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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성당 김경렬
포덕68년(1927) 평북 박천 출생
여성회 본부 회장
복호동 수도원장
여성회 본부 고문
"한울 이치 담긴
천도교 주문이 제일"
여성회 본부 고문
왜정 말기에 여성들이 출가를 해야 하는데, 출가를 안하게 '덴신다이'라고 해 가지고 가지고 해야 정신대를 뽑아갔습니다. 그래서 열여덟 살에 출가를 했어요. 그 때가 포덕 84년(1943년)이에요.
제가 살던 곳은 평안북도 박천, 거기 청릉면에 노동동이라고 있어요. 시집은 평안북도 구성으로 갔어요. 시집을 가니까 그 댁에서 동학을 한다고 하더라구요. 그런데 사흘만에 어른은 다 모여라, 해서 종을 쳐요. 그래서 나가니까 사랑방이 깨끗하게 정돈되어 있고 거기에 듯자리를 깔고 청수를 모셔놨드라구요
그런데 시할아버지 얘기가 뭐냐 하든, 새아기는 우리 집에 오긴 왔지마는, 우리 집에서 어떤 일을 하고 있는 줄은 모를 것이 다. 바로 오늘 저녁같이 청수를 모셔 놓고 가족이 전부 기도를 하는 것은 천도교를 하는 집이다, 하시더라구요. 그 이틀 후에 책을 주시는데 <교리 독본>하고 여성회에서 처음으로 나온 <부인 필독>이라고 있어요. 그두 권을 갔다 줘요. 그때만 해도 제가 국문은 해독을 했더랬어요. 그 때부터 정말 우리나라도 이런 종교가 있나, 거기서 마음에 와 닿더라구요.
그리고 포덕 87년(1946년)도 2월에 평안북도 구성군에서 2개월 간 종학을 한다니까 시부모님들이 소잔등에 쌀을 싣고 이부자리도 전부 싣고 며느리 공부시킨다고 데려다 주시더라구요. 아마 천도교인이 아니고서는 못 하실 거예요. 들어가 보니까 학생수가 몇인가 하면 백두 명 중에 남자가 백 명, 여자가 두 명이에요.
제가 열아홉 살, 나머지는 전부 이십대예요. 참, 천도교에는 청년도 많고 여러 가지로 배울 집이 많구나, 해서 입학을 해 가지고, 선생님이 다섯 분인데, 한 분 한분 정말 말씀하시는 게 내 마음에 와 닿더라구요. 상주선도 사로 계시던 표영삼 선생님이 그 당시에 첫 수련을 가르치시고 그 전에 교령으로 계시던 김재중 씨가 동학지인생관을 가르치 셨어요.
하나하나 가르치시는 것이 정말 이건 내가 배워야 될 거로구나 해서 거기서 결심을 한 거예요. 이걸 배워서 나만 좋다 하지 말고 많은 사람에게 전하는 사람이 되자고 한 거예요
그래서 열심히 파고들다 보니까 졸업하고도 집에 있게 되지 않고, 면이나 군으로 추천이 돼더라구요. 면에 가서 순회강사로도 있었고, 군에 가서는 여성부에 부원으로 들어가서 쭉 활동을 했어요. 그러다가 중앙으로 나온 것이 평양 종무원이에요. 거기 와서 강습을 받고 전국 순회강사가 됐어요 북한에서는 일하기가 참 힘듭니다.
왜 힘드냐 하면 8대 자유 라고 하면서 자유가 없는 것이 북한입니다. 한번 출장을 나간 다고 해도 사복 형사들이 따라댕깁니다. 원고는 꼭 써야 돼요. 나가서 얘기를 하되, 무슨 문제가 있으면 난 이대로 말했소, 이렇게 하고 댕기기 때문에, 하고 싶은 말이 있어도 다 못했어요.
