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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헤브론선교회 원문보기 글쓴이: 빛으로
본문 : 창세기 46장28~47장12절
제목 : 나그네를 위한 땅
야곱이 고센에 내려와 요셉과 감격적으로 상봉합니다.
요셉은 야곱 족속이 애굽과 떨어져 고센 땅에 정착할 수 있도록 바로에게 스스로 ‘목축하는 자’라 말하도록 당부합니다.
1. 야곱과 요셉의 재회(28~30절)
야곱의 가족, 이스라엘인들은 고센 땅에 이르고, 요셉을 대면합니다.
1) 야곱이 유다를 요셉에게 미리 보내어 고센 땅에 이릅니다(28절)
“[28] 야곱이 유다를 요셉에게 미리 보내어 자기를 고센으로 인도하게 하고 다 고센 땅에 이르니 ”
야곱이 유다를 요셉에게 미리 보내어. -2차 애굽 방문 때의 공적(44:18-34)으로 인해 야곱은 유다를 매우 신임하였으므로 가족을 대표하여 그를 요셉에게 보낸 것 같습니다.
고센 땅은 70인역에는 “라메세스 땅에 있는 헤로온 폴리스”로 되어 있습니다.
헤로온 폴리스는 “비돔, Pethom”출1:11)으로 이스마리아 서방 20km 지점에 있습니다. “고센”에 대해 45:10 주참조)
2) 요셉니 고센으로 올라가서 야곱을 맞으며 목을 안고 얼마 동언 울었습니다(29절)
“[29] 요셉이 그의 수레를 갖추고 고센으로 올라가서 그의 아버지 이스라엘을 맞으며 그에게 보이고 그의 목을 어긋맞춰 안고 얼마 동안 울매 ”
보이고(라아) - '증명해 보이다', '인지시키다', '제시하다'는 뜻으로 자신이 요셉임을 야곱에게 눈으로 확인시키는 것을 가리킵니다.
목을 어긋맞춰 안고 얼마 동안 울매 - 22년 만의 부자간의 상봉, 그것도 이미 죽은 지 오랜 줄로 알았던 아들과 아버지 간의 극적인 만남에 따르는 감격과 기쁨은 눈물과 울음 외에는 달리 무엇으로도 표현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3) 야곱은 죽은 줄 알았던 요셉을 만나니 죽어도 족하다고 합니다(30절)
“[30] 이스라엘이 요셉에게 이르되 네가 지금까지 살아 있고 내가 네 얼굴을 보았으니 지금 죽어도 족하도다”
지금 죽어도 족하도다. - 요셉 사건(37:31-35)으로 인해 평소 야곱의 가슴속에 얼마만큼 뿌리 깊은 한이 어려 있었는지를 잘 보여 주는 말입니다.
따라서 그와 같은 한이 풀린 지금에서는 이제 죽어도 좋을 만큼 여한이 없게 된 것입니다.
루터는 이 구절을 '이제 나는 기쁘게 죽을 것이다'(Ich will nun gerne sterben)라고 번역하였습니다.
2. 요셉의 당부(31~34절)
요셉은 형제를 고센 땅에서 살게 하기 위해 바로를 만날 때에 할 말을 미리 지시해 줍니다.
1) 요셉은 그의 형들과 아버지의 가족이 목축하는 사람들이라고 말했다고 합니다(31~32절)
“[31] 요셉이 그의 형들과 아버지의 가족에게 이르되 내가 올라가서 바로에게 아뢰어 이르기를 가나안 땅에 있던 내 형들과 내 아버지의 가족이 내게로 왔는데 [32] 그들은 목자들이라 목축하는 사람들이므로 그들의 양과 소와 모든 소유를 이끌고 왔나이다 하리니”
그의 형들과 아버지의 가족에게 - 여기서 '가족'에 해당하는 '바이트'는 ‘권속’ '집' 을 뜻합니다.
'그의 형들'은 마땅히 '아버지의 권속'의 일부이지만 그럼에도 '그의 형들'을 따로 부각시킨 것은 그들의 개체를 강조하기 위함입니다.
2) 바로가 직업이 무엇이냐고 물을 때에 목축하는 자들이라 하라합니다(33~34절)
[33] 바로가 당신들을 불러서 너희의 직업이 무엇이냐 묻거든 [34] 당신들은 이르기를 주의 종들은 어렸을 때부터 지금까지 목축하는 자들이온데 우리와 우리 선조가 다 그러하니이다 하소서 애굽 사람은 다 목축을 가증히 여기나니 당신들이 고센 땅에 살게 되리이다
직업(마아세) - '행위' 혹은 '일'(work)을 뜻합니다.
