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이제 너희를 위하여 받는 괴로움을 기뻐하고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을 그의 몸된 교회를 위하여 내 육체에 채우노라. 내가 교회의 일꾼 된 것은 하나님이 너희를 위하여 내게 주신 직분을 따라 하나님의 말씀을 이루려함이니라.”(골로새서 1장 24절에서 25절 말씀)
사도 바울은 골로새 성도들을 위해 받는 괴로움을 기뻐한다고 합니다. 딱히 골로새 성도들을 위해서 고난을 받았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복음의 일꾼이 되어서 복음을 전하다가 받은 여러 고난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특히 지금 감옥에 있는 것을 의미할 것입니다. 바울의 그런 고난을 통해 복음이 전파되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것이 하나님께서 바울에게 맡기신 일이었으며 그것을 통해 하나님의 말씀을 이루고 계셨습니다. 바울은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을 채운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 구절에 대한 해석이 분분합니다.
그리스도의 고난이 남았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할까요? 십자가 고난에도 아직 부족한 것이 있다는 것일까요? 당연히 그렇지 않습니다. 바울은 여러 편지에서 십자가면 충분하다고 강조하고 있습니다. 사실 골로새서의 앞부분에서도 예수 그리스도면 충분하다고 강조하고 있지 않습니까?
그렇다면 무슨 의미이겠습니까? 가장 좋은 것은 '그리스도를 위해 교회가 받는 고난'으로 보는 것입니다. 즉 복음 전파를 위해 교회가 고난을 받아야 하며 바울은 그 교회의 일원으로서 고난을 당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교회가 받는 고난을 '그리스도의 고난'이라고 표현한 것은 그리스도와 교회의 신비한 연합을 의미합니다. 교회는 그리스도의 몸이지 않습니까? 그러므로 바울이 교회를 핍박했을 때 예수님께서는 '어찌하여 네가 나를 핍박하느냐?'라고 물으셨던 것입니다. 교회가 고난을 당하는 것은 그리스도가 고난을 당하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지금 우리들은 복음을 위해 초대교회처럼 고난을 당하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말씀대로 살려고 하면, 말씀을 전하려고 하면 지금도 다양한 정도와 종류의 내적, 외적 고난을 당하는 것이 당연합니다. 세상은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들이지 않기 때문입니다.
우리들도 교회의 일꾼으로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우리들도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을 감당해야 합니다.