그 당시는 삼당 체제인데, 청우당, 민주당, 노동당 3정당이에요. 3정당 중에도 천도교 청우당은 전부 농민에게 뿌리를 내렸습니다. 민주당 계통은 도시로 나갔고. 그래서 탄압을 어디서 부터 받았나 하든 민주당이 먼저 탄압을 받았어요. 그리고 마지막으로 청우당이 탄압을 받는데, 어떻게 하나 하든 천도교에 입교를 해서 간첩 노릇을 했어요.
내가 스물한 살 때 천도교에서 남북통일 기금 모금을 했어요. 헌데 단체에서 2천 원 이상 보관을 못 하게 돼 있었습니다. 제가 한 달 동안 다니면서 기금 모금을 했는데 정말 아닌게 아니라그때 당시에 가락지, 비단 같은 것도 많이 나와요. 그래서 돈을 둘 수가 없으니까 전부 집을 샀어요. 천도교 명의로는 살 수 가 없으니까 개인 명의로 집을 사 가지고 지주들 밑에다가 교회 명의라고. 비밀이죠. 이렇게 해서 묻어버리는 거예요. 봉해 버리는 거죠.
그럭허군 직원들이 가서 사는 거죠. 그 후에 얼마 안 있다가 육이오가 났는데, 피난 나오면서 비참한 건 말도 못 하고. 부산에 갔더니 부산시교구가 피난민 수용소로 되어 있었어요. 한해 겨울을 거기서 났는데, 그 당시에 연극도 하고 별 거 다했어요. '먼동이 틀 때'라는 연극에서 제가 주연을 했는데, 참 많은 사람 울리기도 하고, 그때 당시에는 다 피난 나온 사람이니까 다들 서럽게 울고 그랬죠.
결혼하고 나서, 8월 초하릇날 남편이 입대를 했어요. 그리고 얼마 안 있어 8월 15일에 해방이 됐죠. 입대를 해서 소련 국경 지지하루라는 곳에서 편지를 했는데, 해방되고 석 달 후에 그 편지가 왔더라구요. 그럭하군 소식을 몰라요. 그래, 제가 재가를 해서 지금 애들 아버지(한용락)하고는 나이 차이가 집니다. 애들 아버지가 저보다 12년차예요. 천도교를 상당히 진실하게 믿는 분이에요. 열네 살에 천도교에 들어와 가지고, 북에서는 천도교 청우당 위원장으로도 계셨고, 또 천도교 내에 임원으로도 주욱 계시다가 여기 오셔서 돌아가신 지가 14년 됐습니다.
그럭하구 지금 오남매입니다. 딸이 셋 있고 아들이 둘 있고. 그 아들이 하나는 김해에 있고, 넷은 서울에 살 고, 다들 천도교 잘 믿고 있습니다. 손자들까지도요. 천도교들 다 신봉 잘 해요. 잘 따라 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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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도교를 믿어 보게 되면 다른 것을 할 수가 없어요. 왜 그러간 하면 천도교를 하면 사람이 아주 순해지게 됩니다.
왜그런가 하면 천도교 요지는 첫째가 신관. 두 번째가 우주관이죠. 세 번째가 인 간관. 장생관이거든요, 그 다음에는 도덕관, 윤리관이 있어요. 고 다섯 가지가 기본입니다.
왜 신관부터 알아야 하나 하면 한울이 뭔지 알아야 하잖아요. 한울은 무체예요. 유체가 아닙니다. 무체니까 무체는 인간을 통해서 한울의 원리를 배우게 되거든요. 신관 다음에 지기라고 해 가지고 우주관이거든요. 우주관은 자연의 이치를 알아야 한단 말이에요.
그 다음에는 인간이 어떻게 자연과 우주를 소화시키겠느냐, 고게 교화입니다. 옛날 기성종교에서 이 세상, 그냥 나그네로 왔다가 나그네로 돌아간다, 그러니까 죽어서 영생하자, 해서 낙원을 찾는 사람, 천당을 찾는 사람 이렇게 구분이 되어 있잖아요? 천도교에서는 그게 아니예요. 장생관이라 해 가지고 이 세상과 더불어서 내려가면서 장생하게 돼 있어요.