47:3에서는 '생업'으로 번역되어 있습니다.
목축하는 자이온데.-바로에게 요셉이 미리 고하고, 또 형제들도 그렇게 고하게 되면 바로도 그들을 고센 땅에 거하면서 목축하게 할 것입니다.
고센 땅에 거하게.- 요셉이 가족을 고센 땅에 정착시킨 목적은
(1) 목축의 적지인 것
(2) 애굽인들과 격리되어 이스라엘의 신앙과 풍속을 자유롭게 지키게 됨,
(3) 가나안 땅에 가까워 장차 출애굽 때에 쉽게 떠날 수 있을 것 등일 것입니다(Whitelaw)
목축을 가증히 여기나니- 애굽인들이 목축업을 가증히 여기는 이유는
(1)전통적으로 농경민이었던 애굽인들이 다른 직업에 대해 지녔던 이질감 및 배타 심리(Keil)
(2) 목자들은 교양 없고 거칠며 야만적이라는 강한 편견(Hengstenberg)
(3) 역사 초기에 유목 민족에게 침공당한 뼈저린 경험에서 기인된 피해 의식(Rosenmuller)
(4)자신들이 신성시하는 짐승들을 죽이는데 대한 깊은 경멸감(Aalders)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했기 때문일 것입니다.
여하튼 하나님은 애굽인들의 이러한 풍조까지 이용하여 당신의 백성들이 구별된 삶을 살도록 섭리하셨습니다.
한편 여기서 '가증히'에 해당하는 '토에바'는 '구역질 나는 것', '혐오','몹시 싫어함'을 뜻합니다.
3. 바로 앞에 선 형들과 야곱(47:1~10절)
1) 요셉은 그의 형 5명을 택하여 바로에게 보입니다(47: 1,2절)
"[47:1]요셉이 바로에게 가서 고하여 이르되 내 아버지와 내 형들과 그들의 양과 소와 모든 소유가 가나안 땅에서 와서 고센 땅에 있나이다 하고 [2]그의 형들 중 다섯 명을 택하여 바로에게 보이니 "
요셉은 가족이 모든 재산을 가지고 애굽에 와서 고센땅에 거한다고 보고합니다.
다섯 명을 택하여 . - 이미 앞에서 언급하였듯이 '5'라는 숫자는 애굽인들의 '완전수'로서 그들이 가장 좋아하던 수입니다.
따라서 요셉은 형들을 바로에게 알현시키고 은총을 구하는데 있어서도 의도적으로 다섯이라는 명수를 맞춘 것 같습니다<43:34>.
2) 바로와 요셉의 형들 간의 대화입니다(3~4절)
(1) 그들은 요셉이 시키는 대로 그 생업은 목자라고 합니다(3절)
“[3] 바로가 요셉의 형들에게 묻되 너희 생업이 무엇이냐 그들이 바로에게 대답하되 종들은 목자이온데 우리와 선조가 다 그러하니이다 하고 ”
우리와 선조가 다 그러하니이다. - 이 말은 바로로 하여금 목자인 야곱의 가족들을 꺼려하여 애굽 중심부에서 떨어져 있는 고센 땅에 거하는 것을 쾌히 승낙하게 하기 위한 거짓말이 아닙니다.
비록 야곱의 가족과 선조들이 가나안에서 토지를 경작했던 것은 사실이나(26:12; 27:28) 그들이 주된 직업은 어디 까지나 목축이었습니다(12:16; 20:14;26:14; 32:5).
(2) 요셉은 목축에 적지인 고센 땅에 거하게 해달라고 청합니다(4절)
“[4] 그들이 또 바로에게 고하되 가나안 땅에 기근이 심하여 종들의 양 떼를 칠 곳이 없기로 종들이 이 곳에 거류하고자 왔사오니 원하건대 종들로 고센 땅에 살게 하소서 ”
이 곳에 거류하고자 왔사오니. -요셉 형제들의 요청 속에는 그들이 고센 땅에 영주하겠다는 것이 아니라 기근이 끝날 때까지만 머물겠다는 의미가 내포되어 있습니다.
'거류'에 해당하는 '구르'가 '잠시 동안 머물다'는 뜻을 가진 것으로 보아 이러한 추측이 가능합니다(창 12:10;20:1;35:27등).
