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인 경영] CEO 84% “와인지식 부족해 스트레스 받아” … 와인 매력 ‘오감’으로 느껴야
제1 와인규칙 ‘와인명=지역명’ … 좁고 구체적 지역명일수록 와인품질 ‘으뜸’와인의 ‘대중화’ 시대다. 이제는 와인을 ‘호사품’으로 여기는 사람은 드물다. ‘특별한 사람이나 마시는 술=와인’이라는 ‘편견’도 빠르게 사라지는 추세다(관련기사 24면). 반면 와인의 ‘오묘한’ 매력을 만끽하고자 하는 사람들은 날로 늘어나고 있다. 인터넷을 중심으로 와인동호회가 활기를 띄고 있고, 와인강좌가 호기심 어린 수강생들로 가득 차는 것도 더 이상 낯설지 않다.
‘와인 규칙’ 보이면 ‘절반의 성공’ 비즈니스 세계에서도 ‘와인열풍’을 한 몸에 느낄 수 있다. “와인은 이제 비즈니스의 기본”이라는 말까지 회자된다. 삼성경제연구소가 국내 CEO 404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 결과에 따르면 총 응답자의 11.6%가 ‘와인지식은 비즈니스에서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와인지식은 어느 정도 중요하다’‘가끔 중요할 때가 있다’고 답한 CEO도 각각 51.7%, 32.2%인 것으로 밝혀졌다. 설문에 응한 CEO 중 무려 95%가 비즈니스에서 와인이 차지하는 비중을 높게 평가 한 셈이다(그림1 참조)
서한정 한국와인협회 회장은 “와인과 비즈니스는 서로의 문화를 이해하는 배려에서 출발한다는 점에서 비슷하다”며 “사전에 상대방의 와인 취향을 알고 배려하면 때론 까다로운 협상도 원만하게 마무리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관련 기사 19면)
이런 결과는 ‘글로벌 시대’와 연관이 깊은 것으로 분석된다. 외국 비즈니스맨들과 식사를 하는 경우가 잦아지면서 와인의 중요성이 부각되기 시작했다는 얘기다. 실제 국제 비즈니스 석상에서 가장 많이 오르는 술은 ‘와인’이다.
전 세계 기업과 사람을 이어주고, 문화를 연결해 줄 수 있다는 게 이유다. 이를테면 ‘인터내셔널 코디네이터(International Coordinator)’ 역할을 와인이 도맡고 있다는 것이다. 글로벌 비즈니스를 펼치고 있는 국내 CEO들에게 와인지식이 반드시 필요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와인애호가로 유명한 심재혁 ㈜레드캡투어 대표는 와인과 비즈니스의 연관성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반대로 생각해 보자. 외국 비즈니스맨들이 김치에 대해 술술 이야기하면 어떤 생각이 들까. 상대방을 예우한다는 생각이 들지 않을까. 마찬가지다. 와인은 서구인들에겐 김치와 같다. 뗄레야 뗄 수 없는 주류가 바로 와인이다. 외국 비즈니스맨들 앞에서 와인에 대해 말하면 당연히 접근성 뿐 아니라 신뢰감도 줄 수 있을 것이다.” (관련 기사 18면) ‘와인지식이 풍부하면 글로벌 비즈니스가 그만큼 수월해 질 가능성이 크다’는 설명이다.
와인지식, 비즈니스 필요 하지만 이는 생각만큼 간단한 일이 아니다. ‘와인은 신이 인간에게 준 최고의 선물’이라는 고대 철학자 플라톤의 말과는 달리, 와인은 결코 ‘친절한’ 술이 아니다. 무엇보다 역사·정치·종교·지리·예술· 과학 등 어디 한군데 걸치지 않는 분야가 없을 정도로 ‘스펙트럼’이 넓어, 와인의 심오한 뜻을 이해하기란 여간 어렵지 않다. 그래서 얄팍한 와인지식으로 아는 체 하면 ‘속물 취급’ 당하기 십상이다(관련기사 22면).
심재혁 대표는 “와인은 종류도 그렇지만 분류도 많다”며 “게다가 레이블도 읽을 줄 알아야 하고 빈티지(포도주 수확년도)도 적절하게 확인할 줄 알아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이는 단순한 공부만으로는 절대 습득할 수 없는 지식”이라고 설명했다.
이런 상황은 와인을 앞에 두고 글로벌 비즈니스를 ‘능수능란’하게 펼쳐야 하는 CEO들에겐 그야말로 ‘스트레스’다. 제 아무리 배우고 연구해도 ‘깨달음’을 얻기 힘들기 때문이다. 그래서인지 부족한 와인지식 탓에 스트레스를 받고 있는 CEO도 부지기수다.
