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하각 烟霞閣 = 계남고택 溪南古宅
원소재지 : 경북 안동시 도산면 토계리 192.
창건시기 : 1800년대로 추정.
이건시기 : 1975년 경북 안동시 도산면 단천리 500-2.
: 2008년 경상북도 안동시 성곡동 730-1. 안동 민속박물관 內.
지 정 일 : 경상북도민속자료 제8호.(1973년 8월 31일)
연하각이 원래 있었던 ‘계남溪南’은 도산면 토계리의 한 마을이며,
연하각은 이 마을 종택宗宅의 당호로 李晩運이 경주부윤을 지냈기 때문에
계남경주댁溪南慶州宅 또는 계남댁溪南宅 으로도 부른다.
도산면의 각 동리는 거의 대부분이 眞城李氏 一族의 奠居地로
李氏一族들은 대부분 퇴계退溪 선생의 자손들이다.
그 중에서 계남 마을은 退溪水의 남쪽에 위치한다하여 생겨난 이름이다.
상계上溪, 하계下溪와 함께 각기 퇴계수의 한 굽이에 자리잡은 계남은
도산면의 중심지였으며 도산서원陶山書院에서 이씨 일족의 고장으로 들어가는 첫 동네였다.
▼ 1985년 吳水昌이 그린 溪南宗家煙霞閣全景圖.
대지의 좌측에 내당內堂 및 안 사랑舍廊의 부속건물로 연결된 ‘ㅁ’자형의 와가瓦家를 두었고,
그 우측에 사랑채 건물로 정면 5칸, 측면 5칸의 팔작기와 지붕집 2동을 나란이 배치하였다.
사랑채의 뒤편에는 서운정이 자리 잡고 있다.
행랑채는 전면과 좌측면에 배치하였는데, 민가 건축으로는 그 규모가 상당히 크다.
전면의 행랑채는 크기가 정면 28칸, 측면 1칸이며
안채와 사랑채로 통하는 솟을대문을 2개를 내었다.
좌측의 행랑채는 정면 7칸, 측면 1칸이다.
▼ 계남고택 안채 평면도
▼ 계남고택 안채 지붕 평면도
▼ 계남고택 입면도
널찍한 안마당을 두고 있는 안채는 5량 구조의 맞배집이다.
7칸 크기의 안채는 5칸이 마당과 접하고 있는데
이를 모두 대청으로 만들었다면 십칸대청이 되었을 것이지만
2칸에 안방을 들였기 때문에 육칸대청이다.
안대청은 중도리 받침 기둥을 세웠기 때문에 통칸이 되지 못하고
툇마루와 대청마루가 나누어져 있다.
서울 양반가들은 대청에 분합문을 달기 위해 기둥을 세우지만
이 집은 구조적인 문제와 재료적인 문제 때문에 중도리 받침 기둥을 세운 것으로 보인다.
안방이 2개인 것도 특이한 모습이다.
안방은 공간을 넓게 사용하기 위해 뒤쪽에 커다란 부속실을 달았다.
안방 쪽 날개채에는 부엌과 방, 중문간을 배치하고
건너쪽 날개채에도 방과 부엌 겸 중문간을 달았다.
날개채 방에는 바깥 쪽에도 쪽마루를 달아 집 안팎에서 출입할 수 있도록 했다.
▼ 이건 전 계남고택 안채 정면 부분
계남이라는 이름은 하계 남쪽에 위치한다는 듯이다.
도산면 원천리에서 작은 고개를 하나 넘으면 단사 마을이 나온다.
단사는 마을 뒤에 붉은 점토질의 산맥이 뻗어있고
전면은 낙동강의 맑은 물이 항시 흐르며, 강변의 사장이 폭넓게 펼쳐져 있어
붉은 단丹자와 모래 사砂를 따서 마을 이름으로 삼았다한다.
마을 앞의 협곡인 단사협丹砂峽은 천하절경으로
예안읍지禮安邑誌인『선성지宣城誌』에서 예안의 빼어난 경치 14곡曲 가운데
제7곡으로 기록하였으며, 퇴계선생은 그 절경을 시詩로 남겼다.
