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 생명말씀(2022.10.9.) 말씀/ 룻기 1~5 룻의 아름다운 신앙 어머니께서 가시는 곳에 나도 가고 어머니께서 유숙하시는 곳에서 나도 유숙하겠나이다 어머니의 백성이 나의 백성이 되고 어머니의 하나님이 나의 하나님이 되시리니 지난 주 아침 큐티를 하면서 룻의 신앙을 배우고 은혜를 많이 받았습니다. 룻의 신앙과 결말이 너무 아름다워서 다시 한번 새기고자 주일 말씀을 섬기게 되었습니다. 오늘 구체적으로 우리가 배우고 싶은 몇가지 신앙을 정리하고 묵상해보고자 합니다. 마태복음을 보면 예수그리스도의 족보가 나옵니다. 육신으로 하면 다윗의 자손인 예수의 계보를 기록하면서 특이하게 네 여인이 기록되고 있습니다. 다말, 라합, 룻 그리고 우리의 아내 밧세바입니다. 이 네 여인 중에 한 여인이 룻입니다. 마태복음 족보를 읽으면서는 아무것도 우리는 알 수 없습니다. 그러나 오늘 룻기 말씀을 보면 왜 룻이 이 예수그리스도의 엄청난 족보에 오르게 되었는지 배울 수 있습니다. 세 가지를 살펴보고자 합니다. 첫째, 룻의 선택, 둘째, 룻의 행실, 셋째, 룻의 순종입니다. . 첫째, 어머니를 선택한 지혜로운 여인 16 룻이 가로되 나로 어머니를 떠나며 어머니를 따르지 말고 돌아가라 강권하지 마옵소서 어머니께서 가시는 곳에 나도 가고 어머니께서 유숙하시는 곳에서 나도 유숙하겠나이다 어머니의 백성이 나의 백성이 되고 어머니의 하나님이 나의 하나님이 되시리니 시어머니가 유대 땅으로 돌아가면서 홀로 남게 된 두 며느리는 선택의 기로에 섰습니다. 남편도 잃고 어머니는 유대로 돌아가는데 따라갈 것인가 아니면 남아서 재혼을 하여 새로운 삶을 살 것인가? 동서 오르바는 그 백성과 신에게 돌아가기 위해 시어머니에게 입맞추었느데, 롯은 시어머니를 따라갈 것을 결심을 합니다. 어머니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자신은 어머니께서 가시는 곳에 어디든 갈 것이며, 어머니의 백성이 나의 백성이 되고, 어머니의 하나님이 나의 하나님이 될 것이라 했습니다. 결코 죽는 일외에는 어머니를 떠나지 않겠으니 자신을 만류하지 말라고하였습니다. 인생의 두 갈래의 갈림 길에서 어느 길을 선택하는가는 매우 중요한 문제입니다. 로버트 프로스트의 가지 않은 길이라는 시가 있습니다. 그 중에 이런 말이 있습니다. 숲 속에 두 갈래 길이 있었다. 나는 사람들이 덜 지나간 길 택했고< 그로 인해 모든 것이 달라졌다. 동서 오르바는 사실 모든 사람이 가는 합리적인 길을 택한 것이고, 룻은 자신의 장래보다 늙은 시어머니를 따르므로 비합리적인 길을 택한 것입니다. 그런데 결과는 아주 상반되었습니다. 오르바는 하나님의 백성 중에 거할 수 있는 기회를 얻었다가 선택을 잘못해서 멸망의 백성과 신에게 돌아가 믿음의 기회를 잃어버리게되었고, 룻은 어머니를 좇음으로 구원받을 백성과 함께 생명의 길을 가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멋진 신랑 보아스도 만나 재혼도하는 축복도 받았습니다. 무엇보다 자격없는 이방 여인으로서 예수그리스도 족보에 이름을 올리는 믿음의 여인이 되는 엄청난 축복을 받았습니다. 누구와 함께 하는가? 내 인생이 달라집니다. 믿음의 사람, 영의 사람과 함께함으로 믿음 가치관 사상도 닮게 되고 인생의 결과가 달라지게 됩니다. 역사는 사람을 통해 이루어진다는 것을 우리는 누누이 배웠습니다. 