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s://youtu.be/ZwoQj-XrLVs
앞으로 몇 주간 아브라함이라는 인물에 대해 설교하려고 합니다. 일반적으로 아브라함을 '믿음의 조상'이라고 부릅니다. 근거가 되는 성경구절은
■갈 3:7-9 그런즉 믿음으로 말미암은 자들은 아브라함의 자손인 줄 알지어다 9 그러므로 믿음으로 말미암은 자는 믿음이 있는 아브라함과 함께 복을 받느니라
믿음의 조상이라고 하는 것은 두가지 의미가 있습니다. 첫 번째 모든 신앙인들의 조상이 된다는 것입니다.
창세기 1장부터 11장까지는 원역사라 하고 본문 12장부터 구속역사라고 부릅니다. 원역사는 일반세상역사를 말합니다. 구속역사는 구원역사가 어떻게 진행되는지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원역사와 구속역사 분기점이 되는 인물이 바로 아브라함입니다. 그래서 아브라함을 가리켜 믿음의 조상이라고 부르는 것입니다.
두 번째는 율법이나 행위가 아니라 믿음으로 구원을 얻은 대표적인 인물이 바로 아브라함이다 라는 것입니다. 흔히들 구약의 인물들은 율법을 지켜 구원을 얻고 신약시대에는 믿음으로 구원을 얻는다고 생각하는데 매우 잘못된 생각입니다. 구약이나 신약이나 모두 동일하게 믿음으로만 구원을 얻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은 율법이 있기도 전에 등장한 인물입니다. 아브라함으로부터 500년 뒤에나 율법이 나옵니다. 만일 율법으로 구원을 얻게 된다면 아브라함은 구원에서 제외가 될 것입니다만 그렇질 않습니다. 갈 3:9에서도 분명히 말씀하고 있습니다. '믿음이 있는 아브라함과 함께 복을 받느니라' 이 복의 첫 번째가 바로 구원을 말합니다. 율법도 모르는 아브라함이지만 그는 하나님을 향한 믿음을 가졌기 때문에 구원을 받는 것이다 라는 것을 말씀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아브라함의 역사는 한마디로 믿음의 역사다 라 말할 수 있는 것입니다.
본문 1절에 보시면 하나님께서 아브람에게 너의 고향, 친척, 아버지의 집을 떠나 내가 네게 보여줄 땅으로 가라고 말씀하십니다. 본문에서 눈여겨 보실 부분은 아브람의 이름입니다. 아브라함이라는 이름 전에는 아브람이었습니다. 아브람이 아브라함으로 바뀌는 것은 17장에 와서입니다.
■창 17:5 이제 후로는 네 이름을 아브람이라 하지 아니하고 아브라함이라 하리니 이는 내가 너를 여러 민족의 아버지가 되게 함이니라
■아브람 : '존귀한 아버지' 아브라함 : '열국의 아버지'
한 가문이나 가정의 아버지가 아니라 열방, 모든 민족의 아버지가 된다는 말입니다. 아브라함이 모든 믿는 자들의 조상이 된다는 메시지를 부여받는 순간입니다. 흥미로운 것은 아브라함 당시 아브람이라는 이름은 여러 문서에서 쉽게 발견되어집니다만 아브라함이라는 이름은 성경 외에 다른 곳에서는 전혀 발견할 수 없는 이름이라는 것입니다. 아브람은 김서방, 이서방인 셈이지만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사명을 받은 차원이 다른 이름이기 때문입니다.
오늘 본문은 아브람이 열국의 아버지가 되는 출발점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아브라함에 하신 말씀은 한마디로 떠나라는 것이었습니다. 떠나라고 하는 본문의 배경이 되는 장소가 어디인지는 본문 바로 전에 나오는 내용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창 11:31-32 데라가 그 아들 아브람과 하란의 아들인 그의 손자 롯과 그의 며느리 아브람의 아내 사래를 데리고 갈대아인의 우르를 떠나 가나안 땅으로 가고자 하더니 하란에 이르러 거기 거류하였으며 32 데라는 나이가 이백오 세가 되어 하란에서 죽었더라
■원래 아브라함의 고향은 갈대아우르였습니다. 이곳에서 처음에 하나님의 부름을 받아서 부친 데라와 아내 사라와 조카 롯을 데리고 가나안을 향해 가던 중 중간지역인 하란에 머물게 되었고 이 하란에서 지체하던 중에 본문 1절과 같이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게 된 것입니다.
