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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 25;19-26. 내가 어떻게 해야 하겠느냐? 2025. 8. 10.
1. 오늘의 본문의 전제와 내용입니다. 전제는 아브라함이 후처 그두라를 맞이하여 자손을 낳았지만 이삭에게 소유를 주었고 아브라함이 죽은 후에도 하나님은 이삭을 축복하셨습니다. 특히 이삭이 간구하는 모든 소원에 응답하셨습니다, 이삭의 간구는 질문형식이었는데 하나님께서 그 질문에 응답하셨습니다. 또한 아브라함과 이삭의 믿음을 보셨기 때문에 택한 백성으로서의 축복을 허락하시면서 여호와 닛시, 여호와 이레가 되어 주셨습니다. 오늘 본문의 내용은 이삭의 아내 리브가가 잉태하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간구했는데 쌍태를 주셨습니다. 쌍태를 알게 된 이삭의 아내 리브가가 하나님께 이와 같으면 어찌해야 하겠습니까? 간청과 탄원을 합니다. 그런데 쌍태에 대하여 작은 자를 큰 자가 섬길 것이라고 합니다. 여러분, 이 같으면 내가 어찌할꼬? 이런 상황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우리의 상황과 삶에서의 문제들은 늘 산재되어 있습니다. 결정하고 선택해야 할 순간에 이 같으면 어찌해야 하나요? 혈연관계나 지연 관계 때문에 낙심하고 힘들 때에 어찌해야 합니까? 하지만 여러분, 감당치 못할 시험은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질문을 통해서 응답을 받아야 한다면 어떤 질문입니까?
1-1. 질문지능(Question Intelligence)이 있습니다. 어떤 질문을 하는가? 이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유대인이 유대인 되게 하는 것이 많지만 특별히 유대인들에게 하브루타(חַבְרוּתָא)라는 전통적 학습방법이 있습니다. 이 하브루타의 좁은 의미는 동급생이고, 넓은 의미는 가정과 선생님과의 대화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자기주도 학습능력을 향상시키고, 사고력과 창의력을 함양합니다. 노벨 물리학상을 수상한 이시도어 아이작 라비(Isidor Isaac Rabi)이 하브루타와 관련된 유명한 말을 남겼습니다. 그가 훌륭한 과학자가 된 것은 바로 어머니이었습니다. 그의 어머니는 오늘은 무엇을 배웠니? 어떤 질문을 했니? 이것이 Rabi(라비)를 과학자로 만들었습니다. 라비의 어머니는 끊임없이 호기심을 가질 수 있도록 질문과 격려를 했고, 질문을 통해서 호기심을 구체화 하도록 도와주었습니다. 이것이 이시도어 아이작 라비(Isidor Isaac Rabi)를 과학자가 되게 했을 뿐 아니라, 노벨 물리학상을 수상하게 한 원동력이 되었습니다. 여러분, 질문을 통하여 성장하고 자신감을 갖게 됩니다. 맞는 질문을 던질 줄 안다면 어떻게 살아갈지에 대한 해답을 주님 안에서 스스로 구할 수 있게 됩니다. 훌륭한 질문은 때때로 놀라운 창의성과 아이디어를 찾게 해줍니다. 주시려고 약속하신 복을 성취할 수 있는 관계로 연결합니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문제 앞에서 질문을 잘 못해요? 인생과 미래에 대하여 질문을 하지 않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주신 복과 약속된 계획들이 앞에서 사라질 때가 많습니다. 한국이나 일본이 국정의 중요 현안 앞에서 내외신 기자회견을 하지요? 그리고 기자들과 일문일답을 가집니다. 사전에 질문자와 질문내용이 정해지지 않고 즉석에서 이루어지기도 합니다. 정치와 외교, 안보와 경제, 전반에 걸쳐서 질문을 합니다. 그런데 여러분, 질문은 단순히 답을 얻기 위한 것이 아니라, 질문의 종류에 따라 다양한 역할이 있습니다. 진단 형 질문과 공감 형 질문, 가교 형 질문과 유희 형 질문과 전략 형 질문이 있는데 각각의 질문은 다른 목적을 가지기 때문에 상황에 적합하도록 질문의 종류를 결정해야 합니다. 