중요한 것은 두 갈래 길에서 선택하는 지혜입니다. 아직 가보지 않은 길이기에 잘 모른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헷갈릴 때가 있습니다. 사리를 판단하여볼 수 있는 지혜로운 눈이 필요합니다. 또 수많은 사람들 중에서 누구와 동행할 것인가 사람을 선택하는 지혜가 필요합니다. 이를 달라고 기도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내 인생의 미래가 결국 내가 선택한 사건과 사람에 의해서 결정되는 경우가 많기 때문입니다. 룻은 모압의 이방 여인으로 영적인 구속 역사에 아무런 자격이 없는 여인이었지만 남편도 잃어버린 빈털터리가 되었지만 선택의 지혜가 있었습니다. 딱 하나 믿음의 가문의 여인인 어머니를 택한 것입니다. 결과 모든 축복이 호박 넝쿨처럼 따라왔습니다. 서광호 목사님이 토요일만 되면 어느 교회를 갈까 고민을 하였다고 하였습니다. 그런데 한 번의 선택으로고만이 끝났습니다. 본인 입으로 가장 잘 한 선택이라고 합니다. 장영효 형제님도 자신이 우주교회와 큐티 단톡을 선택한 것이 탁월한 정확한 믿음의 선택이었다고 고백하는 글을 읽었습니다. 아마 다른 분들도 다 마찬가지 일것입니다. 정말 잘 하셨습니다. 앞으로 모든 좋은 일들이 우주적으로 펼쳐지리라 믿습니다. 앞으로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는 우리 앞에 놓은 많은 일들 선택하며 살아야 합니다. 군대말로는 줄을 잘 서는 것입니다. 탁월한 선택을 하는 자들이 되기를 기도 합니다. 둘째, 착한 행실의 본을 보인 여인 모압에서 빈털터리로 돌아온 나오미는 생계가 어려웠습니다. 며느리 룻이 남의 밭에 나가서 이삭을 주어야 했습니다. 그런데 우연찮게 보아스의 밭에 가서 이삭을 줍게되었고 보아스의 눈에 띄었습니다. 보아스는 자기 밭에서 이삭 줍기를 하는 룻에게 큰 은혜를 베풀었습니다. 다른 데 가지 말고 자신의 밭에서 소녀들과 함께 이삭을 줍도록하고, 보리를 베는 소년들에게 룻을 건드리지 못하게 단단히 명하고, 목이 마르거든 언제든지 그릇에 가서 소년들이 길어온 물을 자유로 마시도록 했습니다. 그리고 소년들에게 곡식 단에서 조금씩 뽑아 일부러 뽑아버려서 줍게하라고 했습니다. 룻은 땅에 엎드려 절하며 이방 여인인데 어찌 내게 은혜를 베푸시며 나를 돌아보시느냐고 물었습니다. ”왜 저에게 이런 과분한 은혜를 베푸십니까?“ 룻에 대해서 이미 소문을 들은 보아스는 룻이 남편이 죽은 후로 시모에게 행한 모든 것과 네 부모와 고국을 떠나 전에 알지 못하던 백성에게로 온 일이 내게 분명히 알려졌다고 대답하였습니다. 보아스가 그에게 대답하여 가로되 네 남편이 죽은 후로 네가 시모에게 행한 모든 것과 네 부모와 고국을 떠나 전에 알지 못하던 백성에게로 온 일이 내게 분명히 들렸느니라( 룻기 2: 11) 룻이 몸가짐 단정히 하고 어머니를 모시고 조용히 살았지만 이미 착한 행실이 알려져 알 사람은 다 알았습니다. 자연히 인품 있는 보아스는 이런 착한 룻에게 은혜를 베풀지 않을 수 없었던 것입니다. 하나님은 보아스롤 통해 이런 룻을 축복하셨습니다. 룻이 이삭을 줍다가 보아스의 밭에서 이르게 된 것도, 보아스로부터 특별한 대우를 받은 것도 요행이 아닌 모두 하나님의 은혜였습니다. 보아스는 룻을 이렇게 축복해주었습니다. 여호와께서 네 행한 일을 보응하시기를 원하며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그 날개 아래 보호를 받으러 온 네게 온전한 상 주시기를 원하노라”(12). 