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혼 연습
정다운
박 길남은 참 어처구니없었다.
아무리 세태가 변했다고 하지만 이렇게까지 세상이 바뀐 줄 모르고 살았다니 눈 뜬 장님이 따로 없구나 싶었다.
막 구두를 신고 현관을 나서려는데 아내가 따라붙었다.
-말도 잘 안하면서 왠 일이지?-
그는 오늘 따라 현관까지 나오는 아내를 보고 의아했다, 남편이 외출하는데 아내가 현관에 나와 인사를 하는 건 너무나 당연하고도 자연스런 현상이라 새삼 말할 필요가 없는 일이다. 그런데 그는 새삼 무언가 있는 모양이라고 생각했다. 이때 아내가 한마디 던졌다.
“치과에서 임플란트를 해야 한다는데 3천만 원을 주어야겠어”
“뭣이 어째!”
박길남은 순간 뒤통수가 뻣뻣함을 느꼈다. 그러면서 눈앞이 캄캄해졌다. 속으로 뇌까렸다.
- 이 여자가 제 정신인가? 무슨 말을 그렇게 한담...-
마음 속 뒤틀림이 거기까지 이르자 반사적으로 한마디 툭 던졌다.
“고작 한다는 말이 그거야!”
“가정부도 1년 수당이 3천만 원은 된다고 하던데 나도 그만큼 받을 권리가 있어”
아내는 한마디 던지고는 너 알아서 해라 식으로 배짱을 내보이는 것 같았다.
평소 남편에게 말 한미디도 잘 안하는 사람이 겨우 입을 연다는 것이 생뚱맞게 임플란트 비용 3천만원이라. 그는 그 얘기를 듣고 홍두께로 한 대가 아니라 엄청 두들겨 맞은 것처럼 아랫도리에 힘이 빠져나가는 걸 느꼈다. 저렇게 뚝심 좋게 나오는 그녀를 자칫 잘 못 상대했다가는 꽥 소리 한번 질러 보지 못하고 항복해야 할 지경으로 몰리게 될 것 같았다.
그날부터 어떻게 대처해야 할 것인가 고심을 거듭했다. 정년퇴직자 주제에 그런 엄청난 돈을 어디서 만들 수도 없고, 그렇다고 가만히 있자니 아내가 막무가내로 나올 것이 틀림없었다.
고놈의 임플란트가 화근이었다. 몇 년 전만 해도 노쇄해지는 노인들의 잇빨이 문제가 생기면 으레 틀니로써 해결하는 것이 상례였다. 비용도 위 아래 모두 해봐야 300-400만 원 정도면 된다고 한다. 임플란트 시술비는 외국산을 쓸 경우 이빨 하나에 2, 3백만 원이나 되어 틀니 전체와 맞먹는다. 그런데도 국산은 믿을 수 없다며 수입 외국산을 쓰도록 유도하는 경우가 흔하다고 한다. 임플란트를 해야 하는 환자 치고 믿을 수 없는 국산을 쓰고 싶은 사람은 없을 것이다.
아내도 여기에 걸려들고 있는 중이었다. 그러나 그는 아내의 뜬금없는 태도에 대한 면역성이 생겨나서 호락호락 넘어가지 않을 태세를 갖추고 있었다. 이번에는 무슨 수를 쓰서라도 결판을 내야 되겠다고 생각하게 된 것이다.
그는 오늘도 미치고 환장하겠다는 말만 되풀이하다가 집을 뛰쳐나오고 말았다. 그런데 그 뒤가 더 가관이었다. 마누라는커녕 자식 한 놈도 전화 한통 없었다.
-이대로 비명횡사해도 모를 지경 아닌가-
박길남은 울컥 하는 기분에 심사가 뒤틀렸다. 자신이 길남이기는커녕 흉남이 되어 버린 것이 아닌가 싶었다. 기왕 이렇게 된 바에야 한 가지 방법 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그렇다. 아내의 콧대를 꺾어놓으려면 이혼을 들고 나오는 수 밖에 없다-
그는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설마 자신이 그렇게까지 극단적이랄까, 배짱 좋게 나가리라고는 아내가 미처 생각지 못했을 것이다. 바로 그 점을 노려 아내의 약점을 치고 나갈 작정이었다. 집을 뛰쳐나온 김에 아예 나를 택하든지, 임플란트를 택하든지 마음대로 해보라고 선언하고 나섰다, 그리고는 핸드폰 배터리를 빼버린 채 껍데기만 들고 다녔다.
아내는 박길남이 행방불명된 걸 깨닫자 자식들에게 연락을 하고 경찰을 통해 수배령을 때리는 등 호들갑을 떨기 시작했다. 그러나 소식이 없었다. 이쯤 되자 아내는 임플란트고 뭐고 다 귀찮다며 몸져누웠다. 그는 이혼하는 마당에 누가 누굴 찾는가 코웃음을 쳤다. 고소한 생각마저 들었다.
아내가 이러한 남편의 심사를 어떻게 알았는지 그에게 찾아 와 하소연을 했다.
“나 당신에게 임플란트 얘기 안할게 집으로 가요”
“나를 놀리나? 나는 당신과 이혼했잖아!”
그는 한술 더 떴다. 이혼을 기정사실로 한 것이다. 이 말에 아내는 사색이 되더니 그녀가 서 있던 벼랑에서 바다로 뛰어내렸다. 박길남이 깜짝 놀라 고함을 질렀다.