그러니까 우주, 자연관을 첫째 터득을 해야지요? 자연관을 터득하면 한울님은 자연히 터득이 되거든요. 그 다음에는 인간과 한울은 떨어질래야 떨어질 수 없는 요런 생명체를 가지고 있어요. 생명이 뭔지 우리 눈으로 보이진 않아요. 하지만 내게 생명체가 있기 때문에 말을 하고 대화를 하고 생각을 하고 모든 걸 꾸며나가잖아요. 그걸 깨닫고 나면 우주, 자연, 하늘의 신관에 대한 걸 쭉 알게 되어 있어요. 그러면 거기에는 나쁜 것이 없어요. 실제로 사람에게는 다 좋은 것뿐 입니다. 나쁜 건 없습니다.
그러나 인간은 살아가면서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말로 하고 거기서 작용이 많이 일어나잖아요. 작용이 많이 일어나게 되면 은 그걸 이해 못 하는 사람은 좋지 않은 데로 빠져서 아주 극으로 내려가는 사람이 있고, 아, 저거는 해서는 안 된다, 요거를 조금 이해하게 되면, 그리로 안 들어가요.
그렇게 되면 아, 이 자연이라는 게 이렇구나, 인간은 자연의 원리를 어떻게 섭취하 고 받아들이고 살아나가야 되나, 그 원리를 알게 되거든요. 그러면 그걸 하질 않아야 돼요. 만약에 알고도 하면 모르는 사람 만 못 하지요. 그렇지 않겠어요?
그러니까 모든 원리는 나에게 서 돌아가는 겁니다.
내가 조금 이해를 하면 상대방이 편안하 게 되고 이해를 못 하면 저 사람하고 적이 되고, 모든 이치가 다 그렇더라구요. 그렇다 보니까 모든 것이 나에게서 일어나는 거 예요.
그래서 대신사님이 말씀하신 게 있어요.
신앙과 도덕을 하는 거는 다 나를 위해서 하는 것이지, 다른 것이 아니니라, 하셨거든요.
그런 말씀과 경전의 말씀을 들어보면 다 정말 틀림이 없는 것이다. 이것을 소화시키려면 어떻게 해야 하겠느냐, 내가 깨달아야 되겠다, 깨닫는 데서 멈추지 말고 나보다 못한 사람, 모르는 사람을 알게 하는 것이 내 담당 임무구나, 그런 생각이 들더라구요. 그래서 천도교에 한 3년만 있으면 60년을 믿어요. 그러다 보니까 세상 사는 것이 전부가 내 마음, 가장 중요한 것 이다 내 마음이구나 하는 생각이 나더라구요.
대신사님은 잘 해서 너 천당 가라, 극락 가라 그것이 아니고, 나를 잘 위하게 되면 네가 사는 가정도 편안하고, 또 네가 사는 세상도 편안하고, 나아가서는 전체, 내가 대한민국 국민이라 하면 너희 나라가 잘 되지 않느냐, 그러니까 백성이 다 하나같 이이 뜻을 전해서 나를 위하게 하라, 하는 것이 대신사님이 하신 말씀과 한울님의 대화입니다
모르는 분들은 대신사님이 지어서 말씀을 하셨다 그러시는 데, 빨리 공부해서 알고 싶은 것이 있거든 한 가지만 대드릴 테 니까 그대로 실천해 보세요.
