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새 인터넷을 후끈 달아오르게 한 분이 계시죠.. 바로 전원책 변호사입니다.
네티즌은 이분의 주장에 양반된 모습이기도 하구요.
글쎄요...
그냥 제예기 한번 해봅니다.
전, 94년8월 현역1급으로 강원도 양구에서 26개월 포병으로 복무를 마치고 나왔습니다.
거 뭐... 군대 갔다오신 분이라면 군이 어떤데인지 대충 아실듯 하구요..
간혹, 군대별거 아니라는 듯한 말투로 재미있었던 일들을 예기해주는 분도 계시는데, 그걸 들으면서도 전 그들도 나름대로 정말 힘들게 군생활을 했었다고 느껴집니다..
방위나 상근예비역, 아님.. 최소한 공익근무를 했더라도 자신이 의도하는 '자유'를 업악받는다는 것만으로도 정말 힘든 생활을 했다고 생각됩니다. 그리고 당시 입대할때 나름대로 국가에 대한 신성한 의무 내지는 그 어떤 의미로라도 아마 자신을 추스렸겠지요...
춘천의 102보충대내 내무반에서 부모님과 헤어지고 바로 이어지는 기간병의 쌍욕과 열차려 세례...
이것이 "꽃다운 청춘"인 20대에 제 군생활을 시작을 알리는 모습이었습니다.(첨으로 쪼인트라는 것도 맞아봤어요..)
이곳서 3일 머물고 저는 2사단으로 배정을 받았지요.. 버스에 오른뒤 배도타고 트럭도 탔습니다. 언4시간정도후 내려진 신병교육대...6주간의 훈련중 '어머니은혜'노래만 들리면 걍 눈물이 흘렀죠..
당시 살아야한다라는 신념으로 훈련을 극복했습니다...(동기중 2명 부상으로 후송, 1명은 훈련중 도주하여 영창..)
마지막 조교의 한마디, "자대배치되봐라... 여기가 행복하단것을 느낄거다.."
훈련소에서 자대로 이동할때 60트럭뒤에서 바라보던 11월의 강원도 저녁 을시년스러운 저녁노을을 전 아직도 잊지 못합니다..
그날 저녁9시경 본부포대 배치받았는데.. 선임병따라 자대로 내려가보니 그 어두운 연병장앞에서 사람들이 모여있고, 장작패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그게 부대에서 '집합'이라는 거라는 걸 인식하기까지는 그리오래 걸리지 않았죠..
이병땐 바로앞 고참한테 점오끝나고 잠자리 누웠을때까지 갈굼당하고,
일병땐 쫄따구 이끌며 머빠지게 뛰어다녀야 했고,
상병땐 주도적이 되어야 한다며 쫄따구 교육과 함께 모든것에 나서 알아서 처리해줘야 하는 인간으로 변해야 했죠.
(개인적으로 일병3호봉~상병부왕고(6호봉)까지가 정말로 힘들었습니다. 참고로 저 인내력 좋은 편인데.. 총기탈영&수류탄자폭 생각 정말 많이 해봤습니다..하지만,부모님 떠올리며 참았습니다...)
다들 아시겠지만, 자대 군기반장은 상병왕고입니다. 저녁결산을 위해 포대장이나 인사계가 지시사항 등을 전달하기 위해 자대에 인원들 총집합 시켜서 얘기합니다. 이게 끝나면 병장들이 일어나서 한마디씩 하고 자리를 뜹니다.(분위기 안좋을때는 보는 자리에서 병장3,4호봉이 병장초봉 귀싸대기 날리곤 합니다.) 그 다음엔 병장초봉이 군기반장(상병왕고)에게 한소리 좀 심하게 합니다.. 여기까지 분위기는 평범합니다.
이제 군기반장이 상병들 내무반뒤 공간으로 불러냅니다..(이걸 '막사뒤'라고 하죠..) 이동안 다른 쫄다구들은 각잡고 꼼짝없이 앉아있습니다. 한10분정도 시간이 흐르면 불려갔던 상병들이 후다닥 내무반안으로 튀어들어옵니다.
다음은 상병초봉들이 일병왕고 집합시키죠... 그리고 또 한10분 흐릅니다.. 그러면.. 다음번엔 일병들만 막사뒤로 다튀어갑니다.. 또10분 걸립니다..(포병이라서 맞을때도 곡괭이 자루나, 삽자루 등으로 많이 맞지요...제 기수들은 바로 4달고참중에 무술유단자가 있어서 아주 스릴넘치게 얻어터졌습니다..)
아, 이등병이요? 이등병은 안건들죠.. 아직 병아리들이니까...훗..
어쨋든 그렇게 힘든시절 보내고나니 봄이 오는듯 했어요.. 병장이 되었죠.(병장초봉은 내무반에서 못눞습니다.. 상병왕고 갈구는 시절이거든요.. 병장3호봉 즘 되니까.. 이제 터치가 없어지더군요.. 그제서야 내무반에서 눞기도 하고, 이등병 병아리 데리고 px도 가고, 작업/mos교육시간때 짱박히는 것이 가능해지더군요..)
