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8집에 실을 수필 2편입니다.
1. 왕국에 신민이냐, 현대의 민주시민이냐.
박귀주
오늘날 대한민국 국민 대다수는 "우리 모두는 법 앞에 평등하다"는 믿음을 진정으로 내면화하고 있을까?
12.3 비상계엄령 발표 이후 한 달 반이 지난 지금, 그간의 혼란을 되돌아보면 이 질문에 대해 확신하기 어렵다. 특히 최근 윤석열 탄핵 반대 집회 참가자들이 구속영장을 발부한 차은경 판사를 죽이겠다고 협박하며, 야간에 법원에 난입해 쇠파이프로 유리창과 벽체를 파괴한 폭력 사태는 충격적이었다. 그런데도 윤석열을 지지하는 여론이 40%에 육박한다는 설문조사 결과는 더욱 당혹스럽다.
뿐만 아니라, 무안 공항 항공기 추락 사고로 승객 181명 중 179명이 사망한 비극 앞에서도, 지역감정을 앞세워 희생자와 유족을 조롱하는 반응은 참담함을 더했다. 댓글로 "민주당을 지지하는 전남 지역민들에게 천벌이 내렸다"거나, "유족들이 보험금을 많이 받아서 좋겠네"라는 비아냥이 쏟아졌다. 결국 유족들은 성명서를 통해 고통을 호소했고, 경찰은 엄벌을 약속했지만, 이러한 반응이 나왔다는 사실 자체가 국민 의식의 문제를 적나라하게 드러냈다.
다시 묻는다. "우리나라는 민주 공화국이고, 국민 모두가 법 앞에 평등하다는 가치관을 진정으로 내면화한 사회인가?"
서구적 민주주의는 인류 역사에서 매우 짧은 기간 동안 형성된 제도다. 1789년 프랑스 대혁명은 인권선언을 통해 "모든 인간은 천부인권을 지녔다"고 선언했다. 이를 실현하기 위해 헌법이 제정되었고, 법 앞에서 모든 인간의 기본권이 보장받도록 했다. 또한, 국민의 권리를 보호하기 위해 삼권분립 제도를 도입해 견제와 균형을 이루는 정치체제가 구축되었다. 오늘날 대부분의 선진국은 이 제도를 채택하며, "천부인권"보다 "법부인권"을 더 중시하는 사회를 이루었다. 현대 시민은 하늘을 두려워하기보다 법을 두려워해야 하는 시대에 살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계엄령 사태 이후 드러난 대한민국의 현 상황은 이 믿음을 근본부터 흔들고 있다. 국민 대다수가 법 앞의 평등이라는 가치를 진정으로 내면화하지 못한 상태라면, 이는 곧 우리 사회의 민도를 재점검해야 한다는 신호다. 지금 우리는 스스로에게 물어야 한다. "중세 군주국의 신민으로 남을 것인가, 아니면 현대 민주국가의 시민으로 거듭날 것인가?"
역사를 돌아보면, 1804년 나폴레옹 보나파르트는 공화주의자임을 자처했지만 황제로 즉위하며 권력을 독점하는 길을 선택했다. 반면, 조지 워싱턴은 두 차례 대통령 임기를 마친 뒤 3선의 유혹을 뿌리치고 평범한 시민으로 돌아갔다. 흥미롭게도, 위대한 작곡가 베토벤은 나폴레옹의 공화주의적 이상을 지지하며 교향곡 '보나파르트'를 헌정하려 했으나, 나폴레옹이 황제가 되자 격분해 곡의 제목을 '영웅'으로 바꾸었다.
우리 현대사에는 워싱턴과 같은 지도자가 없었다는 점이 아쉽다. 권력에 눈이 멀어 부정을 저지른 지도자들이 존재했음은 부끄러운 일이다. 그러나 이는 단순히 특정 지도자들의 책임으로만 돌릴 수 있는 문제일까? 결국 그러한 지도자들을 탄생시키고 권력을 허용한 사회적 토양, 즉 국민 민도가 근본적 원인이다.