이 단사협에는 옛부터 신선이 살고 있다고 전해지는데, ‘丹砂’는 신선들의 식량이 된다고 한다.
연하각烟霞閣은 마을 우측에 자리잡은 眞城李氏 丹川派宗宅을 지나
마을 뒤로 100m쯤 올라가다가 나타나는 산 속의 작은 분지 속에 자리잡고 있다.
▼ 안동 민속촌으로 이건된 계남고택 안채 좌측면 및 정면
계남 마을의 형성은 퇴계 선생의 8대손 함인재含忍齋 이귀용李龜容公이
단사丹砂, 천사川沙 등지에서 살다가 1748년(영조 24) 이곳에 터전을 잡으면서 시작되었다.
그 뒤 잠시 순흥順興땅에 만거萬居했다가 1804년(순조 4)에 다시 계남으로 옮겨왔다.
이로부터 자손들이 영달榮達하고 문호門戶가 번창繁昌하여 계남 동네가 명성名聲을 떨쳤다.
그러나 아쉽게도 이 유서 깊은 동네는 8.15해방의 혼란과 더불어 6.25 전쟁을 전후로
전원田園은 황폐해지고, 많은 집들은 비워지게 되었다.
그리고 설상가상雪上加霜으로 1976년에 안동댐이 축조되면서 계남 마을은 수몰이 되고 말았다.
계남종택溪南宗宅인 연하각은 6.25전쟁 전후에 소실 파괴되어 버리고,
잔존건물인 연하각의 내당內堂과 안 사랑舍廊의 부속건물과 別業인 서운정棲雲亭은
안동댐 수몰로 후손 원강源康씨가 1975년 현 위치로 이건하였다가
2008년에 이곳으로 옮겨왔다.
◆ 안 채
▼ 안동 민속촌으로 이건된 계남고택 안채 외부 정면
▼ 전면 내부
안 사랑채는 정면 4칸 크기의 팔작집인데 지붕을 높이지 않아 수수해 보인다.
칸 구성도 사대부가의 그것과는 사뭇 다르다.
일반적인 사대부가의 사랑채는 사랑방 2칸, 대청 2칸 쯤으로 구성하고 누마루도 설치하지만
이 집은 사랑채 1칸에 광을 들이는 파격을 보인다.
광을 설치한 칸은 상하부를 나누어 하부는 아궁이와 문간으로 사용하고
상부는 다락으로 사용했다.
4칸의 사랑채는 광, 사랑방 2칸, 대청마루로 구성했다.
사랑방은 안채에서 곧장 출입할 수 있도록 뒤쪽에도 출입문을 만들었다.
사랑대청은 날개채 쪽으로 1칸을 넓혀 2칸 크기이지만
측벽을 판문 (나무판으로 만든 문)으로 막았기 때문에 답답한 느낌을 준다.
▼ 좌측면 내부
좌측면 두번째 칸에는 널문을 달아 마당으로 통하는 출입문 칸을 내었으며
그 옆에는 정면 2칸, 측면 1칸의 방을 두었다.
그 옆으로 정면 3칸, 측면 1칸의 부엌이 자리하고 있다.
▼ 좌측면 부엌 내부
▼ 우측면 외부
▼ 우측면 내부 정면
우측면에는 정면2칸, 측면 1칸의 2칸통 방를 꾸몄다.
마루와 연접한 좌측면에 방1칸이 있으며,
이방과 연접하여 마당으로 통하는 중간문 칸을 내었다.
이 중간문을 열고 들어가면 바로 앞에 중문과 같은 크기로 또 하나의 문을 설치하여 놓았는데,
이 문은 필요시에만 개방하고 평상시에는 빗장으로 걸어 內堂이 바로 보이지 않게 하는
내외벽內外壁의 기능을 한다.
그 우측면에 연하여 정면2칸, 측면 1칸의 2칸통 방를 꾸몄다.
▲ 중문간과 대청 사이에는 계단을 설치했다
▼ 배면 내부
널찍한 안마당을 둔 안채. 2개의 안방과 육칸대청으로 구성되어 있다.
