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5월 15일 부활 제 5주일
<나는 너희에게 새 계명을 준다. 서로 사랑하여라.>
✠ 요한이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13,31-33ㄱ.34-35
방에서 31 유다가 나간 뒤에 예수님께서 말씀하셨다. “이제 사람의 아들이 영광스럽게 되었고,
또 사람의 아들을 통하여 하느님께서도 영광스럽게 되셨다.
32 하느님께서 사람의 아들을 통하여 영광스럽게 되셨으면, 하느님께서도 몸소 사람의 아들을 영광스럽게 하실 것이다.
이제 곧 그를 영광스럽게 하실 것이다.
33 얘들아, 내가 너희와 함께 있는 것도 잠시뿐이다.
34 내가 너희에게 새 계명을 준다. 서로 사랑하여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처럼 너희도 서로 사랑하여라.
35 너희가 서로 사랑하면, 모든 사람이 그것을 보고 너희가 내 제자라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자식이 잘되면 부모의 자랑거리입니다.
세상을 살면서 다른 사람들로부터 칭찬과 박수갈채를 받거나 잘 했다고 상을 받으면 어린이나 어른이나 기분이 참 좋습니다. 아이들이 학교를 다니면서 상을 받으면 그 부모들이 더 좋아합니다. 우리가 어렸을 때 학교에서 상장을 받으면 사진을 걸어두는 액자에 잘 붙여서 벽에 걸어두고 손님이나 사람들이 집에 오면 자랑을 하는 것이 부모님들의 가장 큰 즐거움이었습니다. 자식들이 잘되고 무슨 일이든지 잘하면 가장 기뻐하고 가장 행복해 하는 것이 그의 부모들입니다. 자식의 잘못도 잘하는 것으로 착각하고 자식들의 일에 긍지를 가지고 삶의 희망을 찾으며 그 속에서 생의 전부를 걸고 있는 것이 어버이들입니다. 마찬가지로 제자들이 잘되고 제자들의 행동이나 학문이 탁월하면 가장 반갑고 좋아하고 제자를 둔 것을 크게 자랑으로 생각하는 것이 제자들의 스승입니다.
한 나라의 임금님도 마찬가지입니다. 충신을 두어서 나라의 정치를 잘하고 백성들로부터 칭송을 들으면 그 모든 공로는 임금에게 돌아가고, 임금은 그 충신들을 극진한 예로 대접하는 것이 동서고금(東西古今)을 통해서 한결 같은 원칙입니다. 그래서 효경에서는 이렇게 가르치고 있습니다.
“신체발부는 수지부모라 불감훼상이 효지시야요 입신행도하여 양명어후세하여 이현부모가 효지종야니 부효는 시어사친이오 중어사군이오 종어입신이니라.”
身體髮膚는 受之父母라 不敢毁傷이 孝之始也요 立身行道하여 揚名於後世하여 以顯父母가 孝之終也니 夫孝는 始於事親이오 中於事君이오 終於立身이니라.
이 말은 우리가 많이 듣고 알고 있는 내용입니다. <신체와 머리털과 피부는 부모에게서 받은 것이라 감히 훼상하지 않음이 효의 시작이요, 입신하여 도를 행하고 이름을 후세에 날려, 이로써 부모를 드러나게 함이 효의 마침이니, 대저 효는 부모를 섬기는데서 시작하여 다음으로 임금을 섬기고, 끝으로 입신하는 것이니라.>라는 뜻으로 볼 수 있습니다.
행도입신(行道立身)이라는 말은 '도를 행하여 자랑스러운 자녀가 되고 제자가 되는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정말 이는 말로 설명할 수 없는 완벽한 자녀이며, 완전한 크리스천이 되는 것입니다. 하느님의 은총으로 하느님의 사랑 받는 자녀가 되는 것이 효도의 마지막입니다. 자녀와 제자가 그러해야 하며, 신하된 자가 당연히 그렇게 입신(立身)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은 가슴이 무너지는 아픔을 겪으십니다. 제자들로부터 배신을 당하기 때문입니다. 정치적이든 경제적이든, 사회적 현실이든, 배신은 정말 뼈아픈 일입니다. 특히 사랑하는 자식들이나 제자로부터의 배신은 정말 견디기 어려운 아픔이며 도저히 말로는 설명할 수 없는 아픔인 것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유다의 배신은 예수님 구원사업의 결정적인 계기를 만 들어준 사건일 뿐이라고 말하기도 하지만 사탄은 쾌재를 불렀을 것입니다. “봐라, 예수의 제자까지도 내 유혹에 넘어갔다. 너희들의 신앙이 아무리 기고만장(氣高萬丈)하여도 나를 이기지 못할 것이다.”라고 자신만만하게 자랑할 것입니다. 그와 동시에 베드로의 배신도 한 몫을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목숨까지 버리면서 주님을 지키고, 죽음도 불사하겠다는 베드로의 약속도 결국은 사탄의 유혹 앞에서 물거품처럼 사라질 수 있습니다. 주님을 아프게 한 사실은 제자들의 호언장담입니다. 아무 것도 모르면서 큰소리치는 호언장담을 주님은 안타깝게 생각하시고 주님을 아프게 하였습니다. 신앙인으로 살면서 겸손하게 크리스천이 되는 것이 중요하지만 그 모든 것을 잊고 교만한 마음으로 언제나 주님을 따를 수 있다고 장담하면서 살고 있습니다. 겸손하게 주님을 따르겠다고 안으로 결심하고 말없이 실천하는 사람은 정말 복될 것입니다. 나는 주님께서 얼마나 아파하실지 알지도 못하면서 교만하게 장담하기도 합니다. 하루에도 셀 수 없을 만큼 주님을 배반하면서 얼굴을 버젓이 들고 뻔뻔스럽게 살아갑니다. 이런 내 모습이 주님 보시기에 얼마나 가증스러워하실까? 이제는 마음을 다스려 다시는 쓸데없는 것에 마음을 빼앗기지 않도록 결심해봅니다.