좀 쉬는 듯 하더니만.. 병장되보니까.. 이젠 인사계가 갈구더랍니다.. 훗..
군대에서 참 많이 갈굼당하고 맞았습니다. 위에 힘들었던 기간에는 거의 매일 집합당해서 맞았어요.. 심하게 맞아서 고막이 터지기도 했구요...제종아리는 쪼인트 흉이 아직 남아있답니다..(다들 아시겠지만, 군대에서 맞는 정당한 이유가 과연 있을까요? 훗..)
저도 매일 퇴근11~01시입니다. 그러다 감사라도 뜨면.. 그이상이죠.. 하지만, 회사는 최소한의 자유가 있더군요... 직장생활도 힘들지만 전 돈보다는 인생이 먼저 인거 같습니다.. 이젠, 작지만 아파트도 있고, 바이크도 있고 하니까.. 그리 돈에 미련이 없더군요.(어차피 돈이란거 필요한 만큼만 있으면 된다고 생각해요. 필요이상이 되면 돈이 사람을 먹어버리는(변하게하는) 상황이 발생되더군요..)
아, 다시 갈수 있다니.. 그 의지가 부럽네요... 전 제일 어려웠던 것이 억압된 생활과 표현의 자유가 없었다는 거죠..(하나의 예로, 내가 무슨죄를 지었길래 전투화 실을때 내무반 침상에 앉지도 못했을까요?.. 참,사소한 것이고, 정해진 법도 없었거늘...) 당시 이병~병장 월급이 한8,000월~12,000원 했던걸로 기억나요..
그래도 맘맞는 분대원들과 훈련하면서 밤에 몰래 쇠컵에 가득 따라먹던 피트 소주와 뽀글이는 그립네요..."땅! 땅! 땅! 아저씨 죽었어요~!" 를 외치면서 하는 어처구니없는 한국군대의 상황은 정말 챙피할정도로 싫었지만요...헬기로 식량 공수하는 미군들을 보면 어찌나 부럽던지...
첫댓글 죄송한데용 전 10억주면 갈것같습니당 !! 요즘 돈귀신에 홀려서!! ㅎㅎ 회사에서두 매일같이 야근합니당 ㅎㅎ 몸은 힘들지만 바이크만 생각하면 힘이 솟습니다.....그래도 몸은 늘어남 ㅠㅠ
저도 매일 퇴근11~01시입니다. 그러다 감사라도 뜨면.. 그이상이죠.. 하지만, 회사는 최소한의 자유가 있더군요... 직장생활도 힘들지만 전 돈보다는 인생이 먼저 인거 같습니다.. 이젠, 작지만 아파트도 있고, 바이크도 있고 하니까.. 그리 돈에 미련이 없더군요.(어차피 돈이란거 필요한 만큼만 있으면 된다고 생각해요. 필요이상이 되면 돈이 사람을 먹어버리는(변하게하는) 상황이 발생되더군요..)
10억이라면 갈지도ㅡ,.ㅡ;;;5억만 줘도 갈지도ㅡ,.ㅡ;;; 바로 윗놈 잘못만나 그섹히 전역하는 그날까지 꾹꾹 참았다 12시 땡치자마자 모포로 말아 야삽으로 두둘겨 팬후 한달 뒤에 전역라는 그 기분이라니ㅡ,.ㅡ;;;
쿠쿠쿠.. 님 정말 대단합니다~ 저도 그런생각 많이 했었다는... ^-^
동감합니다... 저보다 힘드셨겠네요... 98년 군번.. 저두 포병입니다.. 삼포대..ㅠㅠ
삭제된 댓글 입니다.
아, 다시 갈수 있다니.. 그 의지가 부럽네요... 전 제일 어려웠던 것이 억압된 생활과 표현의 자유가 없었다는 거죠..(하나의 예로, 내가 무슨죄를 지었길래 전투화 실을때 내무반 침상에 앉지도 못했을까요?.. 참,사소한 것이고, 정해진 법도 없었거늘...) 당시 이병~병장 월급이 한8,000월~12,000원 했던걸로 기억나요..
저는.... 상말까지 막내였는데요...그거아세요?맞후임 100휴가갔을때 병장2호봉에 걸레빨고 침상밀었답니다..딴소대 동기들은분대장...님 정말 고생하셨어요~~꺼흑...저두 진짜....무어~같았는데...눈물나;;혹시 병장달고도 막내셨던분;;; 있음..지송...
햐.. 고생많았군요.. 그기분 참 묘했겠군요... ㅜ_ㅜ
아~ 강원도 양구!!