Modern Language Bible은 '우리들은 잠시 살기 위해서 이곳에 왔읍니다'(We have come to live here temporarily)라고 번역함으로써 이 뜻을 분명히 하였습니다.
그들이 이와 같은 말을 한 것은 그들의 조상을 통하여 주신 가나안 회복의 약속(15:16;28:15;46:4)을 잊지 않고 있었기 때문임에 분명합니다.
3) 형들의 청원을 들은 바로는 그 회답을 요셉에게 합니다(5~6절)
“[5] 바로가 요셉에게 말하여 이르되 네 아버지와 형들이 네게 왔은즉 [6] 애굽 땅이 네 앞에 있으니 땅의 좋은 곳에 네 아버지와 네 형들이 거주하게 하되 그들이 고센 땅에 거주하고 그들 중에 능력 있는 자가 있거든 그들로 내 가축을 관리하게 하라 ”
애굽 땅이 네 앞에 있으니. - 문자적인 의미는 '애굽 땅이 네 앞에 개방되어있다'입니다.
즉 그들이 원하는 곳에 어디든지 거할 수 있음을 뜻합니다.
이러한 사실은 바로가 요셉의 가족들에게 얼마나 관대한 마음을 가지고 있었는지를 잘 보여 줍니다.
땅의 좋은 곳(메타브 하아레츠) -직역하면 '땅의 가장 좋은 곳'으로 바로 뒤에 언급되어 있는 고센 땅을 가리킵니다.
고센 땅에 거주하고 -'고센' 땅은 비옥한 목초지일 뿐만 아니라 애굽과 시내 반도 사이에 위치한 중요한 국경 지대입니다<45:11>.
따라서 경제적인 측면보다 군사적인 중요도가 더한 곳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도 바로가 이곳을 선뜻 이국인들에게 허락한 것으로 보아 요셉에 대한 절대적인 신임도와 요셉의 막강한 영향력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그들 중에 능력 있는 자가 있거든 그들로 내 가축을 관리하게 하라. -여기서 '능한자'로 번역된 '안쉐이 하일'은 직역하면 '능력의 사람들'이란 뜻이며 '짐승을 주관하게 하라'고 번역된 '싸레이 미크네'는 직역하면 '가축의 주인으로 삼으라'입니다.
바로는 요셉 형제들의 요구를 들어 주었을 뿐만 아니라 더구나 그들이 요구하지 않은 애굽 왕실의 가축을 돌보는 특권까지 준 것입니다.
4) 야곱이 바로에게 축복합니다(7절)
“[7] 요셉이 자기 아버지 야곱을 인도하여 바로 앞에 서게 하니 야곱이 바로에게 축복하매 ”
요셉이 자기 아버지 야곱을 인도하여 바로 앞에 서게 하니 - 요셉의 형들과 바로와의 면담이 애굽 땅에 정착하기 위한 약간의 사무적이고 공적인 성격을 띤 반면 야곱과의 만남은 사적이며 개인적인 친교를 위한 것이었던 것 같습니다.
이러한 사실은 야곱과의 만남에는 행정적이며 정치적인 내용의 이야기가 거의 없었으며 신변의 사소한 일들이 주요한 화제 거리 였음에 의해 뒷받침 됩니다.
야곱이 바로에게 축복하매. - 야곱이 바로에게 행하였던 축복은 단순한 문안 인사가 아닙니다(삼하16:16; 왕상1:25; 단2:4;3:9).
구약 시대 족장들의 축복 권은 일찍이 하나님이 아브라함과 맺은 계약에 근거한 것입니다(12:3).
따라서 야곱은 그러한 축복 권을 가지고 그 동안 바로가 베풀어 준 호의에 감사하는 마음으로 개인의 번영과 안녕을 비는 축복을 했을 것입니다.
5) 바로가 야곱의 나이를 물으매 130세라 합니다(8~9절)
“[8] 바로가 야곱에게 묻되 네 나이가 얼마냐 [9] 야곱이 바로에게 아뢰되 내 나그네 길의 세월이 백삼십 년이니이다 내 나이가 얼마 못 되니 우리 조상의 나그네 길의 연조에 미치지 못하나 험악한 세월을 보내었나이다 하고 ”
나그네 길의 세월이 백삼십 년이니이다...- 창세기 중에 나타난 매우 아름다운 문장 중의 하나입니다.
