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닌의 난 종결되자. 소젠의 후계자였던 야마나 마사토요는 하리마,미마사카,비젠,에서 세를 굳히기 위해 무단히도 애를씁니다.
그러나 아카마쓰 마사노리와 그의 가신인 우라가미 무네카게는 선전을 거듭해 결국 야마나가문은 이 삼개국에서 퇴출되어
그세력은 호키 이나바 다지마로 축소됩니다. 한편 소젠의 친아들로써 아버지의 대한 반감을 품고 호소카와씨에게 붙어먹어 아키의 유력 고쿠진중에 하나인 킷카와 오키츠네 (신장의 야망 10 창천록PK에 출현하며 첫시나리오 스루가의 효웅에서 나옴 통솔력은 100으로 최강임다,)를 끌어들여 아버지의 배후와 오우치 마사히로를 부단히도 애먹게 만들던 야마나 코레토요는 화의 성립을 주도하다가 어쩡정한 태도로 망신당해 결국 고쿠진들에 의해서 실권을 잃고 빗추 슈고자리를 보존하지 못하게 됩니다 결국 야마나씨는 소젠사후 마사토요의 눈물겨운 노력에도 불구하고 결국 쇠락의 길을 걷고맙니다.
한편 아카마쓰 마사노리는 카키츠의 난 (무로마치 바쿠후의 6대쇼군 아시카가 요시노리를 아카마쓰 미츠스케가 암살한사건 쇼군을 포함유력 슈고다이묘들이 칼질을 당했다.)망했던 가문을 화려하게 재흥시키는데 성공했으며. 오닌의난 이후에도 정력적으로 영국을 통치하던중 결국 40대의 나이로 사망하고 맙니다. 참고로 마사노리는 뛰어난 문화인였고 더군다나 이름난 도공으로써 직접검을 제련해 가신들에게 포상을 하기도했답니다. 여하튼 마사노리는 죽기전에 쇼군 아시카가 요시즈미의 유아인 뒷날의 아시카가 요시하루를 히메지로 맞아들여 아카마쓰가문이 중앙분쟁에서 유리한 고지를 점하게 하였습니다. 마지막 사무라이만도코로로써 생애를 마칩니다.
하타케야마 마사나가는 전란이 종식된후 중앙분쟁에 적극적으로 개입합니다. 히노 도미코의 아들이였던 요시히사는 귀족들과 승려들의영지를 함부로 몰수해 센고쿠 다이묘화 하던 롯가쿠 다카요리를 정벌하던중 급사하고 결국 요시히사의 사촌형제 즉 아사키가 요시미 (8대 쇼군 아시카가 요시마사의 동생임)의아들인 아시카가 요시타네가 히노 도미코와 두 아시카가 형제간의 합의로 10대 쇼군이 됩니다.
아시카가 요시타네는 간레이로써 히노 도미코와 긴밀한협조체제를 유지하던 호소카와 마사모토를 간레이에서 해임하고 전란으로 실추된 쇼군의 권위확립을 목표로하여 신정권의 다른 협조자로 하타케야마 마사나가를 끌어들여 그를 간레이 임명합니다.
딱히 3관령가중에서 이미 시바씨는 이마가와씨에게 도토우미를 그리고 에치젠 슈고다이인 아사쿠라 다카카게의 독립으로 떡실신된 상태에서 오와리도 간신히 유지하고 있던터라. 힘이될수는 없기에 현실적인 선택이였습니다.
하타케야마 마사나가는 바쿠후의 간레이이자. 기이,가와치,엣추,야마시로의 슈고였으며
9개국의 슈고이던 호소카와 가문보단 세는 약했어도 휘하의 충성스러운 가신단이 존재했기에 호소카와 마사모토의 호적수였습니다. 더군다나 자신의 숙적으로 하타케야마가문의 적통을 자처하던 하타케야마 요시나리가 죽었고 기이에 남은 잔당들이 그아들인 하타케야마 요시토요를 중심으로 뭉쳐
이것만 제거하면 마사나가는 분열된 하타케야마가문을 재통일하고 나아가 안정된 영국지배를 꾀할수있었습니다. 이에 쇼군 아시카가 요시타네에게 요청하여 마사나가와 쇼군은 둘다친정에 나서기로 합니다.
그러나..........
히노 도미코와 이세 사다치카 그리고 호소카와 마사모토는 다시금정권을 되찾기로 결의합니다. 요시타네 일련의 행동들의 최종목표는 자신들이란것을 알기에 이 세사람음 합심했고 결국 기이로 친정나가있던 쇼군의 뒷통수를 깨기로 합니다 물론 덤으로 하타케야마 마사나가까지......
결국 메이오원년 교토에 있던 하타케야마 마사나가의 관저는습격당했으며 기이의 쇼우가쿠지에서 포위되어 가신들과 함께 할복하고 맙니다. 이때 하타케야마의 가신단이 함께 붕괴되어 하타케야마씨는 병력 동원에서도 또 고쿠진과 각 영국의 지배에서 어려움을 겪게되고 이것은 하타케야마씨 약화의 원인이 되어 뒤를 이은 아들 하타케야마 히사요리도 세를 만회하지 못하고 호소카와가문가의 싸움에서 병력부족및 걸핏하면 벌어지는 고쿠진들의 배반을 당하게됩니다. 단 이시기에 살아남은 유능한 가로는 혼란한 가문을 수습하는데 공을세우는데 하타케야마 가문의 명신 진보 나가노부였습니다. 병으로 인해 주군을 안따라갓던것이 그의 목숨을 살리고 나아가 가문을 보존하는데 큰 역활을 했지요. 여하튼 쇼군 요시타네는 유폐되었으나 진보 나가노부와 하타케야마 히사요리는 쇼군을 탈출시켜 엣추로 호송하는데 성공합니다. 한편 마사모토는 아시카가 요시마사의 또다른 형제인 호리고에 쿠보인 아시카가 마사모토의 아들 아시카가 요시즈미를 옹립하여 11대 쇼군으로 취임시키고 스스로는 간레이의 다시복귀해 쇼군가를 괴뢰화 하고 일본정국의 지도자로 부각됩니다.
한편 하타케야마 요시토요는 기회로 여기고 키이의 하타케야마 히사요리에게 쳐들어갓다가 전사하고 히사요리는 키이의 고쿠진들을 공격해 기이슈고로써 위엄을 떨치는한편 엣추에 독립을 막기위해 분투합니다.
첫댓글 보통 국내에 나온 역사책들에선 오닌의 난에 대한 설명이 끝나면 곧장 전국시대로 넘어가서 유명한 다이묘들을 소개하고, 그 중간 수십년은 공백으로 비워져버려서 궁금한 점도 있었는데,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하타케야마 가문은 이때까지도 한따까리 했군요 =ㅂ=
그뒤에도 계속해서 호소카와 가문의 세력확대의 저항합니다.하지만 저때 가신당의 붕괴로 같은 슈고다이묘에서 센고쿠다이묘가 된 오우치나 이마가와씨와 같은 분국법이나 영국지배는 꿈같은이야기로 히사요리의 경우 네고로등의 사찰세력을 등에업을려고 했으나 당시 시대상황으로 인해 불발되죠.
나중에 호소카와 가문을 탈취 기나이의 패자가 되는 미요시가문과는 격렬하게 대립하여 하타케야마 다카마사와 롯가쿠 요시카타등의 연합군이 미요시군대를 압도하지만 대패당하고 말지요. 여하튼 하타케야마가문은 오다시절까지 살아남았고 나중에 대명은 못되도 하타모토로써 살아남는데 성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