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노 요꼬의 ‘그 사람’
나는 철이 들었을 때부터 하루도 나 자신의 용모를 의식하지 않으며 지낸 적이 없다. 네 살 때부터 아름다운 여자아이와 그렇지 않은 나라는 존재를 알고 있었다. 어른들이 내 옆의 마키코를 봤을 때 어떤 눈빛을 하는지, 그러다가 나에게 시선을 옮기면 그 눈빝이 어떻게 약해지는지 알고 있었다.
나는 예쁜 아이가 되고 싶었다. 네 살 때부터 한 순간만이라도 마키코가 되고 싶었다. 그래서 아무도 없을 때 거울 앞에서 서서 예쁜 아이의 흉내를 냈다. 초등학교에 들어가서 친구를 집에 데리고 오면 엄마는 말했다.
“걔 예쁘더구나.”
나는 마음 속으로 움푹 움추려들었다. 엄마는 내가 예뻤다면 분명 굉장히 기뻤을거야.
아버지가 누군가의 부인을 “학처럼 늘씬한 여자야”라고 말한 적이 있었다. 어머니는 밥을 먹다말고 언짢은 말투로 “네에 네, 나는 멧돼지 같고요.”하고 학처럼 아름다운 여자의 흉을 봤다. 난 어머니가 싫었다. 글쎄 내가 보기에도 그 사람은 정말 쭉 뻗은 것이 예뻤는걸.
아버지는 아무렇지도 않게 내 친구에 대해서도 “그 애는 얼굴이 못생겼더구나. 앞으로 살아가는데 엄청 고달플 거다.” 라고 말하곤 했다. 난 아버지도 싫었다. 그렇지만 난 친구라도 예쁜 아이인 쪽이 좋았다. 나랑 비슷한 정도이면 그래도 낫다. 나보다 예쁘지 않은 아이를 봐도 짜증이 났다.
난 예쁘지 않은 대신 공부를 열심히 했다. 공부를 잘 하는 아이는 잘났으니까. 난 조금 큰 어린 시절 예쁘지도 않고 공부도 잘 하지 못하는 아이를 마음속으로 깔보았다.
조금 더 커서 ‘소녀’라고 불린 시기에, 나는 그저 그 또래의 다른 여자아이들과 다를 바 없이 생각하며 살았다. ‘소녀’라고 불리려면 ‘소녀’같이 예쁘야 한다. ‘소녀’란 타인의 눈이 만드는 것이다, 라는 걸 알게 된 거다. 그래서 그때도 나는 나 자신이 용모를 잊고 지낸 적이 없었다. 단 하루도.
더 커서 난 연애란 예쁜 사람만이 하는 거라고 생각해서 가만히 있었다. 그런데 이상했다. 예쁘지 않은 사람도 연애를 하는 것이었다. 예쁘지 않은 사람이 연애를 하면 음란하게 보였다. 그래서 예쁘지 않은 사람이 연애하는 것을 보면 불쾌했다. 그래서 나는 그저 가만히 보고 있었다. 하지만 난도 연애를 했다. 나 자신이 멋있어 진 기분이었다. 단숨에 자신감이 붙었기 때문이다.
“나 예뻐?”
“얼굴같은 거 난 신경 안 써.”
하고 그 사람은 말했다. 난 기쁘고 분했다.
그리고 그 사람을 만났다. 나는 멍하니 입을 벌린 채 그 사람을 봤다. 그렇게 예쁜 사람은 본 적이 없었다. 그녀 앞에서는 밀로의 비너스조차 펑퍼짐해 보였다. 몸매는 늘씬하고 피부는 하얗고 루즈를 바르지 않은 입술은 투명한 핑크였다. 마르지도 뚱뚱하지도 않고 당당했다. 귓불에 잔 털이 나 있었다. 그것이 금빛으로 빛났다. 눈동자는 조금 갈색이었다. 갈색 눈은 보통은 외국인 같은 느낌을 주지만 그 사람은 그로 인해 오히려 메이지 시대의 오래된 사진을 보는 듯한 느낌을 주었다.
그녀는 검은 오버코트를 팔에 끼우지 않고 그냥 어깨에 걸치고 있었다. 그 사람을 데려온 친구가 “너 왜 그래?”하고 내 어깨를 흔들었다. “어?” 하고 마치 꿈에서 깨듯이 정신이 돌아왔지만 그 사람은 꿈이 아니었다. 내 앞에 서 있는 그 사람은 나와 같은 나이였는데도 훨씬 어른스러웠고 그런데도 나보다 더 청순해 보였다.