그런데 국정 현안에 대한 기자회견과 질문은 열린 공간에서 분야별로 나누어진 제한된 질문이기 때문에 그 상황에 적합한 질문을 던져야 합니다. 총리와 대통령만이 답할 수 있는 그런 질문이어야 합니다. 자신이 궁금해 하는 것보다는 국민들이 알고 싶어 하는 것을 물어야 합니다. 하지만 주제에서 벗어나고, 순서와 rule을 지키지 않는 기자들의 질문을 많이 봅니다. 여러분, 기자는 무엇을 하는 사람입니까? 기사를 송고하고 질문하는 사람들입니다. 리포터가 아닙니다. 기자는 가장 최고의 질문, 스페셜리스트(specialist)이어야 합니다. 질문할 용기와 방법도 모른 채 열심히 받아쓰는 사람이 아닙니다. 여러분, 우리는 어떻습니까? 2025년에 히메지 비전교회와 여러분들이 세우고 정한 목표가 있습니다. 거기에 주신 주님의 말씀이 있습니다. 주시겠다고 약속하신 복의 내용을 가지고 주님께 질문할 용기와 질문할 내용이 있습니까? 오늘 이삭과 리브가는 담대하게 질문을 하고 요구를 합니다. 왜 이삭일까요? 왜 리브가 일까요? 이와 같으면 어찌할꼬? 질문하고 물어야지요! 그렇게 하시기를 바랍니다.
1-2. 나쁜 질문 지능의 첫 번째입니다. 요11;45-48의 내용이 그렇습니다. 죽은 지 4일 만에 다시 살아난 나사로를 배경하는데, 45절. 마리아에게 와서 예수께서 하신 일을 본 많은 유대인이 저를 믿었으나. 분명 이 일은 나사로의 부활사건임에도 불구하고 요한복음은 이를 기술하며 나사로나 마르다를 언급하지 않습니다. 대신 유대인 조문객들이 마리아에게 와서라는 표현을 사용함으로써 나사로의 가족들 중에 마리아의 중요성을 암시합니다. 유대인들은 예수님이 행하신 기적의 현장을 목격하며 충격을 받았습니다. 죽은 지 사흘이나 지난 사람이 살아났기 때문에 유대인들은 예수님을 메시야로 믿었습니다. 하지만 모든 사람들이 다 믿은 것은 아닙니다. 46절 그 중에 어떤 자는 바리새인들에게 가서 예수께서 하신 일을 고하니라. 이 사실을 알렸습니다. 죽은 사람이 살아나는 그 현장에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리포터가 되었습니다. 강렬한 이적 앞에서 믿음의 동기조차 갖지 못한 사람입니다. 그래서 이름을 밝히지 않고 그 중에 어떤 자는 이렇게 기술을 했습니다. 나사로가 살아나는 장면을 본 대부분의 사람들이 믿었는데, 그 중에 일부의 사람들이 이 사실을 믿지 않고 바리새인들에게 고하러 달려갔습니다. 보고를 했습니다. 그래서 산해드린 공회가 소집되는 반응이었습니다. 47절. 이에 대제사장들과 바리새인들이 공회를 모으고 가로되, 이 사람이 많은 표적을 행하니 우리가 어떻게 하겠는가? 대제사장을 비롯한 산헤드린 공회원들은 죽은 지 4일이나 지난 사람이 살아났다는 보고를 듣고 난 이후에 이구동성으로 이 사람이 많은 표적을 행하니 우리가 어떻게 하겠느냐? 나사렛 예수님의 많은 표적과 백성들이 믿고 추종하는 것 때문에 문제를 삼았는데, 이번에는 사람을 살려서 더 골치가 아프게 되었다는 반응으로 우리가 어떻게 하겠는가? 그런데 우리가 어떻게 하겠느냐? 라는 헬라어 원문의 표현은 우리가 무엇을 해야 하는가? 이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하나님의 영광이 나타났는데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계획과 목적이 무엇인지를 질문하지 않았습니다. 도리어 예수님에 대한 백성들의 관심과 이목과 집중 때문에 전전긍긍합니다. 자신들의 기득권을 유지할 대책에 대해서만 질문을 합니다. 이것은 질문의 수준이 아니라 위협을 느끼는 종교권력자들의 한탄이었습니다. 48절. 만일 저를 이대로 두면 모든 사람이 저를 믿을 것이요, 로마인들이 와서 우리 땅과 민족을 빼앗아 가리라 하니. 자문자답에 가깝게 그들은 답을 쏟아냅니다. 그들은 죽은 나사로를 살려내신 예수님의 이야기를 전해 듣고 진지하게 우리가 어떻게 하겠느냐? 이 질문을 던지고 생명의 주인 되시는 예수님께로 돌아서야 하지만, 니고데모를 제외한 산헤드린 공회원들은 어리석게도 계산기를 두드리며 탐욕에 눈먼 자문자답을 내렸습니다. 나쁜 질문이었습니다.
