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의 언어학적 분석으로부터 몇 가지 질문이 제기될 수 있다.
[질문 1] 왜 한국어에서는 소극적 표현을 기본적으로 취하는가?
홉스테드(Hofstede, G.)의 Culture’s consequences 은 문화가 국가 간 행동, 가치, 제도, 조직에 미치는 영향을 체계적으로 분석한 획기적인 저서이다. 이 책은 홉스테드의 문화 차원 이론을 중심으로, 다양한 국가의 문화적 차이를 비교하고 조직 및 사회적 맥락에서 이를 설명한다.
홉스테드는 문화적 차이를 설명하기 위해 여섯 가지 주요 차원을 제안했다. 개인주의와 집단주의(Individualism vs. Collectivism), 권력 거리(Power Distance), 남성성 vs 여성성(Masculinity vs. Femininity), 불확실성 회피(Uncertainty Avoidance), 장기 지향 vs 단기 지향(Long-Term vs. Short-Term Orientation), 쾌락 추구 vs 억제(Indulgence vs. Restraint) 등이 그것이다. IBM 직원들을 대상으로 1967년부터 1973년까지 50개국 이상에서 수집한 대규모 설문조사 데이터를 바탕으로 이 연구를 수행했다.
헤이르트 홉스테드(Geert Hofstede)의 문화 차원 이론(cultural dimensions theory)에 따르면, 아시아 사회에서는 집단의 목표와 구성원 상호간의 의존성이 개인의 자율성보다 우선시된다. 그는 이를 대규모 실험을 통해 밝히면서 아시아 국가들을 집단주의 사회로 분류하였다. 개인의 독립성과 자율성을 중시하여 개인의 목표와 성취를 강조하는 사회인 개인주의 사회와 달리, 집단주의란 집단의 이익과 충성도를 우선시하여 가족, 조직, 공동체에 대한 헌신하는 것을 강조하는 사회를 말한다.
왜 한국어에서는 소극적 표현을 기본적으로 취하는가 하는 질문에 대해서는 한국 사회를 특징짓고 있는 집단주의에서 그 답을 찾을 수 있지 않을까 판단된다. 집단주의 사회에서는 구성원 간의 관계 유지에 대한 노력이 중요하게 요구된다. 이것이 개인들의 욕구 간에 갈등이 나타나는 것을 막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사회에서는 자신을 드러내는 것은 미덕이 아니다. 그러므로 욕구에 대해서 표현할 때 욕구의 주체가 아니라 욕구의 대상에 대해 언급함으로써 자신을 드러내지 않을 수 있다. 이러한 사회에서는 직설적이고 직접적인 표현 방식보다 우회적인 의견 표명 방식이 필요해진다. 이러한 이유로 소극적 표현과 적극적 표현 사이의 구분이 체계적으로 발달하게 된 것으로 판단된다.
이 같은 사유는 여러 다른 연구들에 의해서도 뒷받침된다. 예컨대 장옌빙(Yan Bing Zhang)은 아시아적 의사소통 양식(Asian Communication Modes)의 철학적 토대를 특히 유교와 간접적(indirect), 암묵적(implicit) 의사소통 방식에서 찾는다. 유교는 윤리적인 사회적 행동과 관계를 강조하는 철학이므로 유교에서는 대인 관계의 조화를 통해 평화로운 공존과 상호 존중을 모든 것에 우선시한다.
[질문 2] 왜 영어에서는 소극형/적극형의 구분이 체계적으로 있지 않는가?
에드워드 T. 홀(Edward T. Hall)의 고전적인 저서인 『문화 너머Beyond Culture, 1976』에서는 의사소통 방식에서 정보가 전달되는 방식을 설명하기 위하여 고맥락(high-context) 문화와 저맥락(low-context) 문화를 구분한다.
