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김치
생각해 보니 파김치를 직접 담가 본 적이 없다. 쪽파 무침으로 그 자리에서 만들어 먹었다. 파김치를 좋아해서 오랫동안 엄마가 담가서 보내주셨다. 친정엄마가 열무김치와 파김치를 정말 맛있게 담갔다. 재료를 밭에서 직접 기른 채소와 고춧가루를 사용해서 그런지 빛깔도 곱고 개운하고 담백했다.
엄마가 먼 나라로 가신 뒤로 그럭저럭 세월이 흘렀다. 엄마 없는 세상은 생각지도 못하고 살다가 어느 날 홀연히 먼 길을 떠나셨다. 한동안 힘든 시간을 보냈다. 참으로 많이 걸었다. 혼자 여행하면서 그리워하고 보고 싶어 했다. 발이 붓고 발톱이 멍들고 나중에는 엄지발톱이 빠지는 지경까지 되도록 걸었다. 엄마가 늘 내 곁에서 나와 함께 하신다는 것을 알기까지 나는 그냥 걸었다.
시골집에서 가져온 쪽파를 반나절 꼼짝하지 않고 다듬었다. 보기보다 양이 많았다. 어떤 일에 몰입하면 시간 가는 줄 모른다. 깔끔하게 다듬어 놓은 쪽파를 김치냉장고에서 꺼냈다. 오늘은 파김치 만들기 도전이다. 어제 마트에서 양념과 젓갈을 사 왔다. 마음 내서 파김치 담그기에 도전하기로 했다. 이렇게 많이 양의 파김치를 담그기는 처음이다. 하지만 주부 30년 차인데 무서울 필요가 없다. 레시피대로 준비해서 따라 하면 되는데 한글만 알면 만사 통과다.
생각보다 김치 만드는 데 시간이 걸렸다. 정성과 손이 많이 가는 김치였다. 엄마가 주시면 넙죽넙죽 받아만 먹었지, 이렇게 손이 많이 가는 김치인 줄 몰랐다. 가족에게 파김치 도전에 성공했다고 큰소리 자랑했다. 큰 통에 2개나 나왔다. 대견하고 신통방통했다. 직접 해보니 별거 아니네! 하면서 김치냉장고에 보관했다. 짜파게티랑 파김치는 환상의 커플이다. 새로 산 냉장고에 미안해서 양념 물든 오래된 반찬통을 다 바꾸었다. 냉장고 열 때마다 행복해서 자꾸 문을 여닫는다. 편의점처럼 진열을 해놓았다. 전시품이 많다. 먹고 나면 바로 사다가 채워 넣는다. 얼마나 갈지 모르지만, 냉장고가 새것이라 살림할 맛 난다.
오전 내내 부스럭거리며 담근 파김치를 내놓았다. 비주얼은 일단 합격이라며 맛을 보더니 엄지척을 해준다. 어깨가 으쓱했다. 처음으로 파김치를 담갔는데 친정엄마 파김치 흉내는 내는 후한 점수를 받았다. 시골집에서 기른 쪽파로 김치를 담그니 더 맛있다. 김치냉장고가 채워지니 부자가 된 기분이다. 요즘 우리 식탁에는 온통 파김치와 파전과 파간장에 파무침뿐이다. 파가 단연 대세다. - 2024년3월30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