1-3. 어떻게 하겠느냐? 이 질문은 산헤드린 공회원들만 한 것이 아닙니다. 마27;22 로마총독 빌라도가 자신의 법정에서 군중들을 향하여 이렇게 질문합니다. 그리스도라 하는 예수를 내가 어떻게 하랴? 어떻게 보면 빌라도는 사뭇 고민 섞인 진지한 질문을 하지만 질문이기 보다는 정치적 술수이었습니다. 그는 자신의 인생 뿐 아니라, 영원한 세계가 열리는 문제 앞에서 정치적인 것만 생각했습니다. 그 전날 꿈에 나타난 나사렛 예수의 일로 빌라도의 아내가 무척 힘들었습니다. 그래서 꿈에서 깨어난 빌라도의 아내가 이 사건을 예수님께 해가 되도록 처리해서는 안 된다고 간절하게 이야기와 함께 경고를 했음에도 불구하고 빌라도는 정치적으로 해결을 합니다. 유대인들에게 결정권과 책임을 떠넘겼습니다. 그런데 이런 질문으로 기독교 역사가 흘러가는 시대를 넘어서 항상 빌라도를 끄집어내는데 사도신경에서도 빌라도의 이름이 드러납니다. 이것이 나쁜 질문 지능의 두 번째 입니다.
2. 좋은 질문이 좋은 신앙을 만듭니다. 섭리적 해석의 질문이 중요하고 이런 해석에서 출발한 질문이 어려운 난관을 극복합니다. 2017년 12월 21일 성탄을 앞두고 로마 카톨릭의 프란치스코 교황이 추기경과 교황청 고위 관료들을 만나 교황청 개혁의 방향을 강조해서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그 자리에서 교황은 깨어있는 신앙인이 되기 위한 질문의 중요성을 강조했습니다. 우리를 성장케 하지 않는 신앙은 그 자체로 성장해야 할 믿음입니다. 질문하지 않는 신앙은 질문을 받아야 할 신앙입니다. 잠든 우리를 깨우지 않는 신앙은 깨어나야 할 신앙입니다. 우리의 뒤 흔들지 않는 신앙은 흔들려야 할 신앙입니다. 머릿속에만 머무는 미온적인 신앙은 신앙이라는 개념일 뿐입니다. 여러분, 기독교인들을 왜 프로테스탄트, Protestant라고 합니까? 프로테스탄트(Protestant)라는 의미는 저항이라는 뜻입니다. 그 저항이라고 하는 것은 권위에 대한 믿음을 믿음에 대한 권위로 바꿔놓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러한 저항의 힘은 두 가지의 바탕이 있습니다. 하나는 하나님 말씀을 가지고 현실을 직시하는 것이었고, 다른 하나는 그 직시 위에서 던져지는 질문입니다. 여러분, 좋은 질문으로 세상이 바뀌고 좋은 질문으로 삶이 변화됩니다. 섭리적 해석의 질문이 나의 2025년을 복되게 합니다. 칼빈의 섭리적 해석의 질문이 카토릭을 트로테스탄트가 되게 했습니다. 여러분, 이삭은 아비 아브라함에게 질문합니다. 불과 나무는 있거니와 번제할 어린 양은 어디 있습니까? 이 질문이 결국에는 하나님이 도우시는 여호와 이레가 되었습니다. 복주고 복주며 번성케 되고 번성케 되는 일은 누가 하십니까? 후히 되어 누르고 흔들어 넘치도록 안김을 받는 복은 어떻게 이루어집니까? 섭리적 해석의 질문입니다. 이런 질문을 임마누엘 되시는 주님께 항상 질문하시는 그래서 성장하는 믿음과 깨어있는 신앙과 복된 사람이 되시기를 기도합니다.