안채는 내당內堂 및 안 사랑舍廊의 부속건물로 연결된 ㅁ자형 목조 와가로
팔작지붕 민도리 홑처마집이며, 그 규모는 정면 7칸, 측면 7칸이다.
안채 건물의 공간구성은 전면에서 볼 때, 좌측에는 정면2칸, 측면 1칸의 마루방이 있다.
좌측에서 세번 째 칸에는 중문이 있고,
중문 우측의 안 사랑채는 전면에 반칸의 퇴칸을 내고 정면 2칸, 측면 1칸의
2칸통 온돌방을 두었다.
▼ 배면 외부
연하각의 전방 30여m 떨어진 곳에는 서운정이 자리잡고 있다.
◆ 사랑채
6.25 때 소실로 지금은 이 건물은 없다.
◆ 행랑채
6.25 때 소실로 지금은 이 건물은 없다.
烟霞閣 懸板 75*27cm
계남고택은 다양한 유틸리티(다용도) 공간이 돋보인다.
곳곳에 광을 들이고 반침을 설치해 공간을 풍부하게 사용한 것이다.
일반적으로 광이나 헛간은 날개채나 행랑채에만 설치하지만
이 집은 사랑채 툇마루, 안대청 구석에까지 광을 만들었다.
요즘의 붙박이장 용도인 반침을 사랑방과 안방은 물론이고 사랑대청에도 만들었다.
우리네 한옥은 3칸 크기든 그 규모에 상관없이 다양한 수납공간을 곰살맞게 확보하고 있다.
그것은 별채(헛간 등 수납공간)를 지을만한 재력이 없기 때문이 아니다.
그 공간에는 그 공간의 쓰임새에 맞는 그만큼의 여유공간만 있으면 되기 때문이다.
안방에는 안방에 필요한 공간, 사랑방에는 사랑방에 필요한 공간만 있으면 되는 것이다.
◆ 서운정
소 재 지 : 경북 안동시 도산면 단천리 467.
창 건 자 : 농와聾窩 이언순李彦淳.
이건시기 : 2008년 경상북도 안동시 성곡동 730-1. 고건축박물관 경내.
서운정은 농와聾窩 이언순李彦淳공이 만년(헌종 1842)에 벼슬에서 물러나
유식처遊息處로 삼기 위해 지은 정자이다.
정자의 이름은 문순공 퇴계 선생의 詩에서
[在山願爲棲雲鶴 산에 있으면 구름에 깃드는 학이 되기 원이나]라는 구절에서
두 글자를 따와서 현판한 것이다.
내부에는 농와聾窩라고 쓴 현판과 류치명柳致明이 撰한 서운정기栖雲亭記를 비롯한
몇 개의 기문과 시판들이 걸려 있다.
들어가는 출입문인 사주문에는 재산문在山門의 현판이 걸려 있다.
도산면 단천리의 서쪽 산록에 낙동강을 바라보며 동향으로 자리잡고 있다.
정자의 규모는 정면 3칸, 측면 1칸 반으로 홑처마 팔작 기와집이다.
공간구성은 가운데 마루를 중심으로 좌측에 1칸 반의 온돌방과 뒤에는 벽장을 만들었으며,
우측에는 1칸의 온돌방을 두었으며 전면 2칸에는 반칸의 마루로 꾸몄다.
후면과 우측면에서 전면 우측까지 툇마루를 설치하였다.
덤벙주초를 놓고 각주를 세운 홑처마 팔작지붕 건물로 전면에 짧은 누하주를 만들어
누각식으로 꾸몄다.
▼ 이건 전 서운정 전경
▼ 이건 후 서운정
▼ 栖雲亭 懸板
얌전하면서도 꼿꼿하여 힘을 느끼게 하는 안정된 해서체이다.
정자의 이름은 퇴계의 詩 가운데
在山願爲棲雲鶴 산에 있으면 구름에 깃드는 학이 되기 원이다.
라는 구절에서 따온 것이다.
▼ 농 와 聾 窩
▼ 서운정기 栖雲亭記
▼ 재산문 在山門
첫댓글 구경 잘 했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