그게 뭐이냐 하면 우선 먼저가 주문이다. 주문 한 시간 외고 그 다음에 본인이 공부하고자 하는 책을 보든지 뭣을 보던지 해라, 이것은 틀림없습니다. 왜 그러냐면 지극히 공부를 하고 지극히 마음의 한울님에 마음을 두게 되면 지혜가 열려요. 과학자가 대상을 놓고 연구하게 되면 상당히 골뜰하지 않아요? 이 수행하는 사람도 마찬가지예요
내가 무엇을 깨달아야 되겠 다, 거기다 두고 주문을 외고 자기가 목표한 것을 하다 보면 나도 모르는 사이에 내 머릿 속에 다 들어가 있습니다. 그때 터지게 되면 자연입니다.
누가 말해도 빨리 그 머리가 해석이 되게 돼 있어요. 수도하는 사람들이 공부하라는 게 다른 게 아니고 딱 믿고 하면 반드시 자기가 원하는 목적이 이루어진다는 겁니 다. 근데 세상 사람이 그걸 잘 믿지를 않아요. 그러나 믿는 사람은 되고, 믿지 않는 사람은 안 돼요. 그것을 그 동안에 살아오면서 터득을 했습니다.
다 젤 많은 른 종교에 게 대한 기독교 것을 아니에요? 많이는 연구 저희만 안 해도 했지마는 기독교 마을에는 뒷집에 서 살았는데, 그거 하나 안 받아들여지거든요. 그러나 지금에 와서 그 사람들하고 대화하면 하나 나쁜 거 없어요. 다좋은 것 인데요 이치가 달라서 적과 적이 돼요. 고거를 해소시켜야 합 니다.
저는 만나는 분마다 그 소리를 합니다. 비록 종교는 다를망정, 하늘의 이치는 같다, 가리키는 법은 같다, 종교가 좋은 거 가리키는 것이 우리의 목적 아니냐, 하니까 서로 내 것이 옳다, 네 것이 옳다 하지 말고, 우리가 좋은 일만 골라서 세상에 전하면 이 세상이 바른 세상이 되고 좋은 세상이 될 거 아니냐.
그러니 여러분, 어디를 가든 좋은 일 많이 합시다, 하는 게 제 말입 니다. 천도교는 믿는다고 하기보다 한다고 그럽니다. 왜냐하면 노력을 해야 되니까. 그러니까 정말 현대적 종교죠 .
종교라고 하는 것은 우리가 사회에서 합리적으로 배울 거는 다 학교를 통하던가 해서 배우지마는 이 종교는 자연계를 배우는 거예요. 이것이 마지막 학교입니다. 나이가 많은 사람이든, 젊은 사람이든 여기에 들어와야 자연에 대한 한울님의 본뜻, 자연을 잘 통달되게 되면 밉고 고운 사람이 하나 없습니다. 서로 다 좋습니다. 서루 다 내 형제요, 내 친구요, 내 친딸이요, 내 손자구, 나이 많은 사람은 아버지 뻘도 되고, 할아버지 뻘도 되고 그렇잖아요. 그걸 초월이라고 하는데, 인간계와 종교계를 초월하게 되면 하나 적이 될 수가 없어요. 그래서 난 천도교가 좋다고 오늘날까지 믿어 왔어요.
제일 좋은 게 천도교다, 물론 자기 종교를 믿는 사람들은 다 좋다고 하겠지마는 하여튼 종교인들끼리 만나서들 대화도 하게 되 면, 일부러 찾아오는 사람도 봤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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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회에 제가 6년 간 회장으로 있었는데, 종교협의회에 나가서 대화를 해 보면, 처음에는 잘 안 먹혀들어가요. 조금 깔본 다고 할까. 그래도 한두 달에 한 번씩 빌 적마다 그 사람들 얘기 다 들어주고, 그 다음에 필요하게 되면, 그거는 난 이렇게 생각 한다, 이런 방법으로 하는 게 좋겠다, 그렇게 하니까 지금도 찾아오는 분들이 있더라구요. 다시 한 번 말씀을 듣고 싶어서 옵니다, 천도교 여성회 회장님은 남의 마음 속에 들어갔다 나왔는지, 말을 어떻게 그렇게 잘 하십니까, 하는 말들을 하드라구요.