“여보 안 돼!”
공중에다 대고 팔을 허우적거렸다. 그러자 누군가 그의 팔을 잡았다.
‘여보, 당신 피로하군요“
아내가 침대 옆에 앉아 그의 이마에 흐르는 식은 땀을 닦고 있었다.
“아! 당신 괜찮아? 임플란트를 해야 한다고 했잖아”
“당신도 참, 내 이빨이 얼마나 좋은데 벌써 임플란트를 해요”
그제야 박길남은 정신이 들었다. 악몽을 떨쳐 버리려고 화장실로 갔다. 세면대 거울 앞에 서서 참 어처구니없는 꿈을 꾸었다는 생각에 몸을 떨었다.
-멀쩡한 아내를 두고 임플란트 때문에 이혼하기로 했다니...-
수년 전부터 치과의사들은 너나 할 것 없이 미국까지 가서 임플란트 시술과정을 이수했다니 하면서 광고를 때리며 잇몸이 약한 노인들을 유혹하기 시작했다.
박길남은 임플란트 열풍이 불자 한 도지사 후보가 지방자치단체장 선거에서 노인에게 임플란트 비용을 경감시켜주는 공약까지 내걸었다는 보도를 텔레비전을 통해 봤다. 시류를 이용한 포퓰리즘을 보는 것 같아 심기가 몹시 불편했다.
“에이 뭐 저런 걸 가지고 선거공약을 내 거나?”
“왜요? 노인들이 요즘 임플란트를 많이 하는데 비용부담 때문에 걱정들 하던데요”
“명색이 도백이 되려면 지역발전에 관심을 가져야 한단 말이야”
“그래도 비용을 들어주면 좋지 뭐에요”
“이 사람은 남 말을 못 알아들어”
“뭐 당신만 잘 알아. 남을 무시하지 말아요”
임플란트 선거공약 문제가 엉뚱하게 부부간에 자존심 싸움으로 번져가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해서 박길남은 이쯤에서 접어야겠다고 생각했다.
“당신 왜 남의 말을 비꼬고 그래. 이제 그만해”
“당신이 먼저 말을 꺼내 놓고 일방적으로 그만하라고...내 참 어처구니없네”
“이 사람이... 뭐야!”
드디어 고성이 나오고 말았다. 아내는 벌떡 일어나 안방으로 들어가 버렸다.
임플란트 때문에 아내와 사이가 어색해진 뒤 며칠 동안 영 기분이 개운치 않았다. 아내가 보이면 바로 보기가 민망하고 해서 의도적으로 딴 짓을 하는 체 했다. 아내도 같은 기분인지 괜히 부엌으로 들락거리는 것 같았다. 그러던 중 하루는 아내가 핸드백을 들고 나서며 한마디 했다.
“나 임플란트 한번 해 볼까요?”
“응......?”
-이게 무슨 뜬금없는 소린가-
엉거주춤하고 있는 사이 아내는 살짝 웃으며 어깨 너머로 인사말을 던졌다.
“눈에 이상이 있는 것 같아 안과에 다녀올께요”
박길남은 임플란트가 무엇이길래 그렇게들 야단인가 싶어 인터넷에서 검색을 해봤다.
인터넷 어디에 들어가더라도 볼 수 있을 만큼 임플란트 광고가 사이버 공간에서도 활개를 쳤다. 굳이 임플란트를 해야 하는 이유로서 치아의 기능과 심미성, 저작(씹는 동작)의 편안함, 전반적인 구강건강, 정확한 발음 등을 내세우고 있었다. 여기에 나노플란트니 바로플란트, 숏플란트라는 새로운 용어까지 등장하고 이에 맞설세라 잇몸질환 치유를 위주로 한다는 푸코바스 시술이라든지, 치아를 최대한 유지하며 시술한다는 이롬클리닉, 거기다가 분홍잇몸클리닉 등 치과광고가 다종다양하여 혼란스러운 지경에 이르렀다.
이 바람을 타고 개인 시술 5천회 기록 보도, 임플란트 산업의 성장, 시도 단위의 임플란트특화산업 추진 등 임플란트를 둘러싼 얘기가 꼬리를 물었다. 이런 판국에 양념을 칠세라 어떤 가수가 임플란트를 할 셈 치고 생니 3개를 뽑아 병역을 면제받은 혐의로 말썽을 빚는 일까지 벌어졌다.
박길남은 임플란트신드롬에 주눅이 들 것 같아 아예 치과에는 가지 않고 살아갈 작정을 했다. 그런데 간밤 꿈에 임플란트로 만용을 부리게 되었던 것이다.
그는 세면대 거울을 들여다보며 양치질을 하려고 했다. 칫솔을 꺼내며 혼자 중얼거렸다.
-양치만 잘 하면 되지. 임플란트는 무슨 임플란트야-
칫솔 위에 치약을 짜놓은 후 막 입안에 넣으려는데 잇몸이 이상했다. 순간 잇몸 부위를 만져 보고 입을 벌렸다 닫았다 해봤다. 잇몸이 아팠다. 늘그막에 회고록을 써본다고 밤잠을 안자고 자료를 뒤적거린 것이 무리했나 싶었다. 꺼림칙한 기분으로 양치질을 시작했다. 잇몸이 아파 양치질을 계속할 수 없었다. 양치질을 단념하고 우두커니 서서 임플란트를 해야 하나 고개를 갸우뚱거렸다.(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