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마다 산책은 꼭 해야지, 결심하고 편백나무숲으로 향합니다.
편백나무숲으로 가는 길.
맨발걷기도 할 수 있도록 길을 만들었고, 만년청을 심었네요.
예전에 왔을 때는 만년청이 이곳저곳 아무렇게나 나 있었는데 일일이 옮겨다 심은 듯해요.
저렇게 길을 내는 일이 얼마나 힘든지 알기에 고마운 마음으로 만년청을 따라 걸었습니다.
숲 입구에 있는 명상센터.
정식명칭은 와락당(臥樂堂)
오늘도 오전 10시에 방문객이 있다고 합니다.
아무쪼록 많은 사람들이 달보드레숲을 이용했으면 좋겠어요.
폭신폭신해서 나름 걷기 편했어요.
요즘 무릎이 살살 아프기 시작했는데 이곳에 오고나서 증상이 훨씬 덜해졌어요.
숲기운인가?
오늘도 그냥 지나칠 수 없는 슬로보트....
둥둥 보트를 타듯 몸을 맡겨봅니다.
그러다 싫증나면 하늘을 올려다 보면 되어요.
한참 놀고 숲을 내려오는데 바위틈에서 뭔가가 튀어나와 깜짝 놀랐어요.
후다닥 도망치는데 바로바로 멧토끼였어요. 제법 몸집이 큰 토끼.
내일 아침에는 살금살금 올라와야겠어요. 토끼 놀라지 않게. ㅋ
그나저나 또 만날 수 있으려나.
달보드레숲 동백꽃도 이제 슬슬 피기 시작하네요.
지난 번 내린 눈 때문에 활짝 핀 동백꽃은 누렇게 얼어버렸어요.
오늘 가기로 한 옥매광산은 해남군 황산면에 있어요.
포장도로가 끝나는 지점에서 만난 표지판.
차 두 대가 겨우 지나갈 수 있는 비포장 도로를 한참 가니 바닷가가 나오네요.
아무도 없는 바닷가에 차를 세우고, 바다를 바라보니 왠지 황량하고 쓸쓸한 느낌이 들었어요.
바람은 또 어찌나 센지요.
제일 먼저 만나게 되는 추모 기념탑.
118명의 이름이 있어요. 당시 한 분은 생존해 계셨다고 했는데 지금은 어떤지 모르겠네요.ㅠㅠ
2017년 1350여명의 해남군민이 1460만원을 모아 옥선창(옥동선착장) 바닷가에 ‘옥매광산 118인 희생광부 추모비’를 건립했습니다.
바람이 불 때마다 동그란 금속 종이 소리를 내는데 '우리는 정말 억울합니다.'라고 하는 듯.
아마 희생광부의 숫자를 나타내는 118개가 아닐지.
노동자들이 채굴한 명반석을 삭도(공중에 건너질러 설치한 강철선에 운반기를 매달아 화물이나 사람을 운반하는 장치)를 통해 옮겨 보관하던 바닷가 창고.
옥매 광산은 일제가 군수품의 원료인 명반석을 얻기 위해 개발한 곳으로, 일제강점기 국내 강제동원 중 가장 큰 규모의 동원지로 알려져 있습니다. 해발 173미터였던 옥매산 봉우리는 깎여 나가 협곡이 됐고, 이어진 해안가에는 콘크리트로 지어진 명반석 저장창고가 아직 그 원형을 유지한 채 남아 있네요.
전쟁 말기에 이르러 이 지역의 광부들은 강제로 제주도로 끌려가 굴을 파는 일에 동원되었습니다.
1945년 해방이 되자, 8월 20일 배를 타고 돌아오던 중 화재로 배가 가라앉게 되었고 118명의 광부들이 목숨을 잃었습니다.
저장 창고 안에서 바라본 바다.
저장 창고 안의 모습
명반석은 알루미늄의 원료로 태평양전쟁 당시 전투기 등 군수품 제작에 이용되었습니다.
1936년까지 한 해 약 10만 톤이 넘는 명반석이 채굴돼 일본으로 넘어간 것으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이로 인해 많을 때는 옥매광산 노동자가 1200여 명에 달하였다고 합니다. 옥매산 아래는 광산개발로 일본인들이 많이 살았기 때문에 일본식 주택인 적산가옥이 즐비하게 있었으며 병원까지도 있었다고 합니다. 이들 적산가옥은 2000년대 초까지도 몇 채 남아 있었으나 지금은 보기 어렵다고 하네요.
옥매산은 오래전부터 옥(화반석)이 생산되는 산이었습니다.