이 세상 살아가는 원리가 바른 길을 가다보게 되면 바른 말 하는 게 그 사람들 마음에 집혀오고 하는가 보더라구요. 그리니까 서로 종교가니 종교다, 내 종교다 하는 게 없구 하나가 되 더라구요. 모든 게 우리 마음의 벽을 뚫다 보면 틀림없이 하나 가됩니다.
회장으로 취임해 가지고 해 놓은 거는 별 다른 거는 하질 않았습니다. 여성회 60년사가 있었는데 10년 간을 더해서 여성회 70년사를 만들어 놓고,
그 외에는 제가 지금 경북 김천 구성면에 가 있잖아요. 그게 천도교 경전에 내칙, 내수도문이 있잖아요. 그 백 년만에 거기에 비를 세우기로 했어요. 그걸 여성회에서 했으면 좋겠다 해서, 여성회에서 기금을 모아가지고 포덕 131년(1990년) 12월 20일에 제막식을 했어요. 벌써 14년 됐네요. 한 지가요.
이것만 해 놓으면 안 되겠다, 수도원을 하나 하고, 법설이 계속 이어나갈 수 있게 해야 되지 않겠느냐. 해서 포덕 136년(1995년) 4월 25일에 복호동 수도원 개원식을 했어요.
현재까지 제가 수도원장으로 이제 8주년째, 만 7년을 지냈어요. 어느 정도는 자리가 잡히고, 그래서 이제는 다른 분을 모셔야겠구나, 하는 생각을 했거든요 복호동 수도원은 지을 때 천도교만을 위해서 지은 게 아니예 요. 물론 얼른 볼 때 천도교를 위한 것이지만, 모든 사람들이 배우고 정신적으로 배우고, 배움의 도장이 되게 되면 이게 보람이 있지 않겠느냐, 전 세계를 볼 때에 여성이 주관을 해서 수도원을 지은 유례가 없습니다. 그러니까 언젠가는 우리나라 사람만 아니라 모든 사람들이 와서 다한 번씩 들여다 볼 수 있는 이런 게 역사적으로 남으리라 봅니다.
그러니까 지금도 잘 해왔 지마는, 앞으로도 모든 사람들이 신경을 써 주었으면 하는 바 람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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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정 적에는 여자들은 공부를 잘 안시켰어요. 제가 공부하는 게 철천지 한이었습니다. 부모님들 공부를 못 공부하는 거를 몰래 언니가 뒤에서 밀어줬어요. 언니가 나보단 6년 위에요. 그 분이 자신이 공부를 못 했으니까 뒤에서 밀어줬어요. 어쨌든 넌 가라, 그러면 갔다가 집에 들어오지를 못하고 밖에서 앉았는 거예요. 어머니한테 야단맞을까 봐 그러면 그 추 운 데서 떨다가 들어와라, 하면 들어갔거든요. 그렇게 한 달을 버티니깐 그 다음엔 보내 주더라구요. 영리하다는 소릴 들었어요. 한 번 들으면 잊질 않아요. 순회두 한 번 따라댕기게 되는 순회강사가 얘기를 하면 한 바퀴 돌으면 그거 다 머리에 따로 외서 나 혼자 해요.
