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
만인을 위해 내가 노력할 때 나는 자유이다
땀 흘려 힘껏 일하지 않고서야
어찌 나는 자유이다라고 말할 수 있으랴
만인을 위해 내가 싸울 때 나는 자유이다
피 흘려 함께 싸우지 않고서야
어찌 나는 자유이다라고 말할 수 있으랴
만인을 위해 내가 몸부림칠 때 나는 자유이다
피와 땀을 눈물을 흘리지 않고서야
어찌 나는 자유이다라고 말할 수 있으랴
사람들은 맨날
밖으로는 자유여, 형제여 동포여! 외쳐대면서도
안으로는 제 잇속만 차리고들 있으니
도대체 무엇을 할 수 있단 말인가
도대체 무엇이 될 수 있단 말인다
제 자신을 속이고서
편지
산길로 접어드는
양복쟁이만 보아도
혹시나 산감이 아닐까
혹시나 면직원이 아닐까
가슴 조이시던 어머니
헛간이며 부엌엔들
청솔가지 한 가지 보이는 게 없을까
허둥대시던 어머니
빈 항아리엔들 혹시나
술이 차지 않았을까
허리 굽혀 코 박고
없는 냄새 술 냄새 맡으시던 어머니
늦가을 어느 해
추곡 수매 퇴짜 맞고
빈 속으로 돌아오시는 아버지 앞에
밥상을 놓으시며 우시던 어머니
순사 한나 나고
산감 한나 나고
면서기 한나 나고
한 집안에서 세 사람만 나면
웬만한 바람엔들 문풍지가 울까부냐
아버지 푸념 앞에 고개 떨구시고
잡혀간 아들 생각에
다시 우셨다던 어머니
동구 밖 어귀에서
오토바이 소리만 나도
혹시나 또 누구 잡아가지나 않을까
머리끝 곤두세워 먼 산
마른하늘밖에 쳐다볼 줄 모르시던
어머니 어머니 어머니
다시는 동구 밖을 나서지 마세요
수수떡 옷가지 보자기에 싸들고
다시는 신작도 가에는 나서지 마세요
끌려간 아들의 서울 꿈에라도 못 보시면
한시라도 못 살세라
먼 길 팍팍한 길
다시는 나서지 마세요
허기진 들판 숨 가쁜 골짜기 어머니
시름의 바다 건너 선창가 정거장에는
다시는 나오지 마세요 어머니
김남주 시인
김남주(1946.10.16.~1994.2.13.)는 대한민국의 시인, 시민사회운동가이다.
유신을 반대하는 언론인 「함성」을 발간하였고 인혁당 사건, 남민전 사건으로 투옥되었으며, 민청학련 사건의 관련자로 지목되어 고초를 겪었다.
1980년 남민전 사건 조직원으로 징역 15년을 선고받고 수감되었다가 1988년 형 집행 정지로 석방되었고, 1993년 2월 문민정부 출범 이후 대통령의 특별 지시로 사면 복권되었다.
그는 '시인'이 아닌 '전사'라고 자칭하기도 했다.
첫댓글 시대가 시를 쓰게 했지요. 김남주 시인의 시를 좋아합니다.
생가에 들르고 편지라는 시를 읽으니 가슴이 저릿저릿하네요. 암울했던 시대도 떠오르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