야곱은 그 자신의 생애와 그 조상들의 생애를 '나그네길'이라고 묘사했습니다. 이것은 그들이 가나안 땅을 약속 받았으나 그 땅을 소유하지 못하고 정처 없이 오랫동안 방황하였기 때문입니다(12:1-4;15:12-21).
뿐만 아니라 이러한 표현은 피조물인 인간이 참된 휴식을 누리지 못하며 지상에서 영적 평안을 갈구하며 수고하고 애쓰는 생활에 대한 문학적 표현이기도합니다(대상29:15;시 39:13;119:16,54).
또한 야곱은 그의 생애를 회상하면서 비록 조상들보다 적게 살았지만(25:7;35:28, 29) '험악한 세월'을 살았다고 표현하였습니다.
형 에서와의 갈등 및 도피(27:41-45), 요셉과의 생이별(37:18-36)등과 같은 일련의 사건들을 돌이켜볼 때 이러한 야곱의 말은 결코 과장이 아닙니다.
그러나 훗날 야곱도 고백했듯이(48:15,16), 이 모든 날들은 하나님의 섭리하에서 사랑하는 자식을 양육시키기 위한 연단의 기간이요, 오직 하나님만을 의뢰키 위한 성화의 기간이었습니다.
6) 야곱이 바로에게 축복하고 나옵니다(10절)
“[10] 야곱이 바로에게 축복하고 그 앞에서 나오니라”
야곱은 바로를 알현하러 그에게 나아갔을 때와 마찬가지로 물러나올 때에도 똑같이 그에게 축복하였습니다(7절).
이처럼 위정자 뿐 아니라 이웃을 위하여 항상 진정으로 기도하며 축복을 비는 것은 백성으로서의 마땅한 도리이자 지극히 초보적인 성도의 덕목입니다(마10:12;롬13:1).
4. 가족을 돌보는 요셉(11~12절)
[11] 요셉이 바로의 명령대로 그의 아버지와 그의 형들에게 거주할 곳을 주되 애굽의 좋은 땅 라암셋을 그들에게 주어 소유로 삼게 하고 [12] 또 그의 아버지와 그의 형들과 그의 아버지의 온 집에 그 식구를 따라 먹을 것을 주어 봉양하였더라
라암셋. 라암셋는 요셉 이후, 라암셋 2세의 건설로(출1:11) 생긴 이름이었으므로 이는 예비적 이름이었습니다.
고센 땅 안에 있는 지역 보다, 고센 자체의 별명으로 봅니다.
그 식구를 따라 먹을 것을 주어. - 요셉은 아버지와 형제들 그리고 그 가족들을 보호하기 위하여 최선을 다하였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접대의 과정에서 그는 체계와 합리성을 최대한 지켰습니다.
즉 요셉은 '바로의 명대로'(11절)했을 뿐만 아니라 '그 식구를 따라' 식량을 공급한 것입니다(Calvin).
'그 식구를 따라'라는 말이 RSV에서는 '그들이 부양하는 자(者)의 수에 따라서' 라고 나와 있습니다.
즉 형제들의 자녀와 종들의 수효에 따라서 요셉은 식량을 공급한 것입니다.
공동 번역 성서에서도 '온 가문에 속한 식구 수대로'라고 번역함으로써 독자의 이해를 돕고 있습니다.
묵상 Point
1) 죽었다 살아온 아들 요셉
죽은 줄 알았던 아들을 22년 만에 살아서 만난 야곱은 이제 죽어도 여한이 없을 만큼 기뻣다.
이는 집 나갔다 돌아온 아들을 버선발로 뛰어가 마중하는 탕자 아버지의 감격이며(눅15:20), 제 길로 가던 잃은 양을 찾고는 벗과 이웃을 불러 잔치를 벌이는 목자의 기쁨과 같을 것이다(눅 15:6).
죄인이 주께 돌아와 생명을 얻을 때 하늘 아버지도 이렇게 기뻐하실 것이다.
야곱이 스스로 한 일은 모두 그르쳤지만, 하나님의 신실하심으로 그는 하나씩 회복되고 있다.
2) 요셉이 마련한 생명의 땅 고센
요셉은 오래전부터(45:10) 가족들을 고센 땅에 정착시키고 싶었다.
고센이 유목하기에 좋은 땅이며 목축을 가증히 여기는 애굽 사람과 따로 살면서 고유한 신앙을 보전할 수 있어서다.