아브라함이 처음에 갈대아 우르에서 부름을 받은 내용에 대해서는 사도행전 7장에 나옵니다.
■행 7:2-3 스데반이 이르되 여러분 부형들이여 들으소서 우리 조상 아브라함이 하란에 있기 전 메소보다미아에(갈대아 우르) 있을 때에 영광의 하나님이 그에게 보여 3 이르시되 네 고향과 친척을 떠나 내가 네게 보일 땅으로 가라 하시니
다시 말해 아브라함은 갈대아우르에서 처음 부름을 받고 하란에서 다시 두 번째 부름을 받은 것입니다. 부름을 받은 이유가 무엇입니까? 이유는 간단합니다. 아직 목적지에 도착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목적지는 가나안 땅인데 하란에서 도중에 멈추어서 나아가질 않으니까 하나님이 재차 아브라함에게 나타나셔서 부르시는 장면인 것입니다.
■하란에서 더 이상 나아가질 않은 이유는 다름이 아니라 하란이 살기 좋은 곳이었기 때문입니다. 오죽 했으면 부친 데라는 하란에서 살다 205세에 죽었다 라고 나오기까지 합니다. 사실 처음에 출발한 갈대아 우르도 결코 떠나기 쉬운 도시는 아니었습니다. 당시로서는 최고의 문명을 가진 도시였기 때문입니다. 사진은 갈대아우르에 지역에 있는 지구라트인데 당시로서는 현대의 제2롯데월드 같은 건축물이라 할 수 있는 최대, 최고의 문명을 가진 도시였습니다. 한데 본문의 하란도 마찬가지였습니다. 하란의 이름의 뜻이 '길목'이라는 것에서 알 수 있듯이 당시 이 지역의 무역의 중심지였고 교통의 요지였습니다. 갈대아우르에 버금가는 문명이 발달한 대도시였던 것입니다. 그러니 한번은 떠날 수 있어도 두 번째는 떠나기 어려웠던 것입니다.
■지도를 보면 알 수 있습니다만 하란은 유브라데스강 근처에 있는데 바로 이 강 때문에 아브라함 일행이 더 나아가지 못하고 주저하게 된 것으로 짐작할 수 있습니다. 고대세계에 강을 건넌다는 것은 완전히 다른 세계, 다른 세상으로 나아가는 것을 의미했기 때문입니다. 갈대아우르를 떠났지만 아직 완전히 떠나지 않았다는 것을 강을 건너지 않고 있음을 통해 알 수 있습니다.
한데 오늘 본문에서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이곳을 떠나라 말씀하셨고 4절에 보시면 결국에는 아브라함이 말씀에 순종함으로 하란을 떠나 5절에 마침내 가나안 땅에 들어갔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우리가 한가지 아실 것은 히브리민족의 히브리라는 단어가 바로 여기에서 시작되었다는 것입니다. 히브리라는 단어는 히브리어 강을 건너다 에 해당되는 '아바르'에서 온 단어입니다.
■창 14:13 도망한 자가 와서 히브리 사람 아브람에게 알리니 그 때에 아브람이
창세기 14장에 아브람을 히브리사람이라 기록한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아브람은 강을 건넌 사람, 강을 건넌 민족이다 라는 것입니다.
히브리인이나 유대인이나 같은 의미입니다만 유대인의 유대는 야곱의 열 두 아들 가운데 네 번째 아들 유대에서 온 단어이고 히브리는 아브라함 때에 생겨난 단어이기 때문에 히브리민족이라는 단어가 훨씬 오래된 단어라 할 수 있습니다. 우리 대한민국 사람을 조선사람, 혹은 한민족이라 부르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흥미로운 것은 당시 강을 건넌 민족이 히브리민족만 있었겠습니까? 수많은 민족이 이 강, 저 강을 건너서 나라도 세우기도 했습니다만 특별히 유대인들에게만 히브리 민족이라는 이름이 붙은 것은 수많은 강을 건넌 민족 가운데 히브리민족만이 현대까지 역사를 유지하고 나라가 보존되었기 때문임을 기억할 때 얼마나 이 히브리민족이 하나님의 인도하심과 돌보심을 많이 받은 민족인지를 알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아브라함이 하란을 떠나는 결단, 강을 건너는 결단을 했기 때문임을 기억해야 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의 신앙이 현재 하란에 머물러있는 것은 아닌지 돌이켜 볼 수 있기를 바랍니다. 갈대아 우르에서 하란까지 온 것도 대단하기 때문에 이 정도 왔으면 됐지 않겠는가 라는 생각이 들 수도 있습니다만 하나님이 원하시는 장소는 하란이 아니라 가나안이라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부산에서 서울까지 가야 할 사람이 대구에서 멈춰서 눌러 앉아 버리는 경우는 없습니다.