<신증동국여지승람>에는 "화반석(華班石)이 황원현의 매옥산(埋玉山)에서 나온다"는 기록이 있고, <대동여지도>에는 옥매산(玉梅山)으로 기록되어 있지요. 이처럼 여러 지리지에 나오는 것으로 보아 옥매산은 오래전부터 옥이 생산되는 산이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옥매산 아래 자리 잡은 옥동(玉洞)마을은 옥하고 관련지어 붙여진 이름처럼 오래 전부터 옥을 가공하여 판매해 온 마을로 지금도 근근히 그 맥을 이어가고 있지요.
쓸쓸한 바닷가, 슬픈 역사의 상처가 남은 으스스한 콘크리트 건물.
마음이 참 안 좋네요.
기분전환을 위해 우수영 관광지에 잠깐 들러보기로 했어요.
해남 곳곳에서 만날 수 있는 배추밭 풍경.
완전히 수확을 마친 밭이 있는가 하면, 막 수확이 끝난 밭. 아직도 수확을 하고 있는 밭이 즐비합니다.
와, 해남배추 얼마나 맛있을까요?
저멀리 보이는 진도대교 건너 운림산방에 가기 전에 우수영 관광지부터 보기로 했어요.
12시쯤 도착했는데 이 때가 바다물살이 가장 센 때라고 하네요.
울돌목 스카이워크.
판옥선 모형도 있고.
안에 들어가 보니 솔직히 별로 볼 게 없더라구요.ㅋ
아, 여기는 동백꽃이 활짝 피었네요.
얼른 동백꽃 구경부터 하자.
보고 또 봐도 좋은 동백꽃.
물살 보이시죠?
회오리 치는 물살.
우수영 관광지도 정말 잘 꾸며놓았네요.
어딜 가나 케이블카는 꼭 있는 것 같아요.
케이블카를 타고 저 바다를 건너면 진도에 도착하는 것!
명량의 고뇌하는 이순신 상.
자, 이제는 진도대교를 넘어 '운림산방'으로 갑니다.
서화 예술이 발달한 진도에서도 대표적인 서화 예술가로 꼽히는 이는 조선 후기 남화의 대가로 불리는 소치 허련(小痴 許鍊)이다. 그는 당나라 남송화와 수묵 산수화의 효시인 왕유의 이름을 따 허유로 알려져 있기도 하다. 운림산방은 허련이 말년에 서울 생활을 그만두고 고향인 이곳에 돌아와 거처하며 그림을 그리던 화실의 당호다. 진도읍에서 바로 남쪽으로 내려오다 보면 첨찰산 서쪽, 쌍계사와 가까운 곳에 위치해 있으며, ‘ㄷ’자 기와집인 운림산방과 그 뒤편의 초가로 된 살림채, 새로 지어진 기념관들로 이루어져 있다. 운림산 방 앞 오각으로 만들어진 연못에는 흰 수련이 피고 연못 가운데 직경 6m 크기의 원형으로 된 섬에는 배롱나무가 있다. 소치 허련 선생은 1809년 진도읍 쌍정리에서 태어나 어려서부터 그림에 재주를 보였다. 28세부터 해남 대둔사 일지암에서 기거하던 초의 선사에게서 가르침을 받고, 30대 초반 그의 소개로 서울로 가서 추사 김정희에게서 본격적인 서화 수업을 받아 남화의 대가로 성장했다. 왕실의 그림을 그리고 여러 관직을 맡기도 했으나, 김정희가 죽자 서울 생활을 청산하고 고향인 진도에 내려와 운림산방을 마련하고 그림에 몰두했다. 운림산방은 오랫동안 방치되다가 1982년 허건에 의해 지금과 같이 복원되었다. 화실 안에는 허 씨 집안 3대의 그림이 복제된 상태로 전시되어 있고, 새로 지어진 소치기념관에는 운림산방 3대의 작품과 수석, 도자기 등이 전시되어 있다. 전라남도 기념물이다. 운림산방이란 이름은 첨찰산을 지붕으로 하여 사방으로 수많은 봉우리가 어우러져 있는 깊은 산골에, 아침저녁으로 피어오르는 안개가 구름 숲을 이루었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다음에서 발췌>
소치 허련의 생가.
걸으면서 풍경 보는 것도 좋은 날.
모든 게 깔끔하게 정돈되어 있어요.
운림지
이제는 소치 허련 선생의 그림이 있는 기념관1로...
저는 이 글씨가 마음에 들었어요.
"그림의 법칙은 장강 만 리의
유장함이 담겨야 하고."