마태복음 5장 16절은 이렇게 말합니다. "이같이 너희 빛을 사람 앞에 비취게 하여 저희로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 여러분, 착한 행실은 이처럼 말과 글보다 더 힘이 있다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심리학 박사 이민규 교수는 말의 내용은 그리 중요하지 않다고 합니다. 단지 7%이고 나머지 93%는 말의 태도 억양, 눈빛, 봄짓, 평상시 실아온 삶의 태도에 달렸다고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세상에 영향력 있는 그리스도인, 하나님께 영광돌리는 그리스도인의 좋은 본이 되기를 원한다면 먼저 착한 행실의 삶의 이야기가 먼저 펴져나가야 합니다. 사람들은 말보다 먼저 행실을 보기 때문입니다. 셋째, 다 순종한 여인
나오미는 보아스가 며느리 룻에게 은혜 베푼 이야기를 들으면서 큰 감동을 받고 여호와의 복이 그에게 있기를 빌어줍니다. 그리고 그가 생존한 자와 사망한 자에게 은혜 베풀기를 그치지 아니하니하였으며 그는 우리의 근족으로 우리 기업을 무를 자 중 하나라고 하였습니다. 보아스가 기업을 무를 자 중 유력자임을 안 나오미는 하나님의 하실 일을 보기 위해 룻에게 다음 같은 일을 지시합니다. "보아스가 타작 마당에 내러가 누우면 살며시 발치에가서 이블을 덮고 누우라". 룻은 순종의 여인 이었습니다. 룻은 어머니가 가시는 곳 어디든지 가고, 어머니가 죽는 곳에 자신도 묻히겠다고 했습니다. 어머니가 남의 밭에 가서 이삭을 주어오라면 가서 이삭을 주어왔습니다. 어머니가 하라고 하는 일은 어떤 일이든 순종하고자 하는 마음의 자세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번 지시, 보아스가 타작마당가서 먹고 마시기를 다하고 잠들 때 그곳을 알아뒀다가 목욕하고 기름 바르고 그의 이블발치를 들고 들어가라는 짓를 따를 수 있을까요? 외간 님자 이블 속에 서슴없이 들어간다는 것은 경건한 여인으로서는 순종하기 어려운 아주 음탕한 일입니다. 다른 것은 몰라도 이것만은 자기 생각을 이야기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룻은 조금도 토를 달지 않고 이렇게 대답합니다. "어머니의 말씀대로 내가 다 행하리이다"(5) 이치에 맞어서가 아닙니다. 그리고 즉시 행동으로 옮겨 순종합니다. 보아스가 누워자다 밤중에 한 여인이 발치에 있는 것을 보고 놀라서 너는 누구냐고 묻습니다. 룻이 대답을 합니다. ”나는 당신의 여종 룻이오니 당신의 옷자락을 펴서 당신의 여종을 덮으소서“ 그리고 ”당신은 우리 기업을 무를 자입니다“. 룻이 현숙한 여인이라는 것을 알고 있는 보아스는 돌아가는 상황을 파악하고 도리어 룻을 축복합니다. 두려워말라고 안심시킵니다. 그리고 내가 네 말대로 네게 다 행하리라 약속도 합니다. 어떻게 룻은 모든 것을 다 순종할 수 있었습니까? 그것은 어머니에 대한 무한한 신뢰와 하나님이 하실 일에 대한 믿음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보아스는 나오미의 친족으로 기업 무를 유력자였습니다. 룻 자신도 기업을 이을 사명이 있었습니다. 룻의 순종은 맹종이 아닙니다. 믿음이었습니다. 충실한 사람은 무조건 맹종도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참된 순종은 맹종이 아닙니다. 하나님을 믿고 하나님의 하실 일을 믿고 따르므로 절대 순종하는 것입니다. 믿음의 길에 이런 순종은 매우 중요합니다. 이렇게 순종할 때 하나님이 일하시기 때문입니다.
