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지 않고 몰랐다
내가 누구에게 속았다고 말해서는 안 된다. 속았다는 것은 나의 원망이다. 속은 것이 아니고 마음이 어떤 것인지 몰랐다. 사람은 선한 마음도 있고 악한 마음도 있다. 마음은 조건에 따라 변한다. 선한 조건에서는 선한 마음이 나오고 악한 조건에서는 악한 마음이 나온다. 그러므로 속은 것이 아니고 단지 조건이 바뀐 것에 불과하다. 그러므로 사람의 마음은 비밀이다.
마음은 조건에 따라 변하기 때문에 나의 마음이 아니고 단지 원인과 결과의 마음이다. 원래 사람의 마음이 이러한데도 한결같기를 바랐다면 이는 나의 잘못이지 상대의 잘못이 아니다. 그러므로 사람의 마음을 믿어서는 안 된다. 만약 사람의 마음이 변하지 않고 그대로이기를 바랐다면 이는 나의 바람인 것이다.
사람의 마음이 무상하고 괴로움이며 무아라고 알지 못하면 내가 사람을 안다고 자신 있게 말해서는 안 된다. 또 사람의 마음이 조건에 따라 변하는 것은 일반적인 경우지만, 반드시 모든 마음이 다 변하는 것은 아니다. 마음이란 이익을 좇아 변하기도 하지만, 이익과 손실을 떠나 변하지 않는 경우도 있다. 이런 경우는 사람에 따라 다를 수 있으므로 마음이 변하는 사람은 변한 사람이라고 알고 말면 그만이다.
이익에 따라 달라진 그의 선택을 비난 할 것 없다. 그의 선택은 그의 행위로 그가 과보를 받기 때문이다. 나는 세상 사람을 단죄하는 자가 아니다. 단지 대상을, 있는 그대로 알아차려서 지혜를 얻는 자여야 한다. 누구나 자기가 행한 과보를 받기 때문에 내가 따로 단죄할 필요가 없다. 이것이 원인과 결과라는 세상의 질서다.
이런 세상의 질서를 무시하고 남을 단죄하면 이는 불필요한 업에 개입하여 받지 않아도 될 과보를 받는 어리석은 행위다. 만약 상대를 믿었는데 어느 날 변했다면 그냥 그의 일로 두고 나는 있는 그대로 알아차리고 말면 그만이다. 나의 기대에 어긋났다고 원망하는 것은 나의 문제지 상대의 문제가 아니다.
설령 상대의 변화로 내가 손실을 보았더라도 이것은 그와 나와의 관계에서 생긴 인과응보이므로 이 또한 피할 수 없는 일이다. 내가 할 일은 이미 일어난 일의 뒤처리만 하는 것이 아니고, 내가 괴롭지 않은 새로운 원인을 만드는 일이다. 설령 내 기대에 어긋났더라도 그의 일로 두고 내 일을 하는 것이 괴롭지 않은 지혜로운 일이다. 모든 일에서 나와 남을 동일시해서는 안 된다. 이것을 위해서 나의 몸과 마음을 서로 분리해서 있는 그대로 알아차려야 한다.
사람의 마음은 매 순간 바뀌기 때문에 원래 같은 마음이 아니다. 하지만 마음이 변한다고 확신에 찬 믿음까지 변하는 것은 아니다. 또 개인의 확고한 신념이 변하는 것도 아니다. 지혜가 있는 사람은 원래 변하는 것 속에서도 변하지 않는 일관된 마음이 있다. 그러므로 변하지 않는 신념을 가진 사람이 마음이 변하는 사람을 보고 원망할 필요는 없다.
인간은 과거의 원인으로 만들어진 과보심으로 살아서 그도 그의 습성 때문에 어쩌지 못해서 변하기 마련이다. 이처럼 업의 과보로 살면 내 마음대로 할 수 없다. 그러므로 세상의 모든 사람이 원인과 결과에 따라 똑같은 마음이 아니므로 때에 따라 변하는 사람을 연민의 마음으로 지켜보아야 한다. 이것은 비난받을 일이 아니라 오직 동정 받을 일이다. 사실 나도 어느 부분에서는 이런 과보로부터 벗어나지 못한 사람이다.
그러므로 있는 그대로 알아차리는 것이 모두에게 이로운 일이다. 남이 춤을 춘다고 해서 함께 춤출 필요는 없다. 만약 남이 나를 속였다면 그도 그의 마음대로 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그 자신에게 속은 것이다. 이때 속였다는 주체가 없다. 그래서 속인 사람도 없고 속은 사람도 없다. 물론 속았다고 하는 인식은 있지만, 이것은 어디까지나 나의 판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