■빌 3:13-14 형제들아 나는 아직 내가 잡은 줄로 여기지 아니하고 오직 한 일 즉 뒤에 있는 것은 잊어버리고 앞에 있는 것을 잡으려고 14 푯대를 향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위하여 달려가노라
마라톤 달리기는 목적지에 도착하기 전에 한번쯤 쉬어 가면 좋겠다고 생각하지만 쉬면 전의 페이스를 잃어버리고 피로물질이 몸에 쌓여서 더욱 힘들어진다고 합니다. 신앙의 경주도 마찬가지입니다. 멈추지 마시고 푯대를 향하여 달려가는 신앙인들이 되시길 주의 이름으로 축원드립니다.
본문 6절부터 보시면 아브라함이 가나안 땅에 도착해 보니 공터가 아니라 이미 가나안 원주민들이 살고 있었습니다. 한데 하나님은 이 땅을 아브라함과 자손에게 주시겠다고 약속의 말씀을 하십니다. 요즘 부동산 때문에 말들이 많은 것 같습니다. 땅을 수백, 수천평이 갑자기 무상으로 생기게 되었다고 하면 그야말로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이미 주인이 있는 땅인데 어떻게 아브라함의 땅이 될 수 있는 것입니까? 민수기, 신명기를 통해 살펴봤습니다만 이 약속은 약 500년뒤 모세, 여호수아 때에 정복전쟁을 통해 성취가 됩니다. 전쟁으로 강제로 뺏은 것이 아니라 범죄한 가나안에 대해 하나님이 심판하셨기 때문에 주어진 것임을 성경은 말씀하고 있습니다.
아브라함이 땅을 얻게 되기까지 행한 일이라고는 한가지 밖에 없었습니다. 바로 하나님께 제단을 쌓는 것이었습니다. 8절 후반부입니다. 아브라함이 가나안 땅에 들어와서 가장 먼저 행한 일이 하나님께 제단을 쌓는 일이었습니다. 생면부지의 땅, 이미 주인이 있는 땅,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는 땅이지만 인도하신 하나님께 감사드렸을 것이고 앞으로도 하나님이 인도하시길 바라는 마음으로 제단을 쌓았을 것입니다. 제단을 쌓는 것은 가나안 원주민과 구별된 자들임을 드러내는 행위라 할 수 있습니다.
■이 제단을 쌓는 행위와 비교되는 것이 창 11:4에 나오는 성읍과 탑을 건설하여 의 건설이라는 단어인데 히브리어 원어가 둘 다 같습니다. '바나' 11장은 바벨탑을 '바나' 12장은 제단을 '바나' 하는 장면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바벨탑을 쌓는 것, 제단을 쌓는 것.. 바벨탑은 마치 초고층첨단 빌딩을 짓는 것이라면 제단을 쌓는 것은 그야말로 예배를 드리는 것과 같다고 할 수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눈에 보이는 것과 그 이면에 역사하는 힘과 영적인 능력은 완전히 다르다는 것입니다. 바벨탑은 결국 중단되고 말았습니다만 아브라함의 제단은 축복의 통로, 능력의 통로가 되어서 결국 가나안 땅을 차지하게 했을 뿐만 아니라 온 세상을 하나님 나라로 만드는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된 것을 보게 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바벨탑도 중요합니다. 하지만 이 바벨탑이 무너지지 않으려면 제단을 함께 쌓아야 함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제단부터 먼저 쌓아야 합니다. 하나님은 바로 이 제단을 쌓게 하기 위해 부르신 것입니다. 다시 말해 예배자로 살도록 부르신 것입니다.
말씀을 마칩니다. 세상의 하란에서 나와 하나님께 제단을 쌓는 예배의 자리로 나아가시고 축복의 통로, 축복의 중심으로 살아가시는 모든 성도님들 되시길 주의 이름으로 축원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