오늘날 대한민국의 현실은 중세적 권력 구조와 사고방식이 여전히 잔재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스스로 왕이 되고자 하는 자들과, 그런 이들을 추종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는 사실은 우려를 낳는다. 이제 우리는 왕국의 신민으로 남을 것인지, 아니면 현대 민주주의 시민으로 나아갈 것인지를 선택해야 한다. 이 질문에 대한 답은 대한민국의 미래를 결정짓는 열쇠가 될 것이다.
2, 삶에서의 승리와 궁극적 목표
박귀주
삶에서 승리를 얻기 위한 자세는 무엇이어야 할까? 그리고 인생에서 궁극적인 승리란 어떤 모습일까?
2024년 4분기, 나는 인터넷 바둑 게임에 깊이 빠져들었다. 밤늦게까지 컴퓨터 앞을 떠나지 못하고 게임에 몰두한 탓에 식사 시간도 자주 늦었다. 끼니를 급히 때우고 다시 게임에 빠지는 나를 보며, 아내는 "폐인 같다"며 불만을 쏟아냈다. 부부싸움도 잦아졌지만, 당시의 나는 게임 속 승리에만 집착했다.
그러나 지난 석 달 동안 이 경험은 나에게 몇 가지 중요한 깨달음을 주었다.
첫째, 바둑 게임을 통해 배운 교훈이다. 세상에는 '걷는 자 위에 뛰는 자가 있고, 뛰는 자 위에 나는 자가 있다'는 말을 실감했다. 상대를 제대로 이해하고 준비하지 않으면 패배는 당연한 결과다. 같은 실력이라도 제한된 시간 안에 맑은 정신과 집중력으로 숨겨진 위험을 찾아내고, 불확실성을 제거하는 사람이 승리를 거머쥔다. 이는 단순히 게임에 국한되지 않고, 삶의 모든 영역에서 적용될 수 있는 진리다.
둘째, 바둑 게임은 결국 놀이에 불과하다는 사실이다. 생산성도 없고, 시간을 낭비할 뿐이라는 점에서 아내의 비판은 틀리지 않았다. 내가 이처럼 무의미한 일에 매달리는 것은 중독의 늪에 빠진 삶과 다름없다.
그렇다면 삶에서 진정한 승리는 무엇일까? 나는 그것을 두 가지로 정의하고 싶다.
첫째, 자신에게 주어진 시간을 가치 있는 목표를 위해 사용하는 것이다. 꿈을 이루는 과정은 바둑 게임보다 훨씬 더 도전적이며, 종종 실패와 마주하게 될 것이다. 그러나 성공과 실패를 초월해 자신의 한계를 극복하며 성장하고, 삶의 마지막 순간에도 "충분히 살았다"고 만족할 수 있다면 그것이 진정한 승리다. 꿈을 품고 최선을 다하는 과정에서 우리는 더 나은 사람이 된다. 나는 외적인 성공보다는 내면의 치열한 자기 극복의 과정과 부동심의 충실함에서 삶의 진정한 가치를 찾고자 한다.
둘째, 가족, 친구, 동료와 진실된 관계를 맺고 서로 사랑을 나누는 것이다. 서로를 아끼고 선한 영향력을 주고받으며 살아가는 삶이야말로 궁극적인 승리다. 호랑이는 죽어서 가죽을 남기고 사람은 죽어서 이름을 남긴다고 하지 않던가. 악명이 아닌 선행으로 후세에 좋은 본보기가 되는 삶을 살았다면 어찌 아름답다 하지 않겠는가.
삶에서 승리란 단순히 남을 이기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를 극복하고 주변과 조화롭게 살아가는 데 있다. 이 깨달음은 내가 다시금 삶의 본질로 돌아올 수 있게 해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