제가 청년 시절 군대를 제대하고 돌아와 진로로 고민하며 갈등을 하고 있었습니다. 저는 평신도 목자보다 신학교를 들어가서 공부하는 것이 더 낫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이 여호수아 목자님은 저와 고린도 후서 공부를 하면서 ‘새 언약의 일꾼이 얼마나 귀하냐고 물으셨습니다. 저는 ”그렇습니다“. 맞장구를 쳤습니다. 그랬더니 즉시로 ”그렇다면 해영 목자는?“ 저는 고양이 앞에 쥐처럼 꼼짝 못하고 ”알겠습니다.알겠습니다. 새 언약의 일꾼으로 살겠습니다“ 대답하고 말았습니다. 신학교를 포기하고 그 때부터 홀 바닥 청소를 하고, 연탄을 갈며 인턴 훈련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얼마후 대전에서 학생 수양회를 하였는데 선배목자가 부르더니 믿음의 결혼을 할 수 있느냐고 물었습니다. 이미 하나님께 드려진 몸인데 ”할 수 있습니다“.대답했습니다. 그랬더니 제주도에 자매를 소개하며 결혼 할 수 있느냐고 물었습니다. 저는 자매의 얼굴도 모르지만 ”할 수 있습니다“라고 대답하였습니다. 나중에 자매가 제주도에서 나와 선을 보게 되었습니다. 키가 너무나 작았습니다. 내가 바라는 스타일이 아니었습니다. 미리 약속은 하였으니 빼도 박도 못하고 저는 일주일간 이 문제를 가지고 순종이냐 불순종이냐 기도를 하였습니다. 그러다 어느 날 기도 중에 고린도 후서 말씀 언제나 예 하신 예수님이 떠오르면서 ”아멘“. ”저도 언제나 예“입니다. 그 때 엄청난 방언 기도 가 내 잎에서 터져나왔습니다. 했습니다. 마음의 갈등을 내려놓고 순종했습니다. 결혼을 하고 열악한 제주도 캠퍼스 개척을 위해서 목자로 떠났습니다. 그 때 목자 수양회 때 allways yes 제목으로 소감을 발표해서 은혜스럽다고 많은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렸습니다. 그 때 순종의 결과 열악한 제주개척 역사에 제자양성 역사가 시작되엇고, 오늘날 여러분들을 만나게 되고 우주교회를 섬기게 되었습니다. 당시는 순종으로 안 좋은 것을 선택한 것처럼 보이기도 했지만 영적으로는 탁월한 선택이었습니다. 할렐루야
다시 본문으로 돌아가서 이렇게 룻이 순종하자 하나님은 일사천리로 일을 시작하셨습니다. 보아스는 자신보다 더 유력한 근족을 찾아가서 나오미 가계의 기업을 무르겠느냐고 물었습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룻과 결혼도 해서 나오미의 기업을 이어야 한다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는 손해를 벌 것 같아서 포기하였고 결국 다음 유력자인 보아스가 룻을 취하여 결혼을 하였습니다. ”이에 보아스가 룻을 취하여 아내를 삼고 그와 동침하였더니 여호와께서 그로 잉태케 하시므로 그가 아들을 낳았은지라“(13). 여인들이 나오미에게 여호와께서 오늘날 기업 무를 자가 없게 아니하셨도다고 찬송하며, 이는 네 생명의 회복자며 네 노년의 봉양자라 곧 너를 사랑하며 일곱 아들보다 귀한 자부가 낳은 자라고 하였습니다. 