고맥락 문화란, 의사소통에서 비언어적 요소(몸짓, 표정, 침묵, 맥락, 관계)와 암묵적 이해가 중요하게 작용하는 문화를 말하는데, 이 문화권에서 명시적인 언어 표현은 상대적으로 적게 사용된다. 일본, 중국, 중동, 라틴아메리카 등의 문화에서는 대화의 의미가 말보다 맥락, 상대방과의 관계, 상황에 크게 의존한다.
예를 들어 일본인과 대화할 때 만일 그가 ‘아마도’라는 표현을 사용한다면 그것은 어쩌면 정중한 거절을 의미할 수 있는데 이를 맥락 없이 글자 그대로 해석한다면 완전히 오해를 할 수도 있는 것이다. 구성원들 간의 장기적인 관계와 신뢰가 중요한 집단주의 사회에서는 일반적으로 고맥락 의사소통이 요구된다.
반면에 저맥락 문화에서는 의사소통이 명시적이고 직접적으로 이루어진다. 정보는 주로 언어를 통해 전달되는 것으로 충분하므로 비언어적 요소가 상대적으로 중요하지 않다. 따라서 예컨대 미국, 독일, 스위스 등과 같은 저맥락 문화권에서는 오히려 메시지가 명확하고 구체적인 것이 소통을 더 용이하게 만들기 때문에 오해를 줄이기 위해 직설적인 표현을 선호한다. 계약서나 문서화된 합의가 중요하며, 말하지 않은 것은 보통 큰 의미가 없다고 간주된다.
이 같은 이론적 틀을 바탕으로, 장옌빙은 아시아 문화권에서 이루어지는 의사소통이 주로 고맥락 의사소통(high-context Communication)이라고 규정한다. 장옌빙의 연구를 통해, 우리는 집단주의 사회에서는 간접적, 암묵적 방식의 의사소통을 선호한다는 점을 더욱 분명히 알게 된다.
결국 영어에서 소극형/적극형의 체계적 구분이 존재하지 않는 이유는, 저맥락 문화에서는 의사소통이 명시적이고 직접적으로 이루어지고, 오해를 줄이기 위해 직설적인 표현을 선호하기 때문이다. 이런 이유로 영어에서 욕구는 적극적으로 표현하는 것이 발달하게 된 것이다.
그리고 개인적 기호를 표현하는 것이 상대에게 소유 욕구로 함축되지도 않는다. 따라서 이러한 표현이 상대에게 부담을 주지도 않는다. 한국 사회 같이 집단주의 사회와 비교해 보면 쉽게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한국 사회라면 기호를 적극적으로 표현하면 소유 욕구로 인식되고 나아가 상대에 대한 요구로 느껴질 수도 있으므로 소극적 표현의 발달이 필요하게 된다. 집단을 유지하기 위해 상호 관계가 중요하므로 서로 챙겨주고 보살펴 주어야 한다는 관념 때문이다.
[질문 3] 왜 영어에서는 적극적 표현을 기본적으로 취하는가?
개인 간의 분명한 소통의 필요성은 의견을 명시적으로 제시하고 욕구와 감정을 오해없이 표명하는 방식을 요구한다. 이는 문장을 구성할 때 자신의 욕구에 대해 언급하기 위해 사람을 주어로 삼아 문장을 꾸미는 방식을 발달하게 만들었다.
개인주의 사회에서는 상대가 내 제안을 거절한 경우에도 상대의 의견을 존중해야 한다. 이럴 경우 서양인들은 대개 아쉬운 마음에 상대의 의견을 확인하기 위해 상대를 주어로 하는 문장인 “Are you sure?”라고 한 번 정도 물어본다. 그러나 한국인들은 어떠한가? 결코 한 번에 만족하지 않고 수차에 걸쳐 되묻거나 심지어 서운하다느니, ‘네가 그럴 줄 몰랐다’느니 하면서 강요 아닌 강요를 한다.