이 애굽은 영원한 거처가 아니라 언젠가는 떠나야 할 곳이기에, 탈출하기에 유리한 변방 고센은 더없이 좋은 입지다.
가족 사랑과 언약에 대한 바른 인식, 시대를 꿰뚫어 보는 통찰력 등이 조화롭게 어우러져 결정한 곳이 바로 ‘고센’(라암세스)이다.
3) 바로를 축복하는 야곱
야곱은 대제국의 왕 바로에게 들어갈 때 축복하고 나갈 때 축복한다.
그는 하나님께서 요셉을 ‘복의 근원’으로 삼아 이 나라에 복 주고 계심을 보고 있었다.
자기 힘으로 복을 빼앗고 움켜쥐려던 젊은 날은 험악한 세월을 가져다주었지만,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했을 때 그는 복의 사람이 되고 있다.
이제 바로가 아무리 풍요로운 땅을 준다 해도, 그는 애굽에 속하지 않을 것이고, 비록 죽음 너머까지 이어진다 하더라도 하나님의 약속을 바라보며 나그네로 살기로 한다.
하나님은 어떤 분입니까?
28-30절 죽은 줄만 알았던 아들과 20여 년 만에 다시 재회하는 기쁨을 주십니다.
야곱은 아들이 살아있다는 사실과 지금 그 아들을 볼 수 있다는 사실에 ‘지금 죽어도 족하다’고 고백합니다.
요셉도 아버지를 껴안고 목 놓아 울며 그간의 설움을 흘려보냅니다.
땅을 딛고 사는 모든 존재에게 이별은 정해진 길이지만, 훗날 기쁨으로 재회하는 것도 하나님이 정하신 뜻입니다.
그때가 되면 우리는 지난 고통을 기억조차 하지 않게 될 것입니다.
내게 주시는 교훈은 무엇입니까?
31-34절,47:3-6 요셉이 애굽 변방의 ‘고센’(라암세스) 땅에 야곱 족속의 정착지를 마련합니다.
그는 형제들을 애굽 사람이 천시하는 ‘목축하는 자’로 지목하여, 바로가 그들의 고센 정착을 허락하도록 유도합니다.
이는 야곱 족속이 애굽의 종교와 문화에 동화되지 않고 그들 고유의 신앙을 지키며 살 수 있도록 한 조치입니다.
그로 인해 애굽이 영원한 거처가 아니고 그들에게 돌아갈 고향이 있음을 늘 염두에 두며 살도록 이끕니다.
이처럼 그리스도인도 돌아갈 본향을 두고 이 세상에서 나그네로 살아가는 사람입니다.
47:7,10 야곱이 바로 왕을 축복합니다.
비록 바로의 양식을 구하러 온 처지지만, 하나님이 요셉을 복의 근원으로 삼아 바로와 애굽에 복 주시고 번성케 하셨음을 알기 때문입니다.
젊어서 그는 스스로 복을 움켜쥐려 한 사람이었지만, 이제 하나님의 복을 전하는 축복의 전령으로, 곧 ‘너는 복이 될지라’(12:2), ‘땅의 모든 족속이 너로 말미암아 복을 얻을 것이라’(12:3) 하신 아브라함의 소명을 계승한 자가 된 것입니다.
47:8,9 야곱은 살아온 날들을 ‘험악한 나그네 세월’이라 고백합니다.
아브라함이나 이삭보다 적은 연수를 살았지만, 그는 누구보다 파란만장한 삶을 살아왔습니다.
자기 꾀를 신뢰하며 선택한 삶은 뒤죽박죽이었지만, 그럴수록 하나님의 기묘한 인도하심도 빛을 발했습니다.
가나안에서 하란으로 또다시 가나안으로 그리고 지금 애굽으로 내려온 삶의 여정은 그의 말대로 ‘나그네’의 삶 자체였습니다.
훗날 내 삶을 돌아볼 때, 나는 어떤 말로 살아온 날들을 평가할 것 같습니까? 그때 후회를 남기지 않도록 늘 하나님의 인도를 구하며 살아갑시다.
[기도]
공동체-고단한 삶일지라도, 약속에 신실하신 하나님을 따라 힘 있게 걷게 하소서.
열방-일부 국가의 지도자들은 코로나19 확산 사태를 정권 유지에 악용하고 있다.
지도자들이 오직 국민의 건강과 안전을 위한 정책을 펼칠 수 있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