저희의 호언장담에 항상 마음 조리시며 걱정하시는 주님!
하루에도 수없이 배반하고 사탄의 유혹에 빠져 살고 있는 불쌍한 저희들을 어여삐 여기소서! 당신의 사랑 안에 살면서도 그 사랑이 얼마나 따뜻하고 포근하게 느끼지 못하고 순식간에 의심하고 외면하면서 살고 있습니다. 당신의 십자가의 길이 영광의 길임을 깨닫게 하시고 저희도 그 길을 올곧게 걸을 수 있도록 이끌어 주시어 이제 저희가 사랑스러운 당신의 효자로 새로 나게 하시어 진정한 크리스천으로 감사의 기쁨을 찾게 하소서.
<하느님께서는 그들의 눈에서 모든 눈물을 닦아 주실 것이다.>
▥ 요한 묵시록의 말씀입니다. 21,1-5ㄴ
나 요한은 1 새 하늘과 새 땅을 보았습니다. 첫 번째 하늘과 첫 번째 땅은 사라지고 바다도 더 이상 없었습니다.
2 그리고 거룩한 도성 새 예루살렘이 신랑을 위하여 단장한 신부처럼 차리고
하늘로부터 하느님에게서 내려오는 것을 보았습니다.
3 그때에 나는 어좌에서 울려오는 큰 목소리를 들었습니다. “보라, 이제 하느님의 거처는 사람들 가운데에 있다.
하느님께서 사람들과 함께 거처하시고 그들은 하느님의 백성이 될 것이다.
하느님 친히 그들의 하느님으로서 그들과 함께 계시고
4 그들의 눈에서 모든 눈물을 닦아 주실 것이다. 다시는 죽음이 없고 다시는 슬픔도 울부짖음도 괴로움도 없을 것이다.
이전 것들이 사라져 버렸기 때문이다.”
5 그리고 어좌에 앉아 계신 분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보라, 내가 모든 것을 새롭게 만든다.”
축일5월 15일 성 이시도로 (Isidore)
신분 : 농부, 평신도
활동 연도 : 1070-1130년
같은 이름 : 이시도루스, 이시도르, 이시돌
에스파냐의 마드리드(Madrid) 근교에서 태어난 성 이시도루스(Isidorus, 또는 이시도로)는 마드리드 근교에 있는 후안 데 베르가스(Juan de Vergas)의 영지에서 노동자로 일하였다. 그러나 그의 신심은 매우 깊었고, 수많은 기적을 행한 것으로 알려졌으며, 자신도 가난하였지만 비록 적은 것이라도 함께 나누면서 살았다. 그는 5월 15일에 마드리드에서 운명하였는데, 그의 아내 마리아 토리비아(Maria Toribia) 역시 남편 못지않은 신심과 가난을 살았기 때문에 성녀 마리아 데 라 카베사(Maria de la Cabeza, 9월 9일)라는 이름으로 공경을 받는다.
실로 그는 노동자, 이웃 그리고 그리스도인의 모범이었다. 국왕 필립 3세가 중병에 걸렸을 때 그의 전구로 회복되자 그의 시성 운동을 적극 장려하여 1619년 교황 바오로 5세(Paulus V)에 의해 복자품에 올랐고, 이어 1622년 3월 12일 교황 그레고리우스 15세(Gregorius XV)에 의해 시성되었다. 그는 농부와 마드리드 시의 수호성인이다. 또한 그는 1947년 미국 국립 농촌 생활 위원회의 수호성인으로 선포되었다.
오늘 축일을 맞은 이시도로 (Isidore) 형제들에게 주님의 축복이 가득하시길 기도드립니다.
야고보 아저씨
첫댓글 주님 저희의 기도를 들어주소서..아멘.
행도입신(行道立身) 마음에 담습니다..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벼리님
주님의 은총을 기도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