삼성경제연구소의 설문조사에 따르면 ‘와인과 관련된 지식을 잘 몰라 스트레스를 받은 경험이 있다’고 응답한 CEO는 84%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스트레스를 받는 이유에 대해선 33.9%가 ‘와인을 선택하라는 주문을 받을 때’라고 답했고, ‘와인의 맛과 가격 등을 구분하지 못할 때’(25.7%), ‘와인 용어를 잘 모를 때’(20.5%)라는 답이 뒤를 이었다(그림2 참조). 이와 함께 응답 CEO 대부분이 와인 스트레스를 해소하기 위해 ‘전문가 교육’(44.8%), ‘와인 관련 친목 모임’(18.8%) 등에 참여하고 싶다는 의견을 밝힌 점도 눈에 띈다(그림3 참조).
배우면 배울수록 더 힘든 ‘와인’그럼 CEO들이 와인을 정복할 수 있는 비법은 무엇일까.
와인 애호가들은 이구동성으로 “정도는 없다”고 잘라 말한다. 그렇다면 지름길은? 아쉽게도 답은 똑같다. “와인의 숨은 비밀을 낱낱이 파악할 수 있는 방법은 한걸음 한걸음씩 와인에 다가서는 길밖에 없다”고 조언한다. ‘와인의 내재된 아름다움을 속속들이 훑어볼 수 있는 방도는 오직 천천히 깨우치는 것 ’이라는 주장이다.
와인 애호가들에 따르면 그 첫번째 발걸음은 와인의 ‘이름’과 ‘지명’(地名·포도주 원산지)을 파악하는 것이다. 시작이 반이라고 했던가. “와인의 이름과 지명의 상관관계만 꿰뚫어 볼 수 있으면 와인의 절반쯤은 이해했다고 말해도 무방하다”는 게 정설이다.
이제 와인의 ‘고수’가 되기 위한 첫 발걸음을 떼 보자. 유럽의 와인명은 포도의 원산지인 지역이나 마을의 명칭과 같다. 가령 ‘메독’(Medoc) 와인은 프랑스 보르도(Bordeaux) 지역에 위치한 메독 지방에서 만들어진 것이다. 화이트 와인의 대명사격인 ‘샤블리’(Chablis)는 프랑스 부르고뉴(Bourgogne) 지방에 속한 포도 원산지 샤블리의 명칭을 따서 만들었다.
샴페인(Champagne)의 사례를 보면, 유럽이 지역명을 와인명으로 삼았음을 더욱 쉽게 이해할 있다. 샴페인 하면 으레 축제가 떠오른다. 그러나 샴페인에는 사실 그런 뜻이 없다. 샴페인은 프랑스 상파뉴 지역명인데 이를 영어식 발음으로 옮긴 것이다. 샴페인은 말 그대로 프랑스 상파뉴 지역에서 만들어진 스파클링 와인(탄산가스 기포가 함유된 와인)을 뜻한다.
포도의 원산지인 지역 명칭을 와인명으로 삼은 것을 알면, 와인의 ‘품질’이 좋고 나쁨을 파악하는 것도 능히 가능하다. 대개 와인의 품질은 프랑스 와인<보르도 와인<메독 와인<생줄리앙(Saint Julien) 순으로 좋다. 이유는 간단하다. 지역이 좁고 구체화 되면 품질이 보장되기 때문이다.
실제 프랑스 안에 보르도 지역이 있고, 그 안에 메독 산지가 있다. 메독 지방엔 4개의 주요 마을(쌩떼스테프·뽀이약·생줄리앙·마고)이 있는데, 그 중 하나가 생줄리앙이다. 이는 한국의 사과도 마찬가지다. 가령 한국에서 생산되는 사과 보다는 경상도 사과가, 경상도 사과 보다는 대구 사과가 인정받는다.
‘지역이 좁고 구체화되면 품질이 보장된다’는 원칙은 동서양의 ‘불문율’이라고 할 수 있다. 조정용 아트옥션 대표는 “와인의 품질을 알고 싶으면 지역이름이 큰 범위인지 아니면 작은 범위인지만 파악하면 쉽게 확인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구세계와 신세계가 다른 와인명 그러나 예외는 반드시 존재하는 법. 지역명이 꼭 와인명인 것은 아니다. 미국·호주 등 신세계의 와인 작명법은 유럽의 그것과 차이가 있다.
미국의 대표적인 와인 ‘나파 밸리 카베르네 소비뇽’의 사례를 살펴보면, ‘나파’(Napa)는 샌프란시스코 북부 지역의 마을로 캘리포니아의 최상급 와인이 생산되는 곳이다.
카베르네 소비뇽(Cabernet Sauvignon)은 세계적으로 가장 사랑받는 레드 와인의 포도 품종이다. 유럽식에 따르면 ‘나파 밸리 카베르네 소비뇽’의 이름은 ‘나파’여야 한다. 하지만 미국은 두가지(지역명+포도품종)가 결합된 새로운 와인명을 만들었다. ‘포도 원산지+품종’의 ‘작명법’이 사용된 셈이다.
조정용 대표는 “신세계의 와인명에 포도의 원산지와 품종이 결합된 것은 우리나라의 김치명에 지역명과 품종이 들어있는 것과 비슷하다”며 “가령 돌산 갓 김치를 보면 ‘돌산’이라는 지역명과 ‘갓’이라는 품종명이 포함돼 있는 것과 같은 원리”라고 말했다.