2-1. 그렇다면 우리의 질문이 무엇입니까? 히메지 비전교회는 2007년 4월에 건물을 매입하고 리모델링을 통하여 10월 28일 설립을 했습니다. 설립의 모토는 예수님입니다. 요 14:6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신 예수님입니다. 그런데 이 말씀을 하시게 된 배경이 무엇입니까? 요14:5에 제기된 도마의 질문 때문이었습니다. 도마가 질문하기를, 주여 주께서 어디로 가시는지 우리가 알지 못하거늘 그 길을 어찌 알겠습니까? 길에 대한 도마의 질문이었습니다. 그런데 우리 역시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신 주님께 나아갈 수 있습니다. 질문은 이처럼 길을 찾아가고, 진리와 생명으로 나아가는 이정표입니다. 영원한 생명이 되는 전환점입니다. 왜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지시한 땅이 아닌 지시할 땅으로 가라고 하셨을까요? 히11:8 믿음으로 아브라함은 부르심을 받았을 때에 순종하여 장래의 유업으로 받을 땅에 나아갈 새 갈 바를 알지 못하고 나아갔으며. 아브라함은 분명한 목적지도 모른 채 그냥 떠났습니다. 이유가 무엇일까요? 왜 하나님은 처음부터 목적지를 가르쳐 주지 않으셨을까요? 이유는 질문하라는 것입니다. 수시로 질문을 하게 합니다. 때와 상황 속에서 질문하고 고민하라는 뜻입니다. 묻고 답하는 것처럼 좋은 교육도 없고 좋은 관계성도 없습니다. 묻고 답하는 것으로 한 걸음씩 전진합니다. 하나님은 복을 주시고 약속을 하시지만 한 번에 답을 다 가르쳐주시지 않습니다. 이유는 그 때 그 때에 자주 질문하고 물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물론 때로는 질문했음에도 불구하고 답이 없을 때가 있습니다. 그것은 질문이 잘못되었든지, 아니면 때가 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여전히 말씀하실 하나님을 신뢰하며 기다릴 줄도 알아야 합니다. 질문하고 물어야 지루하지 않고, 낙심과 절망하지 않습니다. 여러분, 호기심이 많은 아이들의 행동이 무엇일까요? 귀찮을 정도로 묻습니다. 눈은 왜 내리나요? 머리카락은 왜 길어요? 하늘과 바다는 왜 파란색이야? 이건 왜 이래요? 저건 뭐예요? 지칠 정도로 질문을 합니다. 때로는 귀찮게 느껴지기도 합니다만, 이러한 질문을 통하여 사고력과 창의력이 드러나며 성장과 성숙을 하게 됩니다. 신앙의 성장과 성숙과 복을 받고 약속의 성취를 이루어 가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질문을 통하여 하나님을 알게 되고 더 친밀한 관계가 됩니다.
