업의 덫
나는 생각하고 말하고 행동한다. 세 가지는 모두 의도가 있는 행위라서 업이다. 업은 그에 따른 합당한 과보가 있다. 그러나 내가 남에게 말할 때 생각하고 말하고 행동할 때는 어떤 현상이나 옳고 그름으로 보지 말라고 강조한다. 하지만 옳고 그름으로 생각하고 말하고 행동하지 말라는 것 자체가 이미 옳고 그름을 말하고 있다.
적어도 대상을, 있는 그대로 알아차리기 전에는 어떤 목적을 가지고 말해야 하므로 말의 덫에 걸린다. 옳고 그름으로 판단하지 말고 있는 그대로 알아차리라고 말하면서도, 이렇게 판단하는 것이 옳지 않다는 견해를 바탕에 깔고 있다. 이때 이런 말을 많이 할수록 어떤 것이 옳은지 그른지가 더 뚜렷해진다. 그래서 남에게 말할 때 나도 모르게 무엇이 옳고 무엇이 그른지를 말한다.
이처럼 말하는 덫에 걸리지 않으려면 아예 생각하고 말하고 행동하지 않으면 된다. 그러나 무엇을 드러내야 할 필요가 있을 때는 말하지 않을 수 없다. 바로 이것이 관념과 실재의 문제다. 말하면 덫에 걸려서 말하지 않는 것도 잘못이다. 말하고 덫에 걸리는 것도 잘못이다. 이때 어떤 자세로 행동해야 바른가? 그냥 대상을, 있는 그대로 알아차리면서 하는 것밖에 다른 방법이 없다.
결과적으로 아무리 좋은 의도를 가지고 생각하고 말하고 행동했다고 하더라도 이미 표현했다는 것 자체가 하나의 구속력을 갖는다. 그래서 불가피한 이런 구속에서 벗어나기가 어렵다. 이런 결과로 생각이 생각의 꼬리를 물고 거듭되고, 말이 말의 꼬리를 물고 거듭되고, 행동이 행동의 꼬리를 물고 거듭되어서 실재하는 내용은 사라지고 관념만 난무한다.
이런 형식에서 벗어나려면 이심전심으로 ‘할’ 하고 나서 침묵할 수도 있다. 하지만 이것은 지혜 수행이 아닌 선정 수행의 방법이므로 다른 차원의 얘기이다. 그러므로 관념은 관념으로서 존중하고 마땅한 실재를 찾는 것이 합리적인 방법이다. 그래서 관념은 실재를 알기 위한 전 단계의 과정이라고 이해해야 한다. 이때 말하기 위한 관념은 불가피 필요한 것이다.
이런 관념이 없으면 있는 그대로의 실재를 드러낼 수가 없기 때문이다. 말은 해야 하고, 말은 덫에 걸릴 수밖에 없는 것도 실재하는 현상이다. 이런 미묘한 문제를 극복하기 위해 위빠사나의 가르침에서는 관념을 세속의 진리라고 말하고, 실재를 출세간의 진리라고 차등을 두어 공존하게 한다. 그러므로 무엇이나 있는 그대로 알아차리는 중도로 생각하고 말하고 행동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