그렇다 보니까 저 분은 수련 해서 정말 이치에 맞는 말을 하는구나, 그러든 이게 뭔가 있구나, 나도 해 봐야 되겠다, 하고 어떻게 했냐 하면 하루에 딱한 시간씩 했어요. 아침 4시면 일어나서 수련을 했어요. 그렇게 육개월이 되니까 내 입에서 딴 말이 나와요. 우리 교회에서 수련하면 주문 공부 아니에요? 주문 외라는 거거든요. 스물 한 자. 그걸 인제 쭈욱 읽다 보니까 내 입에서 어떤 말이 나오느냐 하면, '오직 일심(一心)'이란 말이 나오더라구요. 단한 마음뿐이다. 그냥 주문을 외다 보니까 주문이 안 나오고 이 말이 나와요. 탁 거기서 정신이 들더라구요
그래서 이게 도대체 오직 일심이란 게 뭔가, 글자로만 보면 여 러 가지 마음먹지 말고 단 한 가지로서 열심히 해라 하는 말은 틀림이 없는데, 경전을 한 삼 년 자꾸 봐도 그게 뭔지 머리에 들어오질 않아요. 그러더니 한번은 경전을 보다 보니까 글이 거 기에 딱 쓰여져 있더라구요. 그게 도덕가에 나와 있습니다. 그 래서 삼 년 후에 깨달은 적이 있어요. 주문을 외다 보면 그렇게 경전 속에 있는 말이 나와요.
내가 보지 못하면 다른 사람이 깨달을 수도 있고 그렇게 깨달 아지더라구요. 그러고나서 그 다음에 지금 언양이지요, 언양교구 지은 다음에 저보고 좀 와서 있어 달라고, 조기주 씨라고, 우리 교회로서는 아주 훌륭한 분입니다.
집에 자손들이 있는데, 대장 집에 식칼이 없다고, 내가 교회 일꾼이면서도 집에 가정 교육을 못 시켰다, 너좀 내려와서 교구에 있어라, 그렇게 해서 거기에 2년을 가 있었어요.
2년 있는 동안에 먹고는 주문 외고 또 사람들 오면 대화하고 이것이 이제 계속 해서 하다 보니까는, 어느 날 경전을 보니까 경전이 전부 내 머릿속에 들어가 있어요. 그게 탁 터지니까 이건 이렇게 붙이면 되겠다, 저건 저렇게 붙이면 되겠다, 하면서 말이 다 꿰어지더라구요. 그래서 설교를 나가서 하게 되면 사람들이 어쩌면 그렇게 하루같이 이 년이라는 세월에 일주일에 한 번씩 나가는데 하루같 이 새로운 말로 들린대요.
그러니까 나는 모르는데, 나는 경전 가지고 그냥 하면 머리에 들어있는 거 고대로 풀어 주거든요. 그런데 새로운 말 같대요. 그렇게 터지니까 그 다음부터는 주문 외게 되면 탁탁탁 맞아 들어가더라구요. 그래서 주문이 제 일이로구나, 하는 걸 완전히 터득을 했어요. 여기 오니까 경전을 각 종교에서 이십 권, 삼십 권들 사간다 그래요. 경전 암만 사 가봐라, 사 가서 합리적으로 너희가 풀는 지 모르지만 진짜 한울의 원진리는 너희가 터득하기 힘들다, 이건 주문이 아니고는 못 푼다.
그래서 여기 공부하는 학생들, 뭐 대학원생들도 오구 대학교 졸업한 사람들두 종학원에 들어오잖아요. 이런 훌륭한 사람들이, 거기서도 난 사람들이 설교도 하고 가르치기도 해요. 그러든 한두 달은 그게 먹혀들어가 요. 그 다음에는 안 먹혀들어가요. 왜 그런가 하면 합리적으로 공부한 건 원진리에 못 들어갑니다.
그러니까 이거는 주문 하고 천도교 공부하고는 겸해야지, 하나만 가지고는 안 된다는 걸 저는 터득을 했어요. 주문을 외다 가도 이걸 놓으면 앞이 깜깜해져요. 항상 내 마음과 한울과는 떨어지지 않게 하고 살아야 된다는 거, 요게 원칙이에요. 그래서 주문 공부하라고 얘길 한 거예요. 천도교 주문은 천서라 하거든요.
한울의 이치. , 자연의 이치 가 그 스물한 자에 다 담겨 있기 때문에 내가 지극히 한울을 부르니까 한울이 깨달아질 수밖에 없지. 내 생명체가 한울에서부터 왔으니까. 나하고 연결된 게 한울은 동일이지 , 둘이 아니거든요. 그러니 자연히 터득될 수밖에 없고, 지혜가 열릴 수밖에 없어요. 이 천도교 주문은 과학적으로 아주 공식입니다. 그러니까 믿 는 사람은 빠르고, 믿지 않는 사람은 빠르질 않아요. 처음으로 들으면 그게 그럴까, 할 거예요. 그러나 하루 아침에 한 번 외웠다고 되는 건 아녜요. 내가 꾸준히 그 정성을 들여서 외면서 하면 뭐가 바꿔지나 하면 우선 마음이 바꿔져요.
사람이 살다 보면 친구도 있고 다 여러 가지가 있잖아요. 그러나 사람끼리도 조금 차이가 있죠. 어떤 사람은 조금 잘 되가 게 되면 뭐 그거 잘 했다구, 조금 흉하는 사람도 있지요? 없는 건 아니죠? 이 사회가 그렇잖아요. 살다보게 되면 상대방이 그 소릴 듣고 야, 너 어떻게 평을 하더라, 해 주잖아요. 그럼, 가만 히 듣고 앉아 그래, 고맙수, 하여튼 고맙다고는 해요.
그런데 몇 발자국 걸어가면서 생각하게 되면 그건 제 말이지, 내 말이 아니다, 그거는 그 사람의 말이지, 나는 이만치 커서 새로이 걸 음을 걷는데, 그 잡음을 내게 다 하게 되면 내 마음이 소란해지 지 않겠느냐, 하고서 차 버리고 돌아서서 잊어버려요. 그게 잊어버리기가 쉽지 않은데 그걸 계속해서 그런 방법으 로 취하고 나면 1, 2년이 지나면 완전히, 무슨 말 하면 그저 무 슨 말 하겠거니, 그저 그렇게 하지, 한낱 가시가 돋고, 내게 뭐 가 되고, 이게 없어요. 밉고 고운 게 없어져요. 그게 거짓말 같 죠?
진짜 그렇게 돼요. 근데 그걸 새기는 게 힘이 들어요. 한번 가슴에 맺히고 뭐이 좀 힘들고 하게 되면 한 4, 5일 가요. 속에 서. 어떻게 그럴 수가 있느냐, 아니다, 내가 참아야지. 참고 얼 마 있으면 없어져요. 그러니까 내게서 안 나가니까 누가 말을 하지 않아요. 그게 좋은 거 아니예요? 나만 참으면 다 돼,
그러니까 모든 게 내게서 일어나는 거야. 내가 답변을 해야 손이 둘이 쳐야 소리가 나듯이 암만 한 손으로 해 봐야 소리가 안 나. 그래, 나만 참으면 되는 거야. 참기가 힘들어요, 그 공 부.
그러면 자연에 돌아가야 돼. 자연은 밉고 고운 걸 말 안해 노력하는 데 따라서 돼요. 내가 10원어치 만큼 썼으면 10원어 치 만큼 오고, 100원어치 만큼 썼으면 100원어치 만큼 오는거 예요. 그건 틀림없는 말입니다. 그건 나에게 돌아오는 겁니다. 실제 제 60년 동안 체험이에요. 다른 거 아닙니다.
내 나이 올해로 일흔여섯이에요. 모든 걸 잊어버리고 자연에 살고, 되도록이면 젊게 살겠다고 마음먹고 있어요. 젊은 사람 들이 저한테 가끔씩 묻습니다. "근데 원장님은 젊은 시절에 어 떻게 살았습니까?" 그래요. "시계초같이 살았어. 시계초는 덜 도 가지 않고 더도 가지 않잖아." 그러든 웃는다구요. 젊은 사람들하고 대화가 더 재미나요. .
구술일 포덕 143년(2002년) 9월 8일 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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