2-2. 말씀 앞에 어찌할꼬? 하는 질문입니다. 오순절 성령강림 이후 베드로가 예루살렘 거리에서 말씀을 전할 때 말씀을 듣던 사람들의 질문과 반응은 요한복음에 나오는 바리새인과 다릅니다. 행2:37. 그들이 이 말을 듣고 마음에 찔려 베드로와 다른 사도들에게 물어 이르되 형제들아 우리가 어찌할꼬. 어찌할꼬? 이 질문은 산헤드린 공회원들이 했던 질문과 똑같아 보이지만, 이미 결론을 내려놓고 자문자답하던 제사장과 바리새인들의 질문과 달리 베드로 앞에서 했던 사람들의 질문은 동기와 내용에 있어서 전혀 다릅니다. 그들은 베드로의 설교를 통하여 죽음과 부활을 비롯한 구원의 역사에 대하여 들었습니다. 무엇보다도 십자가에 못 박았던 그분이 바로 주와 그리스도가 되신 예수님이셨다는 것을 깨닫습니다. 바로 이 깨달음 이후에 그들은 즉각적으로 그 다음 행동과 결정을 진지하게 고민하며 물었습니다. 우리가 어찌할꼬? 그 때에 답이 주어지면서 문제 해결이 됩니다. 성령을 선물로 받습니다. 날마다 제자의 수가 3000이나 더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복에 복을 더하고 번성케 되는 약속 앞에 우리가 어찌할꼬? 질문하시는 여러분에게 답이 주어지고 문제가 해결이 되는 은혜가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을 드립니다.
2-3. 다윗입니다. 다윗은 항상 질문을 가지고 하나님께 물었습니다. 삼하21장에 다윗이 예루살렘으로 복귀를 했습니다. 하나님을 향한 마음과 다윗의 사랑과 배려로 모든 것이 평정이 되었고 다시 은혜를 주셨습니다. 약속하신 것을 다시 주셨으며 새로운 진용으로 군대장관과 참모진들을 세웠습니다. 삼하 20장 마지막 부분입니다. 여러분, 새로 시작을 했으니까? 잘 되어야지요? 인적 쇄신도하고, 새로운 정책을 가지고, 무엇보다도 하나님의 뜻에 따라 이스라엘을 섬기고, 더욱 풍요로운 시대를 열어가야 되잖아요? 삼하21에서 다윗의 시대라고 합니다. 이제 다윗의 새로운 시대가 되었습니다. 광야의 인생에서 안정되고 소망이 되는 다윗의 시대입니다. 그런데 여러분, 웬일입니까? 다윗의 시대에 연부년 3년간 흉년이 듭니다. 기근입니다. 새로운 시대를 열어가기는커녕 먹는 문제가 발생합니다. 새로운 다윗의 시대에, 의식주 문제가 발생하는데, 백성들의 삶이 무너지면 또 다시 광야의 인생이 됩니다. 기근이 무엇입니까? 비가 오지 않아서 농사를 지을 수 없을 때 겪는 재해입니다. 우기와 건기가 분명한 지역에서 우기 때에 비가 와야 하는데, 연이어 삼 년 동안 비가 오지 않았습니다. 부족한 식량과 물의 부족으로 고통의 상황입니다. 새로운 다윗의 시대가 자연재해로 위기를 맞았습니다. 그런데 자연재해는 다윗이 어떻게 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어떻게 이 문제를 풀어야 할까요? 다윗은 수없이 고통을 당하면서 변했습니다. 10년을 기다리고 또 기다렸습니다. 세 번이나 광야 인생에서 복을 받는 자리까지 왔습니다. 그런데 여러분, 변화된 사람은 하나님의 사건을 읽어냅니다. 사건을 읽어내야 답을 얻을 수 있고, 광야의 인생이 되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다윗이 어떻게 년 부년 3년의 문제를 풀어 갑니까? 문제 앞에 그 문제의 이유를 여호와께 묻습니다. 다시 내몰릴 년 부년 3년의 기근에 대하여 고민을 하지만 다윗이 풀고 할 수 있는 일이 아니기 때문에 하나님께 묻습니다. 그런데 이 질문이 다시 광야 인생이 되어야 하는 상황을 해결해 줍니다. 여러분, 이전의 모든 문제가 원인이 있었음을 체험한 다윗은 연부년 삼년 동안의 기근 속에 하나님의 분명한 메세지가 있음을 알았습니다. 결국 다윗 왕은 무릎을 꿇고, 질문을 했습니다. 하나님, 이 땅에 삼 년이나 계속적으로 기근의 이유가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백성이며 하나님께서 통치하시는 나라가 아닙니까? 또 다시 광야로 내 몰려야 합니까? 알게 해 주시면 깨달은 대로 실천하겠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다윗의 질문과 물음에 응답하시는데 방법과 실천 할 수 있는 일을 말씀합니다. 그래서 다윗은 위대한 왕이 됩니다. 여러분, 아담을 향하여 아담아, 네가 어디 있느냐고 물으셨던 하나님은 질문하시는 하나님인 동시에 대답하시는 하나님입니다. 시링히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수많은 다짐과 결심을 하지만 늘 하나님 앞에 진지하게 질문해야 생의 걸음걸음마다 답을 듣는 삶이 됩니다. 2025년 후반기는 무의미의시간이 아니라, 더욱 성장과 성숙을 넘어서 후히 되어 누르고 흔들어 넘치도록 안김을 받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을 드립니다.
