 단어다.
실제 창업 이후 첫 10년간 넷플릭스는 비디오·DVD 대여(렌탈)를 바꿔놨다. 예전엔 집에서 영화를 보려면 집 근처 비디오 가게에 가서 비디오 테이프나 DVD를 빌려야 했다. 이것을 넷플릭스는 집으로 배달해주는 모델을 만들어 시장을 파괴했다.
비디오 가게에 가지 않고 넷플릭스 월정액 회원이 온라인으로 보고 싶은 영화를 클릭하면 DVD를 우편으로 보내주는 방식이었다. 회원은 영화를 다 본 후에 배달됐던 봉투에 담아서 우체통에 넣으면 된다. 연체료 없는 모델로 선풍적 인기를 모아 2002년 상장에 성공했고 2005년에는 회원 수가 420만명을 돌파했다. 넷플릭스가 승승장구하는 사이 미국 최대 비디오 렌탈 체인 '블록버스터'가 파산했다. 블록버스터는 한때 직원 6만명, 미국에 약 8000개의 대여점을 보유하고 있었다. 블록버스터의 파산은 디지털 카메라를 발명하고도 새 흐름에 대처하지 못해 파산한 '코닥(Kodak)'처럼 미디어 산업의 상징적 사건이 됐다.
리드 헤이스팅스 넷플릭스 CEO는 여기에 만족하지 않고 지난 2007년 창업 10년 만에 '온라인 스트리밍' 서비스를 전격 론칭하는 파괴적 혁신을 단행한다. 누적 배송 10억개를 달성해 캐시카우로 자리매김한 DVD 렌탈 사업을 서서히 뒤로 물리고 서버에서 콘텐츠를 직접 전송하는 스트리밍 서비스를 시작한 것이다. 영화 다운로드가 이용자들에게 익숙해지는 트렌드조차 건너뛰고 실시간 스트리밍을 선택한 것이다. 이어 2012년에는 자체 제작 드라마 '하우스 오브 카드'를 론칭해 크게 히트시키고 2016년에는 130여 개국 동시 서비스를 론칭하면서 진정한 글로벌 미디어로 거듭나고 있다.
유튜브 레드, 아마존 스튜디오 등 경쟁사는 물론이고 NBC유니버설, ABC, 폭스 등 미국의 쟁쟁한 지상파 방송사가 경쟁적으로 스트리밍 서비스를 론칭하고 있는 것도 넷플릭스에 당하지 않기 위한 몸부림으로 풀이된다.
창업 20년, 스트리밍 서비스 10년 만에 미디어 지형을 완전히 바꾼 리드 헤이스팅스 최고경영자(CEO)를 미 캘리포니아주 로스 가토스(Los Gatos) 본사에서 만났다. 글로벌 기자 약 50명을 초대해 넷플릭스의 최근 기술 동향 등을 발표한 '랩스 데이'에 매일경제가 국내 언론으로는 유일하게 참석했다. 리드 헤이스팅스 CEO는 질의응답 후에도 테라스에 나가 맥주를 마시면서 자연스럽게 대화를 이어갔다.
리드 헤이스팅스 CEO는 지금까지 넷플릭스가 안방극장, 즉 TV 시장을 재편했다면 앞으로는 극장, '영화'를 보는 방식을 바꾸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그리고 오는 6월 개봉 예정인 봉준호 감독의 '옥자(Okja)'에 대한 큰 기대를 숨기지 않았다. 헤이스팅스 CEO의 모두 발언과 질의응답, 그리고 기자와의 개별 대화를 인터뷰 형식으로 정리했다.
― 창업 이후 지금까지 해낸 성과도 대단한데, 특히 지난 10년간 넷플릭스는 미디어의 성공 공식을 바꿔놨다. 감회가 남다를 것 같다.
▷나는 주문형 비디오(온디멘드)에 평생을 바치고 있다. 리니어 TV(Linear TV·방송사에 의해 일방적으로 콘텐츠가 전송되고 시청자는 동일한 내용을 보는 방식을 뜻함)는 1세대 기술이다. 지금은 온디멘드 비디오 세상이다. 이게 더 자연스럽고 힘이 있으며 새로운 비디오 콘텐츠를 만들어내고 있다.
지금은 미디어 분야 창의적 아이디어는 모두 온디멘드에서 나온다. 과거엔 TV 네트워크를 시작하려면 돈도 많이 필요하고 승인도 따로 받아야 했다. 지금은 누구나 TV 스튜디오를 만든다. 2007년 스트리밍 서비스를 시작할 때 옛날 스타일의 소프트웨어뿐이었다. 그래도 시작했다. 10년 만에 큰 변화가 오고 있다. 앞으로 넷플릭스에서는 '버퍼링'을 없앨 생각이다. 스트리밍을 제대로 즐기는 데 버퍼링이 방해를 했다. 지금 태어나는 아이들은 아마 "버퍼링이 무엇인가요"란 말을 하게 될 것이다.
― 넷플릭스가 집중하고 있는 것은 무엇인가.
▷과거에도 지금도 개인화다. 더 많이 넷플릭스에 접속하고 미디어를 즐길수록 더 많은 취향을 알아낼 수 있다. 프랑스, 미국, 인도인 각각 50명을 뽑아 놓으면 취향은 엄청나게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같은 나라에 있다고 취향이 다른 것이 아니다. 오히려 서울의 한 동네에 사는 이웃 사람보다 저 멀리 미국이나 브라질에 있는 사람이 자신의 취향과 비슷할 수 있다. 개인화의 가치는 이용자들이 콘텐츠를 통해 위대한 경험을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콘텐츠를 정교하게 분류하고 개인 맞춤형 추천을 통해 당신은 보고 싶은 것에 집중할 수 있다. 모든 콘텐츠를 동일하게 보는 리니어TV와 인터넷TV는 비교할 수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