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용수의 평양사람들]
한국 완승으로 끝난 77년간의
남북한 수교 전쟁
한국, 지난해 쿠바와 수교 성사
북 혈맹 시리아와도 수교 예정
중·동남아에 다가가는 북한
핵 버리고 보편 가치 따라야
#1 1989년 1월 예두아르트 셰바르드나제
옛소련 외교장관이 평양을 방문해
김일성 주석(1994년 사망)을 만났다.
한·소 수교를 1년8개월 앞둔 시점이었다.
김 주석은 셰바르드나제 장관을 향해
“만일 소련이 남조선과 외교관계를
정상화할 경우 모스크바 주재 대사관
이외의 공식 사절단을 전원 철수하겠다”
고 위협했다.
셰바르드나제 장관은 이듬해 9월 한국과
수교 18일 전 다시 평양을 찾아 양해를
구하려 했지만 김일성은 그를 만나지도
않고 홀대했다.
----조태열 외교부 장관이 지난해 9월 뉴욕에서
브루노 로드리게스 파리야 쿠바 외교부 장관과
회담하고 있다.
지난해 2월 한국과 쿠바가 수교한 후 첫 외교장관의
만남이다----
[뉴스1]
#2 1992년 4월 15일 김일성의 80회 생일을
축하하기 위해 평양을 찾은 양상쿤(楊尙昆)
중국 국가주석은 김일성에게
“한국과 (외교)정상화를 할 때가 가까워졌다”
고 했다.
당황한 김일성은
“(한국과) 수교를 2~3년만 늦춰 달라”
고 요구했다.
북한이 미국과의 관계개선을 추진하고
있으니 보조를 맞춰 달라는 취지였다.
하지만 3개월 뒤 중국 첸치천((錢其琛)
외교부장이 북한 묘향산에 머물던
김일성을 찾아
“다음 달(8월) 한국과 수교할 것”
이라는 사실을 통보했다.
이에 김일성은
“우리는 자주노선을 걷겠다.
중국이 하는 일은 중국이, 우리가 하는
일은 우리가”
라며 중국에 배신감을 감추지 않았다.
한국, 191개 모든 유엔 회원국
수교 눈앞
한국이 북한의 최우방 국가인 옛
소련·중국과 각각 수교하며 남북한의
외교전에서 무게추가 한국으로 완전히
기울었다.
이로부터 30여 년이 지난 현재 한국은
북한의 또 다른 혈맹으로 여겨졌던
시리아와 막바지 수교 협상을 진행
중이다.
외교부는 지난달 7일 김은정
아프리카중동국장을 시리아에 보내
수교에 원칙적인 합의를 했다고 한다.
지난해 북한과 단독으로 외교 관계를
맺고 있던 쿠바에 이어 시리아와 외교
관계를 정상화하면 한국은 191개국
유엔 회원국과 모두 수교하게 된다.
대한민국 정부를 수립한 지 77년
만에 남북한 ‘수교 전쟁’이 한국의
완승으로 끝나는 셈이다.
정부 수립 직후 한국은 중화민국
(현 대만)·미국·프랑스·필리핀 등
5개국과 연이어 수교했다.
북한은 이 시기 사회주의 12개 나라와
외교 관계를 맺어 숫자상으로 한국을
앞섰다.
1960년엔 남북한의 외교관계 수립국이
각각 16개로 동률을 이뤘고,
다음 해부터 한국이 줄곧 앞서 나갔다.
남북 수교 전쟁의 절정은 옛 소련이
글라스노스트와 페레스트로이카로
불린 개방과 개혁 정책, 여기에
노태우 정부의 북방 정책이 맞아떨어진
1980년대다.
그동안 진영외교에 집중하던 한국은
사회주의권 국가들로 관계를 확대하며
1980년 114개였던 수교국을 1990년
144개로 늘렸다.
이후 남북의 격차는 더 벌어졌다.
< 박경민 기자 >
한국에 역전당한 북한은 비동맹 외교에
집중하며 1970년 34개에서 1980년
99개국으로 수교 국가를 확대했다.
이후에도 북한은 분발했지만
사회주의권의 체제전환과 국제사회의
친한 분위기가 확산하며 1980년대
10년간 수교국 숫자는 한국 30,
북한 5라는 초라한 성적이었다.
북한은 핵을 개발하며 고립의 길을
자초하기도 했다.
2000년대 들어 북한이 영국, 호주 등
서방 10여 개 나라와 관계 정상화에
나섰지만 이미 남북의 경쟁은 끝난
뒤였다.
외교는 총성 없는 전쟁이라고 한다.
총을 들지 않았지만 자국의 이익을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지리 않는다.
어제의 적이 오늘의 동지가 되고,
오늘의 동지가 내일의 적이 되기도
한다.
과거의 의리에 기반해 관계를 유지하는
경우도 있지만, 국익을 우선하는 냉혹한
국제사회의 현실은 경제발전과 민주화를
이룬 한국의 손을 들어줬다.