2-4. 마지막으로 조지 워싱턴 카버의 질문입니다. 미국은 흑백차별과 갈등이 있는 나라인데 흑인과 백인 모두에게 사랑을 받고 존경을 받는 흑인 농학박사이며 땅콩박사로 불린 조지 워싱턴 카버가 하나님 앞에서 질문을 했습니다. 한 때 면화재배로 유명했던 미국 남부는 땅 속에 있는 질소를 모두 말려버리는 면화로 인하여 땅이 황폐해졌습니다. 새로운 땅을 개간했지만, 그 땅 역시 면화를 재배하면 이내 못쓰게 되었습니다. 이때 카버 박사는 황폐한 땅에 질소를 생산하는 뿌리 혹 박테리아를 가진 땅콩을 심음으로써 토질이 회복된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이를 권유해 남부의 모든 농가들이 땅콩을 재배했습니다. 그때 또 다시 문제가 생겼습니다. 땅콩을 심었더니 정말 카버 박사의 말대로 땅콩도 풍년이 들었고 땅도 되살아났지만 산더미처럼 쌓인 땅콩을 처분할 길이 없었습니다. 땅콩 때문에 또 다시 망하게 되었습니다. 그 사실을 알게 된 카버는 자기 말을 듣고 수 없이 많은 남부의 사람들이 땅콩을 심었는데, 그들이 땅콩 때문에 고통 받는다면 얼마나 큰 괴로움이겠습니까? 그때의 심정을 카버 박사는 자신의 전기 속에서, 나는 어찌할 바를 모르고 마음이 괴로워서 10월 어느 날 새벽 해뜨기 전에 산 속으로 들어가서 거닐다가 떠오르는 해를 보고, 오, 하나님 당신은 무엇을 하시려고 이 우주를 창조하셨습니까? 그 때에 하나님께서는 너는 너의 작은 소견을 가지고 너무 큰 것을 알려하지 말고 네게 알 맞는 것을 물어 보아라. 그래서 그는 사람을 무엇에 쓰시려고 세상에 두셨는지 말씀해주십시오. 하나님께서 너는 아직도 네가 감당치 못할 것을 질문하고 있구나. 그런 쓸데없는 것은 묻지 말고 네가 마음속으로 진정 원하고 있는 것이나 말해보려무나. 한 참 만에 마지막으로, 하나님은 무엇을 하시려고 땅콩을 심게 하셨습니까? 그러자 하나님께서는 너는 땅콩을 한 줌 들고 실험실로 들어가서 연구를 계속해라. 카버는 땅콩을 한 줌 들고 자신의 실험실에서 밤낮으로 연구한 결과 땅콩버터, 땅콩 구두약, 땅콩크림, 땅콩 식용유 등 무려 105가지의 식용품과 200가지의 실용품을 만들었습니다. 남부 경제가 되살아났으며 미국 경제가 회생되었습니다. 가슴에 얹혀 있던 질문 하나, 아,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 어떻게 해결해야 하나요? 이 질문으로 여호와 이레와 닛시의 기적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을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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