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마에 낚인 사연 1
다시마는 내게는 이제 다시는 하지마이다.
해남 땅끝마을에서 보면 해안선이 북쪽으로 올라가면서 불쑥 솟은 반도를 만들었는데 화원반도이고, 목포남쪽앞까지 이 반도가 이어진다.(김포에서 목포행 비행기가 남쪽 바다로 나갔다가 공항에 착륙하는데 십수년전 어느 항공사 비행기가 비와 안개속에 착륙을 시도하다가 화원반도 끝 산에 부딪혀 많은 사상자를 냈었다.)
진도는 땅끝마을을 기준으로 보면 서쪽안쪽의 화원반도가 시작하는 밑에 위치한다. 그 사이가 명량이다. 진도와 해남 육지사이의 거리가 짧고 주변에 조류를 막는 큰 섬이 없는 관계로 명량해협의 조류가 우리나라에서 가장 빠르다고 한다. 그 조류를 이용하여 이순신이 이끌던 조선수군이 큰 승리를 거두었다. 소위 명량대첩이다.
진도 서쪽 바다에는 신안군의 맨 밑 하태도가 위치하고 남쪽으로는 다도해 국립해상공원인 진도군 조도군도가 산재해 있다. 유명한 관매도가 조도면에 속한다. 진도에서 직선으로 아래로 가면 제주도이다. 진도에서 제주도로 가는 쾌속선이 주 몇회 운항한다.
진도는 정확히 강화도만 하다. 최근 간석지가 늘어 강화도보다 조금 커졌다고 한다. 우리나라 섬중에 세 번째로 크다. 면적이 430제곱킬로미터 서울시의 2/3정도 크기이다. 인구는 33,000명인데 실제거주자는 3만명이 되지 않는다고 한다. 진도는 경작지가 전 면적의 30%에 이르고 섬임에도 불구하고 어업보다는 농사를 주업으로 하는 사람들이 훨씬 많다.
고려시대 배중손이 이끄는 삼별초가 강화도에서 진도로 이동하여 성을 쌓고 최후의 항전을 버린 곳도 진도이다. 관련 유적과 지명이 아직도 진도에 많이 남아 있다. 이곳에 성을 쌓고 항전지로 삼았던 것도 진도가 군량미를 생산할 수 있는 경작지가 많았기 때문이라 추측할 수 있다.
진도는 진돗개로 유명해졌다. 진돗개가 아주 오래전부터 진도에서 키웠는지에 대해서는 확인된 바가 없다. 일부에서는 완전 토종개라기보다는 몽고군과 함께 진도로 흘러들어와 토착화되었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이런 개념이라면 토종의 개념이 어디 있겠는가? 개는 겨우 만몇천년전에 중국 중원에서 늑대와 분리되어 전세계적으로 퍼졌는데 말이다.
와서 확인하니 진도는 홍주도 있지만 대파의 산지이다. 진도의 밭 대부분은 대파가 차지하고 있다.
진도는 해안선이 600km가 넘는 데도 불구하고 서망, 팽목항이외의 항은 보잘것 없고, 모래해안이 적음으로 인해 해수욕장도 크지도 많지도 않다.
그냥 친구따라 장에 오는 기분으로 진도에 와서 선배를 따라 며칠간 소위 노가다 데모도(잡일꾼, 건설현장의 시다)를 했다. 그러나 삐쭉빼쭉하는 업자들의 성향으로 인해 닷새만에 짤려 임회면 강계마을 수퍼(주인이름이 청자라고 우리는 청자카페라 불렀다.)에 앉아 술타령을 하고 있었다.
강계마을 안쪽(시앙골)에 바다가 그윽하게 내려다보이는 산허리에 집을 짓고 진도에 10여년 전에 정착하신 분이 장의균선생인데 우리집 주인 이종근형님하고 가까웠다.
(장의균씨는 1987년 9월 6월항쟁과 노동자 대투쟁이 끝날 무렵 재일유학생 간첩사건으로 구속되어 8년을 복역하고 1995년 만기 출소하셨다. 장의균 선생은 1985년 일본으로 건너가 교토대학 역사 연구원으로 공부하다가 87년초 귀국하여 6월 항쟁에 참여했다가 국가보안법상 반국가단체관련죄로 구속되었다.)
그분 집앞 모래해변에서 같이 내려간 신철 선배와 젓먹던 힘까지 써가며 그물을 끌면 농어, 숭어, 가자미 등이 먹을만큼 잡혔다. 긴 그물을 가슴깊이만큼 끌고 들어가 해변으로 둥글게 말며 끌고 나오면 바보같은 물고기가 그물에 걸린다. 이 원시적 방법을 우리가 그냥 끌이라고 했다.
이 물고기를 청자카페가 가서 회를 떠서 먹었는데, 용을 쓴뒤 먹는 자연산 회 맛은 어느 다른 것에 비할 수 없이 좋았다. 그래서 그 집을 자주 이용했다. 이날도 막걸리를 한잔씩 걸치며 끊어진 일자리를 걱정하고 있었는데 옆자리에서 술을 먹던 사람들이 안면이 있던 장의균 형님과 합석하게 되면서 한달간의 운명이 결정되었다.
그들은 낚시 미끼도 없이 밑밥만 던졌다. 새벽과 오후시간 몇시간씩만 일하고 다시마 따는 일은 떡 먹기만큼 쉽다고 말했다. 찬밥, 더운밥 가릴 것도 없이 쉰밥이라도 먹어야 하는 입장에서 미끼도 없는 낚시를 덜썩 물었다.
마을 두 사람이 합석했었는데 우리 두 사람을 각자의 취향대로 찍으니 우리는 일당 십만원에 즉각 팔렸다. 당장 내일부터 일할 수 있다니 이런 행운이 있단 말인가! 우리는 환호하며 대작했다.
강계마을 옆이 죽림인데 이 마을 어촌계 23명이 다시마 양식을 하고 있었다. 강계, 죽림, 헌복동 마을 앞쪽으로 넓게 만이 형성되었고 건너편에는 접도라는 작은 섬이 있어 양식장을 하기에 안성맞춤이었다. 250만평의 바다에 겨울에는 미역을, 여름에는 다시마를 일부는 석화(굴) 양식을 했다.
다음날 휘파람을 불며 우리는 각자의 고용된 집으로 향했다. 이때까지 모든 것이 좋고 괜찮았다.
첫댓글 비가 오고, 일거리도 못 찾고 텔레비젼도 고장나고, 고치고 싶지도 않고 해서 시간을 이렇게 죽이네요.
시간 죽이는 것도 괜찮지 않아요? 우리는 너무 '시간은 돈이다'라는 사고방식에 얽매어 있는거 같아요.
새터님 말씀은 파라다이스였는데 아닌가요?^^
그거 엄청 힘든 일이라고 알고 있는데
위험도 하고
언젠가 내고향7시란 프로에 나온 것 봤어요
이번 토요일에 진도에 들어갈 것 같은데 못 보겠네 그럼
비 많이 온다던데...
그래도 가야해요 일 때문에 가는거죠 겸사겸사
이거 뭔가 불안한 징조가...
노가다 품삯-간조가 안 나왔나......
7월말에 진도 갈려고 하는데 뭔가....진도의 동쪽으로 걸어나오는 분위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