96군번 철원 포병출신입니다. ^^ 느낌이 팍팍오네요..길다란 전포 내무실...80여명이 같이 잠을자고 생활하는 그곳..다른 작은 비전포 내무실 20여명은 가족 분위기..전포 내무실에서는 조금만 잘못하면..그리고 막내이면79명에게 갈굼당하지요. 점호시간에 병장이 내앞에서 웃기는 표정을 해서 웃어버렸습니다..그때... ㅠㅠ 막사뒤에서 상병한테 뒤지게 맞고 화장실에서 일병에게 맞고 이등병 휴게실에서 한달고참에게 갈굼당하고...잊을만하면 병장이 그기억을 되살리게하는 농담을 해서 다시금 리사이클 돌게하고.....그런데 어느순간 점호할때 내앞에 있는 이등병 웃게 만들고 있더라구요.. ^^ 내나이32 10억이면..가족을위해 재입대.굿
손자군번!! 하하 반가워요, 저 제대즈음에 입대 하셨네요.. 아휴.. 근데 전 진짜 안갈랍니다. 여기서 10억 벌고 말죠...
저는 11사단인데 다행히 자주포병이어서 여기선 명함도 못 내밀겠군요. 흠흠...진짜 점호때 왕고가 맞은편에서 웃기면 아....생각하기도 싫습니다.ㅡㅡ;;; 그리고 작년에 군생활33년하시고 퇴임한 주임원사가 퇴직금으로 12억을 받으셨다는군요~
저희도 105mm였다가 1년지나니까 자주포k-55인가?로 바뀌었죠.. 처음에 적응못해서 매일 교육시 사고 연속이었어요..(전차 개울에 빠뜨리고..)
33년에 12억은 싫어요..그냥 10억에 간다는 말은 2년2개월정도면 갈만하다는 것이지요.. 싫다는 표현은 그분들이 얼마나 힘들게 생활하고 사회랑 단절된 삶인지 알기 때문입니다. 사회랑 놀면서 밥벌이 하고 살렵니다..
맞아요 155mm자주포가 K-55 근데 탄이 40kg이라는거~훈련용탄 하루에 400발옮긴적도 있는데 저녁에 숫가락이 안들려요.ㅡㅡㅋ
1000억 준데도 안갑니다. 다시가면 미친거죠~ 하하 ~
포병은 그래도 보병보단 낫지요.. 일단 이동시 승차아닙니까.. ㅎ
맞습니다.. 저도 그거 하나 낙으로 군생활 했어요.. 하지만 예비사단 포병은 후방지역 보병수준으로 행군들 합디다...
승차는 편하지요 하차시 포들고 이리저리 돌리거나 훈련용 포탄 적재 했다 말았다..미치지요. 어디가나 힘들긴해도 제일 힘든건 똥포들고 행군하는 보병...인정합니다.
저는 155mm자주포병이어서 이동할땐 아주 편했죠...다만 탄무게가 40kg인지라...알통은 참 잘 여물었습니다..ㅋ
본문글과 댓글 분량의 압박...성질 급한사람은 패스~
꿈에 다시 간다고 해서 좋아라 했는데..인제 다주것스 이랬는데 쩝 깨보니 꿈 해병제대 93년 3월 헉 제대 14년이나 되었구나.ㅎㅎ
아,피존님도 엄청 고생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에 경의를 표합니다...
수고했습니다.....필~승.
그래도 맘맞는 분대원들과 훈련하면서 밤에 몰래 쇠컵에 가득 따라먹던 피트 소주와 뽀글이는 그립네요..."땅! 땅! 땅! 아저씨 죽었어요~!" 를 외치면서 하는 어처구니없는 한국군대의 상황은 정말 챙피할정도로 싫었지만요...헬기로 식량 공수하는 미군들을 보면 어찌나 부럽던지...
하하..추억의 똥탑!ㅋㅋ
전 97군번 강원도 인제 원통에서 있었습니다..155mm견인포져..힘좋고 허리 나가기로 유명한..훈련이 빡시고 힘들어서 그렇지 다시함 갈만한데..2억만 준다고 해도 가겠습니다..연봉1억짜리니깐..10억??당연히 가지요..후레쉬에 건전지 안넣어놨다고 휴레쉬로 맞아서 머리깨지고 꼬매고,분대장 멱살잡아서 탄약고로 끌고가서 패대기 치고등등...다 추억으로 남아있는 군대..아직도 군대 선임덜이랑은 연락하면서 잘지내고 있는 아련한 추억~~그립다..사회가 군대보다더 힘든거 같네요..
남자들의 죽을때까지 잊히지않는 추억거리가 군에서의 일들이랍니다.....힘들면 힘들수록 오래가지요....나이들어 첫경험은 기억못해도 군에서 엄청 힘들었던건 다 기억한답니다....아마 이것도 대한민국 사나이로 태어난 추억거리죠~~~~
포병은 정말 빡세죠!! 포병~ 포병 포~~~~~~~~~~~~~~~~~~~~~~~~병!! 기행병들에게는 구타, 가혹행위가 필요의 악입니다. 긴장해야지 사고가 안터니깐...ㅡ.,ㅡ;; 그래야 안다치고... 훗~