‘지식’ 보다 ‘체험’ 중요 그렇다면 유럽과 신세계의 와인 작명법이 왜 다른지 궁금하다. 여기엔 흥미로운 역사적 배경이 숨어있다는 게 조 대표의 말이다. 그에 따르면 유럽인들이 만든 나라인 신세계에선 자신들의 조상을 추억하며 포도를 양조하는 사람이 많았다. 이들은 유럽지역의 포도 품종을 도입하면 훌륭한 와인을 만들 수 있을 것으로 생각했다.
하지만 이는 크나큰 ‘오판’이었다. 기후와 토양이 다른 신세계에서 유럽지역의 포도 품종이 훌륭하게 생장(生長)하는 것은 애초부터 불가능했기 때문이다. 예컨대 서늘한 기후에서 생장하는 청포도의 일종인 ‘샤르도네’(Chardonnay)가 뜨거운 기후인 미국과 호주에서 무럭무럭 생장할 수 없었던 것이다.
아마도 이런 이유로 신세계의 와인명에 포도 품종이 곁들어진 것으로 보인다. 비록 맛은 좋지 않지만 포도 품종만은 최상이라는 점을 부각할 요량이었을지 모른다.
이처럼 ‘와인의 이름은 지역명과 같다’‘와인명을 보면 품질의 좋고 나쁨을 알 수 있다’‘유럽과 신세계의 와인 작명법은 다르다’는 정도의 지식만 갖추면 와인에 대한 ‘감’을 잡고 와인규칙을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다. 이쯤되면 와인 비즈니스 때 바짝 긴장하거나 어깨를 움츠릴 필요가 없을 게다.
하지만 안심은 ‘절대금물’이다. 프랑스에만 500가지에 달하는 와인이 있다. 그 이름이 모두 프랑스의 지명일 텐데, 무슨 재주로 기억할 수 있겠는가. 게다가 신세계의 와인명에는 수많은 포도품종까지 결합돼 있다.
그래서 와인애호가들은 시음을 즐겨야 한다고 강조한다. 코로 냄새를 맡고, 혀로 맛을 음미하는 등 ‘와인 스킨십’을 자주 가져야 와인을 좀더 깊숙하게 이해할 수 있다는 것이다.
조 대표는 자신의 저서 <올댓 와인>에 이렇게 적고 있다.
“와인에 대한 일반적인 규칙만 알면 와인에 대해 대충 감을 잡을 수 있다. 이제 남은 일은 와인의 바다에 자신을 던지는 일이다. 식탁 위에서 와인과 스킨십을 통해 와인의 바다로 나갈 수 있다. 와인에 대한 지식도 중요하지만 와인은 무엇보다 자신의 감각을 사용해 온몸으로 체감하는 것이다. 따라서 코로 느끼고, 혀로 판단하는 시음이 와인을 잘 알기 위한 최선의 방법이라고 할 수 있다.”
혹여 턱없이 부족한 와인지식 때문에 밤잠을 설칠 정도로 스트레스에 시달리고 있는 CEO가 있다면 이 말을 귀담아 듣는 것은 어떨까.
와인의 진짜 의미
“와인은 서구인들의 자부심”
서구인들에게 와인은 어떤 의미일까. 이들에게 와인은 ‘역사’의 일부분이다. 영국과 프랑스가 중세에 수백년간 전쟁을 벌인 이유가 천혜의 땅 ‘보르도’의 지배권에 있었다는 사실은 유명한 역사적 사실이다. 와인은 또한 서구의 정신적 버팀목인 ‘기독교’와 연관성이 깊다. 와인은 교회에서 예식을 거행하는데 필수품이다. 성찬식에서 나누는 와인은 기독교의 필수불가결한 소품이기도 하다. 예수 그리스도가 살아생전 벌인 36가지 이적행위 중 첫 번째가 ‘와인’에서 비롯됐다는 성경내용도 흥미롭다. 이 때문인지 서구 사람들은 와인을 삶의 ‘일부’로 여긴다. 실제 유럽의 비즈니스맨들은 식사 도중 와인을 곁들이는 경우가 다반사다. “프랑스인은 여행갈 때 숟가락은 잊어버리더라도 와인 오프너는 반드시 챙긴다”라는 말은 결코 우스갯소리가 아니다. 우리로 따지면 와인은 유럽인들의 ‘반주(飯酒)’라고 할 수 있다. 세계 경제의 중심 미국의 비즈니스맨들도 비슷한 성향을 가지고 있다. 이들 역시 와인을 ‘애지중지’한다. “상대방으로부터 ‘와인’을 선물 받으면 신뢰를 받고 있다는 반증”이라는 속설까지 나온다. 이것이 바로 글로벌 비즈니스를 펼치고 있는 국내 CEO와 CEO를 꿈꾸는 사람들에게 와인 관련 지식이 꼭 필요한 이유다. 글로벌 비즈니스를 하다 보면 ‘와인’이 곁들여진 식사 또는 대접을 받을 때가 ‘비일비재’하기 때문이다. |
이윤찬 기자 chan4877@economy21.co.kr
도움= 조정용 아트옥션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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