나오미가 아기를 취하여 품에 품고 그의 양육자가 되자 그 이웃 여인들이 나오미가 아들을 낳았다 하여 그 이름을 오벳이라 하고, 그 이름이 이스라엘 중에 유명하게 되기를 축복했습니다. 그가 바로 다윗의 조부 이생의 아비입니다. 자격 없는 이방여인 이었지만 어머니를 택하고 하나님의 길을 택한 룻의 아름다운 결단을 하나님은 축복하셔서 해피엔딩이 되게하셨습니다. 룻이 나은 아들 오벳은 단지 한 가정에 아들이 아아니라 더 큰 의미를 지니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남편이 죽고 두 아들도 죽은 불행한 운명같은 나오미 가계에 룻을 통해 멋지고 아름다운 성품의 사람 보아스를 기업무를 자로 세우시고 가문의 혈통을 잊게하셨습니다. 처음에 룻이 돌아왔을 때 동네 여인들이 "이가 정말 나오미냐?"고 반가워서 소리칠 때 나오미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나를 나오미라 칭하지 말고 마라라 칭하라 이는 전능자가 나를 심히 괴롭게 하셨음이니라 내가 풍족하게 나갔더니 여호와께서 나로 비어 돌아오게 하셨느니라 여호와께서 나를 징벌하셨고 전능자가 나를 괴롭게 하셨거늘 너희가 어찌 나를 나오미라 칭하느뇨 하니라.“(1:20∼21) 이 처음 고백을 보면 하나님이 나를 괴롭게 하고 비어돌아오게하셨다. 빈털터리가 되게 하셨다고 하였습니다. 그런데 룻이 아들을 낳자 사람들은 일곱 아들보다 귀한 며느리가 나은 자라고 하였습니다. 또 사람들은 나오미가 아들을 낳았다 하묘 오벳이라 하엿습니다. 오벳이 무슨 뜻인지 아십니까? '섬기는 자'란 뜻입니다. 노년에 나오미를 봉양하고 더 나아가 영적으로 그리스도 구속 역사에 한 부분을 섬길 자라는 뜻입니다. 얼마나 놀라운 축복이요 은혜입니까? 나오미는 모압에서 돌아올 때 비어 돌아온 것이 아니었습니다. 사실은 어마어마한 축복을 안고 돌아온 것입니다. 오갈데 없는 며느리 한 사람만 온 것이 아닙니다. 보아스란 부요하고 멋진 사위가 따라왔고, 노년을 봉양할 아들도 따라왔고, , 장차 이새 아들 다윗 등 역사의 인물들을 따라 들어온 것입니다. 사실은 어마어마한 축복을 안고 돌아온 것입니다. 할렐루야! 우리가 살아가면서 때로는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지날 때도 있습니다. "하나님이 어디 가셨을까?" 괴로움 속에서 탄식할 때도 있습니다. 사람들로 고통을 조롱과 멸시를 당할 때도 있습니다. 과거에는 풍족했는데 지금 형편을 보니 빈털터리 갔다고 생각할 때가 있습니다. 장래가 막연할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내가 아무리 힘들고 어려워도 주님을 택하고, 주님의 길을 택한 여러분들은 결코 빈털터리가 아닙니다. 주님은 언제나 우리를 떠나지 아니하시고 우리와 함께하시는 분이십니다. 언제든지 가득 채워줄 준비를 하시는 분이십니다. 잠언은 말합니다. 8:34-35 ”누구든지 내게 들으며 날마다 내 문 곁에서 기다리며 문설주 옆에서 기다리는 자는 복이 있나니 대저 나를 얻는 자는 생명을 얻고 여호와께 은총을 얻을 것임이니라“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언제나 주님을 택하고 따르는 것입니다. 저와 여러분들에게도 이런 룻과 같은 아름다운 믿음을 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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