한편 유럽인들은 세상에서 일어나는 일을 인간과 자연의 대립구도로 파악한다. 이는 그들이 인간이 자연을 정복하는 대상으로 보는 세계관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cf. Francis Bacon, René Descartes, Isaac Newton, Immanuel Kant)
이 때문에 자연이 하는 일은 it을 주어로 하는 비인칭구문(impersonal constructions)으로 나타낸다.
이러한 세계관에서는 두 가지 사건이 중요하다. 하나는 인간이 하는 일이고 다른 하나는 자연이 하는 일이다. 싫든 좋든 인간이 한 행위는 모두 인간을 주어로 놓고 표현한다. 그러니까 자연이 스스로 하는 행위(비가 오고 지진이 나는 등의 자연현상)가 아니라면 기본적으로 사람을 주어로 문장을 형성하여, 사람의 행위로 표현하는 경향이 강하다.
그래서 안경이 깨졌거나 팔이 부러지는 사건도 영어에서는 사람을 주어로 표현한다.
안경이 깨졌어요.
I’ve broken my glasses.
팔이 부러졌어요.
I’ve broken my arm.
반면에 동양에서는 인간도 자연의 일부라고 생각하기에 특별히 인간에게 특권을 부여하지 않는다. 이는 자연과 조화를 이루는 것이 이상적인 삶으로 간주하는 세계관 때문이다. (cf. 공자, 노자, 장자, 주자 등) 이로 인해 한국어, 중국어, 일본어 등 동양의 언어들에서는 사물을 주어로 놓고 문장을 꾸민다.
– 분명한 소통의 필요성은 자신의 의견을 명시적으로 표명하는 방식을 요구한다. 이는 서양인의 인간 중심의 사고와 함께 사람을 주어로 삼아 문장을 꾸미는 방식을 발달하게 만들었다.
맺음말
우리는 지금까지 한국어와 영어에 나타난 욕구에 관한 표현의 차이를 살펴보았다. 우선 한국어에는 감정을 소극적으로 나타내는 형용사와 적극적으로 나타내는 동사 사이의 체계적인 구분이 발달해 있는 반면에 영어에는 그러한 구분이 발달해 있지 않음을 보았다. 그리고 한국어는 소극적인 표현을 기본적으로 사용하는 반면에 영어는 적극적인 표현을 기본적으로 사용하는 경향이 있음을 보았다.
집단주의 사회에서는 구성원들이 자신의 욕구를 적극적으로 드러내는 것이 갈등을 초래할 수 있으므로 직설적이고 직접적인 표현 방식보다 우회적인 의견 표명 방식(고맥락 의사소통)이 발달하게 된다. 이로 인해 한국어에는 감정의 적극적/소극적 표현의 구분이 형성되었고, 그 중에서도 특히 소극적 표현을 기본적으로 사용하게 되었다.
반면에 개인주의 사회에서는 집단의 이익보다 개인의 목표와 성취가 더욱 중요하게 간주되므로 구성원 상호간에 오해를 피하기 위해 직설적이고 직접적인 표현 방식(저맥락 의사소통)이 발달하게 된다. 이 같은 분명한 소통의 필요성은 자신의 의견을 명시적으로 표명하는 방식을 선호하도록 만들었다. 이는 또한 서양인의 인간 중심의 사고와 함께 욕구의 주체인 사람을 주어로 삼아 문장을 꾸미는 방식을 발달하게 만들었다.
반면에 동양에서는 사람도 자연의 일부로 간주하는 사고로 인해 욕망의 주체보다 욕망의 대상을 주어로 삼아 표현하는 방식을 취하게 되었다. 이 같은 내용은, 언어마다 고유한 표현 방식이 있고 이는 특정한 사고 방식과 세계관에서 기인한다는 언어 상대성 가설에 잘 부합한다고 하겠다.
(이 글은 다음 호의 ‘한국어와 영어의 동기 표현의 방식’으로 이어집니다.)
박만규 아주대학교 불어불문학과 교수
첫댓글 Thank you 춘수님,
오늘도 유익한 공부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