러시아에
올인한 북의 미묘한 변화
북한은 2019년 2월 베트남 하노이에서
열린 2차 북·미 정상회담이 결렬되자
미국과 중국으로 향했던 발길을
러시아로 옮겼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세 차례 푸틴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하고, 지난해
6월엔 유사시 자동 군사개입 조항을
담은 ‘포괄적인 전략적 동반자
관계에 관한 조약’까지 맺었다.
북한은 무기 지원, 경제, 문화, 교육
등 전방위적으로 협력하며 러시아에
올인했다.
하지만 미국과 우크라이나가 11일
(현지시간) 러시아의 침공으로 촉발된
우크라이나 전쟁을 30일 동안 휴전키로
뜻을 모으면서 상황이 급변하고 있다.
북한은 러시아를 지원하기 위해 1만
명이 넘는 병력을 파병해 경제적인
대가를 챙기고, 인적 교류를 통한
기술 협력도 진행했다.
우크라이나 전쟁의 휴전 또는 종전
가능성이 커진 건 북한 입장에선 여간
당혹스러운 일이 아니다.
그래서인지 트럼프 행정부 출범을 맞아
북한의 대외 정책에 변화가 감지되고
있다.
러시아에 방점을 두면서도 중국과
동남아로 시선이 옮겨가고 있는 것이다.
실제 북한은 지난달 27일 코로나19로
철수했던 중국 매체의 평양 특파원을
받아들였다.
북한은 지난달 중국 하얼빈에서 열린
동계 아시안게임에도 김일국 체육상을
비롯한 대표단을 보냈다.
북한 매체들은 중국의 대미 제재나 보복
관세 등을 연일 보도하며 중국 편들기에
나섰다.
지난해 북·중 수교 75주년에도 불구하고
냉랭했던 분위기와는 사뭇 달라진
모습이다.
지난 1일부터 4일까지 라오스 외교부
대표단을 평양에 초청한 북한이
올해 수교 75주년을 맞는 베트남을
비롯해 다른 동남아 국가로 보폭을
넓힐 가능성도 있다.
김정은은 지난 1월 우방국 정상에게
신년 연하장을 발송했는데 이를 다룬
북한 매체들은 베트남을 러시아,
중국에 이어 세 번째로 적시해 이런
관측을 뒷받침했다.
최선희 외무상의 베트남 방문 등
고위급 교류가 성사된다면 러시아
일변도의 외교 행보를 넓히려는 북한의
시도를 확인하는 단서가 될 수 있다.
그러나 북한이 단순한 외교 방향
전환만으로 한계가 있다는 사실을
누구보다 김정은 위원장 스스로 잘
알고 있을 것이다.
북한이 미국을 비난하면서도 트럼프를
직접 거명하지 않거나 미국 본토를
공격할 수 있는 대륙간탄도미사일
카드를 아끼고 있는 점을 고려하면
외교의 종착지가 미국이라는 미련을
버리지 않은 듯하다.
북한이 김일성 때부터 갈구했던 미국과의
관계 정상화를 이룬다면 유엔 모든
회원국과의 수교 달성을 앞둔 한국에
뒤진 외교력을 조금이나마 만회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려면 핵을 버리고 국제사회의
보편적 가치를 따르는 것만이 유일한
방법이다.
김정은을 친구로 여기는 트럼프의
임기도 3년 남짓밖에 남지 않았다.
정용수 통일문화연구소장·논설위원
[출처:중앙일보]
[댓글]
very****
김정은과 주변의 강경파들은 우물안 개구리로 살아
경제를 너무 몰라서 가망이 없는 길로 들어섰다는
것을 스스로는 절대 못 깨닫는다.
어차피 북에 처들어 갈 외부의 군대는 없다.
굳이 있다면 중국군이 도와준다면서 들어올 것이다.
핵무기를 개발하면서 북이 더 안전해 진 게 아니라
김정은 참수의 가능성이 크게 늘어났다.
그만 참수 되면 전쟁 안 나고 북은 붕괴되니까.
핵 자동발사는 말 뿐인 거 모두가 안다.
악성 무기를 가지면 더 악성 무기로 공격 받는 게
정당화 되는 것이다.
이제 북이 핵 동결을 넘어서 비핵화를 미국과 전면
합의했다 치자.
그러면 경제적 보상을 제대로 받을까?
김정은이 개성공단의 길을 먼저 끊었기 때문에
안된다.
개성공단은 남과 세계를 향한 전시장이었다.
자 봐라,
북에 와서도 사업이 된다 라는 것을 보여주려는
것이었다.
그러면 핵포기하고 미국과 수교하면 경협을 전제로
일본의 수백억 달러 배상금을 받을테니까.
김정은은 핵을 가져도 포기해도 어차피 경제발전
못해 망한다.
elde****
자살률은 착해진 우리 북한이 불쌍한 우리 남한보다
2~4배로 완승했어요
elde****
착해진 우리 북한과 화해하면 수교전쟁은 남북한의
통합 대성으로 연장되겠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