맞는 말인 듯...
추사 김정희가 아끼던 제자 소치 허련의 그림- 좋은 게 많지만 저는 유독 모란 그림에 눈이 갑니다.
바위와 모란(종이에 먹) - 그림을 그리고 그 위에 꼭 시를 썼네요.
달의 정령과 눈의 넋이 뿌리에 들어 있다가
봄이 오자 향기로운 꽃이 하룻밤 새 피었네.(출처: 구양수의 백목단)
글씨십곡
신선의 집을 말하지 않아도 장생하는 다른 못이 있느니라
흰 구름은 큰 골짜기를 덮고 그늘진 비탈에 밤 샘물 떨어진다
시냇가 인적 없는 적막한 집에 어지러이 피었다 또 지는구나
옛단약은 우물에 깊이 감춰있고 새벽빛은 비탈에 비친다.
길을 따라 어래로 내려가 비에 옷을 적시며 아름다운 경지 돌아본다
틀림없이 서쪽 석실에 살 터이니 달빛 받으면 산은 어슴푸레하겠군요
나는 예전에 혜산에서 놀았는데 샘물 맛은 우유보다 낫다네
대나무 뿌리에 붉은 잉어 뛰고 연잎 속에는 신령한 거북이 놀도다
나무 끝에 핀 연꽃 산 속에서 고운 봉오리 터뜨렸네
시냇가 찬 달빛 생각하고 샘물 길러와 차를 다리도다
기념관 모습
영상관도 잘 해 놓았네요.
두 스승은 추사 김정희와 초의선사를 말합니다.
보이는 산이 첨찰산.
첨살산에는 쌍계사가 있는데 가지는 않았어요. 다음 기회에 또다시 오기로 하고.
진도 '까바'라는 식당에서 먹은 제육정식.
바닷가 바로 앞에 있는 식당이고, 굴을 채취하는 곳이라 굴 음식이 상당히 유명하고 많았어요.
하지만 굴에 대한 공포증이 있어서 굴 음식은 포기하고 가장 무난한 음식을 먹었답니다.
(김경옥 작가가 굴국밥 먹고 병원에 다녀왔다고 해서.ㅋ 나는야 겁쟁이랍니다!)
아침부터 빡세게 이곳저곳 다니느라 피곤은 했지만,
오늘 간 세 곳 모두 마음에 들었어요.
특히 운림산방에 마음에 들어, 다음에 꼭 다시 오고 싶다는 생각을 했답니다.
모란꽃밭이 크게 있던데 모란 필 때 오면 좋겠어요(희망사항)
첫댓글 바다가 깨끗하지 않아 생굴은 진짜 안 좋다고 들었어요.
바닷가에 펜션이니 뭐니가 너무 많이 들어서서 그렇다는 말이 있더라고요.
샘 덕분에 앉아서 여기저기 구경합니다.
<서울실내산악회> 이번 집회 때 나온 깃발 중 하나인데요,
딱 뭔지 알겠어요. 제가 지금 실내 여행중이라.
굴을 좋아하면 아마 먹었을 텐데 그렇게 좋아하지도 않아서 패스~
운림산방 가보셨어요? 여기 정말 좋던데요?
기념관2도 있는데 허련의 자손들이 또 죄다 그림을 그리더라구요. 그 자손들의 작품이 있는 곳.
@바람숲 가봤을리가요... ㅠㅠ
샘이 올린 사진만 봐도 정말 좋네요.
그리고 저 명반석 저장창고 모습은... 아프고도 아름답습니다.
@산초 사실은 이 옥매광산 쓰려고 자료 수집 차 온 건데 얼마 전에 책이 나왔네요.ㅠㅠ
아쉽기도 하지만 한편으론 잘 됐다 생각이(해남 출신 작가가 썼거든요)
옥매광산 이야기가 선생님 손에 의해 세상에 나오기를 기대합니다🙏🏻
그 책(돌탑이 된 사람들: 박상희 글)읽어보고 결정하려고요.
어디나 일제강점기의 슬픔이 어려있네요. 가본 곳도, 안 가본 곳도 다 새롭게 잘 봤어요.
저는 옥매광산도 처음, 운림산방도 처음이었어요. 특히 운림산방이 인상적^^ 또 오고 싶다는 생각이 들만큼...ㅋ
저도 가본 곳 가보지 않은 곳 눈 호강 했습니다. 저도 운림산방 고즈넉해서 좋았어요
진도 삼별초 유적지는 안 가 봐서 다음에 꼭 들러보고 싶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