함께 친구집에 가서 귤을 먹었다. 그 사람은 내 앞에서 하얀 속껍질을 꼼꼼히 떼어내고 귤을 먹었다. 귤을 입에 넣는 모습을 나는 뚫어져라 쳐다 봤다. 얇은 귤 껍질이 그 사람의 하얀 이 사이에서 뭉개쥐는 순간 튀어나온 즙이 슈욱 내 눈속으로 날아들어왔다. 나는 한 손으로 눈을 닦으면서 계속해서 그 사람의 입을 바라보았다. 귤 즙이 입술에서 흘러내리자 그 사람은 하얀 손수건으로 턱 부분을 닦았다. “꼴볼견이지”하고 그 사람은 말했다. 나는 그 사람이 고타쓰에 발을 넣고 앉는 것도 이상했고, 귤을 먹는 것도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그 사람을 어딘가에 장식으로 걸어놓고 그냥 바라만 볼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 사람이 돌아갈 때 친구와 역까지 배옹했다. 지나가는 남자도 여자도 그 사람만을 봤다. 저녁무렵이라서 조금 어두워지기 시작했다. 그 사람은 늘씬한 자태로 우리에게 하늘하늘 손을 흔들었다. 나는 쳐다보면서 걱정이 되었다. 누군가 나쁜 사람이 그 사람을 훔쳐갈지도 모른다. 저런 예쁜 사람이 또 있을까? 혼자서 전철을 타고 괜찮을 까. 친구는 웃었다. “재는 자기 자신을 예쁘다고 생각 안 해.”
“흐음, 눈이 굉장히 상냥했지. 자기 자신을 예쁘다고 생각한다면 그렇게 눈이 상냥해 보일 수가 없는거야.”
나는 그 뒤로 예쁜 사람을 봐도 웬만해선 놀라지 않게 됐다. 아무리 예뻐도 그 사람보다 한 수 아래였다. 나는 하루도 내 자신의 모습을 잊고 살 수 없었다. 조금만 더 예뻤다면, 하지만 나는 자신이 어떤 식으로 예뻐지고 싶은지 몰랐다. 조금쯤 이것저것 손을 대봤자 도저히 따라 잡지 못한다. 그러니까 그 사람처럼 될 수 없다. 고귀한 그 사람과는 어떻게 해도 비교가 안 되었다. 그래도 조금만 더 예뻤다면, 어떤 식으로? 그것에 대한 답은 모르겠다. 나는 그냥 예쁘지 않은 거다.
그 사람은 내가 연애한 사람과 결혼했다. 나한테 “얼굴 같은 거 신경 안 써”라고 말한 사람과, 난 울지 않았다. 처음에는 아아 그래, 어쩔 수 없지, 글쎄 그렇게 예쁜걸 뭐, 게다가 다정한 눈을 하고 있었는걸. 그리고 얼마 지나서 울었다. 아주 조금, 아무도 밉지 않았다.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고 생각하게 되는 것이 쓸쓸해서 울었다.
그 사람하고는 그 후 한 번도 만나지 않았다.
그 뒤로 나도 남들처럼 결혼해서 아이를 낳았다. 매일 눈이 펑펑 돌 지경으로 바빴다. 몰골 따위 개의치 않고 일했지만, 때때로 나도 모르게 양손으로 얼굴을 감싸고 거울 앞에 서 있는 나 자신을 보고 흠칫했다.
그리고 나이를 더 먹었다.
오늘 나를 버린 사람을 지하철에서 봤다. 너무 나이가 들어보여서 깜짝 놀랐다. 머리가 반은 벗어졌고, 머리털도 듬성듬성 있었다. 그래도 한껏 팔자걸음을 걷고 있었다. 그 옆에, 하얀 돼지같이 펑퍼짐하게 살이 오른 여자가 있었다. 팔과 목에 주렁주렁 금줄을 걸고, 새빨간 립스틱을 바르고 있었다. 턱 주름이 굵고 깊게 패여 있었다.
그 사람이었다.
나는 상대가 나를 볼까봐서가 아니라, 내가 상대를 알아봤다는 것을 그 사람이 알게 하고 싶지 않아서 기둥 뒤에 숨었다. 가슴이 두근두근 거렸다. 전철이 한 대 오고 사라질 때까지 나는 눈을 감고 기둥에 찰싹 달라붙어 있었다.
20년 만에 본 그 사람이었다.
첫댓글 너무나 재미진 글.
절대 지루함이 없으며.
이 주인공은 매